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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내 여름의 달력은 일요일부터 시작한다
게시물ID : lovestory_932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8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5/30 21:58:35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고영, 저녁이 다 오기 전에




아무도 찾지 않는 강가를 걸었다

바람을 업고 포도나무 반대편으로 몇 걸음 떼었더니

당신이 젖은 손을 흔들던 쪽에서

꽁지깃이 유난히 붉은

푸른 머리를 가진 새가 날아올랐다


새들은 모두 푸른 영혼을 가졌을 거라고

그래서 하늘이 푸른 거라고

일렁이는 손으로 강물 위에 새를 그렸더니

금세 물결이 데려갔다


내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나는 포도나무에 필 꽃들을 기다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소식을

영영 기다릴 수밖에 없는 폐허의 심정으로

천천히 저녁을 걸었다


포도넝쿨은

왜 한사코 서쪽으로만 뻗어 가는지

포도밭에서 건너온 노을이

흐르는 강물을 다 건너가기 전에


포도나무도 모르는

포도나무의 배후가 되고 싶었다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배후가 되고 싶었다

 

 

 

 

 

 

2.jpg

 

진은영, 연애의 법칙




너는 나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어제 백리향의 작은 잎들을 문지르던 손가락으로

나는 너의 잠을 지킨다

부드러운 모래로 갓 지어진 우리의 무덤을

낯선 동물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해변의 따스한 자갈, 해초들

입 벌린 조가비의 분홍빛 혀 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던

하얀 발가락으로

우리는 세계의 배꼽 위를 걷는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포옹한다

수요일의 텅 빈 체육관, 홀로, 되돌아오는 샌드백을 껴안고

노오란 땀을 흘리며 주저앉는 권투 선수처럼

 

 

 

 

 

 

3.jpg

 

하재연, 여름의 달력




초록색 사과를 깨물던 내가 있고

사과를 네 쪽으로 갈라서 깎기를 좋아하던 당신이 있고


나는 구름이 변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구름의 발목이 사라지는 광경을 바라본다

발목이 발목을 데리고 가는 순간에

당신의 전화가 울린다


여름의 구름은 대기의 규칙을 따른다

오른발을 먼저 내미는지 왼발을 먼저 내미는지

하얀 선 앞에 서보고 싶었는데

멀리서 시작된 누군가의 달리기


당신의 자동응답기는

여름의 목소리만 담고 있다

그리고 당신의 달력은

월요일부터 시작한다


구름과 초록은 대기로 스며들고

사라지고


내 여름의 달력은

일요일부터 시작한다

 

 

 

 

 

 

4.jpg

 

김용택, 춘몽




꾸벅 졸다가 뚝 뜬 눈에 피어있는 너는 어둔 밤을 지샌 꿈이요

다시 감은 두 눈에 따라 들어온 너는 한낮을 지낸 꿈이요

내가 다시 잠들어 너를 잊어도 너는 내게 흰 꿈이로다


꽃은 꿈이요


깜박 속은 게

꽃이라

 

 

 

 

 

 

5.jpg

 

서덕준, 장작




너는 몇 겹의 계절이고

나를 애태웠다


너를 앓다 못해 바짝 말라서

성냥불만 한 너의 눈짓 하나에도

나는 화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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