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좋아하는 단어가 사라지는 꿈을 꿨다
게시물ID : lovestory_934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48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7/12 15:35:11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제니,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바다를 향해 열리는 창문이 있다라고 쓴다

백지를 낭비하는 사람의 연약한 감정이 밀려온다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한적한 한담의 한담 없는 밀물 속에

오늘의 밀물과 밀물과 밀물이

어제의 밀물과 밀물과 밀물로 번져갈 때


물고기들은 목적 없이 잠들어 있다

물결을 신은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스치듯 지나간 것들이 있다라고 쓴다

눈물과 허기와 졸음과 거울과 종이와 경탄과

그리움과 정적과 울음과 온기와 구름과 침묵 가까이


소리내 말하지 못한 문장을 공책에 백 번 적는다

씌어진 문장이 쓰려던 문장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피로와 파도와 피로와 파도와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물결과

 

 

 

 

 

 

2.jpg

 

서덕준, 장마전선




장마전선이 내 허리에 똬리를 튼다

벽을 등지고 돌아누우니 척추 위로 죽음이 나를 좀먹는다

폭우의 파열음이 비극을 예보한다

늑골 사이로 비구름이 거미줄처럼 재봉된다

나는 문득 자살하고 싶어졌다

습기가 잡귀처럼 구천을 떠돈다

나는 마를 날이 없다

 

 

 

 

 

 

3.jpg

 

오은, 아찔




좋아하는 단어가 사라지는 꿈을 꿨다

잠에서 깨니 그 단어가 기억나지 않았다

거울을 보니 할 말이 없는 표정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다른 기분으로 듣는다

종착역보다 늦게 도착한다. 만남은 성사되지 못한다

선율만 흐를 뿐이다


들고 있던 물건들을 다 쏟았다

고체가 액체처럼 흘렀다

책장에 붙어 있던 활자들이 구두점을 신고 달아난다

좋아하는 단어가 증발했다


불가능에 물을 끼얹어

가능해질 거야. 쓸 수 있을 거야

가능에 불을 질러. 불가능해질 거야

대단해질 거야. 아무도 쉽게 건드리지 못할 거야


10년 전 오늘의 일기를 읽는다

날씨는 맑음. 10년 후 오늘은 비가 내린다

오늘에서야 비가 내린다

지우개 자국을 골똘히 바라본다

결국 선택받지 못한 말들

마침내 사랑받지 못한 말들이 있다

다만 흔적으로 있다


어느 날 우리는 같은 공간 다른 시간에서

다른 음악을 같은 기분으로 듣는다

시발역보다 일찍 출발한다

불가능이 가능해진다

착각이 대단해진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오늘 저녁에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찰나

식당 하나가 문을 닫았다

메뉴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배 속이 끓고 있다

턱 턱 숨이 막히고 있다. 당장, 당장


시공간이 한 단어에 다 모였다

 

 

 

 

 

 

4.jpg

 

허수경,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 섬으로 들어갈 때 그대들의 챙긴 물건은

그 섬으로 들어갈 때 내가 챙긴 물건과 비슷하지만

단 하나 다른 것쯤은 있을 것이다

내가 챙긴 사랑의 편지지가

그대들이 챙긴 사랑의 편지지와 빛이 다른 것

그 차이가 누구는 빛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세기의 차이다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다

이것이 고독이다


섬에서 그대들은 나에게 아무 기별도 넣지 않을 것이며

섬에서 나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속에는 눈물이 없다

다만 짤막한 안부 인사만, 이렇게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5.jpg

 

박소란, 푸른 밤




짙푸른 코트 자락을 흩날리며

말없이 떠나간 밤을

이제는 이해한다 시간의 굽은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수록

이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그런 일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

사소한 사라짐으로 영원의 단추는 채워지고 마는 것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건

누군가의 마음이 아니라

돌이킬 수 있는 일 따위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잠시 가슴을 두드려본다

아무도 살지 않는 낯선 행성에 노크를 하듯

검은 하늘 촘촘히 후회가 반짝일 때 그때가

아름다웠노라고

하늘로 손을 뻗어 빗나간 별자리를 뒤집어볼 때

서로의 멍든 표정을 어루만지며 우리는

곤히 낡아갈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걸 알고도 밤은 갔다

그렇게 가고도

아침은 왜 끝끝내 소식이 없었는지

그만 다 이해한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