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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벗어났다고 생각했다면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934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68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7/22 14:17:25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주대, 꽃




눈으로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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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여섯 줄의 시




너의 눈에 나의 눈을 묻고

너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묻고

너의 얼굴에 나의 얼굴을 묻고


말하렴, 오랫동안 망설여왔던 말을

말하렴, 네 숨 속에 숨은 진실을

말하렴, 침묵의 언어로 말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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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옥, 여름의 발원




한여름에 강으로 가

언 강을 기억해내는 일을 매일 하고 있다

강이 얼었더라면, 길이 막혔더라면

만약으로 이루어진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아주 작은 사람이 더 작은 사람이 된다

구름은 회색이고 소란스러운 마음

너의 얼굴은 구름과 같은 색을 하고 있다

닫힌 입술과 닫힌 눈동자에 갇힌 사람

다 타버린 자리에도 무언가 남아 있는 것이 있다고

쭈그리고 앉아 막대기로 바닥을 뒤적일 때

벗어났다고 생각했다면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한쪽이 끊어진 그네에 온몸으로 매달려 있어도

네가 네 기도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4.jpg

 

김이듬, 이 여름의 끝




한국학 연구소 입구에 국화 화분이 놓였다

엄청나게 만발한 두 개의 화분이 사원을 지키는 사자처럼 있다

방금 소장과 직원들이 낑낑대며 사 들고 왔다

국화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르다

독일인 학생들과 선생들은 한국인이 지르는 탄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거울 앞에 선 누이 같은 꽃이건 소쩍새건

아는게 약이든 병이든

몰라도 가을은 온다

동시에 이 순간 여름이 끝났다

독일 달력에도 여름의 끝이라고 적혀 있다

꼭 그래야 하나

열일곱 밤쯤 자고 나면 떠나야 한다

교환교수로 온 선생은 입원해 있다

하이델베르그 광장 근처에서 신호를 무시한 채 건널목을 덮친 트럭에 치여 팔을 다쳤다

불행 중 다행이라며 그의 아내는 문병 간 우리를 오히려 안심시켰다

우리는 모두 기적적으로 남아

사소하게 여름의 끝을 지나간다

연구소 앞 자그만한 연못가에 앉아

한참 물 안을 들여다본다 손가락으로

물 위에 내 이름을 새긴다

몰라도 바람이 분다

왜 오는지 몰라도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이렇게 지나가리라

내가 머물렀던 흔적도

네 마음에 물결쳤던 이 여름의 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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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여름 편지




있잖아요

내 발목이 어디로 흘러갔나 봐요

바람이 부는데 나는 자꾸만 계몽되고 있어요

착하고 온순한 구름으로 만들어지는 걸 보고 있어요

한때 나라고 생각했던 슬픔들이 구름 속에서 잘 자라죠

개종한 나무들은 새로운 골목에서 자라겠죠

이 계절은 그래요

모든 끝이 간지러워서 아무 데나가 여기가 되어 꽃피곤 하죠

창문에 엽서들이 흔들리며 모든 풍경이 빵처럼 부풀고 있죠

잡담들이 뜨거워지고 나는 나를 나로 둘 수가 없어요

이건 질문도 대답도 아니에요

어쩌다 이렇게 많은 골목이 생겼을까요

새로운 길만큼 폐허는 융성하겠지요

지리멸렬이 비로소 자유로워지겠고요

그해 여름의 골목에서 기차를 기다리겠지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죽어가겠지요

보고싶군요 여름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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