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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게시물ID : lovestory_936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6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9/26 22:49:1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연성, 모르는 곳에 산다




내가 모르는 곳에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슬퍼질 때

오랜 지병(持病)이 찾아오고

외로움의 본적(本籍)은 짐작할 수 없는 곳이다

혼자 가난해지면

돌아갈 주소(住所)를 찾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별의

푸른 심장을 향해 교신할 주파수는

점점 희미해지고

메니에르증후군으로 자꾸 눕고 싶어지는 날

지랄 같은 생존을 위해

오늘은 어떤 항체를 구해야 하나

최후에 뜯어먹을 한 점 빛의 혈육(血肉)도 없는데


어두워지는 가슴 안의 적소(謫所)이거나

얇은 바람이 후다닥 지나간 공터 위

희끗한 별 하나 돋는 날이면

생의 바깥쪽으로 걸어오는 당신이 기우뚱 보인다


내일 밤 폭설이 내린다

헛디딘 발자국소리 지워지지 않는다

흰 눈을 뒤집어쓰고

눈 속의 풍경이 가장 무거워지는 한낮

별이 녹는다 설맹(雪盲)의 시야 속에

한 마디 전언(傳言)도 남기지 않은

별빛은 더 이상 지상으로 흐르지 않는다

 

 

 

 

 

 

2.jpg

 

정철훈, 내 쪽으로 당긴다는 말




새벽이 차다

내가 자고 나온 방을 질질 끌고 나온 것 같은

새벽이다

동아줄을 어깨에 감고 무언가를 끌고 있는 느낌

일리야 레삔의 그림에서 배를 끄는 노예들 가운데

내가 끼어 있는 것 같다


실은 아무것도 끌지 않는데

내 쪽으로 끌어당겨지는 무언가가 있다

내 쪽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인간의 이기심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끌어당긴다는 것은 내 쪽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포옹

내 쪽으로 흡착하는 입맞춤

내 쪽으로 힘껏 끌어당기고 있는 사랑한다는 말


말이 당겨진다는 것

당겨져 어깨에 얹힌다는 것

평생 노예가 되어 끌어당겨도 좋을 사랑한다는 말

동아줄이 자꾸만 짧아지고 있다

 

 

 

 

 

 

3.jpg

 

정일근, 퇴행성의 별




의사는 내 별의 무릎 통증을 퇴행성이라 진단했다

그것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별의 뼈가 늙기 시작했다는 것

일찍 저무는 저녁 하늘 위에서

내 별은 내 안에서부터

내 밖의 나보다 먼저 아프게 늙어가고 있다

 

 

 

 

 

 

4.jpg

 

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




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각 오렌지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

 

 

 

 

 

 

5.jpg

 

정진규, 사진




이런 눈물을 본 적이 없다

우는 입술을 처음으로 눈여겨봤다

우는 입술은 흔들림의 본격(本格)이다

실로 첨예하다

흔들림이 슬픔 쪽으로만 깊게 쏠린다

슬픔이 완성되고 있다

내가 내안에 것들을 저런 실물(實物)로 빚는 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내 슬픔이 저토록 온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하나뿐인 사실의 본격(本格)이라고 적어놓는다

이만큼 자꾸 사실보다 더한 사실로 넘어가려는 감동을

내가 울어서 들어낸다

제자리에 앉힌다 눈물이여

내가 덜어낸 눈물만으로도 벌써 눈물다워 있는 눈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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