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그대에게 드리는 꿈(1-3)
게시물ID : lovestory_941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138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3/16 11:41:23
옵션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씨앗(3)




 그제서야 낌새를 챈 보초병들이 저만 살겠다고 허겁지겁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총알은 더 빠르게 가방을 뚫었다.

 쿠앙! 콰콰쾅!

 폭음이 하늘을 찢어발기고, 진동이 땅을 때렸다. 그들의 차도 심하게 요동쳤다. 영사관 건물이 산산조각나 사방으로 날아갔고, 화염과 함께 연기 같은 분진이 자욱하게 해를 가렸다. 

 롱뻐원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에 못지않게 롱뻐원도 왜국에 적대적이었다.

 “멋졌어, 헤라클레스! 우리가 해냈어! 정말이라구! 우리가 정말 멋지게 해냈다구!”

 “그런가?”

 “왜놈 새끼들 눈깔 뒤집어지게 생겼다구!”

 “그럴까?”

 둘은 마주보며 한바탕 웃었다. 가슴속에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스티븐스 국장과의 협상이 순조로울 것 같은 예감이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당장 상해는 발칵 뒤집어졌다. 각국의 신문과 방송들은 이 사건을 앞다퉈 보도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마틴은 상해신보를 펼쳤다. 어제 이미 본부로 전모를 보고했지만 신문은 어떻게 보도하는지 궁금했다. 짐작했던 대로였다. 신문은 1면을 온통 그 사건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상해주재 왜국 영사관에 폭탄테러’라는 큰 제목에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부서진 건물의 잔해 사진이 큼지막했다. ‘6월 19일 오후 2시경, 왜국 영사관에 폭탄테러. 3층 건물 전파(全破). 직원 및 내방객 전원 사망 추정. 현재까지 단서는 찾지 못했으나 왜국 당국은 적대국의 소행으로 단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정말 대단한 놈이야.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몰살을 시키다니.

 어제와 똑같은 독백을 되풀이하면서 마틴은 신문을 덮었다. 매번 느꼈던 것이지만 역시 대단했다. 강성종에게 불가능이란 정말 없는 것 같았다. 스티븐스 국장이 ‘신도 헤라클레스를 이길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했다는 말이 결코 과대평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정보의 집산지라고 할 수 있는 영사관이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 파괴되고, 직원들은 몰살했으니 왜국의 정보망은 큰 혼란을 겪을 것이 분명했다.

 완벽하게 성공한 작전이었다. 전쟁 중인 적국이라고 해도 제3국에 있는 영사관을 공격하는 것은 명백한 테러였지만 증거는 없었다. 미국과 영국은 즉각 아는 바 없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에 왜인들은 경악했고, 중국인들은 놀랐으며, 조선인들은 속이 후련했다. 세계의 이목이 상해로 집중되고 있었다.


 중경의 임정도 술렁거렸다. 상기된 표정의 김구가 군사부장 송상혁에게 물었다.

“혹시 우리 쪽에서 한 거사는 아니오?”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들어온 정보가 없습니다, 각하.”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송상혁의 음성도 떨리고 있었다. 의열단도 단장 서태문을 비롯한 단원 전부와, 김구가 비밀리에 조직했던 한인애국단 또한 광복군에 편입됐다. 그러나 임정과 광복군에 합류하지 않은 소수그룹의 열혈 독립투사들이 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임정의 지시가 아니라 해도 국내 외의 동포들에게 독립운동이 막을 내려버린 것이 아님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김구는 소리 나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임정의 휘하 군사조직이라고는 광복군 뿐이었다. 명칭은 그럴듯하지만 광복군은 병력 8백 여명의 소규모 군사조직이었다. 왜놈들의 무자비하고 끈질긴 탄압 앞에서 독립운동 조직은 거의가 풍비박산이 나버려 이름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단체도 많았다. 그나마 연락조차 쉽지 않은 탓에 독립운동 단체들끼리의 연계도 거의 없었다. 광복군 8백 여명도 임시정부로 볼 때는 적은 숫자가 아니었지만 수백만 명의 군인들이 전쟁을 치르는 세계의 대전에서 수백 명은 실로 미미한 숫자일 수밖에 없었다. 임정은 2차대전이 발발하자 곧바로 도발국들을 향해 선전포고문을 발포했고, 광복군 1대는 작년(1943년) 8월부터 연합국들의 요청으로 미얀마와 인도 전선에서 영국군과 연합작전을 펴고 있었다. 

 연합국들이 광복군의 참전을 요청했을 때 모두들 임정의 승인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도 연합국들은, 특히 미국은 아직도 임정의 승인을 보류하고 있었다. 말이 보류지 거부나 다름 없었다. 임정의 대표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게 억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망명정부를 수립해 왜제를 상대로 독립투쟁을 시작한지 20년이 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아닌가 말이다. 연합국들의 요청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파병한 군대가 영국군과 연합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도 미국은 그런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종전 후 연합국들의 한반도 신탁통치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안타까웠다. 참으로 많은 독립투사들이 왜제와 싸우다가 스러져 갔다. 지금 그 많던 독립투사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면 그 숫자만으로도 임정의 승인을 함부로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의미 없이 스러져 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선배 독립투사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지금도 약하지만 독립투쟁의 맥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었다. 동학혁명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이렇게 오랫동안 가열하고 끈질기게 투쟁해 온 민족은 세계 어디에도 없으리라 자부하는 김구였다.

 내무부장 최태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놈들 추측대로 정말 영국이나 미국 쪽이 아닐까요?”

 “영국과 미국이라......”

 그렇다면, 혹시? 김구의 머리 속에는 두 달여 전에 사람을 보내왔던 강성종이 퍼뜩 떠올랐다. 그라면 능히 이런 거사를 해내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김구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드러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점심 안 묵어도 하나또 배고프지 않겠구마는.”

 점심은 거르는 게 임정의 관례로 굳어진지 오래건만 큰 덩치에 걸맞게 유난히 허기를 못 견디는 재무부장 표두홍의 말이라서 모두들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모두들 그 거사를 임정에서 주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여동지에게서는 연락이 없소?”

 “각하, 아직 연락이......”

 “건강을 해치시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러운 최창익의 대답에 김구도 말꼬리를 흐렸다.

 안타까웠다. 작년 말에 김구는 여운형에게 오직 민족독립의 깃발 아래 이념은 뒤로 물리고 하나로 뭉쳐 자주적인 독립을 쟁취하고자 구체적인 방안을 제의한 바 있었다. 같은 자주독립론자들끼리 합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여운형은 흔쾌하게 동의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여운형은 구속을 당하고 말았다. 워낙 거물이라고는 해도 발각이 난 이상 흉악무도한 왜놈들에게 말 못할 고초를 겪었을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지 여운형이 쉽게 출옥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따로 연락은 없었다. 그래도 여운형은 결코 변절할 인물이 아님을 김구는 굳게 믿고 있었다.


 왜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서도 전역에 걸쳐 ‘영・미타도분격대회’니 하는 이름의 군중대회가 연일 열리기 시작했다.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왜국은 상해의 영사관 폭파가 영국과 미국의 소행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각종 부왜집회가 그랬듯이 이번 군중대회들도 총독부가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관제집회가 열리면 조선의 민중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나올 수밖에 없었다. 조선에서 모든 관제집회를 주도하는 인물은 최림과 박충금이었다. 둘은 부왜파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3・1운동 민족대표 중 한 사람이었던 최가가 연사들을 동원하는 책임을 맡았다면 박가는 군중을 동원하는 일을 맡았다. 조선의 민중들은 숟가락・젓가락까지 빼앗기는 것은 차치하고 주린 배를 움켜 잡고 신사참배를 해야 했고, '황국신민의 서사'를 외워야 했으며, 아무런 보수도 없는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이렇게 각종 관제집회에 수시로 끌려 나와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뼉까지 쳐야 했다. 왜제는 물질적인 수탈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수탈까지 자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민중들의 가슴 밑바닥에서는 희망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 왜제의 발악이 심해질수록 패망 또한 멀지 않았다는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