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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2-1)
게시물ID : lovestory_941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158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4/13 12:18:12

***

     그대에게 드리는 꿈


        2. 건국연맹(1)




 “이보오, 술 더 가져오시오!”

 만취한 윤성보가 아내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오늘따라 손님이라고는 없었다. 윤의 아내는 남편을 방으로 데려갈 일이 난감해서 울상이 되고 있는 중이었다.

 “이보오, 술 더 가져오라니까!”

 “이제 좀 고만하셔요. 몸도 좀 생각하셔요.”

 “몸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몸이오. 죽어 없어져도 아까울 것 하나 없는 몸이오. 이보오, 내가 술도 안 마시면 할 게 뭐가 있겠소. 제발 술 더 주시오.”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의 아내가 애원을 해도 윤은 막무가내였다. 그동안 당했던 고문들로 인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윤이었다. 신체의 고통을 덜기 위해 시작했고, 조공이 와해되고 그 패배감까지 더해져서 한 잔 두 잔 술이 늘어난 것이었다. 

 더 달라느니 안 된다느니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낡은 문이 삐그덕,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섰다. 백상열이었다.

 “미안합니다, 손님. 오늘은 장사 끝났습니다.”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윤성보 아내의 표정에는 미안함과 함께 반가움이 역력했다. 남편을 방으로 옮기는데 늘 손님들의 도움을 받아왔던 것이었다. 인사불성으로 취해 축 처진 남편은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불가였다.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본 백이 손을 내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술을 마시러 온 게 아니라 선생님을 뵈러 온 겁니다.”

 그러자 윤은 번쩍 고개를 들어 백을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완전히 풀렸는데도 사람은 용케 알아 보는 모양이었다.

 “백동지가 웬일이시오.”

 “선생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 같은 폐인에게 무슨 할말이 있다는 거요?”

 “선생님이 폐인이시면 저 같은 인간은 뭐란 말입니까? 으하하하......”

 백은 나직하면서도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과장해서 웃으면서도 윤의 자조를 알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변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투쟁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선생님.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이었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바깥에서 할 성질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백이 윤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윤은 곯아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윤의 아내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백은 일부러 껄껄 웃었다.

 “일부러 찾아오셨는데......”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일어나시면 백상열이가 왔다 갔다고 전해주시고, 내일 여운형 선생님이 뵙고 싶어 하신다고, 여기로 오라고 전해 주십시오.”

 시간과 장소를 윤의 아내에게 은밀하게 부탁한 백은 밖으로 나왔다. 

 다음날, 윤은 해가 중천에서 저울질을 할 때가 돼서야 일어났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오래전부터 있어 온 일이었다. 가만있자..... 어제 누가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것 같았다. 꿈속에서였나.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구였을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했을까? 동지들이었을까?

 “이보오!”

 한껏 목청을 돋워 아내를 찾았다. 대답이 없었다. 아내는 시장을 보러 간 모양이었다. 머리맡에는 언제나처럼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주점을 시작하고부터 끼니를 제대로 찾아먹은 적이 별로 없었다. 대낮이 돼서야 깨어나면 바로 해장술이었다. 몇 년을 반복해 온 일과였다. 아내가 신여성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술에서 깨고 나면 늘 하곤 했다. 신여성이라면 누가 자신 같은 남자에게 붙어 있을까.

 웬일인지 오늘은 밥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밥상 앞에 앉아 밥 한 숟가락을 입 안에 밀어넣어 보았다. 모래를 씹는 기분이 따로 없었다. 숟가락을 팽개치듯 놓고 술을 찾았다. 역시 술이 최고였다. 술을 찾아 방으로 들어오니 장을 본 아내가 돌아왔다.

 아내가 다짜고짜 술병을 빼앗았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아무리 술을 마셔도 애원을 하는 정도지 이렇게 술병을 뺏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 이 사람도 지쳤다는 거겠지. 하기야 지칠 때도 됐지. 지금까지 견뎌 준 것만도 고마운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윤은 슬며시 서운한 마음이 들고 있었다.

 “이보오, 왜 이러오?”

 “오늘은 좀 삼가세요.”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아내였다. 이제 기분이 언짢아지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싸울 수는 없었다. 입맛을 쩝쩝 다셨다. 목구멍을 짜르르 자극하는 술맛이 입에 감돌고 있었다. 아내가 백상열이 다녀간 이야기를 했다.

 “그랬소?”

 무슨 일일까? 궁금증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여운형이 은밀하게 자신을 찾을 이유가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해장 한잔 안할 수는 없지. 슬며시 아내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완강했다.

 아내는 남편이 도망을 다니던 때가 오히려 좋았다. 가슴 졸이기는 했어도, 고생스럽기는 했어도 가뭄에 콩 나듯이 보는 남편은 활기에 차 있었다. 그런 남편이 보기 좋았다. 그래서 이유는 잘 모르면서도 여운형의 연락이 기쁜 것이었다. 폐인이 되다시피한 남편에게도 뭔가 할일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윤은 아내에게 등을 떠밀리다시피 해서 씻고 수염도 깎았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자신이 보기에도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제야 어느 정도 사람 꼴을 갖춘 것 같았다. 몸은 여전히 아팠지만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어둠살이 퍼진 후에 집을 나서면서 윤은 자신도 모르게 잽싸게 주위를 휘둘러보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랐다. 활동을 접은 지 몇 년이 됐건만 몸에 밴 습성이 본능처럼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정신으로 하늘을 바라본 게 정말 얼마 만인지 몰랐다. 어떤 일을 해도 잘될 것만 같은 기분이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미리 나와 있던 여운형이 반갑게 윤을 맞았다.

 “윤동지, 이게 얼마 만이오? 반갑소이다, 반가워.”

 “선생님, 그간 고생이 많으셨지요?”

 “나야 고생이랄 게 뭐가 있겠소. 윤동지 같은 분들이 더 고생이 심하지 나 같은 부왜파가 힘들 것이 뭐가 있겠소. 그래 몸은 좀 어떠시오?”

 “견딜만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운형은 윤의 손을 꼭 잡고 놓아줄 생각을 않았다.

 “동지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현재 전황으로 볼 때 왜놈들 세상은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분명하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왜놈들은 물러날 것이오. 패망하고 나서도 그놈들이 우리나라를 계속 지배할 수 없을 것은 자명한 이치요. 연합국들이 그렇게 놔두지 않을 테니 말이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해방을 맞아서는 안 될 것이오. 왜놈들을 우리 손으로 몰아내야 하오. 그래야만, 한반도의 신탁통치가 거론되는 작금의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주권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지 않겠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사분오열된 상태여서는 안되오. 자주독립을 원하는 세력은 이념을 떠나서 뭉쳐야 하오. 그래서 왜놈들과 무력으로 맞설 준비를 시작한다면 설령 시기가 맞지 않아 왜놈들과 싸워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큰일을 하게 될 것이오. 그렇게 왜놈들이 물러가고 나면 얼마간은 공백 상태가 될 것이 아니겠소. 그 시기에라도 잘만 하면 이 나라의 정기가 바로 설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소. 그 시기에 부왜분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처단해야 되오. 해방이 주어지고 난 뒤에 무언가를 만들려 한다면 때는 늦을 것이오. 이땅에 남아 있는 부왜분자들도 가만있지 않을 테니 말이오. 그자들도 분명히 반격하고 나설 것이오. 그러니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윤동지, 우리, 임정을 중심으로 거족적으로 싸우기로 합시다. 그것만이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살길이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윤은 즉각 찬동했다. 당연히 그렇게 돼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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