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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 (2-2)
게시물ID : lovestory_942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2
조회수 : 155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4/20 11: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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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2. 건국연맹(2)



 “고맙소, 윤동지. 사회주의만이 우리 민족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보류합시다. 해방만 된다면 그까짓 이념 따위가 뭐가 문제겠소. 나도 사실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제 마음을 다 비웠소. 나는 해방을 위해서라면 백의종군하기로 마음먹었소.”

 여운형의 어조는 단호했다.

 “허나 지금 조공 쪽은 나와는 연결이 되지 않는 상태요. 윤동지에게는 가끔씩 사람이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소. 윤동지가 나서서 조공을 설득해 준다면 모두들 협조해 주리라 믿소. 우리 힘을 합해 함께 해방을 쟁취하도록 합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선생님.”

 “고맙소, 윤동지!”

 여운형이 윤의 손을 힘차게 잡아 흔들었다.

 박두희가 여운형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윤성보와 스친 것은 동대문 가까이에서였다. 박가는 정인호, 김시재와 함께 조선 최고의 거물 밀정이라 할 수 있는 이중형이 거느린 세 밀정 중의 하나였다.

 달빛 아래긴 했지만 분명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누구인지 좀처럼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떠올리고는 뒤돌아보니 윤은 벌써 보이지 않았다. 박가가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윤이 술에 취해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분명 술냄새가 나지 않았다. 주정뱅이로 소문난 윤이 밤에 말짱한 정신으로 다닌다는 것부터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박가도 술을 마시는 척 윤의 아내가 하는 주점을 두어 번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초저녁인데도 윤은 인사불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윤이 말끔하게 면도를 한 것이었다. 수염이 제멋대로 자라 걸인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윤이 면도를 했다는 것은 변장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눈썰미 좋은 자신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했다. 따라갈까,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방향으로 보아 이미 어디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인 것 같았고, 이중형을 만날 시각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박가는 연희전문 독서회조직에 대한 보고를 하러 이가의 아지트로 가는 길이었다.  이가와의 접촉은 밤에만 했다. 이미 세상이 다 아는 밀정인 이가와 대낮에 만난다는 건 밀정노릇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종각 앞에서였다. 일부러 윤성보 보다 한참이나 늦게 임창식의 도장을 나온 여운형을 박가가 또 마주친 것이었다. 운니동이 집인 여운형이 이곳에서 얼쩡거리는 건 별로 수상쩍은 일이 아님에도 박가의 머릿속엔 순간적으로 윤이 떠올랐다. 그리고 더욱 의심에 부채질을 하는 사실은 여운형에게서도 술냄새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윤과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호주가로 알려진 여운형이 이 시각에 술도 마시지 않은 채로 자신과 마주친 것이었다. 그런데 왜 자신이 동대문 쪽에서 오는 길에 한꺼번에 둘을 만났을까? 옳거니! 어디서 만났다고 해도 같이 나오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곳 어딘가에 아지트가 있다는 이야긴데...... 그렇게 단정하면서 박가는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이 캐낸 최대의 사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 건이 무르익으면 이가를 제치고 경무국에 바로 보고해야지, 생각했다. 그동안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챙긴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자신이 쌓은 공적이면 벌써 경부는 됐어야 했다. 그런데도 돌아온 것은 쥐꼬리만한 돈뿐이었다. 경무국이 자신의 존재를 아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이 건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직접 경무국에 보고를 하리라. 그러면 이가보다 더 인정받는 밀정이 될 수도 있었다. 박가는 다시는 죽 쑤어 개 주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김인수는 낡은 성경 한 권을 가방에 넣고 양한삼을 만나러 평양으로 향했다.

 총독부는 오래 전부터 종교계를, 특히 기독교계를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보고 갖은 탄압과 회유를 병행하고 있었다. 그중에도 평안도는 기독교의 기운이 가장 강한 곳이었다. 왜인들과 경찰, 밀정, 부왜파들이 가장 많이 테러를 당하는 곳도 평안도였다. 총독부는 그 배후가 기독교계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교회가 음으로 양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결과라고 보는 것이었다. 창씨개명을 반대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일에도 단연 기독교계가 앞장서고 있었다. 그 기독교계의 정점에 장로 양한삼과, 얼마 전에 감옥에서 순교를 한 석진우 목사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조기총(조선기독교 총연합회) 회원 교회들은 부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창씨개명은 물론이요, 신사참배, 궁성요배에 교인들이 앞장서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소속 교회들에게 철제 종탑마저 전쟁 물자로 헌납하도록 독려하고 있었다. 현재 종탑이 없는 교회가 부지기수였다. 양한삼과 같은 올곧은 기독교인들은 조기총을 사탄으로 규정하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중이었다.

 평양역에서 내린 김은 양의 집으로 향했다. 양의 집 앞 골목에는 밀정 하나가 얼쩡거리고 있었다. 연락책으로 잔뼈가 굵은 김은 한눈에 알아보고 다짜고짜 밀정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예수님을 아십니까?”

 한 손에는 성경을 든, 초라한 양복에 안경까지 낀 김의 모습은 누가 봐도 교역자였다. 밀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웬만한 사람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기 마련이고, 악독한 자일수록 사후세계는 더욱 불안한 법이었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악독해도 면전에서 종교인을 핍박하는 자는 드물었다. 일부 종교인들의 광적인 부왜행각은 차치하고 악인들에게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감을 심어 준 것만으로도 종교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고 믿는 김이었다.

 “이러디 말라우요. 내레 기딴 거 모르니끼니.”

 밀정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김의 표정에는 점점 더 기쁨이 넘쳐나고 있었다.

 “아,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셨군요?”

 반가워 죽겠다는 듯이 두 팔을 벌리며 김이 밀정에게 바짝 다가갔다. 밀정은 낭패한 기색이 역력해져서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했다. 김은 더욱 목소리를 높여 울먹였다.

 “오, 주여! 고맙나이다. 오늘도 이렇게 길 잃은 어린양을 제게 보내주시는 주님, 고맙고도 고맙나이다. 제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어늘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아직 주님을 모르는 어린양에게 전하게 해주시니 고맙나이다, 주님! 대저 모든 영광이 주님 안에 있나이다, 아멘!”

 김의 기쁨에 넘치는 기도를 들은 밀정의 얼굴은 반대로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기독교의 전도자들과 직접 마주친 적이 없어도, 그들이 끈질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선생님,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너희 가정이 구원 복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마음속에 주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부터 천국은 선생님 앞에 놓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걱정하지 마라. 하늘을 나는 새도 다 나의 양식을 먹고 살거늘...... 그렇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면 세상의 온갖 근심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기쁨만이 충만한 세상이 열립니다. 선생님, 저를 보십시오. 기쁨이 충만하지 않습니까? 저는 항상 울고 싶도록 기쁩니다. 주여! 주여! 주여!”

 이제 김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절규하듯이 설교를 하며 밀정에게 다가갔고, 밀정은 점점 빠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김은 밀정을 따라가면서 찬송가까지 불렀다. 밀정은 이제 아예 등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선생님, 돌아오십시오! 예수님은 열 사람의 의인보다 한 사람의 악인을 구원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생님같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중하다는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오, 복되도다.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주 예수를 믿으니 복되도다. 하나님 안에서 복되도다. 할렐루야!”

 한참이나 따라가며 설교를 계속하던 김은 밀정이 영영 도망을 쳐버리자 빠른 걸음으로 양한삼의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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