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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 (2-3)
게시물ID : lovestory_942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2
조회수 : 157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4/27 11: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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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2. 건국연맹(3)



 양은 대청마루에서 성경을 읽고 있다가 김을 맞았다. 김의 입성이며 손에 든 성경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양의 입가에 웃음이 묻어 나왔다. 저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왔으니 일없이 오지는 않았을 테고...... 서둘러 마당으로 내려선 양이 정중하게 목례를 올리는 김의 손을 잡았다.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양장로님?”

 “하나님 안에 있으면 별고 있을 리가 없지요. 진정으로 하나님 안에 있지를 못해서 문제지만...... 김목사님도 별고 없으셨는지요?”

 김이 ‘장로님’이라고 부르자 양은 ‘목사님’으로 받았다. 둘의 대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엿듣는 귀가 있다고 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이었다. 잠시 양의 얼굴에 어둠이 깃들었다.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면서도 왜국이라는 사탄의 제자가 된 많은 교역자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몽양선생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장로님.” 

 방으로 들자 김의 음성이 은근해졌다.

 “몽양은 평안하신가요?”

 “예, 강녕하십니다, 장로님.”

 “자주 인사도 차리지 못하고...... 왜놈들 치하에서는 사람구실도 못하고 살아야 하니......”

 양이 말끝을 흐렸다. 이야기를 다 들은 양이 묵도를 올렸다. 김도 손을 앞으로 모아 잡고 눈을 감았다. 철저한 무신론자였지만 양의 경건한 기도 앞에서 숙연해지고 있었다.

 “정말 잘 된 일이오. 나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 좌파나 우파나 같이 민족을 위해 싸우면서 분열돼 있는 것이 마음에 늘 걸렸소. 지금이라도 힘을 합치게 됐으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소. 하나님은 곧 민족이라오. 하나님이 보실 때도 이 얼마나 기쁘신 일이겠소.”

 양은 하나님세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 핍박하는 자도 핍박받는 사람도 없는, 서로 사랑하며 어우러져 사는 세상. 그런 세상이야말로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왜놈들을 물리치고 나면 그런 세상이 열릴 것이었다. 그런 세상을 위해서라면...... 순교를 각오하는 양한삼이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벌목으로 하루가 다르게 이 땅의 산들은 흉측한 알몸이 되어갔지만 아직 깊은 산중은 산다운 자취가 그런대로 남아 있어 짙푸르렀다. 그 짙푸름이 시원한 바람이 되어 아래 촌락들로 내려갔다. 산이 있어 촌락들도 무더운 여름을 그럭저럭 날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산에는 계곡이 있었다. 가뭄으로 촌락의 물이 바닥이 나도 깊은 계곡의 물은 쉬이 마르지 않았다. 산은 군데군데 샘을 만들어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듯이 변함없이 조금씩 물을 풀어내는 것이었다. 또 산을 산답게 하는 것에는 사찰을 빼놓을 수 없었다. 사찰은 산중에 살포시 숨어서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도, 세상사에서 한 발짝 물러선 듯 하면서도, 사람 사는 산아래 마을에 불심을 뿌리면서 변함없이 거기 있었다. 오대산에도 그런 사찰이 있었다. 바로 월정사였다. 월정사에는 또 걸출한 독립운동가 구본오가 있었다.

 막 맹물로 점심공양을 끝낸 구본오는 밀려드는 졸음을 쫓기 위해 독경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졸음귀는 어떻게 쫓으셨을꼬. 마하반야바라밀다...... 눈꺼풀이 눈을 덮으면 부릅뜨기를 반복하는데 문밖에서 동자승이 불렀다.

 “주지스님!”

 “왜 그러느냐?”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면 드시게 하면 될 게 아니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구는 벌써 문을 열고 있었다. 문밖에는 여운형과 함께 해온 김복만이 서 있었다. 순간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한달거리로 경성나들이를 하는 형편이니 경성에서 봐도 될 일이었다.

 “김동지가 웬일이시오?”

 “선생님,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나는 명색이 중이오. 선생이 뭐요, 선생이? 땡중놈아, 하든지 스님이라고 불러주시오.”

 궁금증을 삼키며 구는 농을 건네며 웃고, 김도 따라 웃었다.

 “이 염천에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소. 그래, 여동지께서는 평안하시오?”

 “예. 강녕하십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전보다 더 젊어 보이십니다.”

 “잘 먹고 마음 편하니 신수가 훤할 수밖에요. 천년이 가도 변함이 없을 소싯적에 외워둔 불경 몇 구절만 하면 평생 밥걱정이 없으니 중노릇하기 좀 좋소? 부처님만큼 선견지명이 뛰어난 성현도 아마 없을 거요. 김동지도 웬만하면 머리를 깎으시오.”

 말은 그렇게 웃으면서 해도 자괴하는 구의 속을 김은 읽고 있었다. 어느 종교나 극렬 부왜파는 있었다. 구는 자신이 속해 있는 불교계만은 깨끗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승려들도 왜제의 침략전쟁에 지원병으로 가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조선의 승려가 왜제의 전쟁에 나가 살인을 하는 것이 불교의 본령이라고 주장하는 자도 있었다. 그것도 승려이면서 명망 있는 자들이 그랬다. 이미 많은 사찰이 놋그릇, 촛대, 범종에다 청동 불상까지 총알을 만들라고 헌납한 형편이었다.

 “선생님, 계획하시는 일은 잘돼가시는지요?”

 “계획하는 일이라......”

 금세 표정이 어두워지는 구였다. 계획이라면 무장봉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구는 임정에 군자금을 밀송하면서, 국내에서의 무장봉기도 생각하고 있었다. 월정사의 도반들에게 점심공양을 물로 때우도록 하면서까지 자금을 모으고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올 3월에는 승병 모집이라도 시작하려 했으나 쉽지가 않았다. 애당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실 별 진전이 없소이다. 나 혼자서 발버둥친다고 될 일이겠소?”

 구는 당장 분이 솟구쳐 오를 것만 같아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혈질인 구의 성정을 아는 김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몽양선생님께서 좌우를 어우르는 무장투쟁조직을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래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구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지난번에는 왜 아무런 연락이 없었소?”

 “그건 사정이 있었습니다.”

 김이 사정을 설명하자 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임정이 그런 제의를 한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여운형이 좌파로 구성된 어떤 조직을 만들려다 피체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에게는 따로 연락이 없는 임정에 서운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밀리에 추진해야 할 일이었고, 국내에서는 그 일의 적임자가 여운형이라는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몽양선생님께서는 우선 국내부터라도 좌우를 초월한 조직을 건설하기로 하셨습니다. 물론 임정의 예하조직으로입니다.”

 “정말이지 그거 잘됐소!”

 구는 무릎을 탁 쳤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기뻤다. 얼마나 소망했던 일인가. 이것으로 독립은 다 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손을 마주잡고 제대로만 움켜쥐면 한 줌 모래에 지나지 않을 왜놈들이었다. 그런데 한 손으로 움켜잡으려고 하니 잘될 리가 없었다.

 “힘은 좀 들 것입니다만 여러 선생님들이 나서주시면 국내단체들은 모두 따를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도 고생을 해주십사고 왔습니다.”

 “그야 여부가 있겠소. 그런데 임정에 연락은 취했소?”

 “조직의 틀이 잡히면 곧 연락을 취할 것입니다.”

 “그래, 임정에 연락하는 게 급한 것은 아니지. 그러하다면 내 비록 힘은 미약하나마 분골쇄신하겠소.”

 동포가 3천만인데 비하면 왜놈들은 한줌도 되지 않았다. 뭉쳐서 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구본오의 머리속에는 왜놈들의 말로가 그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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