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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2-4)
게시물ID : lovestory_942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3
조회수 : 181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5/04 09: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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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2. 건국연맹(4)

  
 안대순은 헐수할수없이 성주에 붙박여 있었다. 한 번 움직이려면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감시는 심하지 않았다. 이제는 활동을 못하리라는 게 경무국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안은 창씨개명에 반대하는 격문을 써 각지의 향교에 돌리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백상열이 대문을 들어서자 방문을 열어두고 있던 안이 고함을 질렀다. 
 “태평성대로구나!”
 그 말은 곧 태평성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백이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고등계 나부랭이라 짐작했던 것이다. 말뜻을 알아차린 백은 웃음이 나왔다. 방으로 들어선 백이 큰절을 하고나자 그제야 사람을 알아보는 안이었다.
 “백동지가 웬일이시오?”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선생님.”
 “들었다시피 태평성대 아니오.”
 “때는 요순지절이지요.” 
 백의 맞장구에 안이 허허허, 웃었다. 받내는 방 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지만 오히려 백에게는 안의 독립의지가 피워내는 향기처럼 느껴져 싫지 않았다. 웃음을 거둔 안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른데 우짠 일로 이래 먼길을 왕림하셨소?”
 이야기를 들은 안이 파안대소했다.
 “이래 좋은 일이 어디 있겠노! 내가 다리마 안 이러머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구 접은 기라.”
 “그렇게 기쁘시단 말씀이십니까?”
 좋아하는 안을 보고 백이 빙그레 웃었다. 
 “좋다마다. 주석 각하하고 여동지가 차말로 좋은 생각들을 하신기라.” 
 “이제라도 시작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라머, 그라머. 특히 여동지가 큰 결심을 하셨니더. 여동지맨치로 큰 인물이 임정 밑에서 자리하겠다 카는 기 안 쉽을 낀데 말이라.” 
 “거기다 백의종군하시겠다고 그러시고 계십니다.” 
 “그라머 안되지요. 그 출중한 지도력을 썩히머 안되지.” 
 “독립이 되면 영 은퇴를 하실 결심인 것 같습니다. 한 번 마음을 잡수시면 꼭 하고야 마시는 분인데......” 
 “어허, 참말로!”
 지그시 눈을 감는 안이었다. 백은 자세를 가다듬었다. 
 “선생님께서 이번에도 노고를 좀 해주십시오.”
 “앉인배이가 용을 써봤자 얼매나 쓰겠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기 있다 카머 얼매든지 해야지러!” 
 “선생님께서 유림을 맡아주시라는 여선생님의 부탁이십니다.” 
 “유림이라꼬?” 
 안이 벽력같이 고함을 질렀다. 깜짝 놀랐으나 안의 유림에 대한 분노를 알 것 같아 백은 손을 모아잡았다. 다른 사람이 들을까봐 그게 걱정이었다.
 “이땅에 유림이 어딨노? 어디에 있노 말다!”
 “......” 
 “신체발부너 수지부모라 캤거널 김삿갓은 아지도 몬하는 조상을 욕했다꼬 평상을 삿갓으로 하늘을 가루코 살았는데 하물며 조상이 내라주신 이름이며 성까장 헌 짚신 내삐리듯이 내삐리는 눔들이 우째 유림이고?”
 “......”
 “참말로 양반들은 치욕을 당하머 죽음으로 항거했거늘 왜눔들이 조종하는 경학원이라 카는 데서 희희낙락거리넌 눔들이 무신 유림이고? 나라가 내삐린 상민들은 나라를 위해가 목심을 바쳐가 싸우는데 나라의 은덕을 대대로 입고 살아온 양반이라는 카는 눔들이 싸우기는커녕 왜눔들인테 빌붙어가 호의호식하고 사는데 그눔들을 어찌 유림이라 칼 수 있겠노? 이 나라의 소위 양반이라 카는 자들은 니나내나 반상을 논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라. 나라를 팔아묵은 눔들도 그눔들 아이가. 나넌 독립이 되머 반다시 반상차별을 지대로 철폐해야 된다꼬 생각하오.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가 초개긑이 목심을 버린 절대다수의 상민들인테 우리나라가 빚을 갚는 뜻에서람도 그래 해야 할 것이오. 창씨개명에 저항한 참말로 양반들은 전부 반상차별 철폐에 반대하지 안할 것이라. 그 냥반들은 나라를 왜눔들인테 팔아묵은 눔들이 자기들하고 똑같은 양반이라 카는 거를 알기 따문에. 반상차별 철폐에 반대하는 눔들이야말로 우리 민족을 양반・상민으로 편을 갈라가 분열정책을 쓰는 왜눔들 앞잽이 선 자들이니 처단해가 마땅을 것이오. 창씨개명을 하고도 반상차별 철폐를 반대하는 눔들이 있다카머 다른 죄가 따로 없다 캐도 부왜파로 보고 처단해 마땅타 카는 말이오. 그눔들은 우얄 수 없어가 창씨개명을 한 다른 사람들하고 달리 취급해야 되는 기라. 소위 양반이라 카는 눔들은 그기 잘못이라 카는 거를 알고 한 눔들이기 따문에.” 
 성난 안의 일갈에 백은 머리를 조아렸다.
 “...... 깊이 새기겠습니다.” 
 “이런...... 내가 또 격했구마너. 백동지인테 한 말이 아이니 이해를 하시오.”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노기가 가라앉은 안이 미안해했다. 오히려 백은 기분이 좋았다. 아직도 청청하게 살아 있는 저항정신의 한 자락을 보는 것 같았다. 불의에의 저항이야말로 지사정신의 발현이 아니겠는가. 군주 앞에서도 목숨을 돌보지 않고 직간하여 왕도를 바로 세우던 그 선비정신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도 저 나이가 돼서도 저런 강직함을 간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의 나이 올해로 예순 여섯이었다. 지사의 모범을 안은 온 삶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안은 결코 굴하지 않는 독립투사요, 유학자로서도 거유였다.
 “내가 이 나이에 살머 얼매나 살겠소. 내 남은 힘을 우리나라 독립에 쓰구 접었소. 이래 내를 찾아주니 참말로 고맙소.”
 안대순이 뼈만 남은 손으로 백상열의 손을 아프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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