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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 (2-5)
게시물ID : lovestory_942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2
조회수 : 142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5/11 10: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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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2. 건국연맹(5)



임금을 받는 날이었다. 조공 위원장 민상희는 인천의 한 연와공장에서 ‘나규돌‘이라는 노동자가 돼서 왜경의 눈을 피하고 있는 중이었다. 날이 어두워서야 작업을 마쳤다. 바쁘게 설치느라 잊고 있던 시금털털한 땀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민이었다. 일이 힘에 겨우니 당연했다. 

 일을 마쳐도 갖고 나설 것도 없었다. 그냥 쪽방으로 향하면 곧 퇴근이었다. 임금을 받고 공장을 나서 몇 발짝 떼는데 누가 등을 두드렸다. 마씨였다.

 “나씨, 술 한잔 안 하겄소?”

 “몸이 별로 좋지 않구만요.”

 “몸이 들 좋얼수록 술이 약이라. 오늘 돈도 생겠는디......”

 마씨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민에게 가장 정을 내는 사람이었다. 민이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각자에게 주어진 할당량이 있는데도 번번이 일을 거들어주는 마씨였다. 마땅히 할일은 없었지만 눕고 싶었다. 최근 몇 년간 육체노동을 했다고 해도 워낙 몸에 부쳤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마씨가 한잔하자니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술이란 게 묘했다. 온몸이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가도 한 잔 두 잔 들어가면 통증이 느껴지게 완화되는 게 약이나 마찬가지였다. 원래도 보잘 것 없는 체구에 수염이 텁수룩하게 자라 더욱 볼품없는 민은 마씨를 따라 술집으로 향했다.

 취기를 느끼며 집으로 오니 박도근이 와 있었다. 민은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까지 당 재건을 위해 은밀하게 연락을 주고받기는 해도 박이 직접 오는 경우는 없었다. 박도 민과 마찬가지로 쫓기고 있는 처지라 행동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사람이었다. 박이 노출된다면 민도 노출될 것이었다. 민과 함께 잡히지 않는 것만으로도 신화를 만들고 있는 박이었다. 둘은 오랫동안 끈질긴 추적을 받으면서도 잡히지 않아 희망이 되고 있었다. 잡히지 않는 것만으로도 혁혁한 투쟁이 되는 셈이었다. 둘은 총알 세례를 받고도 멀쩡하게 도망을 갔다는 등의 기상천외한 소문들을 만들어 냈고, 그런 소문들로 조공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선생님,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나야 뭐...... 그런데 박동지가 직접 웬일이오?”

 윤성보와 선이 닿은 박이 건국연맹에 참여하자고 온 것이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민은 머리를 끄덕이기도 하고 고개를 젓기도 했다.

 “좌우합작을 하자는 이야긴데 그게 생각만큼 쉽겠소, 당도 재건하지 못한 상황에서?”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당원 동지들도 모두 동조할 것입니다.”

 민의 어투가 회의적인데 반해 박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있었다.

 “현실적으로 무력으로 왜놈들을 쳐부수기는 쉽지 않을 테고, 해방이 되면 그때 발빠르게 움직이면 될 텐데 말이오. 너무 성급하게 나서다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소. 조직이 클수록 드러나기 쉬운 법인데......”

 “선생님, 그런 우려들은 임정이나 여선생님도 알고 계시는 바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다리고만 있다가 왜놈들이 항복해 버리면 어수선한 틈새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모두의 우려고 저 또한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나도 공감은 하오만 우파와 합작하는 일이 쉬울 것 같지도 않고......”

 “우리의 당면한 투쟁목표는 왜놈들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놈들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전황은 갈수록 왜놈들에게 불리해질 거고요. 이 틈을 잘 이용하면 전혀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조직을 통해서 우리 당도 자연스럽게 재건될 것이 아닙니까.”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민상희가 말했다.

 “좋소! 왜놈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모택동 동지가 홍군의 깃발을 내리고 국민당과 합작했듯이 우리도 한 번 해봅시다!”


 조직의 대강을 짜놓고 임정에 연락을 취한다는 계획에 따라 8월이 다 돼서야 김인수는 중경으로 향할 수 있었다. 경성역으로 향하던 김은 뒤에서 누군가 미행하는 기척을 느꼈다. 무언가를 알아채고 미행을 하는지, 차려입고 나선 자신을 우연히 발견하고 따라붙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요즘 들어 여운형과 자주 만났지만 미행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만큼 조심도 했다. 그런데 저놈은 왜 따라붙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쪽인지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일단 모르는 척했다. 미행을 당할 때는 모르는 척하는 게 기본 수칙이었다. 그래야 틈이 나도 나는 것이었다. 빨리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했다. 경성에서는 미행을 따돌릴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평양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평양이라면 갈 곳도 없지 않으니 잘만 하면 미행을 따돌릴 수 있을 것이었다. 중경으로 가려면 어차피 지나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평양에는 부왜도 항왜도 아닌 황보선이 있었다. 황보라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었다.

 김은 주저하지 않고 열차에 올랐다. 제일 뒷자리에 미행하는 놈이 앉는 것이 보였다. 고등계 형사라면 거의가 안면이 있었다. 그런데 이놈은 전혀 안면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밀정인 것 같았다. 그 밀정은 다름 아닌 박두희였다. 여운형과 윤성보를 한꺼번에 만난 그날 이후 며칠이나 둘의 주변을 배돌던 박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김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고, 여운형 가는 데 김인수 간다. 김은 여운형의 발이나 다름없다며 이중형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틈만 나면 감시를 하다가 오늘은 채비를 하고 나서는 김을 용케 만나서 따라붙게 된 것이었다. 박가는 김을 따라 평양에서 내렸다.

 김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황보의 집으로 향했다. 평안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대지주인 황보는 중학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기방 출입이 취미이자 본업이나 다름없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은 집에 와서 먹는 황보였다. 노모에게 아침 문안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효심 하나는 지극했다. 그러나 민족의식은 아예 없었다. 그런 골치 아픈 문제는 생각도 하기 싫었고, 편하게 사는 게 최고였던 것이다. 같은 평양 대지주 아들인 소설가 김동한이 기생을 열이고 스물이고 혼자서 끼고 돈을 물 쓰듯이 쓰며 노는 데 반해 황보는 둘도 아닌 딱 하나를 끼고 놀았다. 그리고 머리를 올려주는 법도 없었다. 싫증날 때까지 데리고 놀고는 그만이었다. 그렇다고 노름은 장난으로라도 손대는 법이 없으니 재산이 축나기는커녕 소작료 만으로도 해마다 재산은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어찌보면 욕심이 없는 셈이었다. 재산을 더 늘리겠다고 악착같이 설치지도 않았다. 그러자면 자연히 부왜대열에 합류해야 할 테지만 부왜단체에 이름도 빌려주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독립운동에 한 푼 보태는 법도 없었다. 왜놈들에게 시달리기 싫은 것이었다. 김도 독립운동에 자금을 대라고 뻔질나게 찾아다녔지만 황보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는 지금 내가 사는 나라의 이름을 모르네. 끼니 걱정 없이 사는 지주인 내가 알 필요도 없고. 그런데 자네는 어째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내게 돈을 쓰라는 것인가?”

 이제 그만 왜국을 인정하고 살라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밀고를 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무색무취한 벗도 하나쯤 있으니 좋은 일이었다. 김은 평양에 볼일이 있으면 거의 황보의 집에서 묵어가곤 했다. 황보는 독립자금이라면 얘기도 꺼내기 전에 손사래부터 치면서도 매번 여비라고 하기에는 엄청나게 과분한 돈을 쥐어주었다.

 “만석꾼 친구집에 다니러 왔으니 여비가 이 정도는 돼야 되지 않겠나.”

 그 돈을 독립운동에 보태든지 어쩌든지 알아서 하고 자신에게는 귀찮은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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