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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feature=shared
양현근, 꿈의 빛깔
무지개를 따라간 소년을 종종걸음으로 좇다가
칡넝쿨에 걸려 넘어졌다
소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싸락눈 내리는 소리 베갯잇까지 스며들었다
새로운 꿈을 꾸기에는 불안한 시절끼리 만나
술잔을 나누고 돌아와 잠든 밤
그 사이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아이 방에서 향방을 가늠하기 애매한 저음이
문지방을 넘어온다
누군가와 은밀하게 속살거리는 소리
아직은 모든 것이 무지개가 되어도 좋은 시절
건강한 꿈의 말들이 수런거린다
눈발에 그 소리의 빛깔이 더욱 짙다
하얀 꿈의 빛깔을 곰곰 헤아려보다가
다시 잠이 든다
소년은 무지개를 만났을까
애매한 질문만 밤새도록 싸락싸락 쌓인다
꿈의 언저리에 눈발이 깊다
차영미, 아직
고요가 소음을 부르고 지표면으로 내려앉는다
하얀 골목위로 까치 두 마리 걸어다니고 낡은 단풍이 계단을 점령한다
거친 빗자루가 새벽을 쓸고 간 자리
흉터처럼 질긴 눈발을 펼치고 있다
깨진 병 하나 아직 골목 끝에서 퍼석거리고
오토바이 소리 밤새 배달앱을 질주하는 사이
고장난 감정이 들썩인다
당신을 만나러 가야 할 날짜를 뒤집는다
문자도 볼 수 없는 눈으로 말조차 하지 못하고 병실에 누워 있는
함께 있어도 말은 점점 줄어들고
기다림은 배반하지 않을까
말라버린 위로가 숙제처럼 무거워지고
말이 많이 필요한 날 말끝을 자꾸 잘라먹는다
폭설이 오기 전 당신을 만나고
핑계처럼 글썽이면 말없이 토닥이는 마른 손가락
당신, 아직 거기에
권성훈, 별 사마귀
아직 오른쪽 하늘이 모르게 떠 있는
왼쪽 발바닥에 돋아난 사마귀 무게를 받아내느라
빛나지 않은 통증은 걸어갈수록 반짝거렸다
멀어지면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우리는 어울려 있지 않아서 어울리는 상사화같이
꽃은 잎을 못 보고 잎은 꽃을 못 보는 사랑
그런 바닥은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앞질러 새로운 표정을 짓고는 했다
붙어있지만 가까이 있지 않은 사람들
반대편 거리와 같이 멈춘 만큼 멀어져만 가는
가는 길을 다 아는 듯 흐린 날씨를 매달고
보이지 않은 감정을 끌고 다니며
커졌다 작아졌다 깜빡이며 증식하는 고백의 거처라서
이탈한 오랜 행성처럼 겉돌지만 벗어날 수 없다
오세영, 봄밤은 귀가 엷어
봄밤은 귀가 엷어
뒤뜰의 매화 피는 소리가 들린다
봄 잠은 귀가 여려
꽃잎에 이슬 맺히는 소리가
들린다
봄 꿈은 귀가 옅어
그 꽃대에
후두둑
바람 지는 소리가 들린다
길섶 어디선가
살포시 별들을 밟고 오는 그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
아득한 하늘, 강 건너 사람
유종인, 양파
양파를 세 개쯤 까다가
눈이 매워 온다
괜히 창밖을 보게 한다
습설(濕雪)을 이고 있는 나무의 간드러지는 허리를 보게 하고
창밖의 바람을 손길로 불러
매운 눈을 후 불어보게 한다
아린 눈이 눈물을 쥐어짠다
그동안 눈물이 흘리지 못한 일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내 아린 눈알 안쪽에 눈물 꼭지를
틀고 있는 누군가
그대는 누군가
겹겹이 눈물을
배속한 저
아릿한 둥근 배치
지구 땅별의 얼마만치는
그런 겹겹이 눈물로
아름다움을 흘리고 있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