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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feature=shared

강인한, 어느 새벽
깊은 강 잔잔한 물소리 들린다
내 곁에 잠든 아내
내가 당신 속을 끓게 한 말들
당신이 나를 미치게 한 옛날도
더러는 굽이치는 흐름이었네
가만하고 순한 젊음에 반짝
이 새벽 촛불 하나 드리고 싶다
우리 집 세 마리 토끼를 위해
공판장에서 과일을 머리에 이고 오던 걸
오명가명 한 시간
어머니 떠나시고
장독의 상한 간장 죄다 바가지로 퍼 내버린
아내의 가을도
함께였다, 50년

유혜영, SNS
내 그림자가 나를 극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으니
태양의 연민은 광활하다
밤마다 공상의 높이로 뿔이 솟고
그게 그거 같은 아흔아홉 개의 꼬리가 무성하다
아마도 무척 향기로운 슬픔이거나
스리슬쩍 나를 바꿔치기하는 둔갑술이거나
날이 갈수록 세력을 넓히는 왕국
뼈도 없는 그림자가 수직으로 일어서서
나도 모르게 낯선 광장을 누빈다
수백수천의 태양을 띄우는 대낮같이 환한 액정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운다
그러다 누군가는 죽는다
피비린내는 있어도 사인을 밝히지 못해
누가 주어인지 누가 서술어인지 알 수가 없다
끝없이 인증을 요구하는 경계 없는 경계
나는 더욱 집요하게 나를 복제한다
복제한 내가 지구 반대편까지 떠돌아다니다 쓰러진다
누군가는 '좋아요'를 누르고
누군가는 해시태그를 붙여 절벽 아래로 떠민다
나를 벗어난 그림자의 종말을 내가 찾아 나선다
애도할 틈도 없이 악플이 실시간을 기록한다
알약들과 함께 난간이 다가온다
늘 수동적이던 내가 능동적으로 돌아선다

신미균, 레인코트 속 우산
기다려도 기다려도 네가 오지 않으면
나는 너를 뒤집어 입는다
너에게서 귀뚜라미 소리가 난다
귀뚜라미 소리는
머리 따로 가슴 따로
토막토막 끊어진 나를
박음질한다
귀뚜라미 소리 사이사이에
적막이 잠깐잠깐
달라붙는다
딱히, 줄 데 없는 마음을
구겨 넣은 주머니 속으로
오래오래 비가 내린다

김수복, 이승
대낮이었다
자꾸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었다
작은 눈짓에도
웃음 짓는 섬이 있었다

김영미, 돌탑
처음에 소리가 들렸다
달이
그 위로 은은하게 비춘다
돌들이 찾는 것은
깊은 구멍 속으로 숨은 달
밤이 되면
넓은 품을 서늘히 펼쳐 놓는
그림자
서로의 몸 위로 올라서기 시작한다
하늘로 올라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