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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 주의)이전에 썼던 소설「피닉스의 깃털」
게시물ID : mabi_640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잉여를위하여
추천 : 1
조회수 : 78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3/08 18:36:40
  "오늘도 수고했소, 카알. 자네와 자네가 데리고 다니는 그 꼬마. 정말 최고야."
  "최고라면 한 두푼 정도는 더 줄 수 없겠나?"
  "없어. 빈말은 빈말로 받아넘기게, 이 사람아!"
  "원래 나같이 가진 것 없는 친구는 빈말도 허투루 듣지 않아야 이걸 챙긴다네."

  카알은 자신의 검지와 엄지의 끝을 맞붙인 채로 다른 손가락을 펼쳐보여줬고, 남자는 허허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예끼! 어울리지 않게 농담은! 차라리 자네 옆의 그 꼬마아이에게나 시켜주게!"
  "그런가? 그럼, 네가 한번 해보려무나 꼬마야."
  "음…. 이거 말이죠?"

  아이는 자신이 쥐고있던 두 자루의 검을 잠시 허리춤에 걸어놓곤, 카알을 따라 금전을 뜻하는 손모양을 보였다. 그제서야 남자는 허허 웃으며 못 이기겠다는 듯이 말했다.

  "이것 참! 경기장 안이나 밖이나 호흡이 척척이로군 그래! 좋아, 내가 오랜만에 팁이라는걸 주지. 정말 오랜만에 주는거야! 영광으로 알라고!"
  "나도 잘 알고 이 아이도 잘 아는 이야기지. 자네가 구두쇠라는 것 정도는 말일세!"

  그렇게 말하고선, 카알과 아이는 자신이 머물 잠자리로 향했다. 말 그대로 집은 될 수 없지만, 잠자리 정도는 될 수 있는 장소 말이다. 굳이 감옥과 다른 점을 꼽아보자면, 일단 화장실 정도는 마음것 갈 수 있고, 방 문…그러니까 자신들이 지내고 있는 철창뿐인 방 정도는 열고 닫을 수 있는 점이 전부인 장소에서 아이와 카알은 잠을 이룬다.
  잠들기 전, 서로와 마주볼 수 있는 자리에 누워있던 카알은 아이를 불렀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내일은 중요한 시합이 있다 꼬마야."
  "중요한 시합? 얼마나 중요한데요?"
  "흠…. 지금까지 했던 다른 시합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중요한? 그 정도까지밖에 말해줄 순 없구나. 하지만, 정말 굉장한 시합이란다."

  정말 굉장한 시합. 아이의 머릿속에선 지금보다 더욱 큰 경기장,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과 카알을 환호하는 관중들이 그려졌다. 아이에게 중요한 시합이란건…그 정도였다. 그 이상을 그려내는건 아이에겐 무리였고, 하고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그 정도만 알아줬으면 했다.

  "그럼 그때도 지금처럼만 하면 되겠네요."

  아이의 대답에 카알은 씁쓸하게나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나을테고, 저 말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증거니까.

  "때론 네가 아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단다."
  "무슨 말이에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란다."

  내일이면…. 들통날 거짓말이다. 하루만 참자. 딱 하루만.
  하지만, 카알은 버틸 수 없었다. 내일이면 그들에게 들이닥칠 운명. 그 운명을 알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알기에, 카알은 그것을 꺼내들 수 밖에 없었다. 옛 기억 그리고 추억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물건.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그것을.
  카알이 꺼내든 것은 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새하얀 깃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손때묻은 깃털에 불과했다. 다만, 다른 깃털과의 차이점을 보인다면 어둠 속에서도 새 하얀 빛을 낸다는 점이랄까. 그것이 깃털의 얼마 남지않은 하얀 색을 돋보여주었기에 그것이 원래 하얀색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빛은 그것을 가까이 하고있는 카알에게만 보일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어라? 카알 아저씨, 그게 웬 깃털이에요?"
  "음? 후후…. 이거 말이냐? 반짝이는게 제법 신기하지?"

  카알은 아이의 말에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기사단 보급품. 요즘은 용병들도 들고다닐 정도로 흔해빠진, 심지어 별 쓸모도 없는 물건이지만……."

  남자는 그 깃털을 만지작 거리다 이내 테이블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잠시 멈췄던 말을 계속 이었다.

  "소위 말하는 부적이라는 것이지. 그 깃털의 원 주인이 지닌 권능, 그리고 그 권능에 얽힌 전설."
  "저, 전설? 어떤건데요?"

  아이의 눈이 참으로 오랜만에 동심을 품은 어린 소년의 눈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알의 옛 기억 언저리를 자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알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듣고싶으냐? 그럼 이리 앉거라. 이것 참, 이 얘기를 하는건 오랜만이구나."

  아이는 침상에 앉아있는 카알의 옆에 딱 붙어서 앉았다. 그가 하는 한마디 말도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대화를 들을 준비가 되었음을 안 카알은, 가슴 한 켠에 묻어뒀던 이야기의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오래된 이야기로구나. 그때도 너처럼 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한 명 있었지."

  지금은…만날래야 만날 수도 없게 됐지만.
  남자는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침묵의 시간 속에서 가까스로 자신의 마른 침과 함께 감정을 삼키고서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

  "피닉스…라는 새가 있단다. 혹시, 그 새에 대해서 아니?"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가 누운 침대에서 머리맡에 앉은 어머니가 해줘도 이상하지 않을 이야기. 아이에겐 그것이 없었다. 어쩌면…옛 기억이 생각나 꺼내든 깃털이 아이에게 줄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목숨을 잃더라도 다시 태어나 살아나게 된다는…그 새에겐 아름다운 깃털이 있었단다. 붉게 타오르는 화염의 붉은 색을 띈 깃털이었지. 모두가 그 찬란한 깃털을 원했지. 그의 깃털엔 죽은 자를 되살려내는 권능이 있었으니까."
  "근데 어째서 그 깃털은 흰 색이죠?"
  "좋은 질문이구나 꼬마야. 그의 깃털에 욕심을 낸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서 깃털을 훔칠 수 있었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에게서 빼앗은 깃털은 붉은 빛을 띄고있지 않았어. 그저…새하얗게 빛날 뿐이었지. 새하얗게. 더군다나 죽은 자에게 깃털을 사용하더라도 소용은 없었어. 더 이상, 그의 깃털을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거지. 결국, 피닉스에게 빼앗은 깃털은 그저 영원토록 새하얗게 타오를 빛바랜 아름다움일 뿐이었어."

  그는 괜사리 이야기를 품은 자신의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단다. 피닉스의 깃털이 고작 귀한 장신구로 전락한 어느날, 그 깃털의 주인이었던 소년이 전쟁에 끌려가게 됐단다. 그리고 이내 죽고 말았지. 마족이 던진 창에 의해서."

  소년이 죽었다는 말에 아이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 표정은 카알로 하여금 심심치 않게 해주는 재미를 선사했다.

  "죽어가던 소년은 피에 젖은 피닉스의 깃털을 바라보며, 후회 속에서 목숨을 잃어갔네. 힘차게 타오르던 심장은, 이내 조금식 식어가기 시작했지. 하지만 그때였어!"

  그때였어! 에 강세를 둔 것은, 아이의 반응을 조금 더 살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아이는 카알의 기대감을 충족시킬 반응을 충분히 보였다.

  "언제나 새하얗게 타오를 뿐이었던 피닉스의 깃털어, 놀랍게도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거야! 원래의 주인, 피닉스가 지니고 있던 그 때 처럼! 그리고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 깃털은 소년의 상처를 태워버리기 시작했어. 상처는 활활 타올라 소년의 몸에서 그 자치를 감췄고, 소년은 깨어났어. 그 전쟁에서 소년은 영웅이 되었단다. 그때부터 피닉스의 깃털엔 전설이 생겼단다. 오로지 영웅이 될 운명을 지닌 자만이 피닉스, 그의 권능을 깨울 자격이 있노라고. 죽음은, 도리어 시험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렇기에 피닉스의 깃털은 기사단을 위한 물건이 되었단다. 그것을 지닌 자가 영웅인지 아닌지를 살필 수 있게 되니까.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깃털이니까."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깃털…!"

  카알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되새기기라도 하듯 중얼거리는 꼬마의 눈은 카알이 손가락으로 집고있는 빛바랜 피닉스의 깃털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카알은, 소년에게 한가지 선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꼬마야. 잠시만 기다려보겠니?"
  "네?"

  남자는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끈을 꺼내들었다. 목걸이로 할 정도에 불과한 얇은 끈. 그리고, 그것으로 피닉스의 깃털의 끝자락을 매달아 소년의 목에 걸어주었다. 소년은 탄성을 내지르며 카알을 바라봤다. 카알은 미소를 지으며 그 탄성과 시선을 대가로 지불하고있는 최고의 독자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선물이다 꼬마야."

-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자극한다. 분명히 그것은 웅성거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우성이었다. 전율을 느낄 줄 아는, 그것을 즐기는 자들의 아우성. 그것을…즐기는 자들의 아우성 말이다. 그들은 우리를 원한다. 그들이 원하기에 우리는 이 하찮은 삶을 연명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기에……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다.
  마지막 약속은 들었다. 확실하게 지키겠다는 다짐도 받아냈다. 소년 만큼은 살려주겠다는 그 약속.

  "……꼬마야."
  "네, 카알!"

  ……앞으로 있을 그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따윈 없는 천진난만한 눈. 그것이 자신의 아들과 닮아, 카알은 소년을 좋아했다. 소년을 마주보고 있는 그 순간에만, 남자는 소년의 목에 걸린 피닉스의 깃털을 잊을 수 있었다. 카알은 무릎꿇고 앉아 소년의 양 상박을 붙잡고서 물었다.

  "약속 하나만 할 수 있겠니?"
  "예, 물론이죠. 카알."
  "다행이구나. 그러면……."

  카알은 자신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무언가가 적힌 쪽지였다.

  "이건…?"
  "별건 아니란다. 내 아들이 있는 곳이지."
  "아, 아들?"

  난생 처음 알게된 사실이었다. 카알,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름은 리시타란다. 바람과 고독을 이기는 자라는 이름이지."

  그의 말에는 어째선지 고독함과 슬픔이 비참하리만큼 묻어나왔다. 그렇기에, 소년은 자신의 약속에 사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킬게요. 꼭이요."
  "그렇구나. 고맙다. 진심으로 말이다."

  그렇게 말하곤, 언제나의 환호성을 듣기위해 소년과 카알은 계단을 밟았다.
  계단의 끝에 자리잡은 것은 이제 곧 탄생할 약속된 승자를 위해 미리 보여줄 미래의 영광, 그리고 그 영광의 증거물. 반대편에는 그들과 검을 맞댈 상대가 보였다. 방식은 간단하다. 2인조로 구성된 두 개의 팀이 맞부딪쳐 지금 맛본 영광의 편린을 완전한 조각으로 바꾸는 것.

  "…준비 됐니?"
  "언제든지요."
  "좋아. 그럼 가자꾸나."

  카알은 알고있다. 그 영광의 자리에 소년과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소년 만큼은 지킬 수 있다는 걸. 그는 그렇게 믿었다.

-

  "커……헉…!"

  패배했다.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다지도 허망히 패배할 줄은 알지 못했던 카알이었다. 그와 동시에 소년의 목숨을 약속받은 자신의 선택에 안도했다. 한 명은 살아나갈 것이다. 한 명은.

  "꼬……마야……!"

  카알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어 자신의 등에서 지금도 싸우고 있을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꼬……마야…?"

  아이는 자신의 배를 꿰뚫린 채,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자신처럼.

  "꼬마야!!"

  죽음을 목전에 둔 소년, 그리고 마찬가지의 처지에 놓인 전직 기사 카알. 카알은 지금 이 상황에 항의하듯, 자신의 대전 상대를 노려봤지만, 놈들은 카알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마디 지껄일 뿐이었다.

  "생각보다 강해서 봐주기엔 그렇더라고, 클클! 그리고 걱정하지는 마! 저 꼬마가 지켜주기로 한 약속은 우리가 대신 지켜주지."
  "네……놈들…!!"

  그들은 애시당초 약속된 승자를 위한 제물에 불과했다.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기적이었던 것이다. 그걸 알았기에, 미래에 찾아올 불행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고자 카알은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꼬마야……! 꼬마야……! 으으……."
  "아……저씨……."

  아이의 팔은 힘을 잃었고, 아이의 고개는 힘없이 땅과 마주하였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운명은 피할 수 없었다. 카알은 지키지 못한 아이를 품에 안고 오열했다.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다시는 그렇게 되길 원치 않았다. 그래서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그의 목숨값은 고작 금화 몇 개에도 못 미치는 값싼 것이었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어……."

  그렇게 눈물흘리며 오열하던 그때, 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언제나 새하얀 빛을 낼 뿐이던 피닉스의 깃털이 붉게 타오르는 광경을.
  그 광경을 본 카알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알았다.

  "……약속. 아직 유효하지?"
  "약속? 아, 그래! 푸흐흐흐. 그래. 약속은 얼마든지 지켜주지."
  "그럼……나만 죽여라!"
  "뭐? 그 꼬마는 이미 죽었……."

  그제서야 카알을 상대하던 남자는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소년의 상처가 타서 없어지고 있는 그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전설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잘 알거야. 그러니……."
  "……그래. 이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군."
  "고……맙다."

  카알은 자신을 향해 들어올려진 검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리곤, 얼마 안 있으면 눈을 뜰 소년의 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네게 선물을 주는게 아니었군. 네가……내 선물이었어. 애시당초."

  검은 하늘에 뜬 물체의 최후가 그렇듯, 땅을 향해 전속력으로 꽂혔다.
  그리고 땅바닥은 검붉은 핏방울로 적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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