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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19) 착한 기생충(네이버백과펌)(스크롤압박)
게시물ID : medical_29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끈끈이
추천 : 1
조회수 : 222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3/17 22:44:52

편충

편충의 알. 양쪽 끝에 마개가 달리고 미끈하게 생겼다. 흔히 술통 모양이라 한다.

기생충을 처음 배울 때, 나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기생충에 대해 징그럽다는 생각을 했다. 지렁이처럼 생긴 게 몸 안에 들어있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일이었다. 하지만 편충을 보는 순간 생각을 고쳐먹었다.

기생충도 아름다워?

“기생충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채찍처럼 생긴 외모도 멋지게 느껴졌고, 부끄러운 듯 몸을 둘둘 감고 있는 게 정교한 맛까지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편충이 아름다운 건 그 알 때문이었다. 기생충의 알은 무미건조하게 생겼지만, 편충알은 뭔가 달랐다. 양쪽 끝에 마개가 달리고 미끈하게 생긴 그 알이라니,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는 “술통(barrel) 모양”이라고 하지만, 사실 술통과는 비교도 안 되게 아름다운 것이 편충알이다. 내게 종류에 관계없이 기생충의 알을 꼭 하나 먹어야 한다고 협박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편충알을 골랐으리라. 하지만 미인박명이란 말은 기생충계에서도 예외가 아닌지라, 편충은 그 미모에도 불구하고 멸종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국민소득 2만 달러인 나라에서 기생충이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편충의 삶은 한으로 뒤덮여있다. 어떤 한인지 한번 알아보자.

잘못된 이름

편충은 영어로 ‘whipworm'이라고 부른다. ‘채찍벌레‘라는 뜻인데, 두꺼운 뒷부분이 손잡이 역할을 하고 가느다란 앞부분이 채찍의 때리는 부분에 해당된다. 편충의 슬픈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채찍 부분이 충체의 앞부분인데 사람들은 여기를 꼬리라고 생각해 ’꼬리가 채찍처럼 된 벌레‘(Trichuris)라고 명명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가느다란 앞부분에 입도 있고 식도도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편충의 이름을 잘못 지었다는 걸 깨닫는다. 당황한 사람들은 뒤늦게 ’머리가 채찍처럼 된 벌레‘ (Trichocephalus)라고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 줬지만, 그전 이름에 익숙해진 학자들은 “그냥 쓰던 대로 쓰자. 편충이 서운해봤자 지가 어쩌겠어?”라며 기존 학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는 시에서 보듯 제대로 된 이름은 하물며 기생충에게도 중요한 법, 이 사건으로 인해 편충은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편충. 마치 채찍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보기와는 달리 채찍의 손잡이 같아 보이는 두꺼운 부분이 꼬리이고, 가느다란 부분이 몸체다.

착한 기생충?

편충의 크기는 대략 3-5 cm 정도다. 회충이 30 cm, 광절열두조충이 몇 미터인 것에 비하면 크기가 작은 편이고, 가느다란 앞부분을 창자의 점막에 드리운 채 기생하는 모습은 꼭 사람을 괴롭히겠다기보다는 조용히 틀어박혀서 미적인 활동에만 전념하겠다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편충은 몸안에 있어도 이렇다 할 증상이 없다. 주요 기생부위가 맹장이나 큰창자로, 거기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살다가 3년 정도 되면 죽어서 대변과 함께 화장실 변기로 빠지는 게 편충이 바라는 이상적인 삶이다. 회충이나 십이지장충은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 인간의 폐에 들러 난동을 피우지만, 알 째 들어온 편충은 그대로 맹장에 가서 어른으로 자란다. 사람의 피를 먹는 습성 때문에 비난을 듣기는 해도, 그래봤자 하루 0.005 cc정도라 100마리쯤 있어봤자 0.5 cc가 고작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 정도 피를 편충에게 준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2011년 나온 <임상기생충학>은 편충을 이렇게 칭찬하고 있다. “편충은 장내 기생충 중에서 숙주에게 의학적인 피해를 가장 적게 주는 기생충이다.”(204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 이유는 뭘까? 바로 회충 때문이다. 회충과 편충은 전파경로가 같으며, 흙 속에 있는 기생충의 알을 사람이 먹었을 때 감염된다. 화장실의 개념 자체가 없었던, 보이는 모든 땅이 다 볼일을 보는 곳이었던 시절, 회충과 편충은 단연 두각을 나타냈을 것이다. 땅속에서 살아있는 채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회충 한 마리가 하루 20만개, 편충 한 마리는 2만개의 알을 낳을 만큼 다산이라는 점이 이들 기생충의 융성을 가져왔으리라 추측된다. 편충에 걸린 이가 변을 보면 편충알이 잔뜩 밖으로 나가고, 그 알이 묻은 야채를 캐서 저녁식사로 먹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더해 농사가 시작되고 사람의 변을 비료로 주는 문화는 회충과 편충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그 결과 회충과 편충은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생충으로 다른 종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편충은 점차 불만이 쌓여갔다. 편충에 비해 훨씬 몸이 크고 운동성도 뛰어난 회충은 장을 막아 버리거나 다른 장기로 가서 병을 일으키는 경우가 훨씬 많았고, 심지어 입으로 나와 버리는 엽기적인 모습까지 연출했다. 그러다 보니 회충은 자연스럽게 기생충의 상징처럼 돼버렸고, 조용히 들어앉아 미를 닦는 데 열중했던 편충은 존재감이 없는 기생충으로 전락하고 만다. 게다가 편충은 회충과 늘 같이 감염되는 기생충이었기에, 회충이 하는 악행을 뒤에서 거드는, 소위 ‘회충의 졸개’ 쯤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편충의 생활사

그렇다고 편충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기생충은 아니었다. 1971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실시한 전 국민 대변검사 결과 84.3%가 하나 이상의 기생충을 몸 안에 갖고 있다는 게 밝혀졌는데, 회충의 양성률이 54.9%에 그친 반면 편충은 65.4%로 수많은 기생충들 중 1위를 차지했으니,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게 괜한 소리는 아니다. 1976년 시행된 2차 조사에서도 편충은 42.0%로 회충에 간발의 차이로 앞섰는데, 이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오직 회충이었다. 회충의 악행을 보다 못한 정부는 기생충박멸협회를 만들어 기생충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회충과의 전쟁에 사용됐던 알벤다졸은 회충이 포도당 흡수를 못하게 함으로써 굶어 죽이는 것에 필적할 효과가 있었기에 회충을 미워하던 대다수 국민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문제는 이 약이 회충뿐 아니라 조용히 들어앉아 미를 닦던 편충에게까지 치명적이었다는 것이었다. 편충 감염률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고, 1997년에는 0.04%로 거의 멸종의 위기에 처하지만, 편충을 동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대장내시경의 유행은 근근이 버티던 편충마저 가만 놔두지 않아, 많은 편충들이 미를 탐구하던 도중 끌려나갔고, 그 편충들은 ‘대장내시경으로 제거한 편충 4례’ 등의 논문으로 이용된 후 처절하게 버려졌다.

재평가되는 편충

한때 지구를 지배했던 기생충이었고, 같이 감염되는 일이 잦았으니, 과거의 흔적을 뒤졌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기생충도 다 회충, 편충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2001년 양주에서 발견된 5세 아이의 미라에서도 회충과 편충이 같이 나왔고, 고대 유럽의 화장실에서도 두 기생충의 알이 주로 발견된다. 하지만 통계를 내보면 회충보다 편충이 더 자주 발견되곤 했다. 대표적인 게 알프스 산에서 냉동된 채 발견된 5300년 된 ‘아이스맨’으로, 여기서 편충만 나왔다. 강릉에서 발견된 장군 미라에서도 편충만 발견되었고, 학자들이 조사를 할수록 회충 없이 편충만 나온 게 더 많아졌다. 학자들은 의아해했다. 암컷 한 마리가 낳는 알의 개수가 그렇게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편충알이 더 흔히 발견될 수가 있을까? 그들이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편충은 회충보다 기생충약에 더 강하다. 과거에도 기생충에 효과가 있는 약제들이 있었을 텐데, 편충은 대장에 머리를 박고 숨어 사는 데 비해 회충은 소장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당당하게 사니, 회충이 약에 취약할 수밖에. 2) 회충알보다 편충알의 껍질이 더 튼튼하다. 실제로 두 알에다 태양빛을 비춰 봤더니 편충알이 더 오래 살았고, 회충알이 다 부서진 환경에서도 편충알은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이런 점들은 편충이 사실상 회충보다 더 우수한 기생충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가면역질환의 출현

단순히 과거 유적에서 편충이 회충보다 더 나왔다고 편충이 재평가됐다는 건 아니다. 기생충이 악의 화신으로 여겨지던 시대를 지나서 기생충을 이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시대가 개막되면서 편충이 새삼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 배경은 이렇다. 이전에도 한번 얘기한 바 있지만 인류가 탄생한 뒤 수많은 생물체가 사람 몸속에 들어왔고, 그 중 일부는 그곳을 평생 살아갈 터전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후세 사람들에 의해 ‘기생충’으로 불릴 이 생물체의 등장에 우리 면역계는 잔뜩 긴장했고, 그 생물체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둘 사이에 어느 정도의 타협이 이루어져 큰 전투는 중단됐지만, 면역계는 기생충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식했고, 그들 사이에 소규모 국지전은 시시때때로 벌어진다.

크론씨병(크론병)환자의 내시경 사진. 대장이 염증으로 심하게 손상되어 있다.<출처: (cc) Samir at en.wikipedia>

그렇게 수만 년간을 싸우면서 둘 사이엔 일정 수준의 유대감이 싹텄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기생충이 싹 없어져 버린다면, 면역계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적군이 물러갔다고 환호하던 것도 잠시, 면역계는 우울증에 빠진다. 기생충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살던 그들이었기에 기생충의 박멸은 곧 자신들이 할 일이 없어짐을 의미했으니까.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던 면역계는 곧바로 새로운 적을 찾아내는데, 안타깝게도 그 적들은 사실 우리 몸에서 중요한 기관이었다. 신경세포를 둘러싼 조직을 공격하는 다발성 경화증, 췌장을 공격해 인슐린 분비샘을 파괴하는 당뇨병, 대장 조직을 공격해 심한 설사를 유발하는 크론씨병 등 소위 자가면역질환은 기생충이 없어져 심심해진 면역계가 엉뚱한 조직을 적으로 삼아 공격함으로써 일어난다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로 기생충이 없어진 나라에서 자가면역질환은 눈에 띄게 급증하고 있으며, 장 전체를 공격해 수십 차례의 설사를 유발하는 크론씨병(Crohn's disease, 크론병)은 서양에서 인구 10만 명당 30-100명 정도로 빈도가 높아졌다. 우리나라 역시 기생충 감염률이 3%대로 떨어진 1990년대부터 크론씨병이 해마다 늘어나, 2005년 송파-강동 지역을 조사한 결과 10만 명당 11.24명에 달했다. 편충이 재평가된 건 바로 이 시점이었다.

편충, 크론씨병의 구세주

학자들은 생각했다. 자가면역질환의 증가가 기생충이 없어져서 생긴 게 맞다면, 기생충을 다시 감염시켜 면역계를 달래 주면 좋아질 게 아닌가? 학자들이 원한 건 이런 기생충이었다. 크기가 어느 정도 돼서 면역계를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가 되면서 기생충 자체에 의한 병변이 적은 놈.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일제히 외쳤다. “편-충!” 하지만 편충이 사람 몸에서 흡혈을 했던 전력이 문제가 됐다. 게다가 수명도 3년이면 너무 길었다. 결국 선택된 것은 돼지편충이었다. 사람편충과 돼지편충은 형태학적으로 거의 구별이 안 갈 정도로 가까운 친척 관계인데, 사람편충과 달리 돼지편충은 흡혈도 거의 안하고 두세 달 동안 조용히 있다가 나가 버리는 쿨함도 가지고 있었다. 학자들은 크론씨병을 앓는 환자들을 모집했고, 그들에게 3주마다 돼지편충알을 2500개씩 먹였다 (양으로 따지면 물 한 방울 정도밖에 안된다). 결과는 놀라웠다. 4개월을 그렇게 하자 75%에서 증상이 좋아졌고, 65%에서는 내시경으로 완치 판정을 받을 정도였다. 8개월이 됐을 때 완치 판정을 받은 이는 72%였다.

돼지편충<출처: (cc) Universidad de Córdoba>

이 결과에 학자들은 크게 고무됐고, 그 후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크론씨병뿐 아니라 다발성 경화증 등 다른 질환에도 돼지편충 요법을 시도 중인데, 현재까지 결과는 긍정적이며, 아직까지 돼지편충으로 인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대대적으로 환자들에게 적용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이 치료법을 쓰고 난 뒤 재발하는 경우가 없는지도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확실한 건 마땅한 치료법이 없던 크론씨병에 있어서 돼지편충요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 연구가 좀 더 진행된다면 최소한 크론씨병에 있어서는 편충알이 복음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 같다. 인체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늘 욕만 먹던 편충, 그날이 오면 편충도 비로소 웃을 수 있으리라.

 

 


요새 아이들을 키울때 너무 항균항균 해대니까 면역력이 떨어지고 본문글처럼 면역계가 공격할대상이 없어지므로 주인의 몸을 공격!
그렇다고 너무 과한 기생충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때문에 조심해야겠죠..(몸에 이로운 기생충이 있는반면에 해로운 기생충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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