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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하는 밤
게시물ID : medical_66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리오의숲
추천 : 1
조회수 : 21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31 05:11:17
 외래가 끝나면 수납창구가 셔터를 내린다. 하루종일 몇잔의 커피를 뽑아냈는지도 모르는 카페도 정리가 되고, 쫌더지나면 로비의 일일드라마도 끝나고면 병원의 비공식 마지막프로그램 9시 뉴스도 끝나면 진짜 신기하게 병동의 모든불이 다 꺼진다.
 
 느지막히 퇴원하시는분들의 퇴원수속을 마치고 좀 정리가 되니 12시반, 식사시간이 얼마 안남았다. 메뉴를 확인해본다. 
30분 식사시간의 여유와 궁중떡볶이 생각에 행복한건지 발걸음이 빨라진다.
식당가는길은 참 조용하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식당까지 걸어서 3분은 가야하는데..  진짜 조용하긴하다. 아니, 고요하다. 정신없는 주간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이다. 가끔 아무도 없는 복도를 혼자 가다보면 무서움이 아닌 그 고요함 자체에 무려 소름을 끼쳐본다.
 
 눈뜨고 일어나 먹는 첫끼니라 아침인지, 자정넘는 시각이라, 야식인지 모르는 식사를 마치면, 늦은밤의 식사가 부담스러운 파트너선생님의 통조림 죽한그릇 김치한봉지 챙겨서 복귀한다. 배도 부르고 복귀하기도 싫고 설렁설렁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를 거슬러올라 메인로비에서 멈칫한다.
어머니한분이 서계신다. 최소한의 조명만 남아 있는 그곳에 혼자 가만히 서계신다.
어두운 조명탓인지 안경을 추켜세워보지만, 그래도 잘 안보여서 그냥 서계신것만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고인이 되신 재단이사장님 흉상 앞에서 기도를 하시는듯, 두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신다.
약간 과장 섞인 어머니들 특유의 고마운얼굴로 다시 한번쯤 고개를 숙이시고한참을 계시는데, 가로등꺼지는것처럼 그냥 못본체, 모른체하고 지나치지만, 어딘가 낯익은.. 아까 내가 퇴원수속했던 어르신의 따님이 확실한것 같다..
응.. 사실 확실하다. 젊은 사람도 어려운 야간 퇴원수속을 잘 못알아들으셔서 한참을 눈을 마주쳤었는데 빨간색 카라티를 보니 응.. 레알이다.
 
 얼굴한번 본적없고, 당신과는 어떤 연고도 없는 그냥 성공한 기업가일테지만, 무언가를 고마워하고, 무엇때문에 고개를 숙이시는지 웬지 알것같은 느낌에 이번엔 다른 이유로 한번 소름 돋아본다.
어렸을적 훔쳐나온 소한마리 빚을 값는다며 500마리씩 두번, 그것도 상당수는 임신한 소를 직접몰고 판문점을 넘었던 위대한 기업인의 마음씀이에, 
건강을 찾아 일상에 복귀하는것이 그의 덕이라고 생각하는, 어떤한사람이 보여준 그의 영향력에,
결국 그 덕에 먹고살게된 다른 한사람이 감동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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