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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왕좌의 게임을 보고. 발라 도하에리스.
게시물ID : mid_218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러브액땜얼리
추천 : 3
조회수 : 123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6/06 01: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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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스포일러 있음)

 

왕좌의 게임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보지 않았던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우선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그것도 긴 시리즈는 딱히 끌리지 않았고, 시즌8 완결 이후 평가가 너무 안좋았던 기억이 나서, 망설이다 보니 완결이후 몇 년이 지나버렸다. 요약하면, '길다, 판타지? 평가도 별로였던 것 같은데?' 정도일 거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도전하게 된 이유는 역시 평점 때문이다. 역대 IMDB 드라마 평점중 시즌평균평점이 9점대를 상회하고, 거의 최상위 점수에 랭크된다는 것은 뭔가 있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시즌 1~7 평점은 거의 9점 중반대이고, 마지막 시즌8 평점이 4점대로 절반 추락이었는데, 그걸 합쳐도 최고의 평균평점을 가진 시리즈였고, 이건 워싱턴 내셔널스의 맥스 슈어저가 완봉승 몇 개와 7이닝 무실점 경기를 대부분 한 뒤, 쿠어스필드에서 5회 7점내주고 패한 정도이기 때문에, 그 이유로 맥스 슈어저를 폄하할 수 없듯이, 왕좌의 게임(이하 GOT. Game of Throne)에 대한 평가도 좀 더 공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GOT 를 볼 때는, 기대감을 마음껏 낮출 수 있었다. 결국 기대를 배반할 것을 처음부터 다짐하고 이 드라마를 시청하기 시작했는데, 3주에 걸친 시청을 어제 마쳤고, 이 위대한 쇼에 대해 약간의 코멘트를 기록해 두는 것은 필요할 뿐더러, 헤이터들로부터 좀 보호를 해야한다는 의무 같은 것 마저 들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히 매료되었다. 용이 나오는 판타지라는 것 정도가 보기 전 알고 있었던 정보의 전부였는데, GOT 를 판타지 장르에만 가두는 것은 꽤 실수일 뿐더러, 정확하지도 않다. 현대에 창작된 신화이자, 멋진 셰익스피어식 대사로 가득한 정치 서스펜스에 가깝다. 용은 거기에 살짝 얹은 드레싱 같은 거다.


미국은 역사가 짧기 때문에 역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남북전쟁사는 지나치게 자세하게 다루며, 전투지역의 세부사항까지 교과서에 언급되는데, 200년 안의 기간에서 역사를 망라하려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화가 없기에 신화를 만들어야 했다.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워즈, 마블, GOT 가 그런 시도의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특히 GOT 는 그런 야심찬 기획의 성공적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평가는 아직 빠르지만, 향후 2-30년 내에 GOT 같은 이야기가 그려질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후보군 자체가 없다.


왜 신화 이야기를 꺼냈냐면, 이 시리즈를 신화의 맥락에서 보게 된다면, 거대한 비극이나 부조리, 친족살해, 근친상간, 제노사이드, 깊은 절망과 상심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헬레니즘 신화에서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며, 신의 거대한 폭력(네메시스.Nemesis)은 장자살해 등 열가지 재앙의 헤브라이즘에서도 흔하다.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은 신적 폭력의 은유이며, 존 스노우는 신을 살해한 니체다. 그 둘의 화목한 결합은 성공적 로맨스 뱀파이어물로는 타당하겠지만, 신화의 지위를 얻지는 못할 거다. 비극은 신화의 기본 전제이고, 시인들이 영웅들의 소네트를 노래할 때 장엄한 비극과 파국, 그리고 피의 결혼식은 더 적절한 소재를 제공한다.


또한, 신화에선 윤리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모든 정치적 옳바름의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껏 차별하고, 모욕주며, 무슨 일을 저질러도 용인된다. 신화니까. 미개한 도트락인의 피부는 모두 검고, 관대한 백인의 등장으로 해방당한 무결병은 흑인이며, 대너리스의 화려한 은색 머리칼은 유일한 왕관이며, 그 하얀 피부는 바꿀 수 없는 피의 세습의 결과다. 난장이는 가장 똑똑하지만, 충분히 모욕당한다. 가문이라는 것, 진정한 혈연이 정통성을 가진다는 중세 서사, 그 자체가 충분한 보수적 설정이다. 

그런 신화의 세계에서 충분히 보수적인 판타지를 즐기다가, 마지막에 민주적 협의체 비슷한 과두정치로의 마무리는, 필연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납득가능한 설정이다. 시즌8이 망했냐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평점 4점대도 불공평하다. 훌륭한 마무리 였다고 생각한다. 잘 쓰여진 서사이고, 신중하게 쓰여진 대사도 나무랄데 없이 훌륭하다. 보수적 세계관에 천착한 이들은 드라카리스를 속으로 환호하고, 왕당파의 열렬한 지지자가 될 수 있다. 나도 대너리스를 좋아한다. 그녀가 죽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신화가 되려면 그런 비극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신화의 틀 안에서만 이 위대한 시리즈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현대의, 현실의 관계를 은유하는 데 더 많은 장치와 공을 들였다. 대너리스와 존 스노우의 관계는 신과 인간의 틀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다면적으로 현실정치의 층위에서도 볼 수 있다. 즉, 매파(강경파) 대너리스와 비둘기(온건파) 존 스노우의 관계. 노예제 폐지에 앞장 선 에이브러험 링컨은 공화당의 초대 대통령이다. 대너리스가 암살당한 링컨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존 스노우도 김재규의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풍부한 캐릭터들로 표현되어 있다. 


P.S : 예전에 도스토엡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읽다가, 그 방대한 인물관계도와 비슷한 지명, 이름 때문에 독서를 중간에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GOT 를 볼 때, 웨스테로스와 에소스의 지도, 칠왕국의 가문과 인물도, 보병과 주요인물이 지나간 지명, 건너간 강을 일일이 찾아보면서 봤고, 그 덕에 인물과 지명이 헷갈려 시청을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회색벌레가 마지막에 찾아가려는 미산데이의 고향 나스는 지도의 끝에서 찾을 수 있었고, 사랑스러운 영웅, 최고의 검객 아리아 스타크가 가려고 하는 땅은 지도에 나와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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