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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 막내가 산불 낸 이야기
게시물ID : military_371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타락남아
추천 : 10
조회수 : 939회
댓글수 : 30개
등록시간 : 2014/01/15 11:14:22

전역한지 어언 3년차가 접어들지만 아직 그때의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때는 2010년 6월 24일이었다.


그 시기에 바뀐 중대장은 수색대라는 컨셉에 맞게 무한 체력을 강조하는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실전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피곤한 열혈한 이미지의 중대장이었다.


그 일례로 대대에 자신의 열혈성을 알리기 위하여 중대 옆 계곡 건너에 있던 부지를 전부 파헤치고 호도 만들고 장애물도 만들고 도르래를 이용한 북한군 모형이 등장하는 구조물도 만들고 하는 등, 즉각조치사격장이란 것을 만들었다.


쨋든 내가 복무했던 장소는 양구의 어느 산골짜기 안이었고 그때의 6월은 용서 없는 더위가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 날은 즉각조치격장에서의 훈련이 잡혀있었다. 일반 사격장과는 달리 이곳은 상황에 따라 이동하다가 구르고 엎드리고 쏘는 특성 때문에 탄피받이를 달아도 탄피가 제대로 있을 리가 만무했다. 사격의 끝은 짬이 안 되는 애들이 헨젤과 그레텔 마냥 뿌려놓은 빵쪼가리같은 탄피 찾는 작업이었고 그 날도 역시 어김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더위가 절정에 올랐고 짜증도 터질 무렵이 되서야 탄피를 다 찾았는데 그 더위 와중에 갑자기 우리 중대장은 우리들를 불러 세우더니 사건의 시작인 신호탄이란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내 라인급 이상들은 여러 번 봐서 심드렁했지만 중대장은 우리에게 쏠 기회를 준다고 했다.


작동원리는 단순했다. 모양은 40cm정도 되는 막대기같이 생겼는데 이것의 중간을 쥐고 수직으로 바닥에 꽂으면 막대기 위에서 탄이 날아가서 하늘 위에서 불꽃이 나는 단순한 원리였다.


열혈 중대장은 3개의 신호탄 중 2개를 왕고 둘이 쏘게 하였다. 날이 대낮이라 그런지 효과는 눈에 띄진않았지 신기하기는 했고 처음 해보는 왕고들이였지만 짬을 똥꼬로 먹지 않아서 그런지 훌륭하게 수행을 하였다.


중대장은 남은 하나를 누가 쏠지 열심히 고민하다가 한 사람을 지목했는데 그 사람은 전입 온지 1주일도 안된 열외기간도 풀리지 않은 내 뒤에서 아무 생각 없이 서있던 불쌍한 내 부사수였다.


중대장은 막내가 이런 것도 해봐야지 이러면서 막내에게 신호탄을 쥐어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불쌍한 부사수의 손이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굉장히 빠르게 진동을 하며 부들거리고 있었다.


우리 불쌍한 막내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신호탄을 힘껏 바닥에 꼽았다. 하지만 부들거림의 영향이었을까 긴장한 탓이었을까 90도가 아닌 45도로 찍힌 신호탄의 탄은 꼬삐 풀린 망아지마냥 휘잉 날아가더니 옆 산 중턱 언저리에 떨어졌다.


그 상황을 본 모든 중대원들은 순간 정적이 돌았고 중대장은 ‘허허, 불나는거 아니겠지.’ 이러면서 고참 한명을 지목한 후 상황을 예의주시 시켰다. 그러나 10분도 안되서 그 고참의 입에서 나온 ‘중대장님 연기가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란 말이 우리들의 귀에는 ‘음경됬습니다!’로 들렸고 순간 뒤를 돌아 내 부사수의 표정을 보았을 때는 빨갛다 못해 새하얀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중대의 위치는 민통선 안에 있으며 주위의 민가는 하나도 없고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을 가는데도 40분 가까이 소요되는 기가 막힌 독립중대였다. 설상가상으로 부대로 들어오는 길들 중 급격한 내리막길이 있어 소방차의 전복위험이 있다고 소방서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상급부대의 시선을 걱정 하지 않을수 없었던 우리 열혈 중대장은 길도 없는 산에 일어난 불을 자신을 제외한 간부+병사의 인력으로 끄라고 지시하였다.


중대에서 말통에 물을 담고 또 길 없는 가파른 산을 헤치는 음경과 같은 작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가져간 겁나 무겁던 소화기는 작동이 되지 않았고 가져온 말통의 물은 가파른 산을 기어 올라오느라 반도 없었다. 연기는 시커멓고 매우 메케하였으며 이른 6월의 폭염과 불쇼가 합쳐진 그 곳은 지옥을 방불케 했다. 점심부터 시작된 20여명의 말도 안 되는 수제 진화 작업는 해가 지고나서야 끝이났고 남은 불씨가 있을까봐 대기인원 몇몇을 9시정도까지 대기시켰다.


우리는 그렇게 온몸이 꺼멓고 땀투성이로 힘겹게 중대에 복귀를 하였고 소대 고참들은 ‘불쌍한 막내에게 뭐라 하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다.’라는 엄명을 남겼다. 당연히 불쌍한 막내에게 손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막내의 표정은 2주 가까이 시궁창이었고 말만 걸면 ‘죄송합니다.’를 무조건반사 했다. 나중에는 똘똘한 에이스로 성장을 하였으나 그때의 심정은 자살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날인 6월 25일, 6․25 준비태세는 그래도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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