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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견과 스타크래프트
게시물ID : military_401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60
조회수 : 9098회
댓글수 : 42개
등록시간 : 2014/03/21 12:20:09
 
어느 평화롭던 오후. 그동안 밀려버린 분대장 일지를 작성하기 위해 후임들을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혹시나 우환이나 근심이 있지 않을까 하고 후임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야속하게도 후임들은 아직도
파란마음을 간직한 소년들처럼 밝고 쾌활한 모습이었다. 어쩔수 없이 그날도 특이사항 없음이라고 적은
분대장일지를 살포시 덮고 있을 때 갑자기 보급관님이 들이닥쳤다.
 
내무실에 들어선 보급관님은 뜬금없이 우리들 하나하나를 붙잡고 설문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개가 좋아? 고양이가 좋아? 급작스러운 질문에 얼떨결에 개가 좋다고 대답했고 보급관님은 고개를 끄떡거리더니
다른사람들 에게도 같은 질문을 묻기 시작했다. 의외로 개보다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사실 나도 개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했지만 굳이 다시 보급관님에게가 사실 저는 고양이가 더 좋습니다.
라고 묘밍아웃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냥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설문조사를 끝낸 보급관님은 개가 더 좋다고 한 인원들을 모아서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수송부 옆 공터였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공터에 서있으니 왜 우리가 여기 모인건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설문조사와 관련된 일일거라 생각은 했고 개와 공터의 접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고심하다 설마 인간 프리스비라도 할려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다달았을때 공터로 트럭이 한대 들어왔다. 트럭에는 각종 자재와 벽돌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보급관님은 군견막사를 만든다고 했다. 그랬다. 그게 우리가 모인 이유였다. 뒤늦은 후회와 억울함이 밀려왔다.
뒤늦게 사실은 난 고양이가 더 좋다고 외쳐봤지만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쏘아버린 화살이었다.
결국 그렇게 모인 애견인들과 한명의 숨겨진 애묘인은  군견막사공사에 징집되었다.
자재를 내리고 있는데 문득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우리부대엔 군견도 없는데
왜 군견막사를 짓는가 라는 의문이었다. 보급관님은 훈련기간에 가끔 사단에서 내려오는 군견들이 지낼 막사라고
했다. 결국 일년에 몇 번 쓰지도 않을 건물을 짓는데 우리는 일주일이라는 기간을 휴일까지 반납해가며
공사에 매달려야 했다. 억울함에 그렇다면 짬타이거를 위한 캣타워라도 만들자고 주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미친놈 소리 뿐이었다.
 
다음 날 부대로 몸소 군견과 군견병이 방문했다. 썬더라는 촌티 풀풀 풍기는 이름을 가진 군견은 앞으로 자신이
머물 막사가 들어설 공터를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매우 흡족한듯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썬하사는 공사기간
동안 가끔씩 부대에 방문해 진행상황을 확인하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노동에 매진하고 있는 우리들을 노고를
헥헥거리며 치하하고 돌아가곤 했다.
 
마침내 모든 공사가 끝나고 군견막사가 완성 되었다.씁쓸한 얼굴로 완성된 군견막사를 확인하고는 앞으로 두번 다시
보급관님과 말을 섞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데 뜻 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보급관님이 공사에 참여한
인원 모두에게 외박을 준 것이었다. 그 외박증 한장으로 우리들의 마음은 순식간에 돌아섰다.
공사기간 내내 뱀의 혀, 꼰대, 개급관이라 불리며 지탄을 마지 않았던 우리들은 어느새 한목소리로
보급관님 짱짱맨. 갓급관, 관중의 관 보급관님을 외쳤다.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들은 외박을 나갔고 자유의 공기를 만끽하며 노동에 대한 보상을 즐기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지나갔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다음날 칼같이 6시에 기상한 우리들은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땅히 할 게 없었고 결국 우리가 찾은 곳은 PC방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또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같이 할만한 게임이 없었던 것이다. 다들 멍하니 앉아서 쓸데없이
걸그룹 기사만 깨작거리고 있었고 시간은 흘러갔다. 결국 모아진 의견은 스타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별로 탐탁치가 않았다. 왜냐하면 난 스타를 정말이지 엄청나게 이렇게 못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회에 있을때도 친구들과의 원활한 교우관계를 돈독히 하게 하기위해 몇번씩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그들의 화만 돋굴 뿐이었다.
그때까지 컴퓨터와 1대1도 이겨본 적이 없었고 이런 내 실력에 대한 친구들의 평가는 
내가 모니터 끄고 해도 너는 이긴다. 내가 혓바닥으로 해도 너는 이긴다. 내가 오버로드만 뽑아도 너는 이긴다.
이제 갓 걸음마 뗀 우리 조카가 이유식 먹으면서 해도 너는 이긴다. 
스티븐 호킹과 내가 1대1을 하면 스티븐 호킹이 이긴다에 내 전재산을 걸 수 있다. 등 박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다수의 의견에 밀려 결국 나도 참가할 수 밖에 없었고 당연히 나는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발리다보니 슬슬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없던 스타실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였고 이제는 그냥 지는게 아니라 철저히
농락당하며 비참하게 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어 마음을 가라 앉히고 내가 그들보다 우세한게 무엇인가
골똑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컨트롤 전술 시야 무엇하나 그들의 발톱에 때 만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어서 이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도하고 있을 떄 단 하나 그들보다 우세한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비록 한가지였지만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나만의 장점이.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고 이미 내가 호구임을 알아차린 상대방들은 나를 공격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만 있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초반 저글링 러쉬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이등병 새키가 혼자 돌아다니게 되있나?
 
이등병저그: 잘못들었습니다?
 
후임의 저글링이 움찔한 것을 보고 나는 이때다 싶어 계속해서 채팅을 시도했다.
 
나:이 새키 빠져가지고 니 사수랑 같이 안와?
 
이윽고 후임의 저글링이 빠르게 내 본진에서 이탈했다. 역시 군인은 계급이 깡패였다.평소였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꼇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전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군생활을 통틀어 가장 추잡스러운 일일지 몰라도 나에겐 그 추잡한 1승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이거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내 사수와 함께 온 투컬러 저글링 러쉬에 내 본진은 빠르게 녹아 내렸다.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내 본진에 몰려든 히드라 떼를 보며 상병 이하 침뱉기 금지라고 외치며 위기를 벗어났지만
벌떼같이 날아든 뮤탈떼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고 몰래 숨어든 다크템플러를 보고 전우조를 짜서 다시 오라고 하여
잠시의 시간을 벌었지만 다시금 나타난 하이템플러 무더기에 내 병력들은 지져졌고 내 마음도 찢어졌다.
 
결국 난 1승도 건지지 못하고 이기기 위해선 뭔 짓이든 불사하는 추잡한 고참으로 남았다.
그 이후로 나는 아직도 스타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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