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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일본의 개전 사유
게시물ID : military_606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GENTAG
추천 : 0
조회수 : 147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2/31 21:50:45
이미 며칠 전 글입니다만 휴일이 되어서 이제서야 여유가 생겼으므로 씁니다.
독일과 일본이 무장과 경제력이 빈약한 주제에 뭘 믿고 전쟁을 일으켰느냐는 글이 있었습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military&no=60555

저 글도 무기에 대한 내용이 태반이지만, 이에 대해 반박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무기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독일과 일본이 2차대전으로 끌려들어간건 무기들과는 사실 큰 상관이 없습니다.


1. 독일의 경우.
  독일은 수권법을 통해 국정의 전권을 장악한 히틀러의 모험주의적 정부가 독일인들이 살고 있는 나라들을 상대로 확장을 시도합니다. 오스트리아, 체코,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폴란드 침공 까지. 서부전선의 개전은 폴란드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가 빡쳐서 먼저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히틀러의 외교전략상의 오판에 의한 것으로, 히틀러가 원치 않는 전쟁이었습니다.

  동부전선의 경우에는 "독일 민족의 생활권" 확보(레벤스라움)라는 이념, 그리고 자원 문제에 더하여 "소련을 꺾어 영국을 항복시킨다" 라는 히틀러 특유의 똘끼넘치는 국가전략,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가 더해진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전쟁은 히틀러가 의도한 것이고 사실 일본이 소련을 공격해 주기를 내심 바랬지만 일본은 별로 신경 안 썼지요.

  미국과의 전쟁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일본의 동맹국이었던 독일이 미국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해 버린 것 뿐입니다. 일설에는 히틀러는 역사상 불패의 국가(일본)가 함께 싸우게 되었다며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2. 일본의 경우.
  대 중국 개전은 문민통제에서 벗어난 군부의 폭주에 의한 것입니다. 특히 관동군과 조선주둔군의 군 지휘부마저 무시한 폭주로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민간 정부는 이를 전혀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내각은 반드시 현역 군인이 육군대신과 해군대신에 취임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으며 육군대신은 (1) 자신이 육군을 완전히 휘어잡거나 (2) 다른 육군 장성들이 정치권에 내세운 얼굴마담이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2)의 경우 육군에서 육군대신을 사임시킨 후 후임자를 추천하지 않으면 내각이 붕괴하고 총리가 실각하므로 실질적으로 민간정부 전체를 압박하는 카드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예 육군에서 총리까지 다 해먹게 되지요.

  일본의 대미 개전 사유는 미국의 외교적 압박, 특히 석유 금수조치를 동남아시아의 유전을 점령하여 해소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은 일본에게 중국전선에서 무조건적으로 물러나라는 외교적 압박과 함께 강도높은 경제 제제를 가하고 있었고 이는 매우 큰 타격(특히 석유 소비량이 많은 해군에게)이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폭주하는 육군은 중국에서 물러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여기에 일본의 무능한 외교라인이 겹쳐 미국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일본의 전략은 하와이의 미 태평양 함대를 격멸하고 남방작전을 실행한 후 미국과 협상에 나서는 것이었으나 미국은 일본이 상상한 것 이상 강력한 국가였으며 일본의 짓거리에 상상 이상으로 빡쳐서(...) 그리고 작전이 잘 풀리니 왠지 이길것 같은 일본군의 자신감에 그대로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게 됩니다.



전쟁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특수한 영역일 뿐이고 무기와 전술, 군수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개전 이후입니다. 물론 강력한 군과 무기(당시에는 전함 등)가 전쟁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30년대 말의 독일과 일본같은 국가지도자와 정부조직, 국가전략에서 똘끼가 넘치는 국가들을 상대로는 전혀 억지력이 발휘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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