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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에서 쇠똥구리 되본 썰
게시물ID : military_611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버틀런드
추천 : 12
조회수 : 3017회
댓글수 : 66개
등록시간 : 2016/02/04 20:26:33


하... 벌써 이게 2014년 일이네..

때는 내가 일병 중간쯤에서 개같이 일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갑판병의 업무는 고되기 짝이 없고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시발 제발 오늘은

많이도 안바라고 배 안에서 일하는 거였으면 좋겠다 ㅜㅜ 이러고 일어났다.

그런데 이게 왠일? 직별별 일과정렬에서 친절하신 갑판장님께서 친히 폭풍같은 추진력으로

내 눈에는 아직 멀쩡해 보이는 홋줄을 좀 갈아야 쓰긋다고 말하시는게 아닌가.



껄껄... 그러고선 항상 하던대로 "그것만 하고 쉬어라 얘들아" 라고 쿨하게 사라지셨고

그 간단한 명령은 곧 선임 하사임에게 (해군에선 중사를 선임 하사라고 부른다) 넘겨졌고

곧 페인트 작업+쥐꼬리 만들기+라이프라인 소재+부력 방탄복 점검+홋줄 갈기로 불어났다.

선임하사라는 자리는 (어느배나 똑같겠지만) 거의 클라스가 에드워드 앨릭 급이라는걸

옛날 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이번 연성은 좀 무리데스요 같았는데 역시나 그대로 진행ㅋ


그렇게 갑판병들을 쪼개고 나눠서, 지금은 친한 형 동생하는 갑판사 한명이랑 나랑 내 맞선임이랑

맞 후임은 홋줄 교체에 투입 됐다. 총 인원 4명 (갑판하사, 나, 맞선임, 맞후임)

추가사진_20090514함상토론회-세종대왕함_01.jpg
사진 출저:bemil.chosun.com

홋줄이 뭐냐면, 저렇게 배를 부두에 계류 해둘때 쓰는건데 저게 말이 줄이지 그냥 뭐, 두깨가

왠만한 남자 허리만 한 줄도 있을정도로 괴랄한 물건이다.

홋줄은 갑판의 생명과도 같다. 저게 없으면 배를 묶을수도 없고 그말인즉 부두에 계류할수가 없

다는것. 많은 사람들이 배가 앵카를 써서 부두에 정박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항구에서 앵카를 내리지는 않는다. 걍 홋줄로 졸라 묶어 놓는것




09.jpg

이 홋줄을 왜 갈아줘야 되냐면 홋줄을 볼라드 (부두에 툭 튀어 나와서 줄 거는데)에 걸고

배의 윈드라스라고 (사진에 동그란거) 저기에 감아서 존나게 쪼아서 묵어놓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만큼 쪼으냐면 저 줄에서 뚝뚝뚝뚝 소리가 날때까지 쪼으고 위에서 사람이 

봉봉 타는것 처럼 삐용삐용 홋줄밟고 뛸수도 있을만큼 쪼아 놓는다.

당연히 이 정도로 탄력이 먹은 홋줄이 끊어지기라도 하는 순간에는, 그 위에 있는 인원들은

걍 죽는다. 다치는거 없음. 진짜 걍 사람이 반으로 짤림. 


이정도로 위험하기 때문에 항상 홋줄 상태를 체크하고 갈아줘야 하는것.

그런데 내 눈에는 멀쩡해 보인단 말이지 @-@. 물론 갑판장님이 까라면 까야지.

그래서 우리는 홋줄을 배달해 주는 트럭을 기다리며 청승맞은 강아지 처럼 함미에서

쭈구리고 앉아 있었다.

사건은 그때 시작되었다.


갑판사: 야 00아, 좆됐다.

나: 왜 그러십니까, 하사임?

갑판사: 지금 차가 없어서 홋줄 배달 못온데

병들: .......

갑판사: 가자

맞선임: 어딜?

갑판사: 뭔 어딜이야, 우리가 가지고 와야지 ㅋ 정비창에서 받아가래



난 그때까지도 뭐 조금 고생좀 하게 생겼네 하는 식으로 바람이나 쐴겸 배에서 내려 정비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잦은 출동에 육상 나들이가 절실했던 우리들은 오랜만에 육지인들을 구경 하는 재미에, 게다가

서로 사이도 좋았기에 깔깔 거리며 갑판사 뒤를 따라 정비창으로 향했다. 

대충 우리배가 계류되어 있는 부두에서 정비창까지 어림잡고 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으니

그리 멀지않은 곳이었다.

허나 갑판사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나는 그때 형의 표정이 밝지 않았던 것이

이전부터 자랑질 해대던 여친님과 싸우셨거나, 디아블로 3가 잘 안풀리거나, 쿠키런의 질주가

예상만큼 원활하지 않아서 그런것인줄 알았다.


허나 그 생각은 정비창에 도착해보니 깨끗이 사라졌다.

시발...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

그때까지 난 한번도 공장에서 갓 찍어낸 따끈따끈한 홋줄을 본적이 없었고 그랬기에 내 앞에서

괴랄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는 신품 홋줄은 어이없음의 표본이었다.

이거슨 마치...거대한 보아뱀을 잡아먹은 아나콘다를 소화시키고 있는 이무기가 똬리를 틀고

나를 비웃고 있는것 같았다.



Polypropylene-Boat-Mooring-Rope-for-Ship.jpg

대충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처럼 홋줄이 동그랗게 말려 있었는데, 키가 180인 내 가슴깨까지

오는 높이에 두깨는 성인 남자 어깨 넓이의 2.5배 크기였다.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위쪽에 제품 표시같은 상표가 붙어 있었는데 만든 회사 이름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600kg 에 달하는 무개였다. (정확한거 아님 기억의존. 하지만 저만했음)



당황한 한달차이 맞선임과 한달차이 맞후임은 서로 입을 벌리고 '설마 우리가 들고 가야

되는게 이거?' 라는 무언의 눈빛을 주고 받았고 갑판사는 어둡지만 별거 아닌듯한 얼굴색으로

정비창 아저씨와 몇마디 인사후 결제판에 싸인을 하고 우리를 향해 돌아 섰다.

갑판사: "가자"

나: "와...개미친, 하사임 이거 무리데스요, 절대 못들고 갑니닼ㅋㅋ"

갑판사: "야, 할 수 있어. 내 막내였을때는 배도 발로 밀어서 항구에서 땠어 이새꺄"

맞선임: "ㅋㅋㅋㅋ 절대 못합니다 이겈ㅋㅋ 여기 600kg 안보이심?"

맞후임: "수송대에 지원좀 해주시면 안됩니까?"

갑판사: "야, 우리 오후에 출항 해야 되는데 수송대 전화하면 또 막 서로 미루고 미루고 하다가

         결국 못하겠지? 그럼 난 갑판장님 한테 개까이겠지? 그럼 우리도 개까이겠지?
     
          빨리 하자, 할 수 있어 도와줄게 ㅋㅋㅋ"


말하는 자기도 어이가 없는지 연신 웃으면서 밍그적 거리는 것이었다. 우리 세명도 그때까지는

앞으로의 고난을 예상하지 못하고 웃으면서 이무기 주변을 맴돌았다.

나: "대충 굴려서 가면 힘들지만 갈수는 있겠는데.."

그렇게 세워져 있는 홋줄을 옆으로 밀어 쓰러뜨렸고, 데굴데굴 굴려 보면서 얼마나 무거운지

테스트를 해 본 우리들은 8월의 땡볓 아래에서 이제 우린 좆됐구나를 다시한번 확인하게

됐다. 이건 홋줄을 굴리는게 아니라 거의 '지구를 약간 들어서 굴러가게 하는거'랑 비슷했다.


정비창 문 까지 온 우리들은 연신 '미쳤다'를 남발해 대면서 8월의 햇볓을 느꼈다.







12.png

그런데 문제는 정비창의 구조였다. 여기가 자동차가 드나드는 곳이 뒷쪽에 있고 앞쪽

정문은 콘크리트로 턱이 있었던 것이다. 

표현력이 딸려서 그러는데, 대충 그림과 같은 높이의 턱이였다. 

아주 간단한 대뇌 회로 작용을 거쳐 우리는 '이 이무기 똬리를 들고는 못내려 간다'라는 

귀차니즘+현실참고의 결론에 도달했고 몇분더 머리를 써보던 우리는 결국 이무기 똬리를

힘차게 밀어서 떨구면 저쪽으로 대굴대굴 굴러갈 것이고, 그렇게 하면 우리가 굴려야 되는

거리도 작아질 것이다. 라는 대안을 선택했다.






121.png
그렇게 ㅋㄷㅋㄷ 거리며 '머리가 좋아야 몸이 고생을 안한다니까 ㅋㅋ' '역시 수뱀입니닼ㅋㅋ'

와 같은 서로에 대한 칭찬과 함께 우리 네명은 홋줄 똬리를 입구에서 혼신의 힘으로 밀어 

재꼈다.







1211.png
우리의 예상









12111.png
현실


그랬다. 홋줄은 단단한 쇠가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홋줄은 땅에 부딧혀 한쪽 끝이 움푹 파여 들어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앙 하사임 이게 뭡니까아앙아악

니가 하자고 그랬자나 미친놈아아아앜

아,. 하사임이 좋겠다고 했잖아영어어어엉


우리는 절규했고, 홋줄은 데굴데굴은 개뿔 제자리에 미동도 없으 가만이 있었다.

결국 우리는 몇분간의 패닉 상태를 거치고 난 뒤에 그래도 별로 안찌그러 졌으니 밀고갈 수

있을것 같다 생각하여 다함께 힘차게 밀어 보았다.


키야,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마치 장동차가 험프를 지나갈 때의 느낌이 원의 둘레마다 한번씩 온다고 생각해야 되려나...

안그래도 굴리기 힘든 600kg 짜리 타원형이었는데, 우리의 계획으로 인해 홋줄은

600kg 짜리 찌그러진 타원형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그래도 나름 문명인이라고 두손으로 힘을 줘가며 밀었지만 한 20m 전진하고 난 뒤에는

손이고 발이고 할것없이 은혜갚은 까지마냥 홋줄에다 온몸을 처 비벼대며 어떻게든 앞으로

밀었다.






꾸미기_12111.jpg
그런데 문제는 이 600kg 짜리 타원이 찌그러져서 계속 오른쪽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앞으로 밀고가는 동시에 홋줄이 계속 오른쪽으로 휘어지기 때문에

방향까지 조절해 줘야 했다. 

물론 방향 조절은 추진력을 끌어내는 방식과 똑같이 온몸 부대끼기+욕설이었다.


8월의 햇살은 아주 그냥 우리를 말려 주길 기세로 쨍쨍 거렸고, 해군 병들이 입는 셈브레이라는

파란색 셔츠는 어느세 땀으로 짙푸른 청바지색으로 변해 있었다. 



더 가관인 것은 정비창 도로를 지나서 부두로 들어 와서였다.

하필이면 우리 배가 부두의 가장 끝쪽에 계류되어 있어서 그쪽까지 가는 거리가 늘어난것은

물론이거니와, 부두에 계류되어 있던 모든 군함의 인원들이 곧 우리를 발견하고 라이프라인에

기대서서 '야 쟤들좀 봐랔ㅋㅋ' 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존나 큰 홋줄을 사람 네명이서 굴리고 가는데 그 네명은 서로 '이게 다 하사임 때문

이다' '웃기지 마라 나는 살짝 밀려고 했는데 니들이 쎄게 민거다' '민거 자체가 잘못이었습니다 수뱀'

'니는 닥치고 힘이나 줘라' 등 악악거리면서 밀고 가는건 누가 봐도 웃길 것이었다.




Pearl.Harbor.2001.x264.DTS.2AUDIO-WAF[(050240)18-52-07].JPG

마치 영화 <진주만>의 한 장면처럼 부두에 계류된 군함들의 갑판병들이 반은 측은+이해한다, 

반은 병신들ㅋㅋㅋㅋㅋ 거리며 우리를 구경 했는데, 안그래도 빡치는데 계속 오른쪽으로 가는

홋줄이고 뭐고 다 바다에 처던져 넣고 나도같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을 가지게 만들었다.

진짜 동물원의 동물들 보고 함부러 손가락질 하는거 아니라는걸 느꼈다. 


그렇게, Be+구경하다 pp를 당하면서 기어이 우리배 까지 홋줄을 밀고 가는데 성공했다.

이때쯤 우리의 상태는 인간의 팔 대신에 스펀지밥의 팔을 가지게 된것은 물론이거니와

부들부들 떨려서 코 끝으로 내려온 안경조차 올릴수가 없었다. 


갑판사는 터벅터벅 걸어가 배로 올라갔다.

당시 짬이 좀 있었던 갑판사는 현문에다 "야, 빨리 애들 다 불러, 방송해 저거...저거.." 하면서

숨을 헉헉거리며 홋줄을 가르켰고, 부직 사관은 부두에 거의 널부러져 있는 우리들의 상태와

홋줄을 번갈아 쳐다 보더니 '설마'하는 표정을 잠시 짓고는 당황해서 방송을 때렸다.

뭐 방송의 내용은 홋줄 운반 작업이 있으니 각부서 병들은 하던일 다 떤져 두고 당장 쳐 나와라

라는 내용이었고, 당연히 병들은 우르르 몰려 나왔다.


'안 그래도 할일 많아 죽겠는데 뭘 또 불러내냐 갑판 새끼들아', '좀 작작 처불러내' 등등 

투덜거리며 몰려나온 병들은 당연히 부두에 다먹은 메로나 막대기처럼 널부러져 있는 우리를 보았고

한쪽이 찌그러진 채로 배 옆에 놓여있는 거대한 홋줄을 한번 쳐다보더니 다들 군말 없이 작업에

참여했다.


그 일은 부두에 계류되어 있던 모든 군함의 사람들이 봤기에 그 뒤로 우리배는 

쇠똥구리 탑재함, '야 그,, 뭔 배냐, 그 뭐시냐.. 그래, 그 쇠똥구리 애들 배' 등등으로 불렸고

우리는 '함대 쇠똥구리', '힘들어 보이던 친구들', '수송대랑 싸운 배 친구들' 등등으로 불렸다.



그렇게, 8월의 쇠똥구리들은 터벅터벅 배로 올라가 쉬다가 오후 출항이 취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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