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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알몬드
게시물ID : military_620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GENTAG
추천 : 0
조회수 : 373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3/27 19:41:54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9/Edward-Almond.jpg/250px-Edward-Almond.jpg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은 현리 전투 당시 미 육군 10군단 군단장이었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에서 92 보병사단을 지휘했으며, 92 보병사단은 전 군의 골치거리로 전락하여 참모총장이었던 조지 마샬 장군이 직접 개입하여 재편성 및 훈련을 시켜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알몬드 장군은 작전 실패를 아무렇지도 않게 흑인 장병들에게 돌리던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92 보병사단은 흑인 부대와 일본인 부대로 구성된 혼성사단이었음. 김영옥 대령이 소속되어 싸웠던 442 연대도 92사단이었습니다.)
https://namu.wiki/w/현리%20전투#s-9

한국전쟁 당시 그는 맥아더 사령부의 참모로 참가하였고(직책: 참모장) 정보참모 찰스 윌로비 장군과 함께 맥아더의 눈과 귀를 가린 Yes맨으로 평가됩니다. 이후 그 이름도 찬란한 '장진호 전투'가 벌어지게 된 제 1차 책임자로, 허수아비 군단장을 원하는 맥아더에 의해 10군단의 군단장이 되었으며 무리한 진격을 명령하여 장진호의 참사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하지만 장진호 전투는 항명에 가까울 정도로 진격 명령을 불이행하고 야전 활주로를 건설했으며 충분한 탄약과 보픕품을 전방에 배치하도록 한 해병대 1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장군에 의하여 수습되었습니다.

현리 전투 당시 미군은 전투지경선을 조정하며 "오마치 고개"의 관할을 미 10군단 7사단으로 변경하였고 유재흥 장군은 이에 항의하였으나 알몬드 장군은 "자신의 전투관할지역에 다른 부대가 들어 와 있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며 3군단의 예비병력마저 철수시켰습니다.

또한 미 10군단은 5월 16일 3군단 전술지휘소에서 문의한 상황추이에 대해 7사단 방어선이 붕괴됐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군단 정면에는 아무 이상도 없다"는 잘못된 상황전파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1951년 7월까지 10군단을 지휘하였고 1953년 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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