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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의 하루(기억폭력주의)
게시물ID : military_685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jahbulon
추천 : 5
조회수 : 43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3/30 02:24:57
-막내의 하루 

02:20 귀 옆에 둔 카시오 시계가 울린다. 카시오 시계 울림을 끈다. 초소 근무 25분 전이다. 전투복을 빠르게 입는다. 전투조끼 탄띠를 착용하고 전투화 신발장으로 가서 전투화를 신는다. 오늘은 빨리 움직여야 한다. 깨우기 힘든 고참들이 근무조에 포진되어 있다. 

02:25 일병들을 깨운다. 다행히 일병 선임들은 잘 일어난다. 일병 선임들은 내가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평소보다 전투복을 느리게 입는 거 같다. 

02:30 이제 상병과 병장을 깨워야 한다. 평소 외워놓은 위치를 더듬어가며 찾아간다. 깨울 때에는 이름과 계급을 부른다. 그래도 안 일어나면 바닥을 살짝 쳐가며 부른다. 바닥을 치자 상병이 나를 쳐다본다. 어두워서 막 일어난 얼굴이 안 보이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근무 15분 전이라고 말해준다. 
이제 병장을 깨울 차례다...어떻게 깨우지...일어나긴 할까..일어나도 문젠데..

02:35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병장이 5분째 이름을 부르는데 안 일어난다. 상병은 내가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모드로 병장 이름을 불러대는데도

도와줄 생각 않고 자기 옷만 입고 있다. 좀 도와줘 개XX야..

02:36 바닥을 정말정말 살짝 쳐본다. 병장은 미동도 없다. 잘 때는 죽은 듯이 잔다더니 진짜 죽은 것 같다. 차라리 죽은 거였으면 좋겠다. 

02:40 근무시간 5분 전이다. 내 머릿 속에는 아직 내가 물병도 채워두지 않았다는 사실만 흘러간다. 어둠 속에 무릎앉아 자세로 10분을 앉아있으니 죽을 지경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방법으로 병장이 덮은 이불을 들었다가 놓아보기로 한다. 이불 바람이면 깰 수 있을까...

02:41 이불을 열번 들었다 놓았다 하자 그 바람에 병장이 깼다. 성공했다. 병장이 내 전투복 칼라를 꽉 붙잡은 채 노려보고 있다는 것만 빼면...                  그 상태에서 나는 근무시간 5분 전입니다라고 말한다. 병장이 더 빡친 것 같다. 

02:43 근무시간 5분 전에 분대장을 깨운 덕에 근무조 분위기가 아주 안 좋아졌다. 초소 고참인 상병은 병장에게 한 소리를 듣고 있고 다른 일병들은 뭐하느라 물병도 안 채웠냐고 나에게 물어본다. 

03:00 초소에 왔다. 병장에게 한 소리 들은 상병이 나에게 기나긴 가르침을 줄 참이다. 

04:00 한시간동안 이야기한 상병이 졸음이 오는지 초소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이제부터가 본 게임이다. 나는 전방을 보지 않고 후방 순찰로를 주시한다. 전화기는 한 번에 받을 수 있게 내 옆에 놓는다. 여기서 순찰차량을 못 잡으면 아마 복귀해도 잠을 못 자게 될 것이다. 손에 몰래 써놓은 암구호를 확인한다. 

08:00 이제 근무가 끝날 시간이다. 나 덕분에 고참은 잘 잔 모양이다. 고참이 아침 메뉴를 물어본다. 미리 외워놔서 다행이다. 

08:40 소대로 복귀해서 아침을 먹는다. 일병들과 아침 식기를 정리한다. 일병들이 나를 불러서 대체 새벽에 분대장한테 무슨 짓을 한거냐고 묻는다. 일찍 자기는 그른 것 같다. 

09:00 간신히 자리에 가서 누웠다. 이제 11시 30분까지 잘 수 있다. 이불 속이 너무 따뜻하다. 

11:20 밥차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삑삑 소리에 총알같이 튀어나간다. 짬통을 들고 밥차 위로 뛰어오른다. 짬통을 비우고 내가 내려가는 동안 다른 고참들이 반찬을 내린다. 나는 다시 달려와 제일 무거운 밥통을 들고 식당으로 뛰어간다. 

12:00 밥을 먹는다. 밥이 잘 안 들어간다. 끊어서 잠을 자니 머리가 아프다. 어제 새벽에 병장을 근무 5분 전에 깨운 일이 소대에 퍼졌다. 입맛이 더 떨어지는데 밥을 남길 수도 없다. 

12:30 식기 정리를 마치고, 고참 내무실을 정리한다. 슬리퍼가 반듯해지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미친 모양이다. 

13:00 분리수거 시간이 왔다. 화장실 쓰레기통, 내무실 쓰레기통, 상황실 쓰레기통을 몰아서 박스에 넣고 분리수거장으로 향한다. 여름이라 그런지 분리수거장이 찜통이다. 오늘 상대는 버디언 철캔이다. 일병들이 철캔을 슬리퍼로 밟아서 캔통에 넣는다. 멋있어보여서 나도 해봤는데 철캔이 뭉그러진 게 아니라 내 발목이 뭉그러진 거 같다. 발목을 붙잡고 분리수거장을 뒹군다. 코에는 퀴퀴한 양파 냄새와 썩은 우유 냄새가 느껴지고, 귀에는 고참들의 욕설이 들린다. 

14:00 중간 결산의 시작이다. 일병 최선임이 오늘 기분이 안 좋다. 역시 주제는 오늘 새벽의 일이다. 일병 최선임은 막내가 병장을 못 깨우면 니들이라도 가서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전우애의 부족을 개탄한다. 그 와중에 내가 절뚝거리는 것을 본 일병 최선임의 기분이 더 안 좋아졌고 한 번만 더 저 모자란 새X가 철캔을 발로 밟게 하면 내가 니들 머리를 발로 밟아 뭉개겠다는 최선임의 애정 섞인 목소리가 건조장을 울린다. 주변 일병들이 다들 나를 쳐다본다. 

14:20 분대장이 오더니 오늘은 소대원 전원 넝쿨 제거 작업이 있다고 한다. 작업 전파를 위해 움직인다. 고참들 내무실로 갔는데 오늘 새벽의 병장이 또 자고 있다. 내가 거의 울 거 같은 표정을 짓자, 일병 하나가 오더니 나더러 물이나 챙기라고 한다. 

16:30 모기가 몸 곳곳을 물었다. 다리는 아프고 손에도 풀독이 올랐다. 그래도 초록색을 보니 마음이 안정되는 거 같다. 

17:00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기를 정리했지만 소대 청소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 하루 최후의 고비다. 

18:00 바닥을 솔로 죽어라고 민다. 풀독 오른 손에 세제 푼 물이 끼얹어지고 시계를 찬 손목은 물이 차서 그런지 습진이 났다. 내 내의는 짬과 세제, 땀, 바닥에서 튄 구정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옆에서 일병 최선임이 호스로 물을 뿌리는데 그렇게 편해보일 수가 없다. 

19:00 청소가 안 끝나고 있다. 사실은 원래 끝났어야 하는데 검사를 맡은 상병이 계속 "다시"를 외치고 있다. 여기를 더 깨끗이 하라고 해서 했는데 여긴 안 보고 저기를 또 지적하고 있다. 

19:10 상병이 바닥을 지적하던 손가락 방향을 일병 최선임에게 돌리고 있다. 올 것이 오고 있다. 

19:30 건조장에서 상병이 일병들을 모아놓고 "나 때는"으로 시작되는 썰을 풀고 있다. 가끔 신음소리가 들리는데 그 와중에 나는 내 부어오른 발목은 걷어차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00 다행히 상병은 나를 벌레 보듯이 하고 지나갔다. 일병 최선임이 우리 앞에 선다. 천천히 우리를 버디언 철캔 보듯이 둘러보는데 아까 상병한테 밟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잠깐 정적이 흐르더니 일병 최선임은 한숨을 쉬고 이제 그만 들어가 쉬자고 한다. 왠지 일병 최선임 뒷모습에서 우리 아버지 모습이 보인다. 

20:10 내무실에 들어갔는데 상병이 오더니 일주일 뒤에 군수검열이 있다고 지금부터 준비하라고 하고 사라진다. 야차의 얼굴을 한 일병 최선임이 돌아서고 우리는 그 앞에서 철캔도 아닌 생생가득 알루미늄 캔이 되어버린다. 

21:30 내무실은 군수품으로 난장판이 되어 있다. 일병 최선임은 서류를 붙들고 나라 잃은 표정을 짓고 있다. 뭔가 심각하게 빵꾸가 난 거 같다. 다행히 나는 또 다시 초소로 근무를 서러 간다. 내가 그 지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는 일병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23:00 초소에 다시 왔다. 이번 고참은 상병인데 말이 없기로 유명하다.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상병은 자려고 초소 안으로 들어간다. 

00:00 졸려 죽을 지경이다. 생각해보니 17시에 근무조 들어가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02:00 선 채로 졸고 있었다. 문제는 밑에 순찰차량이 와 있다는 것, 고참이 황급하게 초소 밖으로 황급하게 튀어나온다. 고참이 밑으로 내려가서 순찰일지에 사인을 받는다. 밑에서 간부가 뭐라 하고 있다. 

03:00 이제 보니 이 상병은 아주 말을 잘 하는 거 같다.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잠이 안 왔다

04:00 근무 후 일병과 나는 건조장으로 향했다. 건조장 옆으로 고양이 하나가 지나갔는데 고양이와 내 몸을 바꾸고 싶었다. 

04:30  자리에 누웠다. 집에 가고 싶다. 

11:20 밥차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삑삑 소리에 총알같이 튀어나간다. 짬통을 들고 밥차 위로 뛰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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