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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못하는 사람이 카투사 가서 겪은 일들
게시물ID : military_770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o발치wer
추천 : 16
조회수 : 3175회
댓글수 : 33개
등록시간 : 2017/05/22 10: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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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느덧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끔씩 군대있었던 일들이 생각나는데

아침에 문듯 영어하나도 못하던 사람으로써 운좋게 카투사 갔다가 겪었던 일들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눈팅만 하다가 용기내어 적어봅니다 ㅋ

저는 영어를 못했었지만.. 대학교때 친구들 통해서 카투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일반육군보다 편하다는 말만듣고 지원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카투사 지원가능 시험으로 토익 600이 마지막일때였습니다. 그 당시 카투사 지원까지 2번의 토익응시기회가 있었는데 한번쳤는데 590점이 나왔습니다. ㅜㅜ

신에게는 아직 한번의 더 기회가 있습니다.를 외치며 마지막 한번의 더 시험을 치고 점수를 확인했는데 아직도 생생합니다. LC에서 10점이 올라서 넘었다 싶었는데 RC에서 5점이 깎였습니다. 어..어.. 하면서 총점을 확인해보니 595점이었습니다. 카투사 지원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저에게도 전설속의 CC가 되는 기회가 생겨 군대는 잊고 지내다 4학년이 되면서 역시 전설과 같이 CC는 깨지고 말았고 다시 군대를 알아봤습니다.

다시한번 카투사가 떠올린 저는 토익은 저랑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텝스로 지원을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제가 공부를 안한거는 이미 메모리상에서 지워졌습니다.)

그당시 정확히는 모르지만 텝스 520이 넘어야했던걸로 기억납니다. 근데 커트라인보다 5점 살짝 넘은 525점이나와 드디어 지원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지원은 그야말로 지원일 뿐 합격은 또 다른 산이었습니다. 인터넷 생중계로 친구들과 카투사 합격자 선정과정을 보며 화면에 제 이름이 뜨기를 기다렸습니다. 중간중간 로딩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제 이름은 끝내 없었고.. 옆에서 같이 보던 친구들은 위로의 말과 함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저는 혼자 제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던 순간 핸드폰에서 합격되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요새는 달별로 지원한다고 들었는데 그 당시는 1년 전체를 한번에 뽑아 나이순으로 입대했기 때문에 저는 24살, 2월에 논산훈련소에 입대하였습니다.

5주간의 논산훈련소를 마치고 306보충대서 잠시 대기하다 드디어 카투사 훈련소인 캠프잭슨에 들어갔습니다.

티비로만 보던 미군들과 미군식당이 제 눈을 어지럽게 만들더군요

하지만 본격적인 영어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습니다.

1. 이동하는 중간 내내 옆에 조교들이 뭐라고 외치는데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하루 지나 알았습니다. 그게 left였는지.. 왼발 왼발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중학교 입학전 초등학교 6학년부터 영어를 공부하며 근 10년 넘게 공부했지만 left를 하루종일 듣고 나서야 그게 left인줄 알았던 것입니다.

2. 그리고 오리엔테이션하는데 대부분의 말은 잘 못들었지만 신기했던건 하루에 적어도 5번의 팬티였습니다. 저는 아.. 여긴 위생관념이 장난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뒤 그건 팬티가 아니라 캔틴(수통) 이었고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내용인걸 알았습니다.

캔틴 내용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한국군대랑 미군군대랑 달랐던 것 중 하나가 물 마시는 거였습니다.
논산에선 물 마시고 싶어도 못마시게 했는데 미군은 무조건 계속 마시게 했는데.. 그게 좀 심할 정도여서 물 마시기가 만병통치약 수준이었습니다.

하루는 배가 아프다 했더니 미군상사가 drink water라고 했습니다.
자대 대대 체육대회때 릴레이 선수로 뽑혔는데.. 제가 장거리는 잘뛰어도 단거리는 못 뛴다했더니 미군 동료가 drink water라고 했습니다.
여러 훈련으로 지친다 피곤하다했더니 drink water
뭐든지 몸과 관련이 되어있다 싶으면 drink water.. 한국에 빨간약이 있다면 미군에는 drink water가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이야기가 있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를 않네요  아무튼 군 제대 후 남는것중에 하나가 drink water~ 였습니다.

드디어 카투사훈련소를 끝내고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저는 헌병중대의 화학병을 맡게되었습니다.
저는 그게 저에게 또 다른 시련이 될줄 몰랐습니다.

자대에 가고 선임 카투사가 있을 땐 그나마 마음이 편했습니다. 하지만 선임 카투사는 곧 제대해 버렸고.. 다수가 헌병인 부대에서 화학병 카투사는 저밖에 남지 않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미군이 개인정보를 조사한다며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잘 대답하던 저는 이제 카투사가 되어 잘 살아남을 수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메일주소를 묻는 순간 저는 또다시 절망에 빠졌습니다... 앞에 이메일 영어는 잘 불러 줬는데.. 골뱅이가 영어로 뭔지 알길이 없었습니다.
골뱅이를 혀 굴려서 말해볼까.. 뭐라해야하나 식은 땀을 흘리다가 결국 제가 가서 적었습니다.ㅋ

헌병중대에서 화학병이었기 때문에 제 삶을 무료해졌고 사무실에서 지뢰찾기만 열심히 하던 저는 가끔씩 화생방등 화학훈련이 생기면 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안그래도 안좋은 저의 발음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순간 더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화생방실에서 마스크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제가 외쳤습니다. move your head in a circle~! 머리를 돌려봐라했습니다.
그 순간 모든 미군이 손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저는 not hand, move your head라고 외쳤지만 미군들은 여전히 손만 흔들었습니다.
저는 토익과도 맞지않았지만 마스크랑도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ㅜㅜ

초반에 이런저런 고난을 많이 겪었지만 2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영어도 늘고 많이 익숙해지면서 결국은 슈퍼카투사로 불리면서 제대하게 되었네요

이런저런 추억들이 많았는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버리니 잊어버린것도 많네요 반응 좋으면 또다른 카투사 후기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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