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청소지존의 군생활 1편(Feat : 의무경찰) : 경찰학교 ~ 자대
게시물ID : military_794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소지존
추천 : 3
조회수 : 49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18 11:14:47
여기에다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잊혀질까봐 적습니다. 저의 군생활은 정말 재미가 없습니다. 나중에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자서전을 쓸때 군대 기록을 참조하기 위해 이렇게 적어둡니다. 기사본말체로 적으려 했으나 편년체로 적는게 나아서 월별로 끊어서 기록해두려합니다.
 
가급적 부대이름은 실명으로 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지만 실명으로 언급할 정도로
 
Clean한 부대입니다. FM그 자체였으니까요. 밥도 맛있었고 몇몇 선임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필자는 책을 가까이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그들과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지만(그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전우애 넘치는 소중하고 잊지못할 부대입니다. 여기에 기록해두지 않으면 그들이 영영 제 기억속에 사라질 것 같으니까요.
 
편의상 반말체로 하겠습니다..
 
---------------------------------------------------------------------------------------------------------------------------------------
 
7월~8월
 
경찰학교의 생활은 정말 파라다이스였다. 줄을 잘못 서서 친했던 동기와는 같은 방이 될 수 없었다.
 
생활관에서는 다시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다시 배정됬다. 그들은 줄을 잘 서서 친한친구들과 왔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깨달았다. 내 좌우 모르는 사람들이 훈련소 동기들보다 더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경찰학교의 생활은 단순했다. 보급품을 받았다. 간이기동화를 받았다. 그러나 내 사이즈는 275인데 260을 줬다.
 
275를 달라고 했지만 어차피 자대가서 안쓴다고 했다(그리고 다음해 11월에 개고생을 했다).
 
심지어 근무복, 기동복 오버로크까지 우리돈으로 했다. 조선전기 군역에 동원된 백성들도 무기와 갑옷은 자기들이 준비해서 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친구는 키가 작았다. 그는 동파카를 받았는데 그 모습은 헬름협곡에서 김리가 미스릴갑옷을 입은 장면과 매우 유사했다.(김리가 미스릴 갑옷을 입었는데 키가 작아서 미스릴갑옷이 땅과 접촉하는 장면)
 
기상은 7시였으며 간단한 체조와 팔굽혀펴기 등등으로 시작하며 강의실로 이동해서 강의를 듣는 시스템이었다. 중간중간 매점이 있으며
 
우리말고 진짜 경찰들도 강의를 듣고 담배를 폈다. 필자는 담배를 피지는 않지만 흡연구역은 늘 뿌였었다는 기억이 난다.
 
그리고 8시쯤 조교가 우리들을 다 광장에 불러 모이게 했다. 일주일동안 말투는 늘 한결 같았다
 
"자....지금부터...간식을 줄건데...." 늘 이 맨트로 시작했다 그것은 정확히 기억한다. 왜냐면 내가 저걸 잘 따라했으니까.....
 
"자...지금부터 강의를 들을텐데...자...지금부터 아침을 먹을건데..."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며 경찰학교 떠나기 이틀전에 시험을 본다. 거기서 자대가 결정되는 순인데 필자는 이 천국같은 파라다이스에서
 
그만 공부하는 법을 잊고 말았다. 부랴부랴 공부를 했지만 점수는 좋지 못했다.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시험보고 바로
 
서울 기동대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
반장을 맡고 있던 친구에게서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가 황금기수라서 전국 TO가 저번기수보다 두배라고 한단다"
 
"올!!! 울산!! 나 울산인데 울산은 몇명이라카노?"
 
"흠...울산....울산은 2명...이라고 들은것같은데 특기병 2명이라던데?"
 
"................"
 
그 친구는 경남으로 갔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광주사람이었다. 그는 공중전화로 지방청에 있는 자기 친구에게 TO를 물어봤다. 그리고 그 후 그는 조용히 서울로 끌려갔다.
 
필자는 태생은 전남출신이지만 학업문제로 전주에 거주했다. 그러나 전입신고는 하지 않았기에 전북에 지원할 수 없었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시험을 망치고서 전남으로 갈 수 있었다. 내 친한 친구도 전남으로 갔다. 그러나 우리는 자대가 갈렸다.
 
떠나는 날, 우리를 인솔하러 왔던 경찰분이 서울쪽에 위치한 애들을 보고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야 서울 니늘! 좋은소식하나 있다. "
 
"(이미 기동대의 악명을 들은터라 아무생각이 없음)......"
 
"니들 다 방순대(방범순찰대)야"
 
"!!!!!!!!!!!!!!!!!!!!!!!!!!!!!!!!!!!!"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서울은 방순대와 기동대가 딱히(?)구별이 안되다는 것을......
(물론 기동대가 더 힘들긴 하지만 방순대도 훈련을 많이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충주 기차역에서 같이 전남으로 갈 동기들과 마주했다. 총 20명인가 그랬다..
 
전남으로 간다고 좋아했던 다른 동기들은 참담한 사실에 마주했다...
 
"김xx, 안xx, 양xx, 명xx, 김xx, 송xx, 이xx, 박xx" 이상 8명은 119방순대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시험을 망친 필자도 포함되어있습니다)
 
"나머지는 다 기동 11중대"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필자는 2번의 운명가르기에서 성공했다. 서울->전남, 기동->방순대
 
기차는 점점 광주송정역에 가까워지고 우리는 여기서 흩어졌다.
 
우리를 태우러 온 차는 범죄자를 호송할때 쓰는 호송차(?)였고
 
기동대를 태우러 온 차는 기동대 버스였다(기동대버스를 지칭하는 음어가 있지만 보안상 쓰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목포로 향했다. 8명 전원 호송차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를 태우러온 사람은 행정실장(육군으로 치면 행보관정도 됩니다)과 차량반 막내였다.
 
행정실장은 무소불위를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