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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작전 사례 - 사담은 농장에 있는가?
게시물ID : military2_22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중동사람
추천 : 6
조회수 : 149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09/05 21: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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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3월 19일 / 이라크 전쟁 개전 직전,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빠르고 신속히 끝내기 위해 개전 시작과 동시에 이라크 고위 수뇌부 55명에 대해서 비핵 정밀폭격을 통한 참수작전을 펼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고위 수뇌부 위치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고 2002년 가을 부터 미국 CIA는 이라크에 휴민트 네트워크인 코드네임 락스타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해왔고 19일 최우선 목표인 사담 후세인에 위치에 대한 정보가 락스타 내 몇몇 정보원에게 올라옵니다. 바로 사담 후세인과 몇몇 수행원 그리고 그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아들들이 바그다드 남동쪽 티그리스 강둑에 존재하는 도라 농장에 은신해 있다고 보고해온거죠. 

 1991년 걸프전쟁당시 도라지역 근처에 탄약 보관소와 화학무기 보관시설이 있다는 보고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교외지역에 숨어있다는 정보 보고는 이목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락스타 정보원들은 도라농장에 대한 세부 정보와 통신/전화관련 정보를 보고했습니다. 

 19일 아침, 백악관에 도착한 CIA 국장 조지 테닛은 락스타 네트워크에 대해 짤막히 설명하고 CIA가 사담을 찾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언급하면서 정보 브리핑에서 도라 농장에 사담 후세인과 그의 아들들이 숨어있다고 조지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진에게 브리핑했습니다. 테닛에 내용은 당시에는 매우 모호했으나 흥분한듯이 브리핑을 진행했습니다. 

 락스타의 제보는 전쟁을 앞두고 후세인위치를 이처럼 뒤지는 미국에게는 희소식이였지만 추가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오전 10시 15분경,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산악 지대에 CIA 팀이 침투하여 이미 70년대 플라스틱 트레일러 3개와 낡은 오두막 3개를 설치하였고 이곳을 존스타운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들은 위성전화와 스크린에 이라크 내부 전화선 정보등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은 가능한 빨리 버지니아 CIA 본부로 도라 농장에 대한 정보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했어야 했습니다. 현지 쿠르드족 인원 2명이 락스타들이 전달하는 정보를 번역하여 미국으로 보내는데 도움을 줬으며 각 정보원들은 보안 무선을 통해 산꼭대기에 피스타치오라고 이름을 붙인 건물로 들어오는 아럽어 정보를 번역하여 산 아래 존스타운으로 보내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라크 보안군 특수 경비국 소속이자 사담 후세인이 다른 장소를 이동할때쓰는 일부 보안 통신을 운영하는 록스타로부터 도라농장에 정찰을 수행하고 전화선을 도청한 다른 록스타에 정보를 넘겨받았습니다. 그들은 음식과 물품을 비축중인걸 도청을 통해 파악하였고 도라농장 보안관련 세부 상황들을 전달했습니다. 새로운 정황정보였습니다. 

 최신 이미지는 도라 농장 야자 나무아래에 최소 36대의 방탄차량으로 보이는 차량이 존재했으며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 관측되었습니다. 또한 록스타 정보원에게 받은 도라 농장 세부 사항을 분석하여 이 농장이 사담 후세인에 아내와 연결되어 있음이 확인됬습니다. 

 12시 30분, 록스타 정보원에게 사담 후세인이 회의 참석차 8시간 일찍 농장을 떠났지만 아들 두명은 여전히 농장에 있으며 후세인이 돌아올것을 100% 확신하는 보고를 올렸습니다. 

 오후 3시 30분 CIA 국장과 부국장과 몇몇 CIA 요원들이 국방부를 방문해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미팅을 가졌고 정보 보고서와 위성 사진을 넘겼습니다. 럼즈펠드는 대부분의 첩보가 그렇도 이 첩보가 확실치 않다고 생각했으나 좋은 목표라고 여겼습니다. 이후 럼즈펠드와 CIA 국장, 부국장등 직원들은 백악관 오벨 오피스로 이동하여 최종 정보 보고를 대통령께 보고합니다. 위성사진과 정보를 간단히 요약하여 사담과 수행원 그리고 그의 아들이 이곳 도라농장에 있거나 혹은 여기로 오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부시는 이 정보 소스 출저와 믿을만한 소스인지 물어봤고 대답은 믿을만한 출저라는 이야기였습니다. CIA는 75%는 확실하다고 구체적으로 이야기 했을정도였고 진지하게 타격을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종류로 타격할건지 대통령이 묻자 합창의장은 크루즈 미사일을 제안했습니다. 부시는 그때까지도 후세인이 어느 건물에 있으냐 아들들은 얘가 있느냐?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지 확실한가?를 물어 보며 불신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동안 이라크 현지에서는 후세인 아들들이 농장에 확실히 있고 후세인역시 돌아올것이라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와 함깨 도라 농장 건물 세부 보고에서 주택에 벙커로 추정되는 건물이 있음을 보고했습니다. 

 오후 4시 이후 이런 최신 록스타 보고서는 즉시 오벨 보고서에 보고되었고 럼즈펠드와 딕체니 부통령은 공습을 강력히 찬성했습니다. 부시는 여전히 뜸을들이면서 여성과 아이들이 그곳에 있는지 염려했습니다. 부시는 이라크가 공습에 당한 여성과 아이를 빌미로 미국을 비난하는 프로파간다에 쓰일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참모진들과 럼즈펠드는 우리가 이곳을 첫번째로 때리지 않더라도 이라크 미디어는 우리가 아이와 여성을 죽였다고 선전할것이라면서 필요한경우 우리가 이라크 정부가 여성과 아이들을 처형한 사실은 언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다지 충분치 않은 변명이였지만 대부분에 참모와 장관, 군인들은 공습에 무게를 두고 있었고 아예 공습여부가 아니라 이제는 벙커가 있으니 토마호크가 아닌 벙커버스터 투하를 고려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올지경이였습니다. 

지속되는 이야기끝에 오후 6시경 대부분의 의견이 공습으로 모와졌고 7시 12분에 부시는 공습을 결정했습니다. 

현지 시간 오전 12시 30분 379 항공원정단에 다급한 연락이 들어옵니다. 대통령에 결정이 내려진겁니다. 이 공격을 하려면 바그다드 방공망에 침투하여야 했습니다. 이게 가능한것은 오직 스텔스기밖에 없죠. F-117 두대 코드네임 램 01/ 02는 GBU-27 2,000파운드급 벙커버스터를 도라 농장에 투하하는 임무를 받게됩니다. 45분 브리핑에서 바그다드 방공망을 설명하면서 목표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종사들은 그 어떠한 호위기 없이 단독으로 바그바드 방공망에 침투하며 호위기는 그전에 복귀한다는 이번 임무에 약간에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혹시라도 발가된다면 그들은 살아서 돌아오는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이륙에서 폭탄 투하까지 대략 4시간 정도 걸릴것으로 보왔고 해돋이 직전이 오전 5시에 폭탄 투하하기록 결정했습니다. 주변 하늘이 약간 흐린게 도움은 되겠지만 박쥐같은 바그다드 대공포병은 여전한 위협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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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시경 임무에 따라 F-117이 정비되면서 플랜은 각 벙커에 두발의 EGBU-27 벙커버스터를 투하하도록 결정되었습니다. 이미 수시간전 미공군은 EGBU-27을 테스트하여 후세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벙커에 충분히 효율적으로 격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오전 3시 램 01/02가 이륙하여 임무를 시작하였습니다. 해당지역에 있던 EA-6B 두대와 F-16 두대가 목표지역까지 에스코트 명령을 받고 에스코트를 위해 접근하였습니다. 추가로 프라울러가 에스크토로 붙었고 미국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에 대기중이던 KC-135 공중급유기에서 재보급을 받은뒤 바그다드로 침투를 시작했습니다. 이라크 침투전에 호위기들은 전부 이탈했고 그때부터 F-117만의 쇼가 시작됬습니다.

 작전 시작 2시간후경 걸프만에 대기중이던 알레이버크급 도널드 쿡함과 타이콘데로가급 카우펜스함 그리고 두척의 잠수함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40발을 발사했습니다.  5시 10분경 그들은 바그다드 하늘을 침투하여 도라 농장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주변에 200여문의 대공포와 50여문이 넘는 지대공 미사일 포대가 존재했습니다. 5시 30분경 두 조종사 모두 무장을 발사했고 곧 도라농장은 반짝거리면서 연기를 내뿜었고 그들은 그곳을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폭파이후 조종사들은 대공포대가 불을 뿜는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토마호크역시 도라 농장을 곧 타격하였습니다. 그들은 성공적으로 이탈하여 KC-135 공중급유기에 재보급받고 복귀에 성공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 첫번째 공격이자 시작이였습니다.

 도라농장은 확실하고 완벽히 파괴되었고 그때부터 이곳에 사담이 어떻게 되었느냐는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여러 정보 소스가 난잡하게 엮인가운데 일부는 사담 후세인이 코와 귀에 피를 흘리며 뇌진탕 증세를 보였다는 이야기부터 후세인은 살았지만 아들은 죽었다, 뇌진탕 증세때문에 후세인이 안경을 쓰면서 가리고 다닌다는 소식등 온갖 김치국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이나 그의 아들 혹은 축근이나 수뇌부들은 그날 도라 농장 근처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수주후 4월초에 사담후세인은 이라크 TV에 멀쩡히 출연하며 모든 기대를 부셔놨습니다. 후에 점령된 도라농장에 벙커는 커녕 벙커 할애비도 없다는것이 확인되었고 뒤늦은 정보 보고서는 사담후세인이 이곳 농장에 1995년 이후 방문한적이 없다는 결과를 내보냈습니다. 그는 그저 바그다드의 안전가옥에 머물려있었죠. 공습의 결과는 1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당했을 뿐입니다.  

 도라농장 공습은 현지 록스타 정보원이 잘못된 첩보를 너무나 신뢰하여 정보기관에 보냈고 정보기관역시 첩보를 너무 신뢰하여 정황증거만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굳게 믿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세가지 주요 첩보인 현지정보원의 정보, 도청내용 그리고 위성사진을 따로 때서 보면 불확실한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세가지를 연결시키면서 도라 농장에 없던 사담이 생겨나는 기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와함께 참수작전에서 불확실할 수 밖에 없는 첩보와 원거리 타격무기로 이루어진 타격은 한계가 있음을 들어내는 사고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한 불확실한 첩보를 직접확인해줄 특수부대 침투는 참수작전에서 중요한 요소로 꼽히게 되며 후에 오사마 빈라덴 사살에도 B-2 폭격안이 있음에도 최종적으로 DEVGRU가 투입이 결정되는 원인중 하나가 됩니다.

 이는 우리가 추진하는 김정은과 북한 수뇌부를 참수하는 참수작전에서도 중요한 사례로 기록됩니다. 현지 첩보를 확인하고 유사시에 직접 돌입하거나 폭격을 유도해줄 특수부대 침투의 중요성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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