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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재판에서 밝혀진 사실.
게시물ID : military2_29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량산(가입:2013-12-20 방문:131)
추천 : 7/7
조회수 : 2120회
댓글수 : 64개
등록시간 : 2018/03/13 22:48:22
(아래 본문 글은 bric과 정치포탈 서프라이즈에 먼저 실었던 글입니다.
각 문장 끝을 ~임 체로 끝맺은 것은 다른 게시판에 먼저 올릴 때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저는 민주당 추천 합조단 조사위원이었던 신상철님과는 분석 방향을 달리합니다. 
신상철님은 고생은 많이 하신 분이지만, 재판이라는 그 "좋은 기회"를 통해 충분히 천안함 조작을 밝힐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한 것은 너무 너무 아쉽고 아쉬운 것입니다. 이번에는 북한 김영철 통전부장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오유 유저분들은 ~임 체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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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재판에서 건져 올린 소득! 

(1) 이원보 22전대장으로부터 천안함이 2함대사의 허가를 받아 피항을 했다고 증언한 것. 

---> 남은 것: 천안함의 피항 요청 이유와 2함대사의 허가 이유와 허가 사실 추적. 

9시15분 최초상황(침수) 발생과 관련하여 중요한 내용. 해군2함대사, 해작사, 합참 모두 사고시각을 9시15분으로 적고있는 상황보고서 작성.--->나중 군은 해작사만 9시15분 최초상황 발생보고를 했다고 거짓말. 하지만 해군2함대사는 9시33분에 구조요청하면서 9시15분을 사고시각으로 적은 상황보고서를 돌림(해경 상황보고서 1보) 

해군2함대사, 해작사,합참 모두 사고시각을 9시15분으로 적고있는 상황보고서 법정 제출 요구 필요 

9시15분 최초 상황발생 -->피항 요청---> 함대사 허가-->백령도 남방 저수심 지역 진입--> 좌초나 충돌--> 급격 우현 전복, 침몰 중 두동강. 

따라서 사고 다음날 해군2대사가 실종자가족들을 상대로 아시아경제상황도를 들고 빨간점을 <사고 해역>이 아니고, "함수침몰지점"이라고 밝혔다는 전대장 이원보의 증언은 위증. 실종자가족들을 법정에 불러 증언하게 하면 이원보의 증언은 위증이라고 확인해줄 것임. 

적폐3.jpg
                      아시아 경제 구조 상황도

(내용 추가- 나중 천안함 실종자 가족대표인 박모씨는 추적 60분에 출연해, 3월27일 오전에 이원보 전대장등이 백령도 서방에서 최초 사고가 났고 함수는 이 만큼-백령도 남방 해역을 아시아경제상황도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킴-가라앉아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거짓말임) 

실종자가족들은 <3월27일> 오전과 오후 3시경까지의 해군2함대사의 사고 설명에서 천안함의 두동강을 들은 바 없음. 

아시아경제상황도를 빼앗았던 이용기도 그렇게 증언할 것임.당시 아시아경제 상황도 관련 보도 어디에도 천안함 두동강은 언급된 적이 없음. 

[사고직후 실종자가족과 간담회장에서 ‘최초좌초’라 씌어진 작전상황도를 펼쳐든 유가족 이용기씨는 2012년 6월 법정에 출석해 “2010년 3월 27일 오전에 이원보 천안함 22전대장으로부터 ‘<천안함>이 (연봉바위쪽에) 좌초돼있다’는 말을 듣고, 평균수심 6m 정도밖에 안되는 곳에 천안함이 갔다는 것이 의문이 들어 오후에 천안함 작전관인 박연수 대위에게 ‘최초좌초’ 지점이 어디냐고 물었다”며 “‘백령도 서방 몇마일쯤’이라고 하길래 좌표를 찍으라고 했더니 해당 지점을 찍었다. 그 지점에 ‘최초좌초’ 별표표시를 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3월27일 오후 5시가 되어서야 함장 최원일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배가 두동강이 났으며 함정 후미는순식간에 가라앉았다고 주장한 것이 다임. 이 때에야 실종자가족들은 천안함이 두동강 났다는 것을처음 들음. (아래 링크 참조) 

침몰 '천안함' 최원일 함장 브리핑 전문과 일문일답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27/2010032701000.html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ss_pg.aspx?CNTN_CD=A0001353191 


(2) 작전관 박연수가 사고지점 수심을 20여m라고 증언해서, 합참이 사고 다음날 국회에서 증언한 <사고지점 수심24m> 보고가 천안함으로부터였음을 확인해준 것. 

----> 남은 것: 사고지점 수심24m라고 단단위까지 보고한 경위. 이를 적시한 해군함대사, 해작사 보고서 제출 요구 필요. 

(3) 해작사 작전처장 심승섭이 <천안함 영상>을 보면서 합참에 9시보고했다는 증언 

<“(우리는) 천안함 영상을 보면서 상태를 보고했는데, 21시30분 이전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해 보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해작사가 이를 합참에 보고한 시각은 21시43분~45분 사이였다고 심 전 처장은 전했다.> 

-----> 남은 것: 해작사 심승섭이 합참 보고 시 보았다는 <천안함 영상>이 무엇인지 심승섭을 다시 불러 증언 청취 필요. tod나 kntds가 아닌 해상작전위성통신체계(MOSCOS)였을 가능성이 큼. 이는 “합조단이 발표한 구조시점 이전에 벌써 함정들이 와서 상황을 파악하고 <촬영>을 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한 한 소식통의 말에 부합함. 

심승섭의 보고 당시 천안함은 함수만 표류하는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심승섭은 천안함의 두동강을 합참에 보고할 수 없었고, 합참은 3월27일 국회 국방위에서 천안함이 두동강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냐는 유승민의 질의에 그것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 신뢰성이 없다고 답한 것임. 오늘 (3월 27일)까지 두동강이 났는지, 파공이 얼마인지 확인된 것이 없냐는 질의에 이기식은 그렇다고 답함. 

심승섭이나 이원보나 알 사람은 알아먹을 것이라 대놓고 말했던 것임. 비록 법정 질의에 대한 응답이긴 하지만. 

                           ------------- 

3월27일 국회 국방위에서 국방위원장 김학송이 " 천안함이 백령도 서남쪽 1마일에서 침수가 되어서 3시간만에 (백령도)정남쪽에서 침몰되었다"고 국방위 회의 중 말할 때도, 합참처장 이기식은 천안함 두동강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신뢰성이 없다고 말한 바 있음. 

KBS의 ‘침수, 5㎞ 표류 후 반파’보도는 해경 상황판을 보고 kbs가 보도한 것으로 "표류"는 kbs가 해석한 것임. 군은 사건 초기 한번도 백령도 서방에서 천안함이 두동강이 나서 함수가 7.4km를 표류했다거나, 천안함이 두동강이 났다고 말한 바 없음. 

백령도 서남쪽 1마일 지점에 대해서는 이게 진짜 사고지점인지, 아니면 군의 기만전략인지 파악을 해야 함.(아래에 내용 상술) 

천안함 작전관 박연수는 사고 당시 시정(視程)은 3마일(4800m)로 백령도 불빛이 육안으로 식별되었다고 증언했음. 좌현 견시병 공창표는 우현으로 백령도 불빛이 보였다고 증언. 

하지만 백령도 247초소병들은 해무로 인해 시정이 500m로 야시장비로 관측이 불가능했고, 육안으로 사태파악이 쉽지 않았다고 진술함. 하지만 천안함 근무자들은 이와같이 백령도 불빛이 육안으로 보였다고 증언함. 

천안함 근무자 박연수, 공창표등의 증언에 의하면, 군이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공식폭발원점"이 있는 백령도 서방해역은 사고 당시 해무가 없었어야함. 그리고 247초소병들이 백령도 서북쪽 두무진 돌출부에서 보았다는 백색섬광은 해무에 의해 산란되었다고 주장할 이유가 없어야 함. 

하지만 247초소병들의 증언은 그렇지 않으니, 천안함 작전관 박연수와 좌견시 공창표가 보았다는 우현쪽의 백령도는 백령도 서방 해역에서 바라본 것이 아님. 

천안함 작전관 박연수와 좌견시 공창표의 증언에 의하면, 사고 직후 생존자들이 정신없이 쏘아올렸다는 조명탄 섬광들을 백령도 247초소병들은 못 볼 수가 없음. 하지만 공개된 tod 시각상 9시30분경의 천안함 함수 위치 지점에서 조명탄 섬광들을 백령도 247초소병들은 전혀 목격, 청취하지 않았음. 보고 자체가 없음. 이런 일은 경계근무를 서는 초소병들의 근무수칙 상 있을 수 없음. 

생존자들이 정신없이 터트렸을 조명탄은 신호조명탄일 것으로 추정되며, 3만촉광 이상의 빛으로 높이 221m이상 올라가서 6.5초 동안 연소하는 조명탄임. 생존자들은 함교에 비치된 조명탄이란 조명탄은 죄다 끌고 나와서 터트렸을 것임. (초계함 함교에 평소 비치된 조명탄 갯수 조사 필요.) 

백령도 서방을 관측하는 247초소병들이 조명탄 섬광과 그 소리를 전혀 목격, 청취, 보고하지 못한 것과는 달리 백령도 남방 장촌 주민들중에는 9시30분부터 20분동안 포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하는 주민들이 여러명 있음. 이들은 천안함 생존자들이 쏘아올린 조명탄 터지는 소리를 들었을 것임. 그리고 합조단과 tod가 말하는 구조시각보다 일찍 도착한 해군함정들이 구조를 위해 터트린 조명탄 터지는 소리를 들었을 것임. 

백령도 247초소병들은 9시30분경부터 초소기준 방위각 170, 180도로 <해군 함정 3척>과 <해군함>이 와서 좌초된 PCC를 구조했다고 진술함. 상병 김승창은 구조당시에는 <소형선박 3여척>과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 이 해상에서 계속 이동하며 움직이는 것을 보았으며, 선박들이 크게 흩어지지 않고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진술함. 

[7. 사고 발생전 이상징후 목격 여부? 

- 침몰함정 기동상태 
사고발생 전에는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 침몰함정 주변선박(의아물체 포함) 이동 여부 
침몰함정 주변에는 없었고 의아물체로 판단되는 것도 없었습니다. 이동하는 물체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10. 초계함이 침몰되던 상황은? (함수와 함미 구분하고, 침몰시간은) 
초계함이라고 판단하지 못하였고 함수나 함미 등을 관측하지 못하였습니다. 

11. 구조당시 상황은? 
구조당시에는 <소형선박 3여척>과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이 해상에서 계속 이동하며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박들이 크게 흩어지지 않고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2010년 4월 2일 진술인 상병 김승창] 

[박일석 상병 진술서 

필승! 62대대 6중대 60A+ 2포 부사수 상병 박일석은 후임 근무자 상병 김승창과 2010년 3월 26일 247초소 야간 2직 19:00~21:00까지 근무시간에 근무를 수행하던 중 21:23분에 낙뢰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들어 ‘쿵’소리와 함께 하얀 불빛이 247초소 기준 방위각 ∠280°4km지점에서 보였습니다. 불빛은 섬광처럼 보였는데 좌·우 둘 중에 좌쪽이 더 밝어 보였습니다. 우쪽은 두무진 돌출부에 의하여 불빛이 가려진 상태였습니다. 야시장비(PVS-7)을 이용해 불빛이 일어난 쪽을 관측했는데 불빛은 2~3초 후에 바로 꺼졌고 그날 해무가 심해 시정이 500m여서 PVS-7으로 관측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그 후 21:30분경 247초소 방위각 ∠170°2km지점에서 해군함정 3척이 와서 구조하였습니다. 해안 탐조등으로 247초소 근처 해안을 비추면서 해군들이 이쪽으로 올 수 있게 비추었고 생존자가 있지 않을까 탐조등을 계속 비추었습니다. 그 후로 247초소 기준 방위각 ∠180°3km지점으로 해군함이 계속와서 좌초된 PCC를 구조했고 22:59분에 247초소 기준 방위각 ∠270°6km지점 아군함정이 경고사격 약 20발 정도 발사했고 그 후에 구조헬기가 247초서 기준 방위각 ∠160°방위각 ∠10°등 수많은 헬기가 구조하기 위해 초소와 연화리 위쪽을 날아 다녔습니다. 헬기 구조작업은 2010년 3월 27일 02:10경까지 계속 되었으며 02:40분경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이상입니다. 필승! 

2010년 3월 28일 상병 박일석] 

<함수>를 관측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상병 김승창은 구조 당시에는 <소형선박 3여척>과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 이 해상에서 계속 이동하며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함.  

문제는 이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 이 과연 우현으로 기울어진 천안함이었을 것인가 하는 점임. 김승창은 함수를 보지 못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음.  
군이 현재 주장하듯 만약 천안함이 백령도 서방에서 두동강 나 "함미"는 즉시 가라앉고 , "함수"는 우현으로 기울어 반쯤 잠긴채 표류한 것이라면, 247초소병들은 길이와 크기와 비슷한 "함수"와 해군함정(고속정)과 구별할 수 없음. 247초소병들은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을 보았다고 진술하고 있음.  국회국방위원장 김학송이 백령도 서남방 1마일에서 침수가 되어 3시간만에 정남쪽에서 침몰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병 김승창이 보았다는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이 천안함일 수는 없음. 

상병 김승창이 본 <PCC로 추정되는 큰 선박> 은 박일석 상병이 진술한 180도로 온 <해군함>이며, 소형선박 3여척은 박일석 상병이 진술한 <해군함정 3척>임. 

상병 김승창이 보았다는 <PCC로 보이는 큰 선박> 은 함수도 아니요, 천안함도 아닌, 속초함이었을 것임. 

군은 사고 이후 속초함은 외곽 경계를 섰을 뿐, 천안함 직접 "구조"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음. 하지만 추정할 수 있는 것처럼, 속초함은 사고지점 조작을 위한 천안함 "구조 쇼"에는 참여한 것으로 보임. 

백령도 247초소병들은 해군함정(고속정) 3여척만 진술한 것으로 볼 때, <고속정 4척>이나 <5척>이 천안함을 구조했다고 한 것이 이 상황에는 들어맞지 않음을 알 수 있음. 

공개된 조작된 TOD영상을 보면, 소위 함수에 다가서는 고속정들은 한 척을 제외하곤, 천안함 함수를 지나쳐서 멀리 감. 이들 고속정들이 바로 247초소병들이 170~180도에서 목격한 "구조쇼"를 벌인 해군함정 3척들 중 2척임. (물론 TOD상 고속정이 접근하는 함수는 조작된 것임), 그리고 속초함도 사고지점 조작을 위해 서둘러 "구조쇼"를 벌리기 위해 백령도 서남단 쪽으로 갔을 것임. 아시아경제상황도에는 빨간점 주위의 고속정 5척 중에는 대청도 소속 고속정편대에 속하지 않는 연평도 고속정 편대 고속정 2척이 보임. 대청도 소속 고속정 편대 3척이, 속초함과 함께 백령도 서남단 "구조쇼"현장에 동원되고 , 사고가 발생한 백령도 남쪽 해상에는 대청도 고속정 편대 2척과 연평도 고속정 편대 2척이 천안함을 구조한 것으로 보임. 그래서 군은 천안함을 구조한 고속정이 처음에는 4척이라고 했다가 5척이라고 말을 하게됨

적폐3.jpg

아시아 경제 보도 구조 상황도 (연평도 고속정 편대 231F(편대 표기)와 316호)

아시아경제상황도를 보면 백령도 남해안 <중화동 TOD초소>에 선체가 두동강난 것 같은 표시가 보임. 군은 백령도 남해안 중화동TOD초소에서 촬영한 TOD를 백령도 서해안 238 TOD에서 촬영한 TOD로 조작한 것임. mbc 군 상황일지는 중화동 tod초소의 tod촬영에 부합함. 그렇다고 mbc군상황일지 상 사고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1.8km떨어진 tod초소병들이 폭음을 청취한 시각인 <9시20분>-이는 보고사항임-이 천안함의 두동강 시각이 될 수 없고, 두동강시각은 9시30분~45분 사이일 것임. 해작사 심승섭의 천안함 영상을 보면서 상태를 합참에 보고했다는 증언으로 보건대, 천안함 두동강은 45분 이후일 가능성이 큼. 

따라서 247초소병들에 의해 초소기준 170~180도에서 9시30분경부터 목격된 소위 "구조 상황"은 쇼임. 

군은 이 247초소병들의 진술서는 제출했으면서도 백령도 서남단 초소(9시30분경부터 가장 가까이서 소위 "구조상황"을 지켜보게되는 것이 될)병들의 진술서나 보고내용은 제출, 공개한 바 없음. 

247초소병들이 천안함 생존자들이 사고 직후 쏘아올렸다는 조명탄 섬광들을 목격, 청취했는지 재판에 다시 불러 반드시 물어보아야함.. 그리고 초소기준 170~180도에서 9시30분경부터 소위 "구조"가 이루어질 때, 이 지점에서 <조명탄 섬광>을 목격했는지 반드시 물어보아야 함. 

그리고 다음은 아주 중요함. 247초소병들이 보았다는 소위 "구조 상황"이 몇 분 동안 목격되었는가 하는 것임. 왜냐하면, 어느 시점부터 군은 백령도 서남방 1마일 해상을 <사고 , 침몰, 구조지점>으로 그래픽등으로 어느 시점부터 주장했기 때문임. 군이 사고지점을 조작하기 위한 기도를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음. 하지만 해경의 그간의 주장에 따르면, 해경이 천안함 승조원들을 구조한 곳은 바로 백령도 남방 장촌 앞바다일 수 밖에 없음. 한편 국회 국방위 김학송의 위 발언은 군이 아니라 해경의 보고에 근거를 둔 것일 수 있음. 해경에 의해 드러난 사고, 구조당시 상황이 군에 의해 억압되고 은폐되었다면, 해경의 구조지점까지 백령도 서방으로 대외적으로 조작되었을 것임. 

만약 "구조상황"이 30분~1시간 정도 목격되었다면, 이는 "공식사고경위"와 전혀 맞지 않음. TOD상 함수에 고속정이 접근하는 9시56분부터 TOD사각지역으로 접어드는 시각인 10시8분까지는 10여분에 불과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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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서 얻은 또 하나의 소득은 전탐장 김수길 상사의 증언임. 

[천안함 침몰 당시 국방부가 발표한 어뢰 폭발지점에 가장 근접한 곳에 있던 생존자가 ‘폭발음’(충격음)에 대해 다른 함정과 부딪히는 소리로 알았으며, 폭뢰와 같은 폭발소리와는 달랐다고 증언했다. 또한 그 소리를 청취한 위치도 선저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서 들었다고 이 생존자는 전했다. 

천안함 사고 당시 전탐장(수상 접촉물 탐지 책임자)이었던 김수길 상사는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유남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합조단 민간위원)의 명예훼손 사건 공판에 출석해 이 같이 증언했다. 

2010년 3월 26일 당시상황에 대해 김 상사는 “당직시간인 그날 16~20시 근무후 교대한 뒤 취침하러 ‘CPO실(수면하침실)’로 내려와 21시20분쯤 스탠드를 켜고 눈감고 있을 때 ‘쿵’소리가 들렸다”며 “다른 선임하사가 근무하고 있는데 다른 함정하고 부딪혔나 하고 있었는데, 몇십초 만에 다시 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배가 넘어졌다. 쪼그리고 있다가 눈 떠보니 함정이 거꾸로 서있었다”고 묘사했다. 그는 전탐장 업무에 따라 소리에 예민해 쿵~쾅 하는 두차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고순간 들었던 소리에 대해 김 상사는 “뭐에 부딪히는 소리인 줄 알았다”며 “(천안함보다) 큰 함정이거나 동급함정에 부딪힌 줄 알았다”고 전했다. 

김 상사는 “쿵소리(를 들은 뒤) 반동에 의해 ‘무슨 일이 있나 보다’ 하고 튀어 나와 나가려고 하고 있었으며, 그 후 들었던 ‘쾅’ 소리는 처음 ‘쿵’ 소리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두번째 쾅 할 때도) 물체(함정)와 배(천안함)가 부딪힌 것으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다른 함정과 충돌한 경험은 없지만, 수중폭뢰실험을 통해 폭발소리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폭뢰실험, 사격훈련 했을 때 터지는 소리와 쿵 쾅 소리가 유사하다고 봤느냐’는 피고인 신상철 대표의 신문에도 김 상사는 “폭뢰는 터질 때 팡 소리가 나는데, (천안함 때는) 퉁하고 부딪히는 소리였다”고 밝혔다.수중폭뢰실험(훈련)을 했던 경험에 대해 김 상사는 “함정(의 함미 쪽에서) 폭뢰에 있는 핀셋을 뽑으면 자동으로 폭뢰가 배 아래로 굴러내려가면서 물 속에 들어갔을 때 폭발하면 물기둥이 엄청나게 크게 솟아오른다”며 “폭발시 함정이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함미쪽이 털린다(흔들린다는 뜻-기자 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처음 쿵소리 났을 때는 폭뢰와 다른 소리였으며, 뭔가의 물체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는 것인가’, ‘부딪히는 소리에 대한 경험은 처음이었지만 평소 해왔던 수중폭뢰 실험에서의 소리와 달랐다는 것인가’ 등 거듭된 김형태 변호인의 신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 폭발음(충격음)의 강도에 대해 김 상사는 “(쿵 소리에)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배가) 외부에서 부딪히면 ‘쿵’ 하는 느낌이었다”며 “(쿵 소리 직후 나가 떨어질)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쿵’ 소리가 났을 때 보고서의 천안함 승조원 위치 표 상 13번 격실(수면하침실-CPO)에 있었으며, 절단면 바로 옆이었다고 김 상사는 전했다. 

또한 당시 침실에 누워있는 것을 기준으로 ‘폭발음’(충격음)의 위치에 대해 김 상사는 “머리를 함수방향으로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내가 누워 있을 때 방향으로) 내 왼쪽 방향에서 처음 쿵 소리가 났다”며 “함수 우현 쪽에서 쿵소리가 났다”고 증언했다. 

이는 국방부 합조단이 보고서에서 어뢰가 천안함 선저 중앙 ‘좌현’에서 폭발했다는 것과 상이한 증언이다. 

이와 관련해 합조단이 자신을 조사한 경위를 두고 김 상사는 “사고 직후 처음엔 쿵~쾅 소리에 (합조단 등이) 관심이 없었다”면서도 “어뢰 발견 이후 어뢰와 기뢰가 추정된다고 하는 얘기가 나오고 난 이후에 조사하러 왔다”고 전했다...두차례 연달아 청취했다는 폭발음(충격음)의 주기에 대해 김 상사는 재판 초기엔 “수십초” 또는 “20~30초”라고 진술했다가 사고 직후 자신이 3~5초라고 인터뷰했던 기사내용을 제시하자 “그 정도였던 것 같다”고 번복했다. 그러나 김 상사는 국방부 합조단이 제시한 공중음파 감지 주기인 ‘1.1초’에 대해서는 “1.1초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잠수함이 와서 어뢰를 쏘는데 모를 수 있느냐’는 김형태 변호사의 신문에도 그는 “(모를 수) 없다”고 답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636 

전탐장 김수길 상사는 사고 당시 들었던 쿵하고 쾅하는 소리의 간격을 수십초 간격이라고 증언해 주어서 1.1 초 간격의 버블주기를 주장했던 합조단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임을 증명함. 

또한 전탐장 김상사는 절단면에 가장 근접해있던 생존자로 사고 당시 ‘폭발음’(충격음)에 대해 다른 함정과 부딪히는 소리로 알았으며, 폭뢰와 같은 폭발소리와는 달랐으며, 또한 그 소리를 청취한 위치도 선저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서 들었다고 증언해 줌. 

전탐장 김수길 상사의 증언은 아래 천안함 함미절단면의 단면도가 보여주는 우현 선저의 수축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천안함 우현 선저에 충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해주는 증언임.. 

천안함에 외부 충격이 있었다면 그 충격지점이 가장 심하게 변형될 것임. 함미 변형 상태를 보면 우현 선저가 가장 크게 변형되었으며, 1,080mm가 수축된 우현 선저가 합조단이 주장하는 충격지점인 좌현 선저 102m보다 10배가 넘게 변형되었음. 변형 방향도 우현은 수축됐고 좌현은 팽창됨. 

따라서 천안함에 가해진 힘의 방향은, 합조단의 주장과는 달리 함체의 우현 하단에서 좌현쪽 방향이었다고 판단해야 하고, 천안함 전탐장 김수길 상사의 증언은 이러한 함미 절단면의 우현 선저의 변형 형태에 부합한 증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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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조단이 버블제트 물기둥 때문에 치솟았다고 주장하는 함미 좌현 주갑판의 경우, 함체 우현 선저의 충격(좌초)을 경험한 천안함이 이후 가스터빈실을 중심으로 함수가 우현으로 넘어지는 과정에서 함미와 찢어지는 과정에서 치솟았을 가능성이 있음. 생존자들 중에는 함체가 두번째 기울어질 때 꽈~꽈꽝하면서 철판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고 증언해주었음. 

천안함의 스크류의 휨 현상은 좌초가 아니고서는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함. 

따라서 사건 당시 "사고지점 수심 24m"라고 보고한 천안함 작전관 박연수를 비롯한 사관들은 사고지점 수심을 속여서 보고한 것이라 추정할 수 있음. 

천안함 사고는 백령도 남방의 6m 정도의 저수심 지역에서 암초에 우현 선저가 충격을 받아 좌초된 것이라 할 수 있음. 연봉 바위 근처도 그 사고지점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음. 

다시 반복하면, 천안함의 선체 변형 양상으로 볼 때 천안함은 함미 선저 우현에서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좌초 피해를 입고 우현으로 전복되었으며, 우현으로 기울어진 과정에서 함수가 함미가 찢어지면서 합조단이 버블제트가 솟구쳐서 만든 것이라 주장했을 법한 함미 좌현 테크 철판의 솟구침 현상이 만들어졌을 것임. 

이 함미 우현 선저나 건져올린 가스터빈실의 변형 양상을 볼 때, 잠수함이 이 우현 선저를 부딪혔다고 볼 수 없음. 천안함은 침수 등의 이유로 최초 상황이 발생하여, 피항 허가를 얻어 백령도 남방 저수심 지역에 갔다가 함미 선저 우현에 암초가 부딪쳐 좌초되어 우현 전복으로 침몰된 것임. 

저수심지역에서 좌초가 된 것이라면, 설사 침몰과정에서 두동강 났을지라도, 조수가 밀려들어오기까지 함미는 쉽게 가라앉기(안 보이게 되기) 어려웠을 것이며, 해경구조 동영상을 군(軍)이 갖은 방법으로 흐리게 만들어서 해경이 구조 당시 우현으로 전복된 천안함의 온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한 이유가 되었을 것임. 

더군다나 합참은 3월27일의 국회국방위 보고에서 선체 전체가 20분만에 60%가 잠겼다는 등의 보고를 한 바, 충격 이후 상당한 시간 함수와 함미가 붙어있는 듯한 외관을 보였을 수 있음. 함수 역시 저수심 지역에서 암초등에 얹힌 채로 상당한 시간을 우현으로 기울어져있다가, 조수가 들어차면서 본격 침몰하기 시작한 것일 수 있음. 그렇지 않다면 전혀 다른 사고경위가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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