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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로비아 - 세르비아 MIG-29 이야기 (1편)
게시물ID : military2_6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중동사람
추천 : 21
조회수 : 220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11/26 20:20:12

유고슬로비아 연방 공군 (Jugoslavensko Ratno zrakoplovstvo, JRViPVO)


 유고슬로비아 연방은 자주국방 정책 덕분에 대부분의 무기들은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80년대 중반쯔음에는 유고슬로비아 연방 군수산업과 제조업은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무기를 자체적으로 설게, 양산할 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고급 기술을 요구하는 항공기 특히 항공우세를 전투기는 여전히 수입에 의존해야 했지만 이쯤 부터 자체적인 전투기 생산 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유고슬로비아 공군은 그동안 MIG-21 계열을 주력 전투기로 [MIG-21F-13(L-12)/MIG-21PFM(L-14)/MIG-21M(L-15)/MIG-21Bis(L-17) 등..] 사용하고 있었고 J-21,J-22 같은 자체 제작 공격기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외교정책에 따라 원할하지 않았던 소비에트 연방과의 관계덕분에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달리 신규 기체 구입이 사실상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중반부터 기술과 양산할 능력을 확보하게 되면서 시급히 오래된 MIG-21과 J-21 항공기를 대체할 신규 다목적 전투기를 개발 계획을 시급히 세우게 됩니다. 바로 유고슬로비아 연방에 4세대 다목적 전투기 계획인 Novi Avion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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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항공기 개발


 육군과 해군의 의견을 대폭 받아들어 단수한 요격, 공중우세뿐만 아니라 지상 공격, 대함등 다목적으로 설게된 이 항공기는 유고슬로비아가 부족한 기술을 프랑스 회사와 협력하면서 채웠고 그 덕분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게 됩니다. 프랑스제  M88엔진을 장착하여 마치 1개 엔진 라팔과 비슷하게 설계된 이 항공기는 당시 시대에 맞는 설계와 성능을 목표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디지털화된 비행 제어 시스템, 화기 관제 레이더와 이를 표시해주는 완전한 글래스 콧픽이나 현대적인 ECM/ECCM등을 갖추고 있었고 진짜 스텔스기는 아니지만 RCS를 낮추기 위한 여러 설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총 11개의 하드 포인트(2개의 날개끝 포인트까지 포함)에서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이나 공대지, 공대함, 로켓, 레이저 유도 폭탄등을 무장할 수 있었고(프랑스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프랑스제나 나토제 무장도 사용 가능하도록 고려) 30mm 기관포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1992년에 첫 프로토타입을 완성하여 처녀비행을 하고 1995년쯔음에 첫 실전배치하여 후반까지 150~200여대를 배치하여 구형 MIG-21과 J-21을 대체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계획이 잘 풀릴경우 해외 수출은 최대 700여대 까지 가능하다고 전망했고 지금도 괜찮은 4/4.5세대 항공기로 이름을 남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991년 유고 연방이 해체되면서 계획은 중단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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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방용 MIG-29의 도입.


 그러나 이 신규 기체 개발 자체는 순조로웠지만 유고슬로비아 공군은 개발 프로젝트가 잘 풀리더라도 90년대 중반까지 MIG-21 계열을 주력 전투기로 사용할 처지였고 만약 개발 프로젝트가 조금이라도 꼬이면 말 그대로 유고 연방 공군은 21세기에도 오래됀 MIG-21을 굴리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상태였고 그에 따라 그 공백기를 채워줄 땜방용 제공기 확보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처음에 생각한것은 미라지 2000으로 유고슬로비아 공군 위원회도 긍정적으로 판단했지만 도입 비용은 생각 보다 높았고 유고슬로비아 연방은 주저하였고 그때 소비에트 연방은 다른 제안을 하게 됩니다. 바로 자국 중고 MIG-29를 부채 탕감을 조건으로 넘겨주겠다는 조건입니다. 비록 중고였으나 유고 공군은 차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로 그리 오래 굴릴 필요도 없었고 미라지 2000보다 훨씬 쌌을 뿐만 아니라 MIG-29는 당시 소비에트 연방에서 판매하는 제공기중 가장 최신 기체로 자국 차세대 항공기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유고슬로비아 연방은 이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차세대 항공기 개발 진행 상황에 따라 추가적으로 도입할 생각도 가지면서 유고슬로비아 연방은 1987년 계약을 채결했고 소련은 기체 재점검후 MIG-29S(9-13) 14대와 MIG-29UB(9-51) 2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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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로비아 공군 & 방공군(Jugoslavensko Ratno zrakoplovstvo, JRViPVO)은 기체를 수령하여 수도인 베오그라드 근처에 바티이니치 (Batajnica)공군기지에 주둔하는 기사(Vitezovi)로 불리는 204 전투기 비행 연대(204. Lovacki Avijacijski Puk)에 127 비행대대(127. Lovacka Avijacijska Eskadrila)에 배속하였습니다. 


 배속되자마자 세르비아 공군은 이전 항공기 처럼 자체적인 식별 번호와 명명법에 따라 이들 MIG-29를 L-18로 명명했고 (L은 Lovac의 약자로 Hunter 즉 요격을 뜻합니다.) 소련에서 부여한 시리얼 번호도 새 도장하는 와중에 모두 지우고 자체적인 번호를 매겼습니다. (1987년 이라크 공군도 이에 영향을 받아 자체적인 번호를 매겼습니다.) L-18이라는 이름대로 MIG-29S는 18101-18114 번호가 부여됬고 MIG-29UB는 15301-15302라고 매겨졌습니다. 이들 번호는 날개에 검은색 페인트로 새롭게 새겨졌고 마지막 세자리 번호는 콧픽 밑과 날개 우측위에도 새겼습니다. 국적표시기호는 양쪽 엔진 인테이크와 오른쪽 인테이크 윗 부분 그리고 오른쪽 날개 하단에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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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바타이니치 공군기지와 세르비아 공군 MIG-29들. 이들 MIG-29가 바로 지금의 유고슬로비아 공군 MIG-29의 생존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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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에 뛰어들다


 이들은 최정예 취급을 받으며 수도 영공을 방위하고 최정예 파일럿과 유지 보수를 받았지만 좋은 시절은 얼마 못가 사라지게 됩니다. 1991년 6월 25일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연방 탈퇴 선언을 하고 이를 유고 연방이 무력으로 제압하려 하면서 첫번째 내전이 발발하면서 이들 MIG-29은 실전을 뛰게 됩니다. 6 ~ 7월 동안 유고슬로비아 연방군(Jugoslovenska Narodna Armija, "JNA")이 슬로베니아 민병대와 지역 방위군과 교전을 펼치는 동안 MIG-29는 출격하여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선 부근에서 전투 초게 (CAP)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항공기는 공대지 임무에 뛰어들지는 않았습니다.


 1991년부터 1992년 초반까지 슬로베이나와 인접한 크로아티아에서 전투가 치열해졌으며(크로아티아 내전) 1991년 9월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의 3분의 2나 차지하는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아니계와 크로아티아 독립과 전투로 인해서 크로아티아계 계층이 동요하기 시작하였고 세르비아계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2년 2월 결국 그들이 보스니아 공화국에서 독립을 선언 하면서 일명 보스니아 내전이 1995년까지 발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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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 1991년 민족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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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2월 보스니아 내전으로 유고 슬로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완벽히 붕괴하였고 몬테네그로 공화국과 함께 유고슬로비아 연방 공화국이 1992년 4월, 일명 신 유고 연방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이에 따라 신 유고연방 공군 MIG-29는 지상공격 임무를 요구받았고 이에따라 1991-1992년초 크로아티아 내전과 보스니아 내전 1992-1995년동안 에서 보스니아-세르비아 국경지대와 크로아티아 남서부 자다르(Zadar) 지역에 수차례 지상 공격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특히 주목할만한 지상 공격 임무는 바로 크로아티아 대통령 암살 작전입니다. 프라뇨 투지만(Franjo Tuđman) 크로아티아 대통령 암살을 위해서 대통령궁에 공습하여 암살하려고 했던 이 작전은 유고슬로비아 공군 MIG-29이 1991년 10월 7일, 미제 매버릭(AGM-65)을 장착하고 대통령궁을 공습했습니다. 공습은 성공했으나 불과 몇십 센티미터 차이로 기적적으로 대통령은 생존하게 되었습니다.  (유고연방은 독자적인 외교정책 덕분에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도 관계를 맺고 있었고 덕분에 미국제 무기를 수입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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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르, 크로아티아. 현재


크로아티아 정부나 보스니아 무슬림 정부, 이슬람계 보스니아 군벌, 크로아티아계 보스니아 군벌등은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 일련번호까지 제시하면서 최소 2대 최대 4대의 MIG-29를 격추했다고 주장하였고 몇몇 권위있는 언론까지 1992년 18103,18107,18110 MIG-29 기체가 격추됬다고 이를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유고슬로비아 공군& 방공군 127 비행대대(연방이 사실상 붕괴되어 새롭게 신 유고 연방이 세워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유고슬로비아 연방 공군 및 방공군(JRViPVO)이라고 불렀습니다. )는 단 한대의 MIG-29를 잃지 않았고 1996년까지 활발하게 MIG-29S 14대와 MIG-29UB 2대는 제대로 현역으로서 작전을 수행하였습니다. 1995년 12월 14일 보스니아 내전이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 데이튼 협정이 채결되면서 겨우 보스니아 내전은 종식되었습니다. 겨우겨우 MIG-29는 휴식과 재보급을 할 시간이 생겼으나 부품과 탄약은 거의 동나기 직전이였습니다.


결국 1996년부터는 신 유고연방이 연방 붕괴 이후 혼란과 그동안 여러 작전에 참여한 피로와 예비 부품이 동나면서 MIG-29의 작전 능력에 크나큰 차질이 생겼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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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소비에트 연방 공군 MIG-29S. 


열악해진 환경.


 이는 유고연방도 예상치 못한 부분중 하나였는데 유고슬로비아 공군 MIG-29는 원래 1983년-84년에 생산된 초기 생산분으로 소련 공군에서 몇년동안 사용된 이후 검사 후 1987년 유고슬로비아로 보내진 물건으로 1996년쯔음이면 연식도 10년이 넘었고 같이 보내준 소모품이나 예비 부품이 다 떨어질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혼란 상황과 경제력 악화 때문에 MIG-29는 제대로된 정비나 수리도 없이 지속적으로 작전에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소모품이나 에비 부품 마련길이 없어진 상황이였습니다.


 정확히 따지면 당시 계약 채결 당시 1996년 쯔음이면 위에 설명한 유고슬로비아 공군은 최신 기체이자 자국산 다목적 전투기인 Novi Avion 실전배치가 시작될 무렵이였고 예비 부품을 그때쯤 천천히 다시 계약해오면 된다고 여겼고 설사 Novi Avion  개발이 지연되거나 실패해도 90년대 초에 추가적으로 기체를 도입하면서 추가로 예비 부품과 소모품을 받아올 계획이였죠. 하지만 유고 연방 붕괴는 재정상 악화와 혼란을 가져다 주었고 추가로 도입하거나 예비부품을 받을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고 1996년 쯔음에 부품이 동나면서 MIG-29는 가혹한 운명에 시달리게 됩니다. 세르비아 대통령이자 신 유고연방 대통령이고 독재자인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역시 가뜩이나 나쁜 재정적 상황에 부패까지 더해져 추가적인 전술기 도입은 커녕 전술기 관리 예산조차 확보 못했고 그는 당장의 독립 운동을 가혹하게 때려잡을 경찰조직이나 만들고 보스니아 내전에 쓸데없이 크게 개입하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1998년 쯔음에 되면 가장 최정예라는 127 비행대대조차 연간 비행시간이 20시간도 못 채우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그 어떠한 정비나 수리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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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로비아 MIG-29.


새로운 불길의 시작


 1995년 코소보에 독립을 주장하는 코소보 해방군이 창설되었고 무장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사실상 범죄조직에 가깝고 독립 운동은 뜸했지만 1998년 3월 코소보 해방군이 세르비아 경찰을 사살하면서 사건이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즉각 신유고연방군이 코소보에 진주하였고 알바니아계를 학살하기 시작하자 NATO는 개입 카드를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 6월, 미국과 국제연합(UN)은 코소보 사태에 개입을 선언하였고 신유고 연방군 코소보 철수와 즉각 알바니아계 학살 중지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1998년 8월 코소보 해방군 주요 거점지를 신유고연방군이 공격하여 점령하는등 국제사회 목소리를 무시하였고 10월 NATO는 세르비아에 대한 무력사용을 결정하였습니다.


NATO 연합 공군과 교전하다.


 1999년초 밀로세비치와 미국의 담판이 실패에 들어서자 신유고연방 특히 세르비아 공화국은 전쟁 준비에 들어가게 됩니다. (몬테네그로 공화국은 중립을 선언함) 에초에 공군력에서 세르비아는 NATO 연합군과 상대가 안됬고 자연스럽게 전쟁 준비 역시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전술을 채택하게 됩니다. NATO 연합 공군은 SA-3/SA-6(S-125 NEVA/2K-12 Kub) 등 지대공 무기가 주가 되어 교전할 예정이였고 MIG-29 같은 제공기는 NATO가 본격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하여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때 전투할 기회를 부여하도록 하여 그전 까지 최대한 전력을 보존한다는 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계획은 실수였습니다. NATO는 세르비아나 몬테네그로 공화국에 직접 대규모 지상군을 파견하여 교전하고 지역을 점령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제한적인 공군의 공습을 통해서 세르비아 독재자분에게 서방이 코소보 사태를 얼마나 엄중하고 심각하게 보는줄 알게 해주고 코소보에서 철수하도록 스스로 깨우치게 해주는 참교육 정도만 해줄 생각이였습니다. 거기에다 유고슬로비아 군 상층부는 127 비행대대 파일럿과 부대원들이 불리한 상황에서 최대한 안전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계획한 MIG-29가 저고도에 대기하다가 지상관제센터에서 알려주면 즉각 고고도로 상승해서 미사일 쏘고 튀는 일명 히트 앤 런 전법 대신 중고도에서 대기하면서 적을 맞이해 교전할 것을 요구하여 심각한 피해를 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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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전쟁 당시 신 유고연방군 (세르비아군/ 몬데네그로 공화국은 중립을 선언함) SA-6 포대.


악몽의 밤


1999원 3월 24일 NATO 연합공군은 세르비아로 공습을 개시합니다. 그동안 유고슬로비아 공군 MIG-29는 작전 수행가능한 소수의 기체가 여러 곳으로 분산하여 대기하고 있었고 나머지 기체는 나중을 위해서 안전한 곳에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작전 가능한 MIG-29가 니스 공군기지 - 2대, 바타이니차 공군기지 - 2대, 포니크베 1대) 



대용량 이미지입니다.
확인하시려면 클릭하세요.
크기 : 1.00 MB


세르비아 - 니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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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로비아 공군 - J-21 


 이 조치는 가뜩이나 기체수도 부족한데 분산 배치하여 적은 숫자의 전술기가 너무 넓은 영공을 커버하게 되었고 취약점은 더욱 더 쉽게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3월 24일 저녁 나토 연합 공군이 작전을 개시하자 MIG-29도 동시에 작전을 개시하였습니다. 니스 공군기지에서 2대의 MIG-29S가 스크램블하였고 세르비아 남부와 코소보에 접근하는 NATO 공군기를 요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질적으로 양적으로도 밀리는 이 MIG-29들은 불운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륙과 동시에 NATO E-3에 포착된 이들 MIG-29는 바로 NATO 항공기에 공격을 받았습니다. 드리켄 일리치 소령(Dragan Ilic)이 조종하는 MIG-29향해 왕립 네덜란드 공군 323 스쿼드론 소속 F-16AM이 AIM-120 암람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였고 현지시각 8시 52분에 베오고라드 근처에 맞고 대파당했습니다. (혹은 세르비아 방공군 SA-6에 맞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리요 아리지노프 소령이(Ilijo Arizanov) 조종한 다른 MIG-29는 코소보 상공에서 미 공군 352 파이터 스쿼드론 소속 세자르 '리코' 로드리기즈(Ceaser 'Rico' Rodriguez) 대령이 조종하는 F-15C가 발사한 AIM-120 암람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맞고 격추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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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27일. 미 육군이 확보한 MIG-29 잔해. Tracy Trotter 병장 촬영 / 미 국방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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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같은 날 격추당한 MIG-29  잔해. 


 바티이니차 공군기지에 출격한 MIG-29 2대는 더 나쁜 운명을 꺾었습니다. 네보이자 니콜리치(Ljubisa Kulacin) 소령의 MIG-29는 이륙하자 마자 437 파이터 스쿼드론 소속 샤워스 대위가 조종하는 F-15C가 발사한 AIM-120 암람을 맞고 격추당했으며 나머지 류비사 쿨리친 소령의 MIG-29는 기체 시스템이 온갖 고장을 일으켰고 기체 시스템을 제정상을 돌리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몇발의 미사일을 회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 자체가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귀향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MIG-29가 이륙한 바티이니차 공군기지는 그세 NATO 공군의 거센 공습을 받고 있었고 그는 결국 베오그라드 국제공항으로 우회하여 안전하게 착륙합니다. 


 사실 쿨리친 소령의 경험은 그 혼자만의 경험이 아닌 다른 조종사역시 다 경험한 문제였습니다. 당장 오늘 이륙한 3명의 조종사 모두 항법과 화기 관제 시스템의 크고 작은 문제를 겪었습니다. 시리얼 번호 18112번  아리지노프 소령의 MIG-29는 무전기와 SPO-15 레이더 경보 시스템(RWR)이 동작하지 않았고 18104번 일리치 소령의 MIG-29는 레이더 작동이 되지 않았습니다. 18111번 니콜리치 소령의 MIG-29는 레이더는 작동하지 않았고 SN-29 미사일 유도 시스템과 SPO-15 레이더 경보 시스템(RWR)은 동작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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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15 RWR.


하지만 그날밤 마지막으로 출격한 5번째 MIG-29 는 아직까지 비행중이였습니다.

(생각보다 길어서 2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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