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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내용노출 많음] 인터스텔라, 위대한 오마쥬.
게시물ID : movie_359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ynn
추천 : 1
조회수 : 121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12 13:08:51
타 사이트에 올렸던 글을 오유에도 올려봅니다.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올리는 글이네요. 

내용 노출이 많고 장문이 된 괴작입니다. 영화 안보신 분들께는 스킵을 권합니다. 
며칠동안 틈틈히 썼다 지워가며 쓴 문장이므로, 보기에 다소 괴로울 수 있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미리 감사말씀 드립니다. 







그냥 우주 관련 내용은 위키와 엔하를 보면서 상식이나 잡지식 정도 늘려가는 스타일이고, 상대성이론도 말이 아니라 방정식으로 제시하면 합죽이 되는 순수 문과출신 관점에서 쓰는 글입니다. 

어짜피 엔하는 정보로 쓰려면 원래 소스의 출처와 이론을 확인하고 문구를 보통체로 다듬지 않으면 자료로써의 가치가 없는 곳이니 재미 이외에 근거자료 제시로는 의미도 없겠지요. 

이 글의 물리학적 오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애초에 물리학적이라 불리울 텍스트는 쓰지도 않을 생각이지만...)


들어가기에 앞서 개인적으로 이 필름이 만들어진 동시대에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라는 느낌을 총평으로 던져둡니다. 

상대성 이론과 중력이라던가 스윙바이 항법, 골디락스, 블랙홀, 사상의 지평같은 물리개념을 엔하위키같은 카더라 수준의 잡지식으로 채운 수준의 이해력일 뿐입니다만 영화 한장면 한장면이 경이로움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지식수준은 말로는 적당히 아는 체 할 수 있지만 방정식이 등장하는 순간 꿀먹은 벙어리 되는 수준이라 정의하면 정확하겠네요.)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와 제일 먼저 느낀 건 이 영화가 위대한 이전의 SF 영화들에 대한 위대한 오마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블레이드러너, 컨택트 라는 작품이 특히 오버랩 되더군요. 인터스텔라는 그 위대한 작품들을 찬사하고 헌정하며 또 과격하게 물어뜯는 영화입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모노리스, HAL9000, 스타차일드. 
블레이드러너 ; 피창조자의 인간성 획득
컨택트 ; 우주에서의 인간이 갖는 존재의 의의, 웜홀

인터스텔라는 시작부터 끝까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오마쥬하고 있습니다. 헌정작과는 정 반대의 시선으로 차용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리고 양념처럼 블레이드러너와 컨택트의 개념을 맛깔나게 치고 있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는 불가지(不可知) 그 자체입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보낸 물건인지, 또 결국 그것이 무엇인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알 수 있는 것은 모노리스가 인류에게 도구라는 지평을 열어 이끌어주었다는 것과 인류가 우주시대를 연 후 다시 한번 존재를 초월하기 위해 목성으로 인도한 '어떤 의지'라는 것이었지요.  

인터스텔라는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관점을 달리해 접근합니다.  

우주에 대면 티끌처럼 보잘것 없는 존재인 인간이 의미를 갖는 것은 결국 인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 우리라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믿음. 구원은 스스로 얻어야 한다는 믿음.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불가지와 초월자의 인도에 이끌리는 인간을 그린 하드코어 SF였다면 인터스텔라는 우주라는 불가지의 대상을 알고싶어하고 살고싶어하는 인간의 여정을 투영한 에픽 SF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고전 오디세이아와 더 닮은 것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아니라 인터스텔라인 것 같네요. 전자가 초월자에 인도되는 인간을 그렸다면 후자는 인간의 모든 개념에 대해 몰가치적인 우주를 배경으로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능동적 행위를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끌리는 자와 스스로 행하는 자를 같은 가치관으로 평가할 순 없겠지요. 순례자와 탐험가는 모두 길을 걷는이지만, 성격도 사고도 가치관도 같을 수 없습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체에 그 주인이 위협당하지만, 인터스텔라에서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 배신합니다. 오히려 로봇이 인공지능의 한계를 초월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상태에 달하기도 하죠. 마치 최후의 순간 보다 인간다웠던 레플리칸트 베티(블레이드러너, 룻거하우어 분)처럼. 탈출질량을 위해 스스로 분리해가는 셔틀의 TARS 장면에선 베티의 마지막이 떠올랐습니다. 리들리스콧처럼 진지하게 연출하는 대신에 오히려 반쯤 농담하는 분위기로 연출했지만, 블레이드러너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는 건 그렇게 오버만은 아닐겁니다. 인터스텔라가 추구하는 것은 결국 인간과 인간성이라는 것. 소름이 돋더군요. 

위대한 SF 영화들에 바치는 헌정으로 이보다 더 멋들어진 필름이 있었을까요.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타차일드 장면과 인터스텔라의 특이점 장면도 그렇습니다. 양자역학이나 이론물리학에 대해 학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현상과 특이점이라는 개념으로 초월자와 인간의 관계를 불가지론에서 존재론으로 바꾸어놓고 있지요. 신인지 외계인인지 알 수 없는 초월자의 인도로 도달할 우주가 아니라 시간까지 물리의 영역으로 다룰 수 있게 될 인간의 의지로 살아갈 수 있는 우주. 시간과 공간까지 하나의 차원모델로 다룰 수 있게 하는 힘이 그리워하고 함께 있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근원감정이라는 플롯. 

이런 생각을 처음 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독하게 부럽군요. 

웜홀 장면도 컨택트의 오마쥬입니다. 브랜드가 웜홀에서 컨택하는 존재가 바로 옆에 있는,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 그렇지만 언젠가 옆을 지켜줄 사람인 미래의 쿠퍼라는 것도 컨택트의 주제의식에 닿아있는 장치로 보입니다. 앨리(조디 포스터 분)가 우주에 보내는 메시지가 시공을 넘어 닿는 곳은 돌아가신 아버지였지요. 죽음이란 육신에 일어나는 일이며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의 세계가 아니라 언젠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 닿아야 할 새로운 우주입니다. 

컨택트에서는 우주선의 모습으로 구현된 웜홀을 새로운 우주로 가는 통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앨리는 아버지와 만나지요. 인터스텔라에선 블랙홀 사건의 지평 너머의 공간으로 설정된 그곳이 컨택트에서는 아버지와 만나는 곳과 같은 공간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기발하단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앨리는 아버지와 육성으로 대화를 나누지만, 계속해 나아가라는 희망의 키워드만 받고 다시 원래의 우주로 돌아오지요. 누가 놀란 아니랄까봐 여기서도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쿠퍼는 머피에게 직접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도, 알아낸 양자방정식 정보를 말해주지도 못합니다. 대신, 그가 딸에게 보내는 언어는 물리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공통어가 될 수 있다는 바이너리, 즉 이진수였습니다. 칼 세이건이 보이저를 띄워보내며 동판에 기록한 언어가 바로 지구의 위치를 인지할 수 있는 바이너리였지요. 칼 세이건이 살아 바이너리로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을 봤다면, 단언컨데 무릎을 쳤을겁니다. 좋은 기계에 바이너리 이외 기계어를 고안하는 후학을 야단친 일화로 유명한 노이만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인터스텔라를 이야기하면서 종교 이야기를 안하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노골적으로 보이거든요. 놀란 브라더스의 생각이. 

아무리 생각해도 인터스텔라는 종교관에 대해서는 대단히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간의 갈등과 감정은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어 잘 들어나지 않지만 어떤 위대한 존재, 초월자에 대한 감정선은 매우 티미합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였다는 것을 알게된 후에는 대단히 인간적인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죠. 누군가가, 어떤 초월자가 인류에게 희망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인간이라면 궁금해하고 경외하는 감정을 보여야 맞겠습니다만, 영화에선 건조하게 넘어가죠. 누군가 신호를 보낸다고? 내용이 뭔데? 오케이, 가보자. 그리고 계속해서 메시지를 던집니다. "우린 답을 찾을거야. 늘 그랬듯이".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지독하게 오만한 태도죠. 그래서 너무 좋군요. 이렇게 감춰진 언어로 생각을 나타내는 재주가 언제나 부러웠는데, 이제 더 부러워지네요. 

성경에서는 낙원을 잃어버린 아담과 이브가 척박한 대지에 정착해 모든이의 부모가 됩니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지구를 상실할 인류는 인종다양성까지 고려된 수정란 폭탄을 들고 새로운 그러나 척박한 대지에 정착합니다. 사랑의 사심이라는 원죄를 가진 브랜드는 실낙원했지만 모든이의 어머니가 되고 쿠퍼는 그 지아비가 되겠지요. 창조설화, 그런거 없다. 라는 표현입니다. 이런, 노아의 방주까지 이야기에 담았군요. 

하고싶은 얘기는 아직도 많은데, 필력도 안되고 시간도 안되는군요.

아버지의 우주를 그렸다는 놀란감독의 말처럼, 지독하게 보수적이고 끔찍할 정도로 변하지 않는 존재이자 무언가 지키려는 존재로 그려낸 극중의 모든 아버지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연상되는 다른 영화와 애니에 대한 내용도 그러네요.

계속 쓰다간 한도 끝도 없고 정말 더 이상 글을 쓴다는 게 어렵기도 해서 이쯤에서 마쳐볼까 합니다. 


이런 잡문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신다면 죄송과 감사의 말씀을 함께 드립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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