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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아들, Saul fia, Son of Saul
게시물ID : movie_535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꽃보다륜미
추천 : 3
조회수 : 168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2/23 01:00:38
movie_imageQUH8AE9H.jpg
제68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게자 뢰리히, 레벤테 몰나르가 출연하고
라즐로 네메스 감독이 연출한 '사울의 아들'을 보고 왔습니다.

우선 감상평 적기 앞서 라이브톡을 보고온 시점에서
따로 구분없이 제 감상평에 동진님이 말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들을 같이 첨언하는 식으로 써내려 가겠습니다.
(22일 '이동진의 라이브톡'을 보고 왔습니다.)

라이브톡 초반부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관한 배경지식과
영화의 배경이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인 '비르케나우' 수용소라는 점,
영화의 이야기 모티브가 오이디푸스의 쌍둥이 아들 중 하나인
'폴리니체스'의 신화적 이야기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감독이 가져왔다는 점 등을 비롯해 영화에 대한 간단한 배경지식들을
설명을 하여 이는 생략하고 바로 적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스포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압도적인 프롤로그부터 시작해
강렬하고 소름끼치며 끝끝내 알수없는 감동과
신비스럽기까지 한 여운을 선사하며 끝나는
'사울의 아들'은 부정할 수 없는 걸작입니다.

헝가리 출신의 라즐로 네메스 감독은
우연찮게 '존더코만도'에 관한 책인
'잿더미로부터의 음성'으로부터 강한인상을 받고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화면비부터 설명을해야 할것 같은데
1.33:1 즉, 우리가 TV 브라운관으로 잘 알고있는
4:3비율의 화면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흔히 4:3 화면비는 1930~40년대 가장 많이 쓰인
화면비이기도하며 특히 고전들을 떠올리면
1.33:1이 생각이 나지요.

하지만 감독은 그것보다도 4:3 화면비를
채택한 가장 큰 이유는 철저히 시점을
제한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게자 뢰리히 배우가 연기한 '사울'의 시점일텐데,
카메라는 거의 대부분 사울을 쫒아가며
사울의 시점을 통해서만 보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무척이나 독특한데다
여타 다른 영화들과는 차별화를 두고 있는데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사울'의 주변 풍경을
안개처럼 흐리게 하거나 시선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형식은 다큐멘터리나, 파운드 푸티지같은 장르에서
많이 볼수 있으나 그러한 영화들의 특징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캐릭터나 혹은 그 시점이
주인공 보다는 그 주위에 일어나는 풍경들을
자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완전히 반대로 하고 있지요.

이부분에서 라즐로 네메스 감독은
홀로코스트의 끔직한 현장이나 전시처럼 보여주는
다른 영화들처럼 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그 피해자들이나
본인 스스로 영화에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예의를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기존에 보아왔던
홀로코스트 영화들은 참혹한 현장의 피해나
끔직한 살육의 장면들을 여과없이 보여줌으로써
그 또한 소재를 계속 소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맞지않게
상품화 시켜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지옥같은 현장을
상상할 수 밖에 없겠죠.

클로즈업이나 줌인이 없음에도 끔찍하기 이를데 없는
그들의 만행들을 스크린 바깥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생하게 이를데 없는 주위의 사운드 때문에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라즐로 네메스 감독은 헝가리의 세계적 거장인
'벨라 타르'의 조감독 출신 입니다.

스승의 장기인 '롱 테이크' 기법은 무척이나 유명한데
이 영화 또한 엄청난 롱 테이크가 펼쳐집니다.

보통의 장편영화를 생각하면 장면의 기본단위인 쇼트가
100~200개 정도 이지만 이 영화는 85개의 쇼트로 이루어져 있고
촬영도 28일만에 끝낸 작품입니다.

하지만, 준비기간만 5년이 걸리고
작년 영화였던 '버드맨'처럼 철저한 리허설과
동선연습을 통해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 졌습니다.
(촬영장과 세트장도 실제와 거의 유사하고
분위기 자체가 엄청 엄숙하고 공포에 가까워
촬영감독이 '가스독실'로 나오는 세트에
잠깐 들어갔다 문이 안열려 나중에 나올때 식겁을 했다는
얘기가 있듯 그만큼 배우와 스태프 더불어
잊지 못할 체험을 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시게 되면 실제 사울의 아들인지 아닌지에 대해
많이 이야기가 오고 갈것 같은데 저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정말 사울의 아들 일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장면장면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울'은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남자아이가
죽지않고 나옴과 동시에 주체적으로 행동을 하게 됩니다.
(후에 군의관이 질식해서 죽이지만요.)

그 이전까지는 어쩔수 없이 '존더코만도'로써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역할을 하게 됐지만,
(그리고 순환되어 다시 피해자가 되겠죠.)

상황도 상황이고 환경도 환경으로
도저히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수 없는 곳에서
가스실에 기적처럼 살아난 아이를 마주하게 될 때
'사울'은 조금이나마 그 기적을 마주한 아이를 위해
작은 여정을 하게 됩니다.

사울이 남자아이를 향해 돌아보는 장면이
그전까지는 '사울'의 등뒤만 쫒아가던 카메라가
처음으로 분리가 되게 됩니다.
(사울이 보게되는 시점쇼트와
사울의 표정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쇼트로
분리된다는 것이지요. 형식적으로도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이 형식은 프롤로그가 끝나고 나오는 영화제목인
'Saul fia'를 기점으로 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는 아이냐?'고 묻고
후에 의사가 '자식이었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하지요.

더욱이 사울의 태도를 보면
아들이 아닌것 처럼 느껴지는게 강하게 들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아브라함'이 '너는 아들이 없어'라고 말하자
얼버무리다 '본처의 아들이 아니다'라고 핑계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듣는 이에(혹은 보는이에) 따라 개인적 차이가 있겠지만,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울의 아들이 진짜이냐 가짜이냐가 아닐 것입니다.
영화의 제목인 '사울의 아들(혹은 로 비쳐진 어떤아이)'을 통해

이 한 남자가 그 끔찍한 현장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 후에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무척이나 강렬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폭스캐처'를 보고 감상평 쓸데도 이야기 했지만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남아있는 것들을 좀더 실체화시켜
우리를 생각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엔딩부분에 찾아온 그 아이는 아마 사울의 입장에서
죽은아이로 암시되는 영혼이나 상징적인 아이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숲을 지나쳐 나오며 독일군에게 잡혀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결국은 도망친 일행들도 다잡혀 죽음을 당하게 되지요.
(실제 역사적으로도 영화와 똑같이
'비르케나우'에서 봉기가 일어나 일부는 바깥으로 도망쳤지만,
하루만에 다 잡혀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크레딧이 올라갈때 사울의 아들 역으로 2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하나는 부검으로 나온 아들, 다른 한명은 마지막에 나온 아들이죠.
즉, 감독은 엔딩에 나온 아들을 사울의 아들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엔딩은 너무 강렬하고 큰 감동같은 것도 있어서
크레딧 올라가고 음악끝날때까지 한동안 골똘히 앉아 있었습니다.)



'쉰들러 리스트'도 걸작영화라 생각하지만,
저는 '사울의 아들'이 영화적으로
좀 더 좋은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유대인 출신의 영화인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깊은 뜻과 인상, 그리고
영화적으로 기리고 남겨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것이 있나 봅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의 소재가
많이 있는데 감정적으로만 부풀리지 말고,
'지슬'처럼 영화로 기리고 그 의미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언어로 담을수 있는
영화가 나올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출처 웃대 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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