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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감독의 스포리뷰] 덩케르크 전쟁의 공포와 생존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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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무명감독
추천 : 0
조회수 : 46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7/20 13: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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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kirk_01.jpg

덩케르크
덩케르크 전쟁의 공포와 생존의 의미
(스포주의)






Dunkirk_06.png

거장 콤비, 연출의 크리스토퍼 놀란과 음악의 한스짐머

영화 내적인 부분을 떠나 우선 언급하고 싶은 것은 연출과 음악에 대한 칭찬이다. 기존 작품들부터 오래 함께 해온 크리스토퍼 놀란과 한스 짐머가 이번 덩케르크로 다시 한번 찰떡 궁합을 선보인다. 절로 몸을 뒤틀게 되는 전투기 시점 샷부터 놀란 감독의 장기인 영화적 시간의 재배치까지 기술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완벽에 가까운 연출을 선보인다. 같은 사건을 해안, 배, 전투기의 시점에서 시간을 반복한 연출은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은 시간을 소재로 삼은 감독이라는 개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마지막 고공전투에서 해안, 배, 전투기의 세 시점에서 반복하여 같은 사건을 보여줌에도 오히려 극적인 효과를 상승시킨 점이 탁월했다.  이에 한스 짐머 특유의 오케스트라에 의존하지 않고 초침 소리나 기계음 같은 외부음을 주인공으로 삼는 음악은 전쟁에 대한 몰입도를 한층 가중시킨다. 다소 러닝타임을 길게 보여주던 기존의 놀란 감독의 영화와는 다르게 이번 덩케르크는 106분이라는 2시간에 못미치는 짧은 러닝타임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마치 전쟁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영상과 소리가 관객을 압도한다.





Dunkirk_02.jpg

피아식별의 서스펜스

멀리서 날아오는 전투기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부터 구출한 병사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함께 탈출한 병사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피아식별의 서스펜스가 인간 관계 속에서 전쟁으로부터의 생존 공포를 유발한다. 덩케르크가 단순한 전쟁 영화를 넘어서 마치 전쟁의 한 가운데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은 시각적인 연출 뿐 아니라 드라마 체험의 힘이 더 큰 것 같다. 기존의 전쟁영화가 주로 전우애에 기대어 자기희생을 강조해왔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쟁 영화 덩케르크는 일종의 생존 게임을 방불케 한다. 적군이 아니라 아군. 너희이 아니라 우리. 네가 아니라 나. 심지어는 주인공조차 침몰하는 구축함의 해치를 열어 구해준 프랑스 병사를 대신해 죽어주지는 못한다.




Dunkirk_04.jpg

선악을 규정할 수 없는 역할

민간인 선장의 아들이 겪는 병사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선실 문을 잠그게 만들고 또한 죽은 친구 조지에 대한 분노를 극복하도록, 또한 선장 역시 죽은 파일럿 아들이 있다는 것.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는 대답으로 인간에 대한 선입견을 시험한다. 철수 작전을 진행하는 장교들에게도 이런 면모들이 보여진다. 육군 장교 또한 구명보트에서 주인공을 태우지 않으면서 야박함을 보이지만 줄을 붙들어도 딱히 말리지 않고 끝까지 남은 병사 하나를 데리고 철수 한다. 판을 크게 읽어야 하는 제독은 구축함이 오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위기 직전까지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 또한 마지막까지 철수하지 않고 프랑스군을 돕기 위해 해변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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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영웅들의 게임이 아니다.

명찰 덕에 깁슨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군인은 언어 때문에 도망다니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사실은 영군 병사의 말처럼 아마도 영국군을 죽이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묻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두려운 모습 뿐 아니라 그 전쟁통에 사체를 매장한다. 죽은 사체는 군화를 벗은 양발이 모두 맨발이다. 그 와중에 신발을 벗고 죽을리도 없고 누군가 벗겼다는 것이다. 권선징악의 드라마로 볼 때에도 그는 결국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익사하고 만다. 영국군이 철수할 때 프랑스군은 전선을 형성하여 퇴로를 확보하고 있었다. 깁슨이라 불리는 프랑스 군인은 사실 탈영병이었던 것이다. 영국군의 말처럼 영국병사를 죽였는지는 불투명하지만 밀러를 밀어 죽게 만든 해군처럼 전쟁에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겁쟁이를 영화에서는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제시하는 영웅의 모습이 톰 하디가 분연한 파이리 파일럿의 당당히 적진에 착륙하여 포로가 되는 장면에서 연출된다.




Dunkirk_03.jpg

전쟁의 공포를 품에 안는 뜨거운 가슴

좌초선 안에서의 영국선임병사의 말처럼 전쟁이란 생존과 욕망의 현장이라는 메세지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놀란 감독의 의도일 것이다. 이는 엔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별 생각없이 올라타 죽음으로 내몰린 조지의 바램은 지역신문 1면에 실리는 영웅이 되는 것이었다. 그가 극중에서 얼마나 비중있는 역할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웅의 모범을 보인 파일럿 파이리나 큰 야망없이 전쟁에 휘말려 희생된 조지나 겁에 질려 아군을 적진으로 떠밀려던 영국 병사나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것 만으로 박수를 보내고 치하하고 싶은 것이 감독의 메세지라고 생각한다. 과거 인류의 역사에서 벌어진 기득권 세력의 이권 다툼이 아닌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보호라는 대의명분 아래 희생된 이들 그리고 생존한 이들 모두에게 당신들이 무의미하지 않았고 장하다고 품에 안아주는 태도가 덩케르크에 도착한 작은 민간인 배들과 함께 가슴 깊이 전해진다. 배들을 보고 말하는 육군 장교의 대사처럼 ‘집’이란 영토를 넘어 우리가 마음으로 기댈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닐까.


출처 http://blog.naver.com/yumin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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