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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카리오를 통해 비판적 지지자 이해하기 (스포있음)
게시물ID : movie_687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맏인가제트
추천 : 4
조회수 : 54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7/23 03:31:41
베네치오 델 토로 (Benicio Del Toro)

한때 TV광고를 보다가 이름모를 남자의 '눈빛'에 홀딱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베네치오 델 토로


잊고 지내다가 영화에서 그와 재회하게 되었다. 
영화명은 시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 
이 배우가 왜 이런 광고를 찍었는지 충분히 이해된다.

영화 시카리오는 마이클 샌델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을 하는 영화이다.
08374306(1).jpg
정의란 무엇인가?
밥만 먹고 저것만 연구한 샌델교수도 모르는데, 영화감독이 어찌알리오.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럴수밖에 없는게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정의는 관념이어서 상상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정의는 가변적이다. 정답이 없다.   

이 영화 클라이맥스는 알렉한드로(델 토로)가 상대파 두목을 급습하는 장면이다.
상대파 두목은 가족들과 오붓이 저녁을 먹다가 봉변을 당한다.
아이들과 부인은 살려주는 게 보통의 정의라면, 알렉한드로는 그런거 없다.
그냥 막 다 쏴 죽인다. 아이들,부인을 먼저 쏴 죽인다. 

또 알렉한드로가 어떤 남자냐면,
협박하러 여주인공을 찾아가서는,
오른손으론 여주 목에 총구를 겨누고, 왼손으론 여주의 눈물을 상냥히 닦아주는 남자다. 

이런 불의한 인간이 있을 수가 있나. 

그런게 희안하게도 관객은,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알렉한드로에게 감정 이입된다. 
영화 초중반을 호기롭게 이끌어가던 여주는, 가면 갈수록 답답이 캐릭터다. 

이런 감정이입의 역전은 '정의' 때문에 일어난다. 
영화가 전개되며 관객은, 여주보다 알렉한드로의 '정의'에 더 공감하기 때문이다. 

여주는 원리원칙을 많이 따지는 인물이다.
모든 사건 모든 수습에 절차적 정당성을 따져든다.
앵앵거리는게 정말 피곤하다.
오유에서는 이런 인물들이 '비판적 지지자'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비판적 지지자.
다른 말로 내부총질러.

다른 판떼기로 이해해보자. 

야구 영화의 전형적인 감동스토리가 있다. 
삽질하는 팀 -> 끝까지 응원하는 팬 -> 팀의 반등 -> 부둥켜안고 울고짜는 팀과 팬

누구나 아는 스토리다. 
팀이 아무리 연패를 하고 삽질을 해도, 
끝까지 응원하는 팬이 비판적 팬보다 아름답다.
누구나 알고 있는 자명한 진리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판적 지지자들은 한 경기만 쌈싸먹어도 온갖 욕설과 악플을 달아댄다.
패배팀의 당일 뉴스 댓글들을 한번 보시라.
비판은 얼어죽을. 비난과 배설뿐이다.

그러다 집안이 콩가루 되는 거 한 순간이다. 
더군다나 여기는 온갖 정략과 술수가 난무하는 곳이다.
야구 판떼기에 비할 바 아니다. 
국정원이 숨어서 추천버튼 누르는 임무까지 하고 앉았는 곳이다. 
비판적 지지자인지 시카리오인지(멕시코어로 암살자) 피아식별 하기 힘들다. 
그래서 용납할 수 없다. 

팬이 그런 글도 못쓰냐고 댓거리 할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런 인물한테는 요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그래 야구에서는 오케이. "

"그런데 
 내 삶과 내 새끼의 삶이 달려있는 이 판떼기에서는,  
 비판이고 자지고 그냥 다 쏴 죽여버린다"


출처 내블로그
http://blog.naver.com/kooks0307/22105757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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