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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Secret Sunshine, 2007)
게시물ID : movie_699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ynousia
추천 : 1
조회수 : 3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21 10: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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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본 게시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금 일어서리, 당신을 통해서라면!



1.
여기 한 여자가 있다.
다른 여자와 바람나서 집을 나가기까지 한 남편이었지만, 자신이 사랑했다고 추억하고 또 그렇게 고백하는, 하지만 그러한 남편조차 도 먼저 세상을 떠나보낸, 그런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에게 남은 거라곤 이제, 그동안의 빚을 다 갚고 남은 일천한 재산, 그리고 아들 하나가 다이다. 
하지만, 남편이 살아생전 넋두리처럼 소원했다던 밀양에서의 삶을, 정작 남편을 떠나보낸 뒤에야 뉘우치듯 회개하는 마음으로 결행하게 된 이 여자는, 이곳에서 자신의 재산과 아들마저 다 잃어버리고 만다.
이제 그녀에겐 남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간신히 가게를 운영해가며 입에 풀칠만 할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햇볕은 비치는가? 
그녀는 이적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행적을 뒤돌아보며, 허무 그 자체와 직면한다. 
무엇 하러 내가 살고 있는지, 내게 중요한 것들은 왜 다들 떠나가고 사라지는지, 전혀 알 길 없이, 그저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할 뿐이다. 
이런 그녀에게도 햇볕은 비치는가?
영화는 이런 그녀에게도 햇볕을 비춰준다.
하나님이라는 종교적 신을 말이다.
햇볕 안에도 하나님이 있다는 약사 아주머니의 말을 처음엔 콧방귀나 뀌고 귓등으로 주워넘기던 그녀가, 하나님을 정말 자신의 구주이자 신으로서 영접하게 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땅에서의 부질없는 헛헛하고 공허한 삶을 내려놓고 오롯이 하늘의 신에게로만 향한다.
그리고 그 신 안에서의 감격과 기쁨, 편안함과 위로를 만끽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다시금 하늘을 째려보고 삿대질을 해대며,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신에게 싸움을 건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그녀는 하늘에서의 삶 또한 공허하고 헛헛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가? 
그 삶 또한 땅에서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가?
아니, 도리어 땅에서의 삶보다 더욱더 못한 삶이 하늘에서의 삶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인가?


2.
그녀가 결정적으로 삶의 방향을 돌릴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던 한 남자가 있다.
어린이 학원 원장이던 그 남자로 인해 그녀는 땅에서의 모든 것을 잃고 하늘을 찾게 되었으며, 또 그 남자로 인해 하늘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금 땅으로 추락하길 간절히 소원했다. 
그녀에게 한때 땅이 다가들 때는 하늘이 저 멀리로 비껴났으며, 하늘이 그러할 때는 땅이 저 멀리로 비껴났다. 
그리고 다시금 그녀는 이제 땅으로 돌아오길 원하는 것이다.
그러한 새 출발을, 그녀는 자신이 직접 머리를 자르면서 시작하길 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런 파국으로 몰고 갔는가? 
그저 이러저러한 운이 없고, 타이밍이 좋지 않아서였는가?
아니면, 진짜 그녀의 한때 말마따나 하나님이 자신을 섭리하시고 주관하셨으며, 또 한때 말마따나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가지고 노셨던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인간적 의지나 판단 따위가 부족하거나 미흡해서였던 것인가?


3.
영화는 이러한 파국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들을 경황스레 뱉어내진 않는다.
다만 이 영화가 전경에 비추는 종교라는 틀을 필자는 조금 돌아보고자 한다.
그녀가 땅에서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하늘에서의 비전을 기약하며 종교로 귀의하는 경우는, 우리 주위에서도 심심치 않게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러한 삶 또한 왜 다시금 땅으로 추락하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 스스로 돌아봄으로써, 꼭 그러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이러한 삶이 왜 우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 함축적 의미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가 모든 것을 잃고 종교로 귀의했다는 것은 이제 넘어가기로 하자.
그런데 그녀는 왜 그런 종교로부터도 도망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확연하다.
하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었으며, 그 새사람이 된 증표나 믿음의 증거로써 자신의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원했던 그녀가, 그 남자 또한 하나님이 본인을 용서해주시고 사랑해주셨다는 고백을 듣게 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해주길 원했으나, 그 남자는 이미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아 그녀에게서조차 용서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사실, 교회 관련 사람들은 이게 무슨 하나님의 축복인가? 하며 정말 감사하게 그 현장을 받아들이지만, 그녀 자신에게는 정말이지 지옥의 불구덩이로 빠지는 순간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 축복받을 만한 용서라는 행위에 당사자, 그러니까 가장 속절없이 아프고 가장 하릴없이 슬펐던 당사자로서의 그녀가 하등 어떠한 의미나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허허롭게 붕 떠 있어야만 하는 그 현상, 그것은 마치, 둘이 싸웠는데 그 둘이 서로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제삼자를 향해서 용서를 구하고, 또 그래서 각각이 죄 사함 받고 끝나버리는 격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향해 직접적으로 어떠한 용서라는 행위조차도 일절 수행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께서도 능히 용납하실 만한 행위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요나가, 자신은 한 도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게 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아니,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고 화를 내며 투정 부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그를 직접 그 성으로 보내셨던 것이다.
물고기 배에 넣는 연단과 시련까지 주시면서 말이다.
이는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시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그래서 그 남자 또한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더라면, 하늘에서 죄사함과 용서를 받은 것같이 땅에서도 그러한 행위로 죄사함과 용서를 받았어야만 마땅했던 것이다.    
사실, 그녀는 바로 이러한 종교적 문제를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으로 용서를 해주면 되는 거지, 왜 교도소까지 가서 용서라는 형식을 들먹여야 하느냐라는 의구심 어린 질문들에, 한사코 이성적 답변은 없이 그저 가야만 한다고 되뇌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하늘에서의 삶이 정녕 하늘에서의 삶으로 성취되려면, 땅에서의 육신을 입은 인간들의 처지나 한계 또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며, 또 그럴 때에만 진정 하나님께 상달되는 산 제사가 될 수 있음을, 그러니, 그렇지 않을 때에는 결단코 땅에서의 헛헛하고 공허한 삶과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임을, 분명히 직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것이야말로 예수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내려온 궁극적인 이유이자 목적이며, 또 그 예수가 한사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꾸짖으며 외식하는 자들이라 욕해댔던 유일한 이유였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교도소에서 만나본 그 외식하는 자,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죄의 용서를 자폐적으로 받았다던 그 남자를 보며, 얼마나 당황하고 어이가 없었겠는가?
그것은 그녀에게 그야말로 사탄이 하늘에서 활개치고 있는 꼴이나 다름없어 보였을 것이다.


4.
그런 그녀가 이후 보이는 종교적 반동 형태는, 그러므로,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녀 자신은 결코 어떠한 잘못도, 실수도 없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녀를 싸고도는 주위의 상황, 하나님이 내리신 연단과 시험의 상황이 너무나 과도하게 압박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땅을 걷다가도 하늘을 부단히 올려다볼 줄 알고, 하늘을 보다가도 다시금 땅을 보며 걸어야 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이 주신 지혜일진대, 땅에 살 땐 땅만 보고 걷고, 하늘에 살 땐 하늘만 보고 걷는 사람들과 엮이게 되었던 건, 그래서 그녀의 삶에 한 줄기 소중한 햇볕으로 다가드는 순간을 오래도록 만끽하지 못했던 건, 순전히 그녀의 잘못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복음을 제대로 선포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외식하기만 했던 자들, 그네들이 그녀 주위에 있던 탓도 상당했으리라.
그러니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하는 노래가 교회 집회에서 울릴 때, 그 현상 자체는 결단코 거짓말이 될 수 없음 또한 고백해야 하리라.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그저, 그녀가 당분간은 자신의 힘으로든 타자의 도움으로든, 어떻게든 다시 여력을 되찾아서, 나중에는 자신의 힘 안에 있는 신을 발견하게 되기를, 그리고 또, 신의 힘 안에 있는 그녀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럴 때에야 '은밀하게' 비치는 태양과 우리는 조우하게 되지 않겠는가?
태양은 그 자체로서는 결단코 직접 우리에게 다가들지 않느니!
 


5.
그녀에 대한 또 다른 남자의 끊임없는 배려나 친절은 정말이지 그것이 예수의 조력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대단해 보였다.
온갖 수모와, 모욕, 꾸중과 야단을 다 들으면서도, 끝끝내 그녀를 떠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지키던 그 남자.
그녀와는 다른 성격에 다른 취향이라는 겉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래서 그녀에겐 언제까지나 이방인으로서 주위를 배회할 듯한 모습으로 그 남자는 등장하지만, 그 이방인이 신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아브람처럼, 그녀 또한 그 남자로부터 새롭게 거듭날 기회가 주어지기를, 그래서 그녀 또한 아브라함처럼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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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한 나의 촌평 -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격자무늬 감옥 속에서 우린 다시금 일어서야 한다. 인간의 삶이란 늘 그렇듯 긴 머리 스산하게 자르는 지난한 과정의 연속일 뿐. 하지만 그 속에서도, 아니, 그 속에서야 비로소 은밀하게 비치는 햇볕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출처 http://blog.naver.com/ha_eun_love/2210739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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