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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원작의 영화 <남아있는 나날>을 보고
게시물ID : movie_712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선셋대로
추천 : 2
조회수 : 50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10/21 00:25:17
올해 노벨상을 받은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1989년에 발표한 소설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은 파시즘과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불안한 1930년대 유럽의 시대 상황에서 달링턴 저택의 인물들과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그리고 전쟁 이후 여전히 그 저택의 집사로 남아있는 스티븐스의 현재를 줄기로 해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우아한 로맨스 영화들을 찍어온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에 의해 탁월하게 영상화된 영화 <남아있는 나날>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될 만큼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또한 등장만으로도 화면의 공기를 변화시키는 듯한 안소니 홉킨스(스티븐스)와 엠마 톰슨(켄턴)의 세밀한 연기는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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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영국, 루이스라는 미국인 백만장자가 새로 사들인 저택의 집사 스티븐스는 한때 같이 일했던 켄턴의 편지를 받고 수십 년 만에 그녀를 만나기 위해 휴가를 얻어 길을 나섭니다. 전쟁 이전에는 영국의 저명한 귀족 달링턴의 소유로 수많은 권력자가 드나들었던 그 저택에서 거의 평생을 집사로 헌신한 스티븐스는 여행길 위에서 화려했던 저택의 과거 그리고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켄턴에 대한 기억을 다시 더듬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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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링턴 저택은 과거에 국내외 권력자들이 모여들어 1차 대전 이후 스러져가던 독일의 재건과 유럽의 미래를 얘기하던 곳이었습니다. 주인 달링턴을 다른 누구보다 선하고 신사적이라고 생각하며 존경했던 집사 스티븐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순간에도 미처 끝내지 못한 일에 매달릴 정도로 오로지 스스로 생각하는 완벽한 집사라는 목표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유태인 하녀들을 쫓아내라는 주인의 명령을 따르면서도, 나치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게 될 권력자들의 회합을 보고 들으면서도 결코 그에 대한 다른 생각을 조금도 갖지 않고 말하지 않을 만큼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만을 완수해낼 뿐인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같이 일하던 하녀장 켄턴이 그런 그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보이기도 했지만 집사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것만이 전부였던 스티븐스로선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고, 상심한 켄턴은 다른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 후 저택에서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한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기도 한 주인 달링턴은 2차 대전이 끝나고 세월이 흘러 나치 독일에 협조했다는 불명예만을 안고서 세상을 떠났고, 쓸쓸하게 남겨진 저택은 미국의 전 하원의원이었던 루이스를 새 주인으로 맞이합니다. 


무려 2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재회한 스티븐스와 켄턴은 서로가 정말 하고 싶었을 말들은 결국엔 꺼내지 못합니다. 이제는 볼 수 없게 될 것을 알면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기 전, 잠시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그녀가 묻습니다. "사람들은 저녁에 활기가 돌아요, 왜냐하면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인 그때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당신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요?" 문득 멍한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던 스티븐스는 대답합니다. "얼른 돌아가서 하인들 문제를 해결하는 거예요. 난 항상 일하고, 또 일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어쩌면 그 자신이 구시대의 잔존물일 수도 있는, 하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또 다른 출발점에 선 스티븐스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고집스러운 삶의 태도를 이어나가는 것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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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ins of the Day'. 이미 가버린 지난날의 남겨진 것 혹은 그때 거기에 두고 온 것은 무엇이고, 과거의 유해 위에서 시작되는 현재는 어떤 의미인가. 개인의 인생과 격변하던 시대에 대한 역사적 조망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세심하고도 폭넓은 통찰력을 보여준 작품 <남아있는 나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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