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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리뷰] 우울증 환자는 절대 보면 안 되는 영화
게시물ID : movie_730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약물도매상
추천 : 11
조회수 : 171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1/15 22: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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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많은 절망을 느낀다. 주위에도 많은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깔리고 널렸다. 

서울 중위권 대학교 붙었는데 '사람이란 자고로 노는 물이 달라야 하는 법'이라는 폭풍개허세로 입방정 떨고 입학도 안 하더니만 수능 준비 또하고 올해도 망쳐서 다시 열심히 사수를 준비하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고,

남들 비트코인 한다고 '나도 거하게 목돈으로 코인에다 투자해서 쉽게 돈 좀 벌어보자!'는 생각으로 끝물인 좌판에다가 목돈 250을 뿌렸다가 이미 절반 날려 먹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자꾸만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 것 같다. 

그 이외에도 9번 선거에 출마해서 9번 다 떨어진 울산의 송씨나, 직업은 거창하게 당협위원장이라고는 하나 실상은 수익이 없는 사실상 백수인 낙선자들, 복제양 둘린지 뭔지 줄기세포 조작 폭로되기 전에 줄기세포 주식에다가 1억을 투자하고 10만원 건진 우리 엄마 아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하여튼 이 절망이란 것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한 매력이 있는 듯하다. 특히 절망적이지 않은 사람이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절망하는 사람들을 보면 손 근처에 있는 팝콘을 찾게 된다. 

예를 들면, 내가 고등학교 때에 별명이 '전국구 빵셔틀'이었는데, 공부도 못하고 사람 사귀는 능력도 원만하지 못해서 아이들이 나를 우습게 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잘생긴 것도 아이들이 나를 모질게 굴었던 이유인 것 같다. 하여간, 일진 애들이 나에게 빵을 사오지 않으면 괴롭히겠다고 욕하고 폭력을 가하고 나는 3년간 택배기사들의 고충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그 일진 아이들은 전부 배달통이 됐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전직 일진이셨던 분들은 4차선 도로에서 치킨을 배달하면서 자신에게 맡은 바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내가 갑이 된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통쾌해하며 항상 페이스북에서 이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도촬을 한다. 빨리 영화 리뷰를 해야 되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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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해 보겠다. 남한산성의 영화적 분위기는 독일 영화 몰락(der Untergang - unter는 아래라는 접두사, gang은 길인가 아무튼 아래로 내려가니까 망했다는 말임. 독일어 공부를 좀 했기 때문에 잘난 척 해봤음)과 비슷하다. 일단 전쟁영환데 전투장면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장점과, 베드씬이 없다는 단점이 그것이다. 그리고 사건 전개가 느리고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과정에 가깝기 때문에, 포스터만 보고 최강액션영화라고 생각하고 영화관 가서 영화 보고 낚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특히 내 옆좌석에 앉아있는 남자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얼마나 영화가 지루했는지 부정맥 전조증상처럼 앉는 자세를 계속 바꾸고 손목시계가 고장났는지 확인하려고 계속해서 시계를 쳐다보고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영화관 천장을 보며 한숨을 푸욱 쉬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재미가 없었나 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나에게 꿀잼이었다. 우선 보통 영화나 드라마들은 '힘든 현실에서도 어려움을 노력해서 극복하고 결국 원하는 목표와 성공을 이룸'인데 이 영화는 그냥 처음부터 '개 같은 생황에서 개 같은 결말'이다. 끔찍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뭔가 좀 잘 되려고 한다. 그래서 전투 한 번 이겼다고 전쟁 이긴 줄 알고 왕이랑 신하가 좋다고 웃고 떠들고 신나게 춤춘다. 그리고 다시 절망이 찾아온다. 청나라 군인들은 남한산성 주위를 포위하고 '어차니 너님들 식량 없는 거 다 아니까 더 피 보지 말고 깝치지 말고 나오3' 이라고 칸이 인조에게 SNS를 보내지만 대부분 김률 같은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빡대가리들이 주요 장관직을 꿰차고 있으니 국무회의고 나발이고 다 헛짓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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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가 김률은 자기가 밀리터리 지식이 어느 정도 풍부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전날 과음을 했는지 갑자기 이순신으로 빙의돼서 병사들에게 두손에다가 죽창 하나 쥐어 주고 성 밖으로 나가서 힘차게 싸우라고 개드립치고 자기는 명령을 내려야 하니까 성 안에서 잘 싸우는지 못싸우는지 팝콘 먹으면서 지켜보고, 조선 군인들은 청나라군한테 맞서 싸우다 다 털리고, 그나마 살아남은 병사들을 퇴각시킨 날 닮은 잘생긴 장수를 명령을 어겨서 이 장수 때문에 전투에서 졌다고 인조한테 뺑끼도 깐다.  

신하들의 충언들도 훌륭하기 그지없다. 언제는 전투에서는 말이 중요하다고 말을 살리려고 초가집 지붕(이때는 새마을운동을 안 해서 슬레이트지붕이 아니라 초가집이었음)을 뜯어가서 백성들을 다 얼어서 혹하고 추운 엄동설한에 저체온증으로 죽게 한다. 그리고 식량이 없으니까 이번엔 말을 도살해서 말고기로 군인을 밥 먹인다. 정말 임금의 은혜가 하늘과 같도다!

여기서 그나마 상황파악이 되는 외모는 날 닮은 최명길은 청나라와 싸워서는 쪽수로도 무기의 질로서도 죽도 밥도 안 된다고 판단하고 얼른 인조에게 꼬리를 내리고 빨리 세자를 보내든 채권을 주든 비트코인을 주든 아무튼 쪽팔리더라도 청의 아우가 되고, 힘도 없고 남은 건 공산당 명예 훈장 같은 것밖에 없는 명나라는 이제 저무는 해라고 곧 상장폐지가 되니 청나라와 M&A인수합병을 해야 한다고 얘기를 하지만, 인의를 졸라게 중시하는 어깨에 힘 들어간 감투 쓴 양반들 덕분에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 될 리가 없다. 신하들의 지지리 궁색맞게 하는 짓거리라곤 맨날 '근왕병이 올 것이다. 근왕병이 올 것이다. 근왕병이 올 것이야, 으어어어...' 하면서 행복회로를 머릿속에다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무슨 수로 청나라를 이기는가? 근왕병이 공3업 마린인가? 게다가 청나라는 공3업 시즈탱크 화력의 '홍이포'라는 무시무시한 대포도 가지고 있다. 이길 수가 없는데 이긴다고 개허세를 떨어대니 여러 강을 건너 내려온 칸도 슬슬 심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청의 군대는 남한산성으로 쳐들어가고, 인조는 계속 칸하고 밀당을 하다가 최명길의 서렌 칼타이밍에 간신히 개죽음을 면한다. 그리고 칸에게 삼전도에서 땅에다가 머리를 박고 절을 하는 개굴욕을 당한다.

이 영화는 나에게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대부분의 피상적 영화들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오락적 내용에 충실했다면, 이 영화는 작정하고 망하려고 애썼다. 전투씬도 그닥 없고, 때려 부수는 것보다 주댕이로 옥신각신하는 걸 전투라고 퉁치고 보면 상당히 재미있고 뜻깊은 영화일 수 있지만, 뭔가 때려부시고 정적인 걸 싫어하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요즘 급식체로 개극혐이다. 덕분에 손익분기점도 못 채웠다. 잘 만든 영화지만 요즘 나오는 영화들과는 상당히 다른 영화이다. 말했듯이 일반 영화들의 '개 같은 상황에서 노력해서 탈출 앙 기모띠!'가 아니라 '가뜩이나 구린 상황이 바닥을 뚫고 맨틀을 뚫고 외핵과 내핵까지 내려가는' 당시의 남한산성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너무나도 잘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에게 이 영화는 독이 될 수 있다. 가뜩이나 우울하고 에너지가 없고 체내에 도파민이 분비가 안 되는데 영화 '남한산성'은 기분을 더 꿀꿀하게 할 수 있다. 마치 불난 집에 휘발유와 중유를 뿌리다가 경찰에 연행되어서 구치소에 3일간 연행되는 것과 같다. 물론 조울증환자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여자친구가 없다. 아마 이 글을 보는 당신들도 여자친구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한산성'을 보고, 사실적인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으로서의 눈을 길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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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봄에는 민들레꽃이 피었다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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