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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pe of water> 리뷰 (스포,장문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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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가막새
추천 : 11
조회수 : 232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3/02 17: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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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미장센 연출과 이야기 구성에서 디테일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그 디테일은 빈틈없이 맞물려 도는 정교한 스위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듯 하다.
그의 모든 영화들이 그렇듯 이번 영화 <The shape of water>에서도 그의 정교함에 눈이 즐겁다.


1. 약육강식과 교감의 싸움.

물고기 인간 (괴생명체)은 자신을 적대시하는 고양이를 먹어버린다.
한편으론 자신을 좋아하는 고양이는 어루만진다.
물고기 인간 (괴생명체)의 논리는 단순하다.
해로우면 죽이고 이로우면 살린다.
인간들은 지성체 흉내를 내느라 이런 저런 논리를 갖다 붙인다.
장애, 피부색, 젠더, 국가.
하지만 복잡한 논리도 따져보면 물고기 인간의 논리와 같다.
국가에 조직에 나에게 이로우면 살리고 해로우면 죽인다.
물고기 인간을 탐구대상 넘어서까지 동정하는 드미트리 (호프스테틀러 박사)조차 자신이 살기 위해 죽이려고 했다.
반면 주인공 엘라이자는 어떤가.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고기 인간을 구하려고 한다.
여기에 각성한 자일스과 젤다도 합류한다.
상처입은 자만이 상처입은 자를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소수자들이 사회구조 속 최하위로 감금된 극소수자인 물고기인간을 구한다.
교감이 수많은 논리와 대립으로부터 탈출하는 이야기로 결말짖는다. 


2. 악의 캐릭터 <판의 미로> 캐피탄의 재림.

슈퍼맨 <맨 오브 스틸>의 조드 장군, <녹터널 애니멀>의 보안관으로 잘 알려진 마이클 섀넌이 악역을 맡았다. 

마이클 섀넌의 극중 이름은 리차드 스트릭랜드....

스트릭랜드는 델 토로 감독의 2006년도 명작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캐피탄 비달을 떠올리게 한다.

‘Strickland’에서 ’s’를 빼면 Trick Land.
즉 속임수 세상이다.
철저하고 냉정한 악역은 결국 시스템에 속아넘어간 열혈 추종자, 권력의 앞잡이다.
스트릭랜드 캐릭터야 말로 델 토로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가장 잘 전달하는 매개체다.
오성장군 (호이트 장군, 별 다섯개의 장군)의 말처럼 뭐든 다 할 수 있는 전권의 대리인이다.
스트릭랜드, 그는 금발에 화목한 가정의 아버지이지만 물고기 인간 (괴생명체)에게 손가락을 잘리자 장애인이 될 위기에 처한다.
영화에서는 그 위기감이 크게 강조되지 않지만 스트릭랜드는 끊임없이 썩어가는 손가락에 반작용을 드러낸다.
손가락과 함께 잃어버린 반지가 복선이었을까.
완벽한 부인을 농아인 엘라이자로 대리시킨 그가 아내의 입을 막은 손은 하필 억지로 이어붙인 손이다.
이제는 손가락 두 개가 없는 불완전한 형태(Shape)의 그가 장애인 농아 엘라이자에 집착한다.
계층 복구를 위한 피해의식으로 산 캐딜락도 물고기인간의 탈출과 함께 망가져버린다.
썩어가는 신체라도 붙여서 신의 형태를 유지하려던 그는 검게 변한 손가락을 뜯어버린다.
마치 원래 검은 색은 거기 있어야 한다듯이 손가락을 버린 곳은 검은 피부 젤다의 집이다.
신이 있다면 흑인인 젤다보다는 자신이 더 닮았을 거라던 그 아니였던가.
성공을 위해 북한군을 쓸어버리며 인간성을 버린 그가 신의 형태까지 버리자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맹인이 된 선택받은 인간 삼손의 결말에 자신을 투영하여 자폭까지 불사하려는 스트릭랜드.
그는 불완전하고 망가진 시스템의 결말이다. 


3. 주연부터 조연까지 디테일한 연출

오프닝 시퀀스에서 주인공 농아 엘라이자는 물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

그녀의 삶은 물 속 물고기 인간과 다를 바 없음을 암시하는 오프닝이다.
물고기 인간과 춤을 추며 말을 하는 판타지와 함께 사랑을 고백하는 엘라이자.
식탁에서는 동물처럼 반응하는 물고기 인간이지만 결말에는 엘라이자의 수화를 그대로 반복하며 함께 가길 원한다.
결국 그녀는 엔딩에서 물고기 인간과 하나된 모습을 선보이며 오프닝과 데칼코마니를 완성한다.
엘라이자가 아침마다 자위를 하는 습관은

물고기 인간과의 섹스를 위한 복선이기도 하지만
동거남 자일스가 성소수자 게이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밋밋한 사타구니에서 남성기가 생기는 물고기 인간의 설정도

겉모습으로 젠더를 판별할 수 없는 자일스같은 성소수자를 떠올리게 한다.
자일스는 상관이 원하는대로 그림을 그려가도 문전박대받는 상황에 가서야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회사에서 짤렸다는 걸 깨닫는다.
자일스가 게이임이 밝혀지는 파이집에서 흑인커플처럼 쫓겨나가는 장면에서 차별의 동일선상에 놓여진다.
엘라이자의 절친 젤다는 흑인 여성이다.
그녀는 자랑인지 흉인지 애매하지만 남편을 입에 달고 산다.
결국 그녀의 집을 가보면 남편은 소파를 왕좌삼아 앉은 가부장적 상징이다.
거드름 피우지만 스트릭랜드의 호령에 꼼짝없이 왕좌에 찌그러져 앉는 약자일 뿐.
심지어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비밀을 지키려는 젤다와 달리 순식간에 기밀을 누설하는 겁쟁이다.
감독은 가부장적 관습까지 넘어야할 장벽으로 슬쩍 끼워넣는다. 


4. <The shape of Human> Human 오타아님.
 

마케팅의 관점에서 남녀데이트에서 영화 선택자인 한국 여성에게 사랑을 어필하려는 전략은 잘 알겠다.
하지만 <사랑의 모양>이라는 부제는 이 영화의 주제를 파괴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로 설정한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흑인과 성소수자에겐 차별의 시기였다.
농아인 엘라이자, 그녀의 동거남 성소수자 자일스, 그녀의 절친 흑인 젤다.
또한 국적이 다른 드미트리 (밥, 호프스테틀러 박사) 또한 국가간 경쟁에 찡긴 약자로 배치된다.
이 모든 소수자들의 대표 상징이 바로 물고기 인간이다.
형태(Shape)는 사람과 닮았으나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엘라이자가 자일스에게 말한다.
나도 그처럼 말을 하지 못하고 나도 그처럼 음악을 듣는다.
그를 사랑하는 나도 괴물인가.
우리는 장애, 인종, 국적이라는 틀(Shape)을 놓고 인간을 판단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The shape of Water>에서 Water를 Human으로 바꾸면 명확히 드러난다.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을 온전한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가.

물은 형태가 없다.
그가 담긴 그릇과 같은 형태를 이룰 뿐.


출처 http://yuminhouse.blog.me/221218608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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