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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때, 일본인들은 무고한 피해자였을까?(두 번째)
게시물ID : mystery_89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11
조회수 : 308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7/21 00: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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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중경 폭격(重慶爆撃)으로 알려진 1938년 2월 18일부터 1943년 8월 23일까지 중국 충칭(重慶)에 가해진 일본군의 폭격은 무려 5년의 기간 동안 총 268회에 달했고 폭격 대상은 주로 주거 지역, 상업 지역, 학교, 병원 같은 비 군사적 목표였습니다.


轟炸重慶.jpg

(중국의 도시인 충칭을 공중폭격하고 있는 일본군 폭격기의 모습.)



이 기간 동안 가해진 일본군의 폭격 작전들 중 중요 작전으로는 1940년 5월부터 9월까지 101호 작전(百一号作戦)과 1941년 5월부터 8월까지의 102호 작전(百二号作戦)이 있었는데, 이 두 작전이 대표적인 민간 지역에 대한 일본군의 대규모 폭격질이었습니다.


이중 1940년 5월부터 5개월간 계속된 101호 작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 작전에 동원된 일본군의 폭격기는 해군 1,737기, 육군이 286기였으며 중경에 투하된 폭탄의 양은 해군 1,281톤, 육군은 1,276톤에 달했습니다.


250px-JapaneseNavyclusterbombs-DE_svg.png
j9952kj996j976.jpg

(일본군이 중국 공습을 할 때에 사용했던 폭탄들)



문제는 이때 일본군이 중경 폭격에 사용한 폭탄의 종류인데 육해군 합계 총 11,020발을 투하한 이 작전에서 그 대부분인 9,819발의 각종 폭탄을 사용한 해군의 사용 폭탄 종류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육군은 1,201발..)


97식 6번 육상용 60kg 폭탄(九七式六番陸用爆弾 60キロ) 6,688발

98식 7번 6호 소이탄(九八式七番六号焼夷弾) 184발

98식 25번 250kg 폭탄(九八式二五番爆弾 250キロ) 2,474발

30번 육상용 300kg 폭탄(三○番陸用爆弾 300キロ) 64발

80번 육상용 800kg 폭탄(八○番陸用爆弾 800キロ) 378발

100식 50kg 소이탄(陸軍100式50キロ投下焼夷弾九七式爆弾) 131발


위 내용에도 떡하니 보여 지듯이 이미 태평양 전쟁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일본군은 소이탄을 자주 사용하고 있었으며, 저 작전에서 6,688발을 내던지며 가장 많이 사용된 97식 6번 육상용 60kg 폭탄 또한 소이탄이 아닌 척 포장은 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테르밋 방화제로 가득한 소이탄이었습니다.


또한 184발이 사용된 98식 7번 6호 소이탄은 콘크리트 건물을 의도적으로 불태우기 위한 소이탄으로 테르밋 소이제로 가득한 17.8kg의 자탄 4발을 내장하고 있으며 4,000m 상공에서 투하하면 200mm의 콘크리트를 관통한 후 건물 내부에서 자탄을 사출하고 발화하는 신형 소이탄이었습니다.


당시 일본군 소이탄은 대부분 전쟁 당시 연합군이 사용한 소이탄과 흡사했으며 방화제로 황린과 테르밋 등이 사용되었고, 형태 또한 미군의 M50이나 M69 소이탄과 흡사한 다량의 소이탄 묶음에 회전 꼬리가 달린 형식이었으며, 대표적인 것이 10cm 길이의 튜브에 테르밋을 충전한 자탄 800개를 내장한 2식 25번 3호 폭탄(二式二五番三号爆弾)이었습니다.


따라서 현대 일본에서 스스로도 전쟁 당시 소이탄을 대량 보유하였고 타국의 도시에 대량 사용했다는 사실은 입 밖에도 내지 않고 마치 자신들만 피해자인 듯 행세하는 것은 한 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거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출처 http://blog.daum.net/mybrokenwing/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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