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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용(李陵容): 중국 역사상 유일한 흑인 황후
게시물ID : mystery_89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9
조회수 : 674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8/02 10: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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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晋書)>에 이런 기록이 있다: 사마창명(司馬昌明)의 부친 사마욱(司馬昱)이 처음에 회계왕(會稽王)으로 있을 때, 5명의 아들이 있었다: 사마도생(司馬道生), 사마유생(司馬兪生), 사마주생(司馬朱生), 사마욱(司馬郁), 사마천류(司馬天流). 사마도생, 사마유생의 모친 왕씨(王氏)가 중죄를 저지르는 바람에 아들도 연좌되어 유금되었다가 죽는다. 사마주생, 사마욱, 사마천류는 요절한다


361년, 진 승평5년, 사마욱의 모든 부인은 '이미 임신을 못한지 10년이 되었다' 이때의 사마욱은 왕의 신분이고 나이는 이미 42살이었다. 신체의 각 기관이 예전만 못했고, 특히 그의 신장기능은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사마욱은 각종 방법으로 집안의 여자들과 관계를 가졌고, 심복이 바치는 여자들과도 관계를 맺었지만 누구도 그를 위하여 아들을 낳아주지 못했다. 불효에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후사가 없는 것이 가장 크다고 했다. 사마욱은 아들을 하나 갖기 위해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이때, 한 모신(謀臣)이 사마욱에게 상사(相士, 관상가)를 추천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상사는 여자를 한번 보면 자식을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아들을 낳는지 딸을 낳는지를 알아본다고 했다.


사마욱은 그 관상가에게 영광스러운 임무를 부여한다. 왕부에서 자신을 위하여 아들을 낳아줄 수 있는 여인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그 여인이 사마욱을 위하여 아들을 낳아주기만 하면 그 여인의 출신의 귀천이나 용모의 미추나 무슨 일을 하는지는 가리지 않고 바로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세상에 병이 급하면 아무 의사나 찾는다고 했다. 사마욱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없으니 아무 여자나 찾게 된 것이다.


상사는 왕부의 모든 곳을 다니면서, 사마욱의 모든 부인을 본다. 어떤 부인은 이미 나이가 들었고, 어떤 부인은 반쯤 늙었고, 어떤 부인은 요조숙녀이다. 각양각색의 여인들이 다 있었다. 그래도 왕야를 위하여 아들을 낳아줄 여자는 찾지를 못한다.


<진서>에도 탄식하며 말한다: "여러 부인들이 자식을 낳지 못한지 10년이 되었고, 왕야는 관상을 잘보는 사람을 시켜서 보게 했는데 모두 아니었다." 상사의 눈에 어느 여인도 사마욱을 위하여 후사를 잇게해줄 사람은 없었다. 당당한 동진왕조의 왕이 아들을 낳아줄 여자 하나 구할 수 없단 말인가?


사마욱의 신장은 아직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다. 이론적으로 보면 40여세의 남자라면 아직 자식을 더 낳을 기회는 있다. 사마욱은 포기하지 않고, 상사에게 계속하여 찾아보라고 말한다. 상사는 왕부의 여인을 모조리 다 불러모은다. 청소하는 여자, 차시중을 드는 여자, 거친 일을 하는 여자, 결혼연령 범위내의 모든 여인을 모이라고 하여 줄을 세운다. 상사가 한명 한명 살펴본 결과 한 명을 찾아냈다: 이능용


이 이능용은 출신이 아주 빈천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몰랐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녀가 기억하는 때부터 왕부에 팔려왔고, 왕부에서 방직일을 했다. 어른이 된 후에는 이능용에게서 중국인에게는 없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첬째, 피부가 새카맣다. 둘째, 키가 아주 크다. 셋째, 머리카락이 곱슬이다. 상사는 이능용을 마음에 들어하자, 왕부의 나이많은 하인이 상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중하십시오. 이 여자는 곤륜노(崑崙奴)입니다."


곤륜노는 무엇을 말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단어가 익숙치 않을 것이다. 천카이거가 감독한 영화 <무극>에서 빛처럼 빠르게 달리는 노예 곤륜(崑崙)이 바로 곤륜노이다. 그러나, 빛보다 빠르게 달리는 노예는 이능용의 특징이 아니다. 피부는 황인종의 피부이고, 머리카락도 아시아특색으로 검고 곧다.


그러나 중국역사상, 진정한 곤륜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서> 남만열전 147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임읍(林邑) 이남에서 왔고, 모두 곱슬머리에 검은몸이다. 곤륜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수서>열전47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임읍고국은 사람들이 눈이 깊고, 코가 높으며, 머리카락은 곱슬이고 피부색은 검었다. 베를 몸에 감았다. 임읍국은 송나라때 점랍(占臘)이라 칭한다. 진랍(眞臘)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의 캄보디아지역을 가리킨다.


<당서>의 기록에 따르면, 곤륜노는 임읍 이남에서 왔다. 사서에서 말하는 임읍이남은 인도, 그리고 더욱 남쪽의 아프리카이다. 이능용의 키, 검은 피부, 곱슬머리나 이능용의 생장특징을 보면 인도인같지는 않고, 아랍인같지도 않다. 아프리카인에 유사하다.


근대사기록에 따르면, 서방인이 대규모로 흑인노예를 판매한 것은 최근 5,6백년내의 일이다. 만일 곤륜노 이능용이 임읍이남의 아프리카에서 왔다면, 이미 천여년전에 일부 흑인이 중국등지로 팔려갔다는 말이다. 그들은 중국에 온 후에 새로운 명칭을 얻는다: 곤륜노.


많은 곤륜노들과 비교하자면 이능용은 너무나 행운아이다. 그녀는 나중에 동진왕조의 황후가 된다.


상사가 자신을 위해 찾아준 곤륜노 부인을 보고, 사마욱은 마음이 불편했다. 당당한 동진왕조의 왕이 곤륜노와 결혼해야한단 말인가. 천여년전의 중국에서는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상사는 확실하게 말해주었다. 이능용은 사마욱을 위하여 아들을 낳아줄 수 있다고. 왕 사마욱은 아무 말없이 이능용을 깨끗하게 준비된 방으로 데려가서 눈을 감고 이능용과 동방화촉의 밤을 보낸다.


그후 오랫동안 사마욱은 이능용의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건강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동진왕조의 신하들 사이에는 참언이 하나 돌았다: "진조진창명(晋祚盡昌明)"


중국역사상 많은 경우에 많은 참언이 있었다. 실현되기 전에는 유언비어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유언비어는 돌맹이이지만, 참언은 유언비어에 숨어있는 황금이다.


사마욱은 이 참언을 듣고 그냥 웃어넘긴다. 사마욱이 흑인부인을 찾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동진왕조의 승상에 임명된다. 사마욱은 그저 흑인신부 이능용과 한번 잤을 뿐이고 국가의 승상으로서의 임무를 다하느라고 자신에게 흑인부인이 있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러나 이능용의 배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왕야 사마욱과 결혼한 그날 저녁에 바로 임신을 한 것이다. 그녀의 배는 하루하루 불러올랐다.


이능용이 곤륜노 출신이므로 왕부에서 아무도 이능용의 임신을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곤륜노 이능용은 잘 지냈다. 그녀는 몸도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잤다. 왕과 결혼한 후에는 생활도 왕부에서 방직일을 할 때보다 훨씬 좋았다.


곤륜노로 낙인찍힌 여인으로서 그녀는 자신이 왕에게 시집갈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만족했다. 그래서 임신부터 아이를 낳을 때까지, 이능용은 전혀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아마도 여러해의 노에생활로 그녀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것같다. 그녀가 아들을 낳았을 때는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였다. 그래서 입에서 나오는대로 아이의 아명을 지어준다: "창명(昌明)"


곤륜노 이능용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은 금방 사마욱의 귀에 들어간다. 그는 아주 기뻤다.그러나 이능용이 아들이 아들의 이름은 "창명"이라고 지었다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란다. 사마욱은 동진에 떠돌던 참언을 떠올린 것이다: "진조진창명"


<건강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사마욱은 아들의 이름을 이능용이 창명으로 지었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마음 속으로 하늘의 뜻인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참언이다. 그것때문에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하물며 참언이라는 것은 괴이한 것이다.당시 많은 진나라사람들은 '진조진창명'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참언의 창명이 설마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가리킨단 말인가


사마욱도 확실할 수가 없었다. 이때의 동진왕조의 황제는 진애제(晋哀帝) 사마비(司馬丕)였다. 진왕조의 흥망성쇠는 사마욱의 흑인부인이 막 낳은 아들과 그다지 큰 관련이 없어 보였다.


사마욱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후, 자기가 가서 아들을 낳은 부인을 보지 않고, 하인에게 아이를 안고 오라고 명한다. 사마욱은 이 아이가 피부색이 약간 검은 것을 제외하고는 신체가 건강했다. 사마욱의 마음은 많이 놓인다.


이후 이능용은 사마욱과의 사이에 장남 사마요(司馬曜, 아명이 창명임), 사마도자(司馬道子), 그리고 딸 파양공주(鄱陽公主)를 낳는다.


371년, 대사마(大司馬) 환온(桓溫)이 황제 사마혁(司馬奕)이 동성애자라고 모욕하고, 황제를 폐위시킨다. 대신들은 승상 사마욱의 혈통이 순혈이라고 보아 사마욱을 황제로 추천한다. 그때 사마욱은 이미 52세였다. 그는 황제에 오른지 1년만에 죽는다. 사마욱의 아들 사마요(司馬曜, 이때는 이미 태자가 되어 있었다)가 황위를 승계한다. 이능용은 황태후가 된다. 이능용은 아마도 중국에서 유일한 흑인혈통의 황태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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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에 키가 매우 크고 머리카락이 곱슬이었다는 점으로 보아서, 이능용은 아마 키가 크기로 유명한 아프리카의 부족인 마사이족이나 소말리아인 출신으로 추정됩니다.....

출처 http://m.blog.daum.net/shanghaicrab/16156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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