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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촌누나 이야기
게시물ID : mystery_92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포김사장
추천 : 6
조회수 : 777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20/03/30 18: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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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우리 엄마가 스물다섯, 이모가 스무 살이었을 때,
이모는 엄마의 약혼자를 빼앗아갔다.
그것도 결혼식 당일에 약혼자랑 도망쳐서,
신부 의상을 입은 엄마는 식장에서 바람을 맞았다.

게다가 이모는 이미 임신 3개월이었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문제였는데 또 다른 문제는,
태어날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면서
엄마의 부모님이 이모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가족과의 모든 인연을 끊고
지금껏 일체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이러한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 건
지극히 우연이었다.

언젠가 일 관계로 만난 선배가,
"너 아직 애인 없지?
너랑 닮은 좋은 사람이 있는데 만나볼래?"
하고 권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더니
대뜸 상대방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얼마나 많은데요?”
“세 살 많아.”
“에?”
“여자 쪽이 더 많아도 상관없잖아, 둘이 마음만 맞으면.”
“그야 그렇지만.”
“왜, 싫어?”
“아뇨, 싫다기보다….”

싫다기보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어떨까.
뭐, 상관없을 것 같았다. 마음만 맞으면.

그래서 약속을 잡고 만났는데
닮았다는 선배의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상대방의 얼굴이 나와 너무도 흡사했던 것이다.

우리는 약간의 호구조사 끝에 어머니와 이모의
이름에 이르러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저간의 사정에 대해
아버지에게 몰래 물어 보았다.

그리고 어렵게 입을 뗀 아버지로부터
그동안 엄마의 마음을 존중해
엄마의 친정과는 교류를 끊고 지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의 소개팅 이후
새로 생긴 사촌누나와 쭉 연락하며 지냈다.
나와 닮은 외가 쪽 사촌이 생긴 게 신기한데다가
이것도 나름 인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연락이라고 해도
서로의 생일날 조그만 선물을 보낸다거나
일 년에 한두 번 만나서 밥을 먹은 것뿐이었지만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해두었다.

두 번 다시 가족들과 만나고 싶지 않다는 엄마에게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결국 사달이 날 만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사촌누나의 결혼식 청첩장이 우리 집으로 날아왔던 것이다.

나와 사촌누나가 소식을 주고받는다는 걸 알게 된 이모는
사촌누나의 결혼식에 우리 부모님을 정식으로 초대하며
초대장 안에 다음처럼 적힌 메모를 동봉하여 보냈다.

“언니는 현재 행복하고,
벌써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니까 슬슬 흘려보내자.
지금 와서 보면 언니가 여자의 일생으로는 승리자야.
이제 옛날 일은 용서해 줘도 되잖아”라고.

초대장을 본 엄마는 그야말로 대폭발하고 말았다.
‘흘려보내자’니, 그게 가해자 쪽에서 할 말이냐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피해자뿐이라면서.
나에게도 불호령이 떨어졌다.

내가 어떻게 사촌누나와 알게 되었는지 추궁한 엄마는,
절대로 결혼식장에 가면 안 된다,
당신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저쪽 집안의 누구와도
말을 섞으면 안 된다며 엄포를 놓았다.

그래서 엄마 몰래 결혼식장에 갈 수밖에 없었다.
한데 내가 결혼식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놀라운 일이 연속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손님이 너무 많아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안한 기색으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식장의 진행 담당자인 듯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결혼식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지연되는 바람에
빚어진 일이라고 한다.
신랑 신부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사촌누나에게 전화를 해봐야 지금 받을 수도 없을 듯했다.
나는 사람을 비집고 겨우 통로로 나왔다.
복도를 따라 꺾어 들어가니 신랑 신부 대기실이 보였다.
대기실은 문은 살짝 열린 상태였다.

그런데 곧 누군가의 격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가자
숨 막히는 분위기가 전해져 왔다.
싸움이 벌어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파혼이야. 당장 꺼져.”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려서
나는 나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아무래도 신부 측 사람인 듯했다.

이런 마당에 신부 측을 철천지원수처럼 미워하는
친척(우리 엄마) 쪽 사람인 내가 나타내봐야
좋을 게 없지 않으려나.
나는 복도를 되짚어 천천히 돌아나왔다.

잠시 밖으로 나가서 담배라도 태우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기다려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마다 사람이 꽉꽉 들어차서
도저히 이용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계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상구로 나왔다가 기겁할 뻔했다.
거기, 그러니까 8층 계단실 구석에
신부가 쪼그려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처음에 사촌누나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으니 신부가 틀림없긴 하지만
사촌누나는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울고 있었는지
뺨에 눈물 자국과 함께
눈화장이 번진 모습은
단순히 이상함을 넘어서 기괴하기까지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신부는
한층 더 몸을 굳히고 구석에 달라붙었다.
그 목에서 딸꾹, 하고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모깃소리만 한 목소리로 이렇게 호소했다.

“도와주세요.”

아아 대관절 이 사람은 누구인가.
사촌누나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장차 이 결혼식은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하는 것이 궁금한 형제자매님들은
미야베 미유키의 신간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를 읽어봐 주시길.
이 책이 당신의 내일을 책임져 줄 것입니다.

책 읽기 딱 좋은 계절에,
마포 김 사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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