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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를 찾아 떠난 성자 브렌던
게시물ID : mystery_92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2
조회수 : 321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5/05 11: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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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지금의 미국이 위치한 신대륙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흔히 사람들은 콜럼부스를 말한다. 하지만 그가 1492년 현재의 바하마 섬에 상륙하기 이전에, 이미 신대륙을 다녀간 방문객들이 있다는 증거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노르웨이에 살던 바이킹들이 배를 타고 9세기와 10세기 말에 걸쳐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정착한 일이다. 더 나아가 바이킹들은 지금의 캐나다 뉴펀들랜드로 추정되는 빈란드까지 항해하여 집을 짓고 살았다.


그 밖에도 스페인 북부의 바스크 지방에 사는 민족인 바스크족들도 오랫동안 캐나다 동부 해안에서 대구를 잡아왔다. 다만 바스크족들은 캐나다의 대구 어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외부 어선들이 몰려와 자신들의 어획량이 줄어들까봐, 일부러 그 사실을 숨기느라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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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서기 8세기 초 무렵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문헌인 ‘브렌던의 항해(Navigatio Brendani)’에서는 아일랜드의 수도사인 성 브렌던(Saint Brendan: 484/486~578년)이 7년 동안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돌면서 이제까지 누구도 보지 못한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일랜드는 로마를 제외하면 유럽에서 제일 먼저 기독교로 개종한 지역이다. 아일랜드의 기독교, 즉 가톨릭 수도사들은 ‘코라클’이라고 하는 나무판자에 소가죽을 덮어씌운 배를 타고 정해진 목표 없이 바다로 나가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신의 뜻에 맡기는 일종의 종교적 수행적인 항해를 하는 일이 관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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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죽으로 씌운 배를 타고 어떻게 바다를 항해할 수 있을지, 혹시 바닷물의 소금기에 소가죽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을까, 하고 의문을 가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78년 7월 27일, 아일랜드의 역사가 팀 세버린은 자신이 직접 고대 아일랜드의 전통 방식대로 만든 코라클을 타고 실제로 아일랜드에서 미국까지 항해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바다의 짠 소금기가 소가죽에 닿으면 가죽이 오히려 더 딱딱해져서 물이 전혀 스며들지 않고 방수에 좋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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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던의 항해’에 의하면 6세기 중반 무렵, 성 브렌던은 다른 동료 수도사들과 함께 그런 항해에 나섰다. 아일랜드 서부에서 출항한 성 브렌던과 수도사 일행은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의 서부 해안 지역인 헤브리디스 제도를 지나 페로 제도에 이르렀다. 페로 제도에 도착한 브렌던은 수천 마리의 바다새들이 모여 있는 장관을 목격하고 그 곳을 “새들의 낙원”이라고 불렀다.


오늘날까지 페로 제도에서는 매년 수천 마리의 물오리들을 잡는 축제가 벌어진다. 페로 제도의 중요한 섬에는 ‘브렌던(Brandon)’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내가 있는데, 섬 주민들은 성 브렌던이 이곳을 거쳐간 증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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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 제도에 들른 성 브렌던 일행은 아이슬란드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화산 활동이 일어나 뜨거운 용암이 섬의 표면을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브렌던의 항해’에는 “더러운 냄새가 나고 타오르는 결정체가 높이 솟아오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브렌던의 방문으로 아이슬란드는 아일랜드에 알려졌다. 아일랜드의 수도사들은 옛 켈트 신들의 신화를 기록하면서 “북쪽에 눈으로 뒤덮인 신비한 섬이 있다.”라는 언급을 했다. 유럽의 신비주의자들은 이 섬을 톨레(Thule)라고 불렀다. 9세기 말, 아이슬란드로 이주한 바이킹들은 그곳에 자신들보다 먼저 와서 살고 있던 아일랜드인 수도사들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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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브렌던은 자신이 남쪽 바다에 있는 “약속된 성자들의 섬”에 도착했다고 ‘브렌던의 항해’에 적었다. 그가 말한 섬은 현재 아프리카 서부의 카나리아 제도로 추정된다.


7년 간의 놀라운 항해를 마치고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온 브렌던은 577년에 사망했다. 그가 과연 어디까지 갔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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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재 미국 중동부 지역인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에는 한 가지 놀라운 유물이 있다. 고대 아일랜드인이 사용하던 오감(Ogham) 문자가 새겨진 돌 조각인데, 미국의 고고학자 로버트 팔레(Robert Pyle)에 의해 발견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으로 분석한 결과, 서기 5백 년과 1천 년 사이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 이 석문은 오래된 아일랜드어 형식으로 기록되었다. 이것은 전 세계에 남겨진 오감 문자로 쓰여진 비문들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또한 돌 조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상징하는 글자 ‘Chi Rho’와 신의 오른손이라는 뜻의 라틴어 ‘Dextra Dei’가 오감 원본과 함께 표기되어 더욱 놀라움을 주고 있다.


이것이 과연 성 브렌던이 남긴 흔적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 다만, 서기 5백 년과 1천 년 사이에 기독교를 믿고 오감 문자와 라틴어를 쓸 줄 아는 고대 아일랜드인이 와서 남긴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출처 유럽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147~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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