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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꽤 볼만한 부부
게시물ID : mystery_93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윤기사(가입:2020-11-12 방문:102)
추천 : 0
조회수 : 192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4/06 21: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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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 안으로 흰색 벽면으로 둘러싸인 무미건조한 공간에, 뒤쪽에 간이용 환자 침대가 보이고 네모난 테이블 사이로 흰 가운을 입은 사내와, 중년 부부로 보이는 남, 여 가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다. 가운을 입은 사내가 부부를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두 분. 오래 기다리셨죠? 오늘 우리가 두 번째 만남 인가요? 안 그래도 오늘 상담은 두 분의 기대에 부응을 좀 해야 할 텐데요?”


뾰로통한 얼굴을 한 여자가 사내에게 먼저 이야기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진짜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이 인간을 억지로 끌고 여기 왔습니다. 오면서도 내가 왜 가냐고, 안한다고 얼마나 버티던지, 이번에 안가면 진짜 이혼이라고 협박을 하고 오게 되었어요. 이거라도 안하면 제가 정말 미칠 것 같아서요.”


“정말 잘 오셨어요, 자, 그럼 오늘은, 두 분 사이에, 진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저에게 천천히 얘기해주실 수 있으시죠?”


아내가 남편을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울화가 치밀어서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하려니 굉장히 수치스럽게 느껴지네요, 제가 이 사람에게 여자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못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으니, 마음을 먼저 좀 안정하시고, 천천히 이야기를 해 주세요”


옆에 있던 남편이 갑자기 무슨 말을 먼저 하려고 하다가 이내 멈추고는, 아내가 이야기 꺼내는 것을 그냥 바라보았다.


“젊었을 땐 이 양반이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돈도 저한테 잘 쓰고, 그런 점이 멋있어서 결혼을 했어요, 결혼 초반에 임신이 안 돼 걱정을 좀 많이 했는데, 다행이 아이들도 낳고 남편 사업이 잘 되어 가면서, 우리 가족도 영원히 행복하리라 생각했어요.”


아내는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벌써 목구멍이 메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연히 남편의 핸드폰 카톡에 웬 여자가 톡을 보낸 것을 목격했어요, 마침 제가 들여다보는 모습을 이이가 보았는데, 정말 불같이 화는 내더군요.”


남편이 아내에게 진짜로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러게 허락도 없이 왜 남의 핸드폰은 보고 난리야? 그리니까 허구한 날, 맞고 사는 거 아냐?”


가운을 입은 남자가 남편을 매우 나무라며, 아내분에게 이야기 중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핸드폰 메시지를 한번 보았다고 아내 분에게 폭력을 행사하셨다고요? 아! 아내 분은 남편 분 핸드폰 비번을 원래부터 알고 계셨나요?”


“사실 평소에 자기 폰을 만지지도 못하게 해서 몰랐어요. 마침 톡이 바탕화면에 알람으로 오는 바람에 일부 내용이 보였는데, 모르는 여성이 보낸 것 같더라고요, 첫마디가 “오빠 모해”였어요. 이이는 친 여동생이 없거든요.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나 하여 아들의 생년월일 6자리를 그대로 쳐보니 핸드폰 잠금이 척하고 풀리더군요.“


아내는 갑자기 남편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와 중에도 아들놈은 끔찍이 생각한다니까. 그러게 평소에 바람도 안 피고, 딸내미도 아들의 반에 반만 이라도 좀 아껴주었으면 우리 가정이 이렇게 까진 엉망이 되진 않았을 거잖아“


“갑자기 거기서 딸년 얘기가 왜 나와? 그 나불대는 주둥아리 닥치지 못해?”


험학해진 분위기를 달래 보고자 사내가 남편을 계속 진정시키며, 옆에 아내에게 재차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아드님과 따님이 계시는군요?”


“예, 근데... 자살했어요. 내 딸 혜린이, 바로 집 안 베란다에서요. 남편이 자기보다 어린년을 사귄다는 걸 알고서요. 욕정에 눈이 어두워 자기 딸까지 죽게 만들다니, 정말 아빠가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인간 이죠”


남편이 갑자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너도 한번 죽어바~”


남편이 아내의 목 칼라를 잡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가운을 입은 남자가, 갑작스런 남편의 행동에 당황해 하며 주머니에서 호출기를 꺼냈다.


“남편 분, 그만, 그만 하세요. 자꾸 그러시면 밖에 있는 관리사 분들을 호출합니다.”


남편은 잡고 있던 아내의 목 칼라를 서서히 놓았다.


“제가 한순간의 잘못으로 딸자식도 하늘로 보내고, 집안을 이리 어지럽게 만든 것이 어느 정도 제 잘못인 것은 인정합니다. 지금도 백배 사죄하고 있고요. 그 친구하고도 이미 정리를 했습니다. 물론 저보다 제 돈을 더 좋아했겠지만, 그래도 그 친구랑 있을 때는 새로운 인생을 다시 얻은 것 같았어요. 여태까지 회사와 가정에서는 느끼지 못한 전혀 새로운 행복이었죠. 간만에 남자로서의 의욕도 생겨났고요. 그래도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더군다나 딸애가 이 사실을 알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요.”


“우연히 두 분이 밖에서 같이 있는 것을, 따님에게 목격 당하신건가요?”


“예, 세상도 참 좁죠, 제가 만났던 그 친구가, 딸애의 같은 과 후배였다 네요.”


가운을 입은 남자가, 남편의 마지막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남편 분 이야기는 더 이상 그만 듣도록 하죠, 아내 분께서는 고부간의 갈등도 있으셨다면서요?”


“네 원래 남편 쪽이 대대로 아들이 귀한 집안이어요. 더군다나 딸까지 저세상으로 가버리니, 시어머니께서 아들을 거의 하늘처럼 떠받들고 계세요. 아들놈은 점점 버릇만 없어져서 매일 방구석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고, 심지어 당신이 오냐오냐 하셔 놓고 우리 집은 불안해서 더 이상 안 되니까, 제 아들놈을 자기 집에 데려가 사시겠다고 선전포고를 하셨어요. 선생님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긴가요? 제 아들의 엄마는, 이이의 어머니가 아니고 바로 저라고요.”


“그렇다면 일단은 아드님을 시댁에 보낸 다음, 시어머님하고 다시 정식으로 얘기를 한번 해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사실 지금의 가정 상황으로는, 아드님께서도 쉽게 적응하기가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또 자칫 게임중독이나 히키코모리 초기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요.”


아내가 얼굴을 들어 단호하게 말했다.


“사실 제가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먼저 들어가려고 했어요.”


“아, 예 친정이 어디이신가요? 댁 하고 좀 가까우신 편인가요?”


“저희 집하고 그렇게 멀지는 않아요. 중국인데요.”


“예?”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제 친정이 중국입니다. 저는 학교 유학 때문에 한국에 일찌감치 나와 있어서, 한국어 구사에는 문제가 없어요. 사실 남편도 중국에 사업차 방문하였다가 저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죠.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세상에, 처가가 멀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사위가 되서 친정에 제대로 찾아뵈러 간적도 없어요.”


남편은 그 소리를 듣고 다시 발끈했다.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꼭 필요 한 것 이외에는 서로 관심을 갖지 말자고 말한 건 바로 너였잖아? 안 그래? 아, 그리고 아까부터 꼭 나 때매 딸년이 죽은 것 같이 얘기하는데 꼭 그 것 만은 아니었잖아?”


가운을 입은 남자가 대화 중간에 끼어들었다.


“두 분 가족 사이에 제가 모르는 또 다른 문제가 있나요?”


남편은 갑자기 나지막한 목소리로, 따님의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땐 몰랐는데,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 딸애의 성 정체성이 다른 친구들과는 조금 틀리는 게 확실히 보였습니다. 남자친구를 한창 사귈 나이에 졸업하면, 자기는 여자 친구와 살 거라나, 어쩐다나.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뺨을 한두 번 때렸더니, 바로 그 다음날, 자기 방 베란다에서 뛰어 내렸어요. 아빠인 제 심정이 어떻겠어요? 그 이후론 가지고 있던 제 사업체들도 대부분 다 정리 했고요. 이제는 저에게 남은 가족들이라도 잘 케어 하면서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음... 그렇군요.”


“그래서 사실, 오늘 여기에 오는 것도 내키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을 다시 만들고 싶어서 아내를 따라 온 것이고요, 선생님 제발 치료 좀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이 사람과 이혼까지는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랜만에 아내를 좀 괴롭혀주고 싶은 뿐 이죠”


가운을 입은 남자가 비로소 웃으며,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남편 분께서도 처음과 달리 반성을 많이 하시는 것 같고요, 아내분도 그동안 속에 쌓여있는 불만들을 오늘 대부분 다 토로하신 것 같네요.”


                                                                           ***


환한 표정의 가운 입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컴퓨터 위에 달린 웹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켰다.


“자, 사전에도 충분히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오늘 오신 두 분의 상담 케이스를, 지금 전 세계 부부상담 학자들이 저 웹캠을 통하여 라이브로 시청하고 있습니다. 남편분과 아내분의 케이스는 정말 특이하게도, 배우자의 불륜이나 자녀 사망, 퀴어 문제, 게임 중독, 고부간의 갈등 및 다문화가정의 문제까지 정말 다양한 가족 문제를 모두 안고 있는, 전 세계에서도 정말 찾기 힘든 특이한 사례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가운 입은 남자의 갑작스런 칭찬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말 오늘 참가해주신 두 분의 이야기가, 앞으로 전 세계의 부부상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획기적인 단초가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아무튼 오늘 이 케이스 상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남편과 아내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편과 아내는 마지못해 앞의 가운 입은 남자의 인사를 받으면서도, 얼굴들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자, 이제 상담 다 끝났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시고요, 아, 오랜 시간 상담 받으시고 피곤 하셨을 텐데, 저 뒤에 침대에서 조금 쉬었다 가셔도 됩니다. 저 침대가 저래보여도 제법 쓸 만하거든요. 매트 스프링 탄력도 썩 괜찮고요”


남편이 앞의 가운 입은 남자가 말한 간이침대를 힐끗 보더니 말을 꺼냈다.


“저, 선생님, 지금 이 상담이 전 세계에 라이브로 시청이 되고 있다고 하셨죠?”


“아, 예, 지금도 다들 시청하고 계실 겁니다. 저희가 웹캠에다 마무리 인사를 아직 안 드렸으니까요”


진짜로 터져 나올 듯한, 얼굴이 된 남편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운 입은 남자에게 소리를 쳤다.


“너는 그렇게 잘나서 유부녀인 내 마누라 하고, 여태까지 바람을 펴왔냐? 이 썩을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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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서 있던 흰 가운의 관리사가 안쪽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밖에 설치되어 있는 전등 스위치를 조절해 안의 조명을 야릇한 핑크 빛으로 바꾸었다. 상담실 출입문 작은 창 사이로 핑크 색깔의 빛들이 아름답게 비춰지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정리 해야겠네?’


병원의 관리사가 창문으로 안의 모습들을 확인 후, 작은 창에 달린 조그마한 검은색 천을 커튼처럼 ‘주르륵’ 내려버렸다.


[환자 3명, 역할 놀이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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