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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제8 접견실과 해바라기
게시물ID : mystery_93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윤기사
추천 : 0
조회수 : 119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5/11 00: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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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건물의 제8 접견실, 오전.


접견실 안의 창가 주변으로 여러 가지 꽃들과 각종 화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가운데 회색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고 한 편에는 동훈이, 다른 한편에는 27인치 이상 되어 보이는 큰 모니터와 그 앞에 검은색 무선 마우스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동훈이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검은 모니터가 환하게 켜지며 원형 백자 화분에 담긴 커다란 ‘해바라기’ 꽃의 모습이 보였다. 뒤이어 모니터 스피커에서 여성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 안녕하세요. 이동훈 씨”


동훈은 갑작스러운 말소리에 놀라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웬 해바라기 사진이 보이더니, 스피커에서 제 목소리까지 나와서 좀 놀라셨죠?”


“아, 예, 그래도 해바라기 사진은 저번에 만날 때와 같아서 이제는 친근하기까지 하네요.”


스피커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동훈도 같이 살짝 웃었다.


“자, 오늘도 여기 접견실에 오셨으니까, 사용 방법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록 제가 맘대로 움직이고 못하고 동훈 씨와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도 할 수 없지만, 누워 있는 제 머리 위에 설치된 의식 뇌파 변환기를 통해

저의 잠재된 의식 뇌파가 목소리를 변환돼서 동훈 씨에게 지금 이렇게 전달이 된 답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고 이렇게 간접적으로 하는 저와의 의식 접견이 자칫 부실해지지 않을까? 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 접견실 곳곳에 설치된 소형 카메라를 통해, 이 병원의 전문 의료진들이 다른 방에서 이동훈 씨의 모습을 보면서 바로바로 도와드릴 것이니까요.”


“그렇군요. 다들 지금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시는군요?"


“예~ 그리고 처음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병원에서는 동훈 씨 같은 접견자분의 심리상태를 굉장히 중히 여기기 때문에, 동훈 씨는 진행에 따른 희망 여부를 그때그때 화면상으로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모니터 앞에 놓여 있는 검은색 마우스 보이시죠?”


“아, 예”


동훈은 모니터 앞에 놓여 있는 검은색 무선마우스를 쳐다보았다.


“화면의 보기를 보시고 마우스를 움직여서 ‘그대로 진행’ 또는 ‘그만하겠습니다.’ 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만약, 접견 중간에 심적 변화나, 심한 우울감 등으로 종료하고 싶은 생각이 드시면, 화면 맨 왼쪽 아래의‘나가기’ 버튼을 바로 클릭해주세요. 그러면 자동으로 모니터 화면은 꺼지게 되고, 접견실의 불이 환하게 켜지며, 들어오셨던 문이 다시 열릴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 푹 놓으셔도 돼요.”


“예, 잘 알겠습니다. 해바라기 님”


“그래요, 동훈 씨. 저도 잘 부탁합니다. 그럼 접견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요? 혹시 동훈 씨가 오늘 어떤 이야기를 하러 여기까지 오셨는지? 한 번 더 천천히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화면 속 해바라기의 말의 끝남과 동시에, 모니터 화면에서 ‘그대로 진행’과 ‘그만하겠습니다.’의 보기 내용이 보였다. 동훈은 좀 전의 설명대로, 앞의 마우스를 움직여서 ‘그대로 진행’을 화살표를 움직여 선택하였다.


“여기서 그동안의 제 못다 한 이야기를 해바라기 님에게 꼭 말씀 해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해바라기 님께서도 정말로 제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거 맞으시죠?”


스피커에서 ‘킥킥’웃는 소리가 들렸다.


“동훈 씨는 지금 제가 안 보이시겠지만, 저는 지금 바로 옆방에서 동훈 씨랑 마치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잘 알아듣고 있어요. 저도 얼른 동훈 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아, 예, 고맙습니다. 음…. 저에겐 사랑하는 아내와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한 명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사고로 일찍 돌아가시어 친척들 손에서 자라게 된 저는, 화목한 가정을 빨리 꾸리고 싶은 욕구가 강했습니다. 그녀와는 대학교 때 소개팅에서 만났는데, 보자마자 ‘내 여자다.’ 싶더군요. 정말 옛날부터 꿈꿔오던 저만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데 손색이 없을 정도로 참하고, 가정적이고, 항상 저만을 바라보던 해바라기 같은 여자였어요."


"그러셨구나?"


“사실 부모님도 돌아가셨고, 제가 가진 재산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장인이 중견 식품회사의 대표로 계시는 처가 쪽에서는, 저희의 결혼을 무척이나 반대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처가 쪽에서 너무나 완강하게 나오니, 사실 그 사람도 저와의 결혼을 위해선 집안까지 등져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다행인 것인지, 비록 속도위반이지만 그 사람이 제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저희는 마지못해 허락한 처가 분들을 모시고, 그토록 원하던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음. 정말 마음고생 많으셨겠네요.”


“결혼 이후,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고, 작지만 제가 직접 마련한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드디어 저만의 완벽한 가정이 만들어졌어요. 정말 남들보다 두 배는 열심히 일했고, 집에 와서는 아이와 최선을 다해 놀아주면서, 그 사람과의 결혼생활을 멋지게 꾸려갔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동훈의 말의 끝남과 동시에, 모니터 화면에서 ‘그대로 진행’과 ‘그만하겠습니다.’의 보기 내용이 또 나타났다. 아마 동훈이 너무 집중하여 이야기한 나머지, 급격한 심적 변화를 일으켰던 모양이었다. 동훈은 아까와 같이 앞의 마우스를 움직여서 ‘그대로 진행’을 화살표로 선택하였다. 선택하자, 모니터에서 다시 해바라기 사진이 나타나며, 그녀의 친근한 말소리가 들렸다.


“그래서요?”


동훈은 잠깐 뜸을 들렸다.


“아~, 먼저 ‘그대로 진행’을 선택하셨어도, 마음이 정 불편하시면 꼭 얘기 안 하셔도 되요. 아니면 다시 ‘나가기’ 버튼을 클릭하여서, 다음에 다시 오셔도 되고요.”


“아, 아닙니다. 그날도…. 제가 요리 솜씨를 좀 발휘할 겸 해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간식으로 면 요리를 직접 만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불과 제집 앞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그 놀이터에서 아이가 그만 실종을 당했어요.”


“그, 그래요?”


“물론 경찰에 바로 아이 실종 신고를 했죠.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헤어진 후에 사라졌다는데, 경찰에서는 평소에 딸아이와의 관계는 어떠했냐고? 오히려 저에게 재차 묻더군요. 혹시 가출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나 봐요. 제가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제 아이를 데려간 그 유괴범이 어떠한 조건도 저희에게 끝내 제시하지를 않았어요. 그 어떤 요구의 전화 자체가 아예 오지 않았으니까요.”


“...”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날짜는 계속 지나가는데, 아이 아빠로서 참으로 답답하고 미치겠더군요. 차라리 저희에게 돈이라도 요구했으면, 처가 쪽에게 부탁하던지 해서, 어떻게든 돈은 마련했을 텐데…. 결국, 아내도 자기가 그날, 아이와 같이 놀이터에 나가지 않아서, 딸애가 유괴당한 거라고 자책만을 거듭하다가, 그만 견디다 못해 집 아파트 베란다에서….”


“그, 아~ 그런 거였구나…. 그럼, 그 아이는 요? 결국?”


“실종된 날로부터 두 달이 막 지났을 무렵, 처음 실종 신고를 했던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어요. 놀이터 인근 야산에서 딸애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요. 제가 시신 안치실에서 딸아이의 잠든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정말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못 해보고 딸아이를 이렇게 차가운 안치실에서밖에 볼 수 없었던 저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고 스스로 한심하더군요.”


“방금 그 말이…. 정, 정말인가요?”


“저도 드디어 저만의 행복한 가정을 이루나 싶었는데, 더도 덜도 아닌 그저 남들과 비슷한 보통의 삶을 살고 싶었는데, 딸아이 크는 거 보면서 아내랑 알콩, 달콩 작은 행복들을 누리고 싶었는데, 단지 그게 다였는데, 왜 저는 그마저도 불가능한 것이었을까요? 애초에 저는 그런 것들도 함부로 꿈꾸면 안 되는 사람이었을까요?”


갑자기 스피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아내분은? 그 사실을…?”


“아직까지는…. 딸애가 그렇게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차마 못 했어요. 몸과 마음을 닫고 있는 아내에게 정말 할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아이가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 그렇게 하늘에 빌고 또 빌었건만….”


동훈의 눈에서 눈물이 천천히 고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런 소소한 행복을 바랐던 제가 정말 그리 이기적인 걸까요? 혹시 용기를 낸다면 아내와 예전처럼 다시 시작해볼 수 있을까요? 아니 전혀 새롭게 시작을 해도 좋아요. 아내가 진짜로 깨어나서 저와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요”


동훈의 말의 끝남과 동시에, 모니터 화면에서 ‘그대로 진행’과 ‘그만하겠습니다.’의 보기 내용이 다시 나타났다. 동훈의 감정 상태가 순간 너무 격했던 것을, 이 방의 센서들이 감지한 것 같았다. 동훈은 아까 와 같이 마우스를 움직여서 ‘그대로 진행’을 선택하였다. 모니터에서 다시 해바라기 사진이 나타났다.


동훈은 갑자기 방안의 CCTV 카메라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동훈이 갑자기 자기의 휴대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예전 가족사진 한장 찍어왔어요. 보여드릴게요.”


휴대전화기 안에 저장되어 있었던 동훈의 단란했던 가족사진을 모니터에 앞에다 보여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동훈은 들고 있던 휴대전화기를 내리고는, 앞의 모니터를 쳐다보며 아내에게 마지막 말을 하였다.


'그 쓸쓸한 방에서…. 버려진 ‘해바라기’ 마냥, 혼자 떨지 말고…. 이제 그만 당신을 보내줄까 해.'


'정말…. 정말…. 당신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남편으로서 정말, 정말 미안해!'


                                                                               ***


동훈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제8 접견실을 나와 건물의 통로로 지나가면서도 바로 옆 병실을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인공호흡기에 강제 연명을 당하며, 10년 동안이나 불쌍하게 홀로 누워있었던

나의 아내가 있는 바로 그 병실을...


 

동훈은

복받치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통로 끝에 서 있는 주치의 선생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선생님. 제 아내, 마지막 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서기 2030년.


뇌사자의 지속한 병간호와 늘어만 가는 각종 병원비 등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게 된 유족들의 오랜 청원을 정부에서 받아들여,


가족들이 신청할 경우, 여기 제 8 접견실에서 환자의 안락사(적극적 존엄사)를 즉시 허용할 수 있다는 법안이

여, 야 정치인들 간의 격렬한 논쟁 속에 통과되었다.


그런데, 그 인간의 죽음을 과연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의 삶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행해져야 하는가?

그럼, 법으로 통과된 안락사의 기준(도저히 소생할 가망이 없는 환자) 등은 누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의료인이기만 하면 그것을 결정하는 것에 정말 문제는 없는 것인가?

또한, 자기 목숨을 자기가 맘대로 할 수 있을 권리까지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하지만,


평생을 누워있을지도 모르는 환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죽은 자의 죽음과, 산 자들이 마지못해 살아가는 것들이

너무나 무섭고 두렵기에,


인간의 삶은 어느 SF 영화처럼 그 스스로가 직접 되어보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기에,

인간의 죽음이 어떤 방법으로든 인간에게 선택되어 질 권리가 있다고, 후세들은 그렇게 결정지었다.


                                                                            ***


그렇게 동훈의 아내는 정부의 공식적인 적극적 안락사 1호 환자로 승인되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의식 뇌파에서는, 약물이 몸 속의 혈관을 타고 들어가 완전하게 심정지를 일으키고,

폐 속에서 호흡이 완전하게 정지되고 나서도,


동훈에게 그녀는 제8 접견실의 검은 모니터 화면 속에서

지지 않는 해바라기의 모습으로 계속 남아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

 

이것이 이 건물에서 계속 전해져 내려오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버린 '제8 접견실의 해바라기' 이야기 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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