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도술을 부려 공간을 이동한 거지
게시물ID : mystery_94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가입:2015-01-12 방문:1314)
추천 : 13
조회수 : 340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1/07/27 22:12:39
옵션
  • 펌글

  때는 헌종 임금이 즉위한 지 2년이 되는 1836년, 지금의 평안남도 상원에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진사를 뽑는 과거 시험에 합격한 것을 기념하고자 4명의 유생들이 기생집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웬 지저분한 차림의 거지 한 명이 무턱대고 들어와서는 "나도 돈이 있으니, 술과 안주를 사서 이 잔치에 끼고 싶소."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처음엔 비웃었으나, 곧바로 거지가 자기 옷 속에서 정말로 돈을 계속 꺼내자, 모두 놀라며 할 말을 잃었습니다. 돈 자랑을 하며 우쭐해진 거지는 기생을 시켜 술과 고기를 사서 잔칫상에 올리게 했고, 그런 거지를 신기하게 본 기생 한 명이 나서서 장난삼아 물어보았습니다.

 

  "술과 고기를 살 돈이 있다면, 혹시 악양루를 구경시켜 줄 수는 있나요?"

 

  그러자 놀랍게도 거지는 수긍하였습니다. 

 

  "그렇소, 여기 계신 분들이 보고 싶으시다면 그까짓 악양루 구경 쯤이야 얼마든지 시켜드릴 수 있지요."

 

  그리고 나서 거지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 방 안으로 가져오도록 했고, 말한 그대로 물이 채워진 항아리가 도착하자, 방 안의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모두 물이 담긴 이 항아리를 쳐다보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말에 따라 항아리를 쳐다보니, 갑자기 기생집이 사라지더니 주위를 온통 큰 바다가 차지하고 그들은 작은 나룻배 위에 앉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 다들 당황해하는 와중에 배는 두 명의 어린 뱃사공이 노를 젓고 피리를 불면서 물 위를 천리나 미끄러지듯이 달린 끝에 여러 층의 누각이 세워진 푸른 벽 아래에 멈춰섰습니다. 거지는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여기가 바로 여러분이 가고자 했던 악양루라오."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기생과 유생 일행들은 자신들의 눈을 믿지 못하면서도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난생 처음보는 풍경에 신기해했습니다. 

350j180000013ydt4020F_C_500_280_Q80.jpg

unnamed.jpg

  악양루에 올라온 일행들을 상대로 거지는 이곳의 지명들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저 누각 밖에 보이는 하늘에 닿을 정도로 치솟는 거센 물결은 바로 동정호이고, 허공을 찌를 듯이 올라온 봉우리는 군산이고, 아름다운 대나무가 강 기슭에 늘어서 있는 것은 소상강이고, 구름 속에 엉킨 전각은 황능묘라오."

 

  거지가 알려주는 유명한 장소들을 볼 때마다 일행들은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 5명이 온갖 음식과 술이 담긴 잔칫상을 들고 누각 위로 올라와 일행들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니,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진귀한 산해진미라서 마치 신선들이 먹는 하늘나라의 음식 같았습니다. 그 중에서 거지는 노란 귤을 쥐더니 "이것이 동정호에서 나는 귤인데, 매우 달고 맛있다오."라고 말했습니다. 귤을 본 기생은 3개 정도를 집어서 치마폭에 넣고는 거지한테 물어보았습니다.

spring-citrus-care.png

  "이곳에서 조선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그러자 거지는 "한 1만 리 정도가 넘소이다."라고 말했고, 이에 놀란 기생은 "그러면 어떻게 조선으로 돌아갑니까?"라고 말하자, 믿어지지 않게도 기생들과 거지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신들을 악양루로 데려다 준 거지가 감쪽같이 없어지자, 유생들은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이 먼 곳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가?"라고 울부짖으며 슬퍼했습니다. 

 

  헌데 한참 동안 통곡을 하던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오? 정신들 차리시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 보니, 악양루는 온데간데 없고 그들은 원래 있었던 기생집의 방에서 큰 궤짝 위에 기생들과 함께 앉아서 서로 울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그들은 한약을 먹는다며 온갖 난리를 떤 끝에야 제정신을 차렸는데, 그들을 악양루로 데려다 주었던 거지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기생 한 명이 가지고 왔던 동정호의 귤 3개는 그 기생의 치마폭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사실 거지는 순식간에 조선과 중국 동정호를 오갈 수 있는 도술을 가진 일종의 도사였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공간이동'이라고 해야겠는데, 그저 항아리에 담긴 물을 쳐다만 보는 것으로 1만 리나 되는 공간을 단숨에 뛰어넘은 것이니 대단히 강력한 도사인 셈이었습니다. 

 

  또, 거지한테 어떻게 조선으로 돌아가냐고 기생이 질문을 하자 기생들만 거지를 따라 사라졌다는 부분에서 거지는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만 따로 공간 이동을 시킬 능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지를 따라 악양루에 온 일행들을 맞이한 뱃사공과 여자들은 거지가 만들어낸 하인이거나 아니면 신선 세계에서 불러온 도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출처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398~400쪽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게시판요청 자료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