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추리소설 연재(2) "월곡(月哭) 저수지 살인사건"
게시물ID : panic_1002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eyman
추천 : 2
조회수 : 4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5/20 12:00:58
옵션
  • 창작글
2
크르릉!
수고산이 한바탕 울었다. 산이 운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지만 이 산을 아는 사람들은 산 울음이 맞다고 했다. 엄밀히 따지면 이건 산이 우는 것이 아니라 정상에 위치한 구멍 난 바위에 바람이 스치면서 나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는 소리로 표현하는 것은 한국전쟁 때 산으로 피신한 사람들이 그곳을 습격한 공비들에 의해 전원 희생된 원혼들이 통곡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이 산이 우는 시기는 거의가 비바람이 스치는 날이기에 더욱 그리 믿은 것이다.
오늘도 한바탕 몰아 칠 기미라 작업은 틀렸구먼.”
쓰러질 듯한 흙집 안방 문을 열고 나온 오영감이 수고산 정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금방 쏟아질 것 같지는 않는데요.”
이어서 나온 용인댁이 역시 수고산 정상을 보며 말했다. 용인댁은 70대 중반으로 유난히 허리가 굽어 보였다. 집안 형편이 말해주듯 퇴색한 스웨터에 몸배바지를 입고 있었다.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오영감은 회색 작업복 상하에 새마을 모자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두 사람 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어 요즘 시대 패션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 그물은 언제 건져요? 벌써 사흘이 지났는데....... 게다가 쌀도 떨어져 간데......”
용인댁은 마루에서 내려와 주변을 정리하다 말고 오영감을 쳐다봤다. 오영감은 삽으로 처마 밑에 빗물 골을 내다말고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 조건에서 작업한다는 것은 위험해.”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비가 금방 쏟아질 것 같지 않는데요?”
그럴까?”
그래요. 그러니까 빨리 가서 한번 건져 옵시다. 더 방치하면 잡은 고기 태반이 죽어 제 값을 못 받으니까요.”
허긴 그래. 그럼 아침은 나중에 먹고 서둘러 다녀오세.”
.”
말을 마친 오영감은 삽을 한 쪽에 세워놓고 마루 밑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용인댁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오영감은 마루 밑에서 낡은 장화 한 켤레를 끄집어 내 조심스럽게 신었다. 여기 저기 수리한 흔적이 역력했다. 잠시 후 양동이를 든 용인댁이 부엌을 문 닫고 다가왔다.
갑시다.”
전화기는 챙겼어?”
전화기는 뭐하라고요. 잘 터지지도 않는데!”
무슨 소리여. 고것이 우리의 최후 비상수단인데. 잘못해서 스티로폼 배가 뒤집혀 물에 빠지면 자네라도 연락해야 쓸 것 아녀!”
그러긴 하지만. 여기서도 잘 안 터지는 전화기가 짐만 되니까 그러지요.
아녀. 저수 쪽은 읍내하고 가까우니까 그런대로 터진다고.”
가깝다고는 하지만 오십 리길은 넘는데다 날씨도 요렇게 지랄 같은 데.....”
거참. 왜 그래. 아침부터! 나 뒤지면 시집 한 번 더 갈라고 그러는 것이여!”
고건 또 무슨 말이래요? 다 늙은 망구탱이를 누가 데려 간다고.”
그러니까 잔소리 말고 얼른 가져와! 동호 놈이 집에 모셔두라고 사준 거 아니니까!”
오영감은 토를 다는 용인댁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러자 용인댁도 질세라 소리쳤다.
왜 고 녀석 얘기는 꺼내고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꿈에 밟혀 죽겠는데.”
내가 꺼내려고 해서 꺼냈나. 할망구가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그랬지!”
몰라요! 몰라! 그나저나 끼니는 잘 챙겨먹고 있는지.... 모든 게 우리 탓이야.....”
용인댁은 자신도 모르게 흐른 눈물을 애들처럼 옷소매를 들어 훔쳤다. 오영감은 이런 그녀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뭐가 우리 탓이야! 다 지가 걸머진 운명이라고! 막말로 우리가 고런 년 만나라고 그랬나. 우리 말 안 듣고 결혼해서 새끼도 집도 다 빼앗겼잖아! 어디 그뿐이어! 지 반편이 된 건 뭐고!”
그만해요! 갖다 주면 될 거 아녀!”
용인댁은 신경질 적으로 신발을 팽개치듯 벗어 던지고 마루에 올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사람 성질하고는......”
오영감은 용인댁이 벗어던진 신발을 주어다 댓돌이 올려놓았다.
크르릉!
또다시 산울음 소리가 들렸다. 오영감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광 옆에 세워 놓은 지게에 두 개의 때 낀 각목이 담긴 마대포대와 양동이를 얹었다.
여기소!”
용인댁이 아직도 못마땅한 소리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자네가 목에 걸어! 난 잘 뵈지도 않으니까.”
오영감은 묵묵히 지게 끈에 팔을 끼고 일어나 지팡이를 들었다. 용인댁은 묵묵히 핸드폰의 줄을 늘어뜨려 목에 걸었다.
가더라고!”
용인댁은 말없이 뒤 따랐다.
저수지 쪽으로 들어서자 물안개가 발목을 휘감았다. 오영감과 용인댁은 발목에 휘감긴 안개를 풀어 헤치듯 보폭을 높였지만 소용없었다. 되레 크고 작은 이슬방울이 장화 목까지 휘어잡고 흘러 내렸다.
저수지 둔덕에 올라서자 수면위에 입김 같은 수증기가 아른 거렸다. 장관이었다. 마치 커다란 온천을 연상케 했다. 언제 조성된 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호수처럼 넓은 이곳은 근처 마을의 자랑 거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농사의 첫 번째 조건이 물이기에 변변한 저수지 하나 없는 타 지역 사람들은 늘 부러워했다. 그러나 수입쌀 개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농사를 포기하고 떠나 지금은 단둘이만 남아있다. 하지만 노송과 어우러지는 풍광하나는 한 폭의 산수화 같았다. 그래선지 들리는 소문에 저수지에서 시오리 정도 떨어진 곳에 선거공약대로 고속도로만 뚫린다면 이곳에 호텔을 세우겠다는 업자가 나섰다고 했다. 그러나 고속도로 공사가 시작 됐지만 아직 미동도 없는 것으로 보아 손익계산이 안 맞아 포기 한 듯싶었다. 이곳까지 길을 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 발 치에 널판자로 대충지은 막사가 보였다. 이 막사는 언젠가 이 월곡 저수지가 낚시꾼들의 각광을 받을 때 관리를 목적으로 지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방치되어 오영감이 대충 수리에 사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어때요?”
막사 앞에 도착한 노안 댁이 막사 안에서 스티로폼 배를 어렵게 끄집어내는 오영감에게 물었다.
한두 군데만 긁어내면 되겠는데.”
오영감은 애써 끄집어 낸 스티로폼 배를 바닥에 팽개쳤다. 그건 배라기보다는 두꺼운 널빤지처럼 생긴 것이었다. 단지 널빤지와 다르다면 직사각형 가장 자리를 역시 두터운 스티로폼으로 덧붙여 물이 들어오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장을 덧대 왜소한 두 노인이 타도 전복될 문제는 없어 보였다.
어디를 물어뜯었는데요?”
용인댁이 스티로폼 배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물었다.
똥구멍 쪽에.”
오영감은 손가락으로 스티로폼 끝을 가리키곤 잡고 있던 지게에서 각목이 든 마대포대와 찌그러진 양동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용인댁은 오영감이 가리킨 쪽으로 다가 갔다.
참말로 싸가지 없는 것들이네요 우리하고 무슨 원수가 졌다고 남의 생계수단을 물어뜯고 지랄이여!”
그러니까 말이여!”
그들의 말대로 스티로폼 후미의 중간 부분이 한 움큼 뜯겨 나가 있었다. 아마도 이곳 저수지에 서식하는 설치류가 자라나는 이를 갈려고 물어뜯는 것 같았다. 원래 나무를 긁거나 갉는 게 이들의 습성인데, 아마도 나무로 착각한 듯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에 달라붙는 파란 이끼가 달라붙어 그렇게 보였다. 그렇다고 조치할 방법이 없는 두 노인은 계속 구시렁거리며 스티로폼 배를 저수지 턱까지 끌어 올린다음 저수지 가장자리에 띄웠다.
퍼뜩 타!”
.”
용인댁이 몸배 바지를 어느 정도 걷어 올리더니 능숙하게 배 중심에 앉았다. 뒤이어 오영감이 양동이와 낡은 마대자루를 들고 올랐다.
그물을 놓은 게 저쪽이지!”
오영감이 건너편 물가를 가리켰다. 그곳은 나무가 빽빽이 서 있어. 걸어서 접근하기 어려운 곳으로 보였다. 게다가 커다란 바위와 맞닿아 있어 만만치 않았다.
맞아요. 저쪽이에요.”
그럼 퍼뜩 가더라고!”
오영감은 마대포대에서 각목을 꺼냈다. 그건 그냥 각목이 아니라 끝에 쇠죽 쑬 때 쓰는 커다란 나무 주걱이 끝에 달려 있었다. 아마 노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오영감은 스스럼없이 스티로폼 중간 지점 양쪽에 설치된 문고리 같은 곳에 주걱 노를 끼더니 저었다. 놀랍게도 전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스티로폼 배가 서서히 움직였다. 앞으로 나아갈 때 마다 물결이 좌우로 갈라졌다. 물안개도 좌우로 퍼졌다.
얼마나 나아갔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용인댁이 뭔가 발견한 듯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것이 뭘까요?!”
뭐가?”
저기!” 수초사이에 보이는 마대포대요! “
어디!”
오영감은 노 젓기를 멈추고 망원경을 꺼내 보듯 양손을 모아 용인댁이 가리키는 쪽을 살펴봤다.
글쎄 나는 잘 안 보이는데!”
그럼 조금 더 가 봐요.”
그럴까?!”
오영감은 멈췄던 노를 다시 저었다. 배는 또다시 물결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마대포대 가까이 다다랐다. 물풀사이로 마대포대가 선명하게 보였다.
저것이 뭘까?!
용인댁이 유심히 살피며 오영감을 쳐다봤다. 마대포대는 입구가 풀어진 채 풀숲에 놓여 있었다.
저 것은 마대 포대 아녀!”
 

<계속>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