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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여행-초대받은 사람들 9
게시물ID : panic_1005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ㅣ대유감
추천 : 3
조회수 : 7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7/23 09: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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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캐리어 세 개를 부치고 작은 가방 하나씩을 들고 비행기로 향했다.
45일 동안 계획대로 맛있는 거 먹고 이국적인 코스를 돌며 꽉 채운 일정을 보낼 것이다.
생각만 해도 짜릿해 졌다.
나란히 자리에 앉아 조용한 소리로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보다 만배는 설레는 순간이었다.
탑승 전 나눠마신 와인 한 병 때문인지 비행기가 궤도에 오르자 스르르 잠이 들었다.
주아가 조용히 흔들어서야 잠이 깼는데, 아래로 이국적인 풍경이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짐을 찾아 비행기에서 못 다한 수다를 떨며 높은 웃음을 웃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같은 비행기 타고 오셨나 보네요. 한국에서 오셨죠? 저도 한국에서 왔어요. 반가워서요..”
너털웃음을 웃는 아저씨는 괌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갔다가 오는 길이라며 숙소까지 자기차로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어머~너무 친절하시다. 건비치에 있는 NK호텔아세요?”
시연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물론 잘 알죠. 하하하하 원래 외국 나오면 같은 국민끼리 서로 돕고 그러는 거죠. 마침 제 회사와도 멀지 않으니 태워다 드릴게요.”
낯선 곳에서 좋은 분 만나 다행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주아까지 인사를 하자 나만 뻘쭘하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라서 용기가 났다. 우리들의 첫 여행이니 무조건 행복하자!
객실에서 내다 본 바다는 에메랄드 빛 자체였다. 끝없는 수평선과 야자나무는 사진을 찍어도 담길 것 같지 않았다.
이곳은 바다도 예쁘지만 호텔의 수영장도 좋기로 소문이 났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을 뒤로 돌려도 좋을 만큼 배가 고팠다.
우리는 짐을 풀고 어중간한 밥부터 먹기로 했다.
점심은 이미 지났고 저녁은 아직 일렀지만 천천히 술 한 잔씩하며 먹다보면 왠지 운치 있을 것 같았다.
호텔 산책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 나가니 시내가 나왔다.
웹에서 찾아본다고 했는데도 막상 실물로 거리를 마주하니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그 때 반가운 듯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 여기요~ 이렇게 보니 더 반갑네요.”
우리를 데려다 준 아저씨였다.
어머! 어쩐 일이예요? 일하러 가신다더니.”
시연이가 깜짝 놀라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들어가 보니 이 사람들이 아직 점심도 못 먹고 일하고 있어서 일찍 끝내고 이른 저녁하러 나왔습니다. 여기 저희회사 직원들이예요.”
테이블의 아저씨 두명이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얼결에 따라 꾸벅 인사를 하자니 시연이가 앞으로 나선다.
저희도 오늘은 시내구경하며 밥부터 먹자고 나왔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요.”
그럼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하시죠. 제가 이 거리에서 제일 맛있는 집을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난 계속 시연이에게 눈치를 주며 소맷자락을 당겼으나 주아가 나서며 말했다.
그럴까요? 저희는 여기가 처음이라 아는 곳이 없어서요. 좀 무섭기도 했는데 다행이네요. 후훗.”
낯선 모습의 주아를 보니 내가 모르는 친구들의 모습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어린 시절의 친구들은 이젠 없을지도 모른다.
하는 수 없이 쫄래쫄래 따라가 고급스런 식당에 앉았다.
이런 식당은 주문을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해 더 낯설고 공포스러웠다.
주문은 제가 알아서 가장 맛있는 걸로 하겠습니다. 와인도 시킬 건데 다들 괜찮으시죠?”
그럼요~저희도 저녁 먹으며 가볍게 한잔 하려고 했거든요.”
저녁을 어떻게 먹었는지 여긴 어떻게 앉아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시연이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울려서 들려온다. 주아도 시연이도 바로 곁에 있는데 나만 다른 세계에 있는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괜찮으세요? 유강씨 괜찮아요?”
낯선 남자가 내 이름을 부른다.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 ...아저씨의 회사직원이라는....이름이 뭐였더라?
누구시더라? 이름이.....”
하하하하 이도진입니다. 여기 유강씨는 먼저 들어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많이 취하셨나봐요.”
어머, 얘가 언제 이렇게 취했지? 강아! 유강! 정신 좀 차려봐!”
아직 시간도 이른데 급하게 마셨나? 어떻게 하지? 우리 그만 들어갈까?”
그러지 말고 자네가 좀 모셔다 드리지 그래. 이 친구 성실한 친구입니다. 믿으셔도 괜찮아요. 객실까지 잘 모셔다 드릴 겁니다.”
그럴까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누군가가 내 팔을 어깨에 걸치더니 허리를 움켜잡았다. 걸음을 똑바로 걸으려해도 도무지 내 맘대로 되질 않는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괜찮은 걸까?
 

아침인가보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생수를 꺼내 단숨에 비웠다.
어찌된 일인지 주아와 시연이는 보이질 않는다.
어딜 간 거지? 안 들어 온 건가?
휴대폰을 들어 카톡을 확인하니 친구들은 이미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 있다고 했다.
부지런히 씻고 간편한 차림으로 내려가니 이미 아침을 마치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 둘의 모습이 들어왔다.
, 너 어제 어떻게 된 거야~”
눈을 살짝 흘기며 시연이가 말을 건네 왔다.
글쎄 말이야...나도 어떻게 된 건지 기억이 안 나서...”
속은 괜찮아? 어찌 된 건지 네가 일찍 취해버려서...그냥 일찍 헤어져서 호텔로 왔어.”
주아의 말에 미안해져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괜찮아 지지배야. 오늘 두 배로 재밌게 놀면 되지 뭐. 오늘은 바다도 나가고 수영도 하자. 얼른 아침 먹어.”
그래, 오늘은 술 조금만 마시고 진짜 열심히 놀기만 할거다. 히히히히 나 음식 가져올게.”
커피까지 마시고 준비해간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난 긴팔에 긴레깅스의 래쉬가드를 입었는데 시연이와 주아는 모두 상큼한 비키니 차림이었다.
역시 난 내 친구들을 잘 모르고 있었다.
시연이는 내가 준비해간 수영복을 보더니 손사레를 쳤다.
너 이런 거 여기서 입으면 쫓겨나! 에휴.....내가 두 개 준비 했기에 망정이지.”
시연이가 내민 수영복은 레이스가 달린 귀여운 투피스형 이었다.
노출이 심한 건 아니었지만 배와 등이 훤히 보이는 수영복을 내가 입을 수 있을지 망설여졌다.
여기니까 입을 수 있는 거야. 너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더구나 이 정도는 야한 것도 아니잖아~”
수영복차림의 우리는 호텔 앞 에메랄드 빛 바다에 뛰어들었다.
한가한 바다가 너무 좋았다.
햇빛에 살이 빨갛게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스노쿨링에 정신을 빼앗겼다.
산호밭까지 나아가자 새파란 물고기, 줄무늬 물고기들이 어우러져 다니고 파도 따라 출렁이며 떼를 지어 움직이는 물고기까지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수도 없을 만큼 바다 속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의 손이 눈앞에 불쑥 나타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제 저녁을 함께했던 아저씨 일행 중 한명이었다.
손짓으로 나가자며 해변 쪽을 가리키는데 언제 나갔는지 시연이와 주아는 썬베드에 누워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저씨를 따라 헤엄쳐 나가니 그제야 수영복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너 진짜 잘 논다. 히히히히 아침에 각오를 그렇게 하더니 어떻게 부르는데도 못 듣고 계속 혼자 다니냐!”
시연이의 놀리는 소리에 더욱 부끄러워져 몸 가릴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강아, 여기.”
주아가 커다란 타올을 건네주었다.
유강씨는 수영 좋아 하나 봐요. 저희 여기 온지 한참 됐는데 당최 나올 생각이 없으신 거 같아서 모시러 간 거예요. 도무지 배가 고파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니까요. 하하하하.”
어제 통성명을 했던 거 같은데 이름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친절한 아저씨가 웃으며 음료를 건넸다.
여기서 점심을 먹을까요? 아니면 씻고 시내로 나갈까요?”
다른 아저씨의 제안에 어리둥절해 졌다.
이건 우리만의 여행이었고 우리의 계획이 있었다. 갑자기 왜 이 사람들이 끼어들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주아가 내 손을 잡아 옆에 앉히며 말했다.
여기 호텔 수영장이 좋다고 해서 이쪽으로 잡은 거예요. 간단하게 점심 먹고 수영장에 가봐요.”
? 주아야 뭐라고?
주아를 보며 난 눈으로 열심히 의문을 나타내고 부정을 표현하고 있었지만 그 자리의 누구도 그런 내 눈을 신경 쓰지 않았다.
 

 

~! 저 미끄럼틀 너무 신나지 않아요? 전 열 번은 넘게 탄 거 같아요!”
불편한 나와는 달리 시연이는 무척 신나보였다.
바다에서와 달리 제대로 수영도 못하고 있는 내게 주아가 팔짱을 끼며 다가왔다.
그냥 외국이니까. 추억이라고 생각하자. 같이 놀면 돈도 절약되고 앞으로 일정에 교통편도 해결되고 좋은 점이 더 많잖아. 불편하다 생각하면 네가 더 힘들어져. 그냥 아무 생각 말고 재밌게 놀다 가자. ?”
주아의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내가 문제였다.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은 낯가림이 문제였던 것이다.
유강씨, 저랑 신난다는 미끄럼틀 한번 타고 오시죠.”
이도진이라고 자신을 다시 소개한 아저씨가 다가와 손을 잡았다.
순간 움찔 했지만 주아가 등을 토닥이며 슬쩍 앞으로 미는 바람에 따라 나선 꼴이 되었다.
유강씨는 참 착해 보여요. 말수도 없어 보이고. 해외여행은 처음인거예요?”
... 친구들과 첫 여행이라...”
어려워하지 말아요. 저도 여기서 일하며 이런 휴가는 처음이라 재밌게 놀고 싶어서요. 제가 친절하게 안내도 해드리고 잘 할 테니 좀 잘 봐주세요.”
오사장 아저씨보다는 어려보이긴 했지만 우리 삼촌과 비슷한 연배일 듯한 이 사람은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어려울 것 같았다.
아하하하하 어머 오빠! 그게 정말이야?”
시연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오사장 아저씨에게 안겨 물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주아를 찾으니 배가 불룩한 아저씨가 주아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수영장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내가 친구들을 몰랐던 것일까? 적응하지 못하는 내 잘못 일까?
해결되지 않을 혼란 속에 말문이 막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유강씨! 유강씨! 어디 아파요?”
몇 번을 불렀다는 도진씨가 내 어깨를 흔들 어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얼굴이 창백해요. 일단 나가서 좀 쉬어요.”
도진씨가 손을 잡아 이끄는 대로 걸어 나와 의자에 앉았다.
둘러보니 물속의 시연이는 아까보다 더 몸을 밀착시킨 채 연신 웃고 있었고, 물 밖으로 나온 주아는 썬베드에 누워 배불뚝이 아저씨가 발라주는 오일을 펴 바르며 역시나 웃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잘 못인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친구들이 저렇게 즐거운 데, 나만 불편한 건 역시 내가 이상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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