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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여행-초대받은 사람들 11
게시물ID : panic_1005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ㅣ대유감
추천 : 2
조회수 : 73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07/30 16: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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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있었다.
잠시 동안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정신을 바로하려 애썼다.
실오라기 같은 기억 하나가 잡힐 듯 잡힐 듯 코앞에서 아른 거렸다.
세상에..... 실오라기를 간신히 잡고 보니 기억의 타래가 풀려나온다.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가볍게 한잔 하면서 얘길 나누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고....그리곤 기억이 없다.
기억들은 조각조각 단편이 되어 사진처럼 컷으로 떠올랐다.
거친 손길이 옷을 헤치는 기억, 조금도 힘이 닿지 않았던 반항의 몸짓.
얼굴로 날아든 얼얼한 손바닥의 힘. 바닥을 뒹굴던 내 몸....전라의 몸....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거울 앞으로 갔다.
오른쪽 눈은 심하게 부어 잘 떠지지 않았고, 입술엔 피가 엉겨 붙어 버렸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엔 군데군데 멍이 들어 거울속의 내가 정말 내가 맞는지 지금의 모든 게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방문이 열리며 주아가 들어오다 멈춰 섰다.
아악!”
주아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며칠 째 시연이에게 전화가 오고 있지만 받을 수가 없었다.
괌여행을 끝으로 더 이상 시연이도 강이도 볼 수가 없었다.
각자 파트너와 밤을 보내고 우리 객실로 돌아와서 마주한 강이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엉망인 얼굴과 망가진 몸보다 다리 사이로 흐르던 핏자국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멍한 눈빛의 강이가 날 돌아보는 순간 그대로 정신을 잃었고, 어쩔 줄 몰랐던 난 이불로 강이의 몸을 가리고 시연이를 불렀다.
눈물이 계속 흐르며 정신이 없었다.
이대로 죽으면 어쩌나... 만약 잘못 되기라도 해서 나에게도 죄가 있다고 하면 어쩌지?
온갖 생각들로 손이 떨리고 진정이 되질 않았다.
시연이가 강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오사장을 불러 강이를 침대에 눕히고 수건을 적셔 온몸을 닦일 때에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신고해야 하나? 이 나라의 법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안 좋은 생각에 더 더욱 안 좋은 생각들로 빠져들고 있을 때 시연이가 소리를 꽥 질렀다.
너 뭐하는 거야! 일단 대충 짐 챙겨. 강이 일어나는 대로 떠날 수 있게. 그리고 오빤 비행기표 얼른 예약해줘. 주아야, 강이 여권도 좀 찾아줘. 표 예약하게.”
그래, 빨리 떠나야한다. 지옥으로 변한 이 곳을 빨리 떠나야 한다.
문 밖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새끼야! 그 버릇 또 나왔냐! 이 X신 새끼. 네가 다 망쳤잖아!”
술버릇이 그런걸 어떻게 하냐. 어제 저 년이 너무 반항을 하더라고. 다 내 잘못만은 아니야. 지가 방까지 불러들여놓고. 성질나게. 으이 ~~!”
나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너무 무서워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애초에 강이를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였다.
아니, 이런 세상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추잡한 일에 꼬여 버린 걸까?
언제부터 였을까? 가난이 문제였다.
아빠의 죽음이후 찾아 온 가난 때문이다.
난 돈이 필요했고, 성공을 해야 했다.
그래서 다단계에서라도 성공해야 했고, 닥치지 않고 사람들을 끌어 들였다.
결과적으론 남은 게 빚뿐이지만 사람들을 속였다는 죄책감보단 성공하지 못한 분노가 더 컸다.
그 때 성공만 했더라면 시연이의 말 같지 않은 제안은 일언지하에 거절 했을 텐데...
늙은 오빠의 돈이라도 좋았다.
힘들여 최저임금 받으며 하루 종일 서 있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내 눈으로 본 이 세계의 종착지는 바로 이런 모습일 테니까.
저기 누워 있는 게 강이가 아니라 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
다시 눈물이 나려했다.
정신들어? 강아~ 괜찮아?”
강이의 몸을 연신 닦던 시연이가 강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오사장에게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오사장이 조용한 걸음으로 밖으로 나가고 강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나 많이 아픈가봐.”
강아, 놀라지마. 너 많이 아픈 것 맞아. 우리가 돌아 와 보니 네가 바닥에 쓰러져 있어서.... 잘 모르고 해서 병원에도 못 갔어.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오사장님도 전화 안 받고....”
시연이는 뻔뻔스런 거짓말을 해댔다. 이번 일에 자신의 무관함을 보이고 싶어서겠지.
한 편으론 시연이의 뻔뻔함이 감사하기도 하다. 덕분에 나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 기억이 잘 나지 않아. 그냥....집에 가고 싶어.”
그래 강아. 안 그래도 비행기 표 제일 빠른 걸로 알아보고 있어. 우리가 다 준비할 테니 넌 누워있어. 좀 더 잘래?”
강이는 대답 없이 스르르 눈을 감았고 시연이는 재촉하는 듯한 눈빛을 내게 보낸 뒤 조용한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린 먹지도, 자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헤어지는 순간에도 그 흔한 손인사도 하지 않았다.
강이는 어떻게 됐을까? 시연이는 왜 자꾸 전화를 해대는 걸까?
 

 

 

오늘 꽃다운 세 명의 여자가 우리 펜션을 찾았다.
모두 너무 예쁘고 화사 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녀가 초대를 한 것 같았다.
그녀는 왜 그녀들을 내게 보낸 걸까?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 사연을 들어봐야 될 것 같다.
그래서 일부러 수영장으로 쫓아가 소주 한잔 같이 하자 너스레를 떨어 두었다.
이렇게라도 해둬야 중년의 아저씨가 들어갈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늘 여자들은 참 힘들다.
25년전, 나도 나름 꿈 많고 인기도 많은 공학도였다.
과 동아리와 봉사 동아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동기와 선배들에게 이쁨도 받고 애교도 많은 신입생이었다.
술과 유흥으로 대학 1학년을 멋지게 망치고 따발총 맞은 성적을 피해 군 입대를 결심하고 휴학을 했던 21.
단기 알바로 유흥비를 연명하며 휴학한 대학 근처 술집을 전전하던 그 때, 어느 날 아침이었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어 힘겹게 어머니를 불렀다.
내 딴엔 큰소리를 쳤는데, 나오는 건 모기만큼 가느다란 소리뿐이었다.
내 소리를 들어서가 아니라 날 깨우기 위해 방문을 여신 어머니는 다짜고짜 내 등짝부터 후려갈기시며 소리치셨다.
어디서 또 장난질이야! 얼른 일어나! 해가 벌써 중천이다.”
꺽꺽 거리는 내 모습을 한참 보시던 엄마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시며 놀라셨다.
에고! 이놈이 왜이래? 중하야! 정신 차려봐!”
부랴부랴 119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사이 난 거짓말처럼 온몸의 마비가 스르륵 풀렸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내 발로 구급차에서 내려 걸어 들어갔으니 내가 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구급대원의 설명을 들은 의사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몇 가지 검사만 해보자고 했고, 검사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엄만 술 먹는 귀신이 돈 잡아먹는 귀신도 됐다고 구박을 하셨고, 그렇게 난 입대를 했다.
군시절은 어떤 걸 말해도 다 지루하고 뻔하지만, 내 군대 생활은 좀 특별했다.
이등병에서 일등병으로 막 진급했을 때 내 밑으로 막내가 들어와서 놀려먹기 딱 좋을 때였다.
교육을 핑계로 따로 불러내 노래도 시키고 무서운 얘기도 시키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을 때 이놈이 갑자기 내 머리 위를 가리키며 순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이 일병님은 얘를 왜 달고 다니십니까?”
? 너 죽을래? 뭐 임마!”
꽤 된 거 같은데 말입니다. 이렇게 위에 달고 계시면 피곤하지 말입니다. 혹시 아픈 덴 없으십니까?”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다. 입대 전 응급실 다녀온 거랑, 훈련소에서 수류탄을 잘 못 던져 죽을 뻔한 거랑, 후반기 교육받을 때 부대에서 나만 식중독에 걸려 일주일 정신 못 차렸던 거랑, 지난 이등병 생활동안....그러고 보니 수도 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겨왔다.
그래도 이 일병님 조상신인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수호신이 계신 것 같지 말입니다. 더 위험해 지시지 않으시려면 하루라도 빨리 받아 들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때만 해도 이 녀석이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넌 뭔데 임마! 알지도 못하는 게 선무당이 사람 잡겠네.”
그 녀석은 대대로 무당 집안이라 했다. 자신도 기운 정도는 볼 수 있다고...
아무리 그렇다 해도 무당이라니...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난 촉망받는 공학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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