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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여행-초대받은 사람들 12
게시물ID : panic_1006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ㅣ대유감
추천 : 5
조회수 : 75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9/08/20 11: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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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노력해도 벗어 날수가 없다.
도망칠수록 더 맹렬하게 달려드는 맹수와도 같다.
제대를 하고 3년이 지났음에도 복학도 하지 못했다.
매일 생사를 넘나드는 삶과 전쟁을 하고 있다.
전국을 돌며 병의원을 섭렵했고, 어머니와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도 해 봤다.
조금의 차도도 보이지 않고,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가 끓여 주시는 멀건 죽 한 그릇도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문득 후임의 말이 생각났다. 어머니를 설득해 용하다고 소문난 무당을 찾아갔다.
교회를 집보다 편히 생각하시는 김집사 어머니를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러다 아들 죽인다고 화를 내시는 아버지의 호통에 어쩔 수 없이 걸음을 하셨다.
소문난 무당이 있다는 안수를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아무리 지도를 봐도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었고, 전화를 걸어 길을 묻고 또 묻고 해질녘이 되어서야 무당집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운전하시던 아버지도 4월의 쌀쌀한 날 땀에 흠뻑 젖어 뒤를 지키셨고, ‘주여!’를 외치던 어머니도 손에 쥐었던 십자가를 슥 내려놓고 따라 내리셨다.
휘청거리던 다리를 바로 세우며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을 때, 갑자기 다리에 힘이 생기고 온 몸에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어서 오니라.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네. 고생 많았쟈?”
대뜸 말을 놓고 살갑게 맞아 주시는 중년의 아주머니는 어머니보다 더 편안함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병마와 씨름한 고생을 말함인지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고생을 말함인지 알 수 없었지만 위로받음에 왈칵 눈물부터 났다.
걱정 말어. 이제 아플 일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다.”
아주머니 품안에 와르르 무너져 하염없이 울었다. 처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림굿을 받는 날 우리 집 식구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지난 3년 신어머니를 모시며 공부를 했음에도 내림굿을 받는 당일엔 정말 내가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을 하게 되었다.
중하야, 넌 선택받은 거여. 그동안 원망도 많고 거부도 했지야? 신을 모시기로 한 이상 그저 신의 뜻대로 하는 겨. 우리가 신의 뜻을 다 알 수 없으니, 주장신이 시키시는 대로 공수를 전할 뿐이다. 신들의 통로일 뿐이여. 뭘 하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그저 신께 맡기면 되는 겨.”
스물아홉의 촉망받는 공학도 이중하는 그렇게 박수무당이 되었다.
처음 몇 년은 어느 곳에서나 혼자 다른 세상에 살게 되었다.
점사를 보는 신방에서 뿐만 아니라 집 앞 슈퍼만 가도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계속 되었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내 주위엔 막 같은 게 형성되어 있는 듯 소리도, 빛도 다르게 느껴졌다.
이것을 표현하기는 참 힘든 일이다.
그 때의 난 꽤나 유명한 박수로서 전국팔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럴 때일수록 기도에 더욱 매진하라고 신어머니께서 찔러주지 않으셨다면 난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주검으로 발견되었을 지도 모른다.
서른중반 쯤 되던 어느 겨울, 자미산 중턱에서 기도를 하던 중 곁에 머무는 어진혼 하나를 보았다.
아는 척을 하지 않고 기도에 매진 한 후 마치고 돌아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신어머니께 말씀드리니 언제부터 혼들이 보이는지 물으셨다.
생각해보니 보이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늘 혼들과 가까이 지내니 그런가보다 생각했으나 혼들을 느낄 수는 있어도 볼 수는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자미산 기도를 다니면서 그런 듯 하다 말씀드리니 무당 짓 그만두고 산에 들어가 기도를 하라 하신다.
신어머니의 말씀은 늘 옳았기에 더는 묻지도 않고 그길로 보따리 하나 싸들고 더 깊은 자미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다시 3년여가 지날 무렵 신어머니가 꿈에 나와 이제 그만 내려오라며 손짓을 하셨다.
가장 먼저 내려와 신어머니를 찾아가보니 집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너무 이상하게도 그 집은 이미 아주 오래 전 비어 있었던 듯한 모습이었다.
못해도 10년은...아니 20년 이상은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었던 곳이었다.
갈 곳이 없었던 나는 신어머니와 처음 마주했던 마루에 새우처럼 몸을 말아 누었다. 산길을 헤치고 나와 몸이 고단했다.
남쪽으로 30분쯤 가면 허름한 집이 나올 것이다. 거기에 정착해서 사람들 위로해주고 보듬어 주면서 살다보면 네가 할 일이 보일 것이여.”
꿈속에서 신어머니와 조우한 후에 그 뜻에 따라 내려와 정착한 곳이 바로 이곳 해너미펜션이다.
보잘 것 없던 이곳이 번성하게 된 것은 한을 풀고 떠난 혼들의 염원 때문이라 생각한다.
거둬야 할 어진혼들이 아직 많이 찾아오고 있다.
그렇게 초대받은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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