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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게시물ID : panic_1010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테라코타맨
추천 : 0
조회수 : 13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1/07 11: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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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번거롭고 고양이는 우아하다. 그 우아한 존재를 보고 있노라면 고양이가 꼬리 가진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 꼬리를 상실당한 동물처럼 느껴진다. 벽안과 녹안에게 딱 그러했다. 그들에겐 오직 고양이 한 쌍이 있을 뿐이다. 날마다 집으로 찾아오는 그 고양이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렇게 특이한 사람들은 아니다. 공공교육을 마치고 부모 슬하를 떠남과 동시에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모든 소통을 가상현실화한 젊은이들이 고양이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지금 세상에선 지극히 평균적인 일이니까 말이다.

두 사람처럼 한 연립주택에 같이 살기는 부부 사이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드문 현상이지만 그들이 쌍둥이 형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인류가 새로 장착한 정보통신이라는 신종 정신감응이 일반화되면서 중요하다 못해 부담스럽기까지 한 인간들 사이의 거의 모든 상호작용은 가상현실화, 추상화, 내면화했음에도 수십만 년 인류 진화 역사가 인간의 마음 한 구석에 만들어놓은 그 빈 자리는 고양이이건 부부건 쌍둥이 형제이건 간에 무엇으로라도 채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지도 모른다. 인터넷/가상현실과 같은 최첨단 기술을 확보하고 나서야 인간들은 마침내 고양이들의 독립적이고 철학적이며 우아한 삶의 방식에 근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인류 종족과 고양이 종족 간 상호 이해와 소통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분석도 가능했다.

황토 신도시 모헨조다로는 그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대도시 유적처럼 황량한 모습이지만 모헨조다로는 가상현실 인터넷을 도시의 토대 아래, 도시를 떠받치고 있는 지반 위에 내장한 채 건설한 최첨단 신도시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도시의 구조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 인터넷으로 파편화된 주민들은 집밖으로 나돌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건물은 물론이고 골목길과 대로변 할 것 없이 사람의 눈길이 닿을 수 있는 그 어떠한 표면에도 글자나 기호나 표식이 없다. 만약 어떤 주민이 집밖으로 나가 골목길이든 대로변이든 서는 순간, 다 똑같이 생긴 건물들 속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다. 대신 자기 집 안에, 자신의 컴퓨터 앞에 붙박이로 박혀 있는 사람들 사이를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전자 표식을 따라 드론과 로봇들이 부지런히 오가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비롯한 물질의 흐름을 유지해주었다. 극미한 화학적인 흔적과 표식을 따라 움직이는 고양이는 가상현실 인터넷이라는 소통과 단절의 양날의 칼에 의해 난도질 당한 인간 영혼들이 떠도는 그런 푸석푸석한 세상을 붙잡아주는, 드론과 로봇에 버금가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모헨조다로의 조감도를 깔끔하고 드넓은 바둑판으로 만들어주는 평평한 황토집 옥상은 외부로, 하늘로 열린 유일한 통로으로서, 도시 안팎의 물자 수송을 도맡고 있는 드론이 황토집과 그 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주민들과 만나는 곳이다. 그리고 동시에 황토건물이 서 있는 땅 위에는 절대 내려서지 않는 고양이들이 주로 살아가는 서식지이자 고양이들이 황토건물 속에 고립되어 있는 인간들에게 접근하는 유일한 인터페이스이기도 했다. 모헨조다로 주민들의 삶은 드론과 고양이가 하늘에서 옥상으로 내려와 육신과 정신을 각각 먹여살림으로써 유지되는 셈이다.

"드론은 오늘 아직 오지 않았지?"

"안 왔지."

두 사람은 또 한참 동안 말 없이 음식에 열중했다. 두 사람이 저녁 한 끼니라도 같이 먹는 것은 아무리 쌍둥이 형제 사이라 해도 드문 일이다. 그들의 사이가 특별히 좋아서는 아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유난히 경쟁심이 많았던 그들은 무엇이든지 함께 해야 하는 버릇이 있을 뿐이다.

"까망이와 하양이는?"

"아직 안 내려왔지."

그들은 그날 저녁 처음으로 눈을 마주쳤다. 까망과 하양, 그들에게 날마다 찾아오는 새까만 고양이와 새하얀 고양이이다. 그들이 고양이들에게 날마다 밥을 주긴 하지만 그들이 키우는 고양이는 아니다. '사람이 키우는 고양이' 와 같은 개념은 모헨조다로 어디에도 없다. 사람이 살아 있으면 곁에 고양이가 있고, 고양이가 들어가 있는 풍경에는 사람도 있을 뿐이다. 주로 사람 쪽에서 절실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죽기 전에는 지속적인 관계가 되는 게 보통이긴 하다. 벽안은 백묘를 녹안은 흑묘를 좋아한다. 고양이들도 두 사람의 경쟁 관계를 아는 듯, 옥상에서 내려오면 공동 공간인 부엌에서부터 흑백은 좌우로 갈라져 녹벽을 찾아갈 뿐, 결코 섞이는 법이 없다.

흑묘백묘

쌍둥이 형제가 입주한 연립주택은 3층짜리이다.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옥상 바로 아래 3. 1층과 2층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옥상은 칸막이로 둘러친 여섯 조각으로 나뉘어져 각 층 각 집에서 올라가는 계단은 자기들만의 옥상 공간으로 열려 있다. 벽안과 녹안 두 사람의 계단과 옥상은 하나로 통합되어 있어 편리했는데, 바로 그런 구조로 지어진 곳이기 때문에 입주했던 터였다. 새로 지은 집이라 이전 고양이-사람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무취 서비스도 필요없었다. 흑묘와 백묘는 황토로 새로 발라 청결한 냄새가 배어 있는 옥상과 계단을 따라, 공공교육 시스템과 부모에게서 막 독립한 벽안과 녹안 두 사람에게 와서 위아래 층에서 같이 살고 같이 밥먹는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하양과 까망과 처음 만난 날은 꽤 추운 겨울의 초입이었다. 모헨조다로 건물의 황토 지붕은 모두 텃밭, 풀밭, 잔디밭, 관목숲으로 꾸며져 있다. 어떤 곳은 풀밭이라고 하기에는 키가 큰 억센 풀들이 두텁게 자란 목초지를 이루어 있어 고양이들에겐 해방구나 마찬가지다. 부모에게서 막 독립한 처지라 고양이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사에 뒤따르기 마련인 정리와 새 집에의 적응 등으로 마음이 바쁜 와중에 아무 생각 없이 오른 옥상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났다. 잡털 하나 없이 흑과 백을 완벽하게 나눠 가진 그들 역시 막 어미를 떠났는지, 새끼 티를 벗지 못한 정말 조그맣고 정말 예쁜 고양이들이었다. 다가가도 외면하거나 달아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 또한 반려인간을 찾고 있다는 뜻이라 만남은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어쩌면 고양이들도 다른 고양이의 영역 표시가 없는 그곳을 서성이고 있었을 터였다. 부모집을 나온 젊은이의 이삿짐에서 빠질 수 없는 고양이집 두 개를 벽록이 옥상에 내다놓고 흑백이 그 안에 들어감으로써 흑백과 벽록의 종신계약은 성사되었다. 그 순간 고양이의 목줄에 내장되어 있는 전파식별기와 고양이집에 박혀 있는 전파발신기가 프로토콜을 주고받으면서 고양이는 그 고양이집, 그 사람의 집과 하나의 네트웍을 구성하게 된다. 벽록과 흑백 사이에 형성될 생화학적이고 정신적인 네트웍은 시간이 좀 더 걸리는 문제이지만 말이다.

벽안은 처음부터 하양이가 마음에 들었다. 호박색 눈동자만 빼고는 새하얀 그 모습이 무척 청결해 보였기 때문이다.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도망가지도 않고 그 두 사람의 주위를 맴돌자 벽안은 대뜸 하얀 녀석을 두 손으로 들고 고양이집을 꺼내와 그 안에 넣어버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녹안의 고양이는 자연스럽게 까망으로 결정되었고, 동시에 검은 고양이는 녹안이 '원래' 가장 좋아하는 고양이가 되고 말았다. 하양과 까망의 집에 각각 배게 된 벽안과 녹안의 냄새는 벽과 백, 녹과 흑의 화학적 결합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다만 두 고양이는 털 빛깔 만큼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 얼굴과 표정이 사자와 여우를 닮은 하양은 차갑고 도도했으나 아주 친근하게 굴기도 했다. 굴곡이 있는 성격은 강력한 매력으로 작용해서 벽안은 하양이를 끔찍히도 좋아해서 하양이가 자기 공간에 내려와 머무는 한 잠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을 정도였다. 반면에 호랑이 얼굴을 한 까망이의 성격은 의외로 담백하고 밋밋한 편이어서 하양이가 벽안과 보내는 시간의 절반도 안 되게 녹안의 곁에서 맴돌기만 했다. 그래서 벽안이 하양을 안고 뒹굴 때 녹안은 눈도 잘 맞추려 하지 않는 까망이의 호박색 눈동자를 살짝 살짝 들여다 보며 그 보석 같은 눈알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황금빛 감도는 앞에서 보는 호박색 눈동자도 예뻤지만 옆에서 보는 각막과 홍채는 예술이었다.

"까망이는 눈동자가 예뻐."

벽안의 말은 까망이의 눈동자가 예쁘다는 말이 아니라 하양이와 유일하게 똑같이 생긴 눈동자만 예쁘다는 뜻이다. 그 말에 또 녹안은 남몰래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벽안과 녹안 사이에는 그와 같은 팽팽한 경쟁심이 상존한다. 특별한 무슨 사건이 있지도 않았고 꼭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마음이 있지도 않다. 그저 태어나면서부터 늘 지척에 놓여 있는 확실한 대체재에 대한 무의식적인 불안이 쌓여온 결과라고 추측할 뿐이다.

"하양이 눈동자도 마찬가지야."

녹안은 그걸 복수랍시고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지만, 벽안에게 허를 찔리고 나면 분하기도 하고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해서 조건반사처럼 늘 그렇게 소심하게 반응하고 만다.

하양이 벽안의 품에 안겨 있는 걸 보고 녹안은 옆에 혼자 앉아 있는 까망이를 덥석 안는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한달음에 이어서 쓰다듬는다. 까망이는 꼬리끝을 파르르 떨더니 녹안의 손아귀를 막 벗어난 꼬리를 허공에 대고 휙휙 가볍게 내젓는다. 하양이처럼 머리를 부빈다거나 하면서 아양을 떠는 일은 좀처럼 없는 까망이의 기분이 몹시 좋다는 얘기다. 그르릉거리는 소리는 들릴락 말락 한다. 까망과 녹안은 그렇게 자신들만의 언어로 은밀하게 소통한다. 까망이의 꼬리가 올라와 녹안의 얼굴을 살짝 스치더니 손가락 끝마디처럼 그의 눈앞에서 꼬물거린다.

수의사

벽안과 녹안은 새벽부터 옥상에 올라가 아직 어둑한 하늘에 대고 휘파람을 불었다. 고양이들은 꽤나 추운데도 따뜻한 둥지에 붙어 있지 않았다. 서로 다른 휘파람 소리가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하양이는 옥상 칸막이에 뚫린 '고양이 구멍'에서 나왔고 까망이는 이웃한 건물과 연결되어 있는 일명 '고양이길'을 따라 나타났다. 세심한 모헨조다로 건축법은 고양이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옥상 칸막이마다 구멍을 뚫게 했고 건물마다 이웃한 건물로 가는 좁은 나무판자 길을 만들게 했다. 그리하여 고양이들은 진흙집들 사이의 좁은 골목길이나 큰길에 내려서지 않고서도 도시의 어느 곳이든 옥상과 옥상을 연결하는 고양이길을 따라 갈 수 있었다. 온 도시에 빽빽히 들어선 수많은 건물들의 옥상은 태양전지판이 빈틈없이 깔린 에너지 수확 평면이자 고가도로로 연결된 고양이들의 공간인 셈이었다.

"하양이와 까망이, 건강 상태가 아주 좋네요."

의사가 태블릿 화면을 들여다 보며 말한다. 벽안과 녹안 두 사람은 각자 자기 고양이를 안고 의사 앞에 나란히 앉아 있다. 그런 두 사람을 의사는 재미있다는 듯 빙글거리며 쳐다본다. 눈 색깔만 다른 쌍둥이 형제가 흑과 백 고양이를 나누어 안고 있는 자세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 의사는 두 사람이 처음부터 하양과 까망을 돌보는 주치의로 정했기에 두 고양이와 두 사람, 넷 사이에 얽혀 있는 복잡한 심리 반응기제에 대해 이미 잘 알기도 했다. 두 사람이 따로따로 상담한 내용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고양이의 몸짓 언어에서는 꼬리가 가장 중요하죠. 스무 개 가량의 뼈로 이루어진 고양이 꼬리를 가리켜 손가락 스무 개를 한 줄로 이어놓은 사람의 손과 같다고도 하죠. 그만큼 유연하고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두 사람 다 열렬한 고양이주의자였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달랐다. 벽안은 고양이와의 소통 방법을 의사에게 물었고 녹안은 고양이에 대한 일종의 스톡홀롬 증후군 증상을 보였다. 하지만 인간과 고양이 두 종족 사이에 역사상 유래 없는 친근감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세상에서 어느 쪽도 비정상이라고 볼 것까지는 없다고 그 의사는 생각했다. 다만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간격이 의외로 좁다는 사실이 약간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벽안은 고양이 통역기를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었고 녹안은 고양이상으로 성형을 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고양이 꼬리 언어를 해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양이 눈이 탐이 나서 견딜 수가 없거든요."

벽안과 녹안이 그렇게 말했을 때, 그 의사는 이미 부모에게서 독립한 두 사람에 대해 적어도 의료에 관한 한 막연히 어머니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상상하고 있던 터였다.

동물병원 옥상에서 탄 드론 택시도 만원이다. 어차피 사전 예약을 통해 정원을 거의 다 채워 놓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절반쯤이 고양이를 한 마리씩 데리고 있다. 병원이 아니면 좀처럼 집을 나설 일도 없고, 지구 세상의 절반은 사람, 나머지 절반은 고양이인지라 지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균적인 승객 구성이라 할 만하다. 고양이 승객은 원래 조용하고 사람 승객은 따라서 조용하다 보니 드론 안은 프로펠러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어때? 까망이는 컨택트 렌즈라도 끼어야 한대? 반려인간을 영 본체만체하잖아."

벽안이 소리를 죽여가며 옆자리에 앉은 녹안에게 묻는다. 장난 가득한 눈빛이다.

"하양이가 꼬리 관절염이라고 했겠지. 어지간히 꼬리를 쳤어야 말이지."

녹안은 오랫만에 만족스러운 대꾸를 한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크게 터져나와버린 웃음을 급히 끊고 주위를 둘러본다. 마음들이 고양이 덕분에 부드러워진 탓인지 고양이를 중간에 끼워 넣지 않고는 더 이상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는 최신 예의범절 때문인지 드론 내부는 눈길도 돌리지 않는 승객들의 사람 좋은 미소들로 넘쳐난다. 그 소란에도 하양과 까망은 미동도 하지 않고 계속 잔다. 일년치에 해당할 많은 사람들을 그것도 작고 닫힌 공간에서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신경이 피로해진 탓인지, 다른 고양이들도 대충 비슷하다.

창밖으로는 모헨조다로의 바둑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옥상에 설치된 반짝이는 태양전지판과 초록 텃밭이 한꺼번에 황금빛 석양에 물든다. 고대 유적의 미래지향적인 해석이라는 현대 건축의 흐름은 빛의 각도에 따라 그 구현의 정도가 하루에도 몇번씩 변하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낙조에 넋을 놓고 있던 녹안은 상체를 숙여 발앞에 놓인 고양이 가방 속을 들여다 본다. 까망이는 몸을 둥그렇게 하고 엎드려 자고 있다가 녹안의 기척에 눈을 가느다랗게 뜬다. 드론 내부를 뿌옇게 채운 석양빛에도 물들지 않고 있던 새까만 실루엣에 호박색 눈 두 알이 떠오른다. 녹안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자마자 까망은 다시 눈을 감는다. 고양이 꿈과 사람의 꿈을 오가는 중이라고 녹안은 짐작할 뿐이었다.

실종

동물 병원에 갔다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날, 갑자기 흑묘가 사라졌다. 하루에 두 번씩 먹이 주는 시간마다 시계추처럼 오가던 녀석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첫날에는 그런가 보다 했지만 두번째 날부터 걱정이 시작되었고 세번째 날 녹안은 거의 공황 상태에 빠졌다. 목줄에 달려 있는 전파식별기도 사물인터넷에 잡히지 않고 있었다. 녹안은 옥상에서 살다시피 했다. 얼마나 휘파람을 불어댔던지 입술과 혀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어느 곳에 있을지 몰라 방향을 바꾸고 멀리까지 소리가 전해질까 싶어 휘파람의 곡조까지 바꾸어 가며 녹안은 까망이를 애타게 불러댔다.

"산에서 내려온 늑대 같은 무서운 짐승에게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고양이가 나름 최상위 포식자인데 그러기야 하겠어. 고양이가 늑대를 잡아먹을 수 없듯, 늑대도 고양이 잡아먹기는 쉽지 않을 걸. 게다가 옥상 위 고양이가 골목길에 내려갈 일 없고 늑대는 옥상 위로 올라올 길이 없잖아."

"아니면 좁고 깊은 틈새 같은 곳에 빠진 것은 아닐까? 건물 사이에 난 그런 빈 공간에 말이야."

"설마 고양이가 그러기야 하겠어. 고양이 액체설도 있잖아. 아마도 무슨 바람이 불어서 모헨조다로 탐험에 나선 게지."

녹안은 별별 상상을 다 했고 벽안은 그때마다 창조적인 위로의 말을 찾아내느라 고심했다. 그러면서도 벽안은 하양이를 더 꼭 안았고 더 챙기는 눈치였다. 녹안은 그런 벽안과 멀쩡한 백묘의 모습을 보며 더욱 더 애를 태웠다.

온갖 끔찍한 상상으로 긴장과 피로가 극도에 달했을 때, 고양이를 찾았다. 경찰 수색 드론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골목길에서 찾아낸 것이다. 나흘 만에 돌아온 고양이의 상태는 심각했다. 그새 얼마나 굶었는지 갈빗대가 만져졌고 털에서 윤기가 바래고 푸석푸석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녹안의 손길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애가 못 먹고 지쳐서 그런 거니까. 지금 이 고양이의 가장 큰 문제는 눈 한쪽이 안 보인다는 거에요."

의사가 까망이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까망이는 여전히 힘없이 얌전하게 의사에게 안겨 있다. 평소 같으면 버둥거릴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런다. 의사가 고양이를 녹안에게 건네준다. 녹안은 고양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두 손으로 고양이 머리털을 잡고 두 눈을 들여다 본다. 겉으로 봐서는 멀쩡하다. 여전히 유리 구슬처럼 영롱한 눈알이다.

"지금 왼쪽 눈이 안 보여요. 외상도 없고 엑스레이에도 이상이 나타나지 않으니 다행히 그 증상이 일시적일 수는 있어요. 이를 테면 어떤 이유로 망막이 레이저에 잠깐 노출되었을 수 있지요. 아이들이 장난 삼아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고양이를 이유없이 괴롭히는 이해불가한 작자들도 있으니까."

"한쪽 눈을 영영 못 쓰게 된다는 것입니까? 그건 너무 잔인하군요. 도대체 어떤 짐승 같은 인간이 그랬을까요."

"일단 더 두고 봐야 해요. 눈에 띄는 상처를 입지는 않았으니 기대를 해봅시다."

의사의 말에도 녹안은 위로를 받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 눈을 수술하면 다시 볼 수 있게 될까요?"

의사가 말없이 녹안을 쳐다보았다. 고양이를 통째로 눈에 넣기라도 할 태세인 걸. 그렇게 생각했다. 말만 씨가 되는 게 아니라 생각만으로도 씨앗은 뿌려진다는 카르마의 진실을 몰랐던 탓이었다.

접속

생각과 말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의사를 먼저 놀라게 한 쪽은 녹안이 아니라 벽안이었다. 이번에도 그것은 벽안의 생각으로 시작되었고 의사의 말로 구체화되었다. 일단 말이 되어 입밖에 나온 그 무엇은 적당한 숙주에 들러붙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서 결국 열매를 맺게 되는 수순은 이 우주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흐름도이긴 했다. 말과 글에는 힘이 있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면서 현실과 구체적인 대상에 물리화학적 영향을 주는, 한번 생성되면 절대 그냥 흩어지지 않는 에너지 덩어리가 바로 말이고 글이다. 게다가 에너지가 창조되지도 파괴되지도 않는다는 에너지 보존법칙으로 비추어 볼 때, 말과 글은 추상적인 기호나 표상이 아니라 애시당초 무한하지도 유한하지도 않은 우주를 면면히 흐르는, 진정한 시작도 끝도 없는 에너지가 둔갑한 실체 중 실체이다. 마치 문자와 기호의 조합인 프로그램이 집적회로 속 전자를 움직이고 그 전자의 흐름이 핵폭탄의 기폭장치와 핵발전소의 제어봉을 작동시키든지 말든지 해서 어쨌든 결국 폭발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주문과 부적이 명연설과 명문장은 아니지만, 현실 속 말과 글은 영화 속 주문과 부적 못지 않은 실체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이 스스로 놀라고 자랑스러워 하는 음성제어 기계와 컴퓨터의 등장은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한참이나 뒤늦은, 인간들의 전형적인 뒷북이라 할 수 있었다.

벽안은 자랑스럽게 꼬리를 달고 나타났다. 의사가 한 일이라곤 죽은 고양이의 꼬리를 이식하겠다는 걸 간신히 뜯어말리고 그 대신 로봇 꼬리를 달게 한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덩치에 그 보다 훨씬 작은 고양이의 꼬리를 달면 그게 어울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체에 이런 저런 기계 장치를 덧붙이는 것쯤이야 놀랄 일도 아니지만 비율과 균형은 맞추어야 한다는 게 그의 전문의로서의 생각이었다.

"잘 어울리는군요. 크기로 본다면 고양이 꼬리보다 호랑이 꼬리겠는데, 색깔과 느낌은 확실히 고양이 꼬리가 맞네요. 그리고 하얀 꼬리를 고집하지 않고 얼룩무늬 꼬리로 간 것도 훌륭한 선택이구요. 어떤가요?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운가요?"

"아주 좋습니다. 저로서는 고양이 느낌이 난다면 대만족이고요."

벽안은 뒤돌아서서 자신의 뒷쪽을 보여준다. 마치 새로 산 동물 분장옷을 입은 꼬마 아이가 엄마에게 자랑해보이는 모습 그대로다. 인간도 갖고 있는 퇴화한 꼬리뼈에 이식한 터라 꼬리의 위치와 꼬리 그 자체로는 직립 인간의 뒷부분, 수직 엉덩이와 의외로 잘 어울린다. 꼬리와 바지가 따로 놀지 않도록 꽉 끼는 바지를 입어야 하고 꼬리 뿌리 부분을 감싸고 있는 부분은 특별히 탄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외과 로봇이 집도한 수술도 고양이만큼 깔끔했죠. 마취수술이긴 했지만 통증도 거의 없고요. 낮잠 자고 일어난 기분이랄까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인공 뼈와 초경량 금속과 고분자화합물로 만든 로봇 꼬리는 충분히 가벼워서 퇴화한 꼬리뼈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았고, 척추 끝에 해당하는 꼬리뼈에 이어붙인 로봇 꼬리는 신경을 통해 뇌까지 연결되었다. 척추에 직접 붙는 꼬리는 고양이나 원숭이의 경우 운동을 관장하는 소뇌와 연결되어 있어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감정을 관장하는 뇌 부위와도 접속되어 있어, 특히 고양이의 꼬리는 기분과 상태에 따라 다양한 움직임과 모양을 나타낼 수 있는 정교한 의사표시 수단이 되었다. 인간으로서는 처음으로 꼬리를 단 벽안의 경우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흔적기관으로 퇴화한 꼬리뼈 부위가 원래의 뇌 접속과 작동 방식을 회복하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꼬리는 뇌의 명령에 따라 그냥 움직이고 마는 수동적인 운동기관만이 아니라 자신의 모양과 운동 상황, 꼬리 표면에 위치한 촉각 센서들로 수집한 촉감 정보 등을 포함해 다양한 정보를 뇌로 보내는 매우 능동적인 감각기관이기도 했으니, 벽안 스스로 느끼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꼬리는 몸의 꼬리뼈 부분에 달려 있는 것만으로는 정상작동이 불가능합니다. 마음 속에 축소모형으로 들어 있는 몸, 꼬리뼈에도 마음의 꼬리가 자라나게 해야 하죠. 컴퓨터에 새로운 장치를 붙이고 나서 바로 그 장치를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컴퓨터가 그 장치를 인식하고 그 장치와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깔아야 비로소 쓸 수 있는 것처럼."

의사의 말에 벽안은 자신의 꼬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의 두툼한 호랑이 꼬리가 어느새 앞쪽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무릎께를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벽안이 빙긋 웃자 꼬리 끝 부분이 의사 쪽을 향해 가볍게 까딱거렸다.

고양이의 심리학

벽안의 꼬리 수술은 녹안에게 지옥문으로 난 지름길이나 마찬가지였다. 꼬리로 대화할 수 있게 된 벽안은 하양이와 많은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벽안의 거주공간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것은 불통과 단절의 정적이 아니라 소통과 고속접속으로 충만한 달콤하고 훈훈한 정적이었다. 고양이가 결코 오를 수 없는 무대인 인간의 언어로 인간과 대화하려는 게 아니라, 마침내 인간이 고양이의 언어가 가능한 낮은 곳으로 내려가 거기에서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게 된 바로 그 현장이었다. 인간들의 역지사지의 대상에 고양이도 간신히 포함된 상황이라고나 할까.

물론 녹안에게 중요한 것은 소통의 민주화가 아니었다. 그렇게 벽안과 하양이가 거의 텔레파시 수준으로 소통하는 모습이 말할 수 없이 부러웠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까망까지도 부쩍 벽안을 따르는 듯한 모습에는 질투가 나서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자신은 낌새를 알아차리지도 못한 사이에 그의 눈앞에서 한 사람과 고양이 두 마리가 조용하게 한통속으로 돌아가는 꼴은 멀쩡한 정신으로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한쪽 눈이 먼 까망이가 남은 한눈까지 팔고 있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았다.

"벽안과 고양이들, 특히 벽안씨와 하양이 사이에는 전혀 새로운 꼬리 언어가 창안되고 있다고 봐야 할 거에요. 꼬리로 하는 일종의 '토키 포나' 아니면 토키포나의 수화판, 꼬리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벽안씨 꼬리와 하양이 꼬리의 움직임과 표현방식은 미세하게 조정되고 동기되어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그들의 두뇌, 그들의 감정이 동기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고요."

녹안이 몇날며칠 동안 고민과 불면의 밤을 거듭한 끝에 고양이도 없이 홀로 의사를 찾아갔다.

"토끼 보나..?"

"원시 조상님들이 꾸려갔던 단순한 삶의 현장을 가정하고 최소한의 어휘, 최소한의 문법으로 만든 인공어라죠. 고양이의 꼬리는 인간의 열 손가락 부럽지 않으니 틀림없이 시각언어이자 동작언어인 수화에는 제격이라 할 수 있겠네요. 녹안씨와 벽안씨 두 분이 거의 집착 수준으로 좋아하는 고양이의 눈과 꼬리를 생각하면, 꼬리로 하는 수화판 토키포나는 두 분뿐만 아니라 흑묘백묘 두 고양이에게도 최적의 언어가 되겠습니다."

토키포나에 대한 의사의 부연 설명은 녹안의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모헨조다로의 평범한 작은 연립주택 꼭대기층과 옥상 한 구석, 그 좁은 공간에서 하나의 비밀언어가 탄생하고 있는 동안 철저하게 소외되고 만 자신의 처지에 분노와 슬픔의 감정 이전에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싼 채 조용히 앉아 있다. 의사는 그런 녹안을 어머니처럼 자상하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녹안이 천천히 공황상태에서 빠져 나온다.

"만약 원한다면 벽안씨처럼 로봇 꼬리 접합 수술을 안배하지요."

의사의 말에 녹안은 천천히 고개를 흔든다. 벽안을 따라 로봇 꼬리를 붙이기는 싫다. 그것은 벽안에게 완전히 졌다는 뜻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 두 사람 사이에서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얼마간 흐른 다음, 그의 녹색 눈동자에 촛점이 돌아왔다. 그의 돌연한 결연한 눈빛이 의사를 긴장시켰다. 마치 연인에게 실연당한 듯한 슬픈 눈빛이었다. 그것은 사람과 고양이가 꼬리 토키포나로 소통하는 가능성에도 담담했던 의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제안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야.."

의사는 온전히 답할 수가 없다. 확실히 고양이는 영물이 맞는 모양이다. 인간과 고양이 사이에도 사랑과 질투와 같은 고급 수준의 감정이 가능하다는 점이 신기할 뿐이다. 한 인간의 마음을 그토록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양이는 영물이자 요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눈동자와 같이

고양이 두 마리를 독차지하고 그들과 토키포나인지 꼬리말인지로 소통할 수 있게 된 벽안은 녹안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양과 까망을 데리고 녹안을 지나치게 되더라도 그들은 꼬리를 기묘하게 휘적이거나 바르르 떨 뿐, 벽안은 녹안에게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 어느새 그 연립주택의 공용어가 청각언어에서 꼬리/시각언어로 바뀌었고, 녹안은 갑자기 유일한 꼬리 없는 원숭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녹안은 까망이도 오지 않는 아파트에 홀로 앉아 고양이를 생각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황야에서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우주의 사막 달이 순식간에 우주의 오아시스 지구로 둔갑하는 우주적인 마법의 순간으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양이 없는 천국보다 고양이 있는 지옥을 택하고 싶었다. 고양이는 원래 사막에서 살던 동물이라고 하지만, 지금 녹안에게는 고양이가 없는 곳이 바로 사막이었다. 고양이 자체가 바로 움직이는 오아시스였다. 사막처럼 메말라가고 있는 그에게 고양이가 필요했다. 까망이를 당장 데려오고 싶었다.

"뭐야. 등도 켜지 않고."

녹안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벽안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툭 튀어나와서가 아니라 그보다 먼저 무엇인가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불이 켜지자 그의 바로 앞에 서 있는 벽안이 눈에 들어온다. 벽안의 로봇 꼬리가 다시 그의 뺨을 간지럽힌다. 그 느낌이 부드럽기 이를 데 없다. 녹안은 벽안을 빤히 쳐다본다. 어둠 속 고양이 명상에서 빠져나오는 중에 그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발 아래를 본다. 까망이가 그의 무릎을 꼬리로 툭툭 치고 있는 중이다.

"까망이!"

녹안이 흑묘를 대뜸 두 손으로 들어올려 품에 안는다. 그런 모습을 벽안과 그의 발치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백묘가 조용히 지켜본다. 녹안의 까망이 어르는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려 준다.

"의사에게 보여야 할 것 같아."

잠자코 있던 벽안이 말한다. 홀로 팔짱을 끼고 선 그는 로봇 꼬리로 하양이를 쓰다듬고 있다.

"까망이 말이야."

누굴 말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벽안이 아직 그에게 안겨 있는 까망이를 턱짓으로 가리킨다. 그는 까망이를 들어 무릎에 앉히고 상처라도 있는지 찾아본다.

"까망이 왼쪽 눈이 잘 안 보이는 거 같아. 자꾸 오른쪽으로만 돌거든. 옥상에서 계단으로 내려올 때 알아차렸지. 계단 내려와서 오른쪽에 있는 내 방으로 오곤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런 이유였나봐. 난 처음엔 내가 꼬리친 게 유효했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좋아했더니 말이야."

벽안의 말에 그는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굴러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까망이에게 배신당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건조한 모래바람만 불던 그의 가슴과 그의 방안에 갑자기 봄날의 훈풍이 일기 시작한다. 녹안은 다시 한참 동안 흑묘를 품에 안고 나서야, 까망이를 들어 무릎에 앉히고 왼쪽 눈을 들여다 본다. 역시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병원에 같이 가자. 나도 의사를 만날 일이 있으니까."

"? 하양이도 상태가 안 좋아서?"

"아니, 내 꼬리에도 냄새샘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 나만의 냄새로 영역 표시, 어때?"

로봇 꼬리 끝에 특정한 냄새 물질을 담아놓고 조금씩 배출하는 간단한 장치였지만, 그의 후각으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딱 한 가지 자신만의 향수를 정해 늘 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고양이는 애초부터 비밀의 향수를 쓰는 격조 높은 동물이라고 녹안은 혼자만 생각했다.

녹안은 까망이를 다시 찾았다는 충만감과 까망이가 시력을 잃었다는 절망감이 동시에 들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보석처럼 빛나는 까망이의 호박색 눈동자 하나가 속으로는 영물의 총기를 잃어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고양이는 하루에 열두 시간 넘게 잠을 잔다고 했다. 티벳의 성자 밀라레빠는 "인생은 요술 같고 꿈속 같아라" 라고 노래했다. 우리의 인생은 바로 고양이의 꿈속 같은 게 아닐까. 소슬한 풍경 속에서 한 시간도 넘게 붓으로 그린 듯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묘선정,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 오욕칠정의 늪에 빠지지 않는 우아한 걸음걸이 등 수행자 못지 않은 고양이의 평소 거동으로 볼 때 가능할 것도 같았다.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고양이의 일생, 하루 열두 시간 이상 명상수행으로 용맹정진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정보를 처리하며 그 작은 두개골 안에 어떤 매트릭스, 가상세계를 만들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실은 온 우주의 뼈대를 만들어내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양이의 두 눈에서 탐조등처럼 쏟아져 나와 거대한 우주 스크린에 영사되는 한 편의 홀로그램 영화처럼, 그러니까 또다시 우리의 인생은 바로 고양이의 꿈속 같은 게 아닐까. 그렇게 고양이는 그 깊은 두 눈동자로 우리를 단지 지켜봄으로써 무한한 가능성으로 넘실대는 양자역학적 확률의 바다에서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았던 확률의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올려 나의 인생으로 토막쳐주는 우주적 생선장수가 아닐까. 상자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상자 밖으로 뛰쳐나와 현실화된 다음 거기에 슈레딩거를 대신 집어넣고서, 상자를 열까말까 주사위 놀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녹안은 그렇게나 우주적인 중요성을 가진 고양이의 왼쪽 눈을 치료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아 까망이의 왼쪽 눈이 완전히 영영 멀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사태는 애꾸눈 흑묘에 그치지 않고 그의 인생과 그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갑자기 깊이 차원을 잃고 평면화되어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짝눈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오염되었던 바다는 쓰레기를 거둬들여 적절히 처리하고 제대로 폐기함으로써 회복시킬 수 있었지만, 인간이 버린 쓰레기나 환경파괴 현장과는 달리 인간 자체를 처리할 수 없었던 인간의 서식처인 뭍은 결국 복구되지 못했다. 그 결과 바다에서는 플랑크톤에서 대왕고래까지 모두 건강하고 튼튼한 생태계가 꾸려진 반면 뭍에서는 사람과 고양이를 제외한 생쥐에서 코끼리까지 모든 동물들이 멸종당하고 말았다. 육지에서는 사람이 제일 큰 동물, 고양이가 제이 큰 동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같은 사태는 적어도 수의사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 , , 염소는 물론이고 한때 고양이와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개들마저 사라져 오직 고양이만 신경써도 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아름다움 생명체들이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은 무척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동물의 종대로 따로 공부해야 했던 해부학책들은 인간과 고양이, 단 두 권으로 줄어들었다. 곧이어 인간 의학과 고양이 의학은 통합되어버렸다. 의사도 수의사도 인간과 고양이를 둘 다 환자로 받았다. 의사와 수의사란 명칭도 차츰 별 구분없이 썼다. 구태여 수의사라고 한다면 특별히 고양이를 좋아하여 고양이 환자를 위주로 병원을 운영한다는 뜻일 뿐, 수의사 자격으로 사람 환자도 진료하고 치료할 수 있었다. 사람도 식물 아닌 동물이란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으므로 당연한 노릇이긴 했다.

바로 안젤라가 수의사로 불리우는 걸 더 좋아했다. 그와 같은 본인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정작 고객들은 오히려 그를 꼬박꼬박 의사라고 불렀다. 아무도 구별하지 않다 보니 부르기 쉬운 쪽으로 간 결과였다. 그는 쓸모가 없어진 해부학 책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으며, 가끔 펼쳐보면서 인류의 어리석음과 악행 때문에 온 우주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 그 아름다운 동물들의 이름을 불러보곤 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소멸과 망각의 심연에서 건져내어 지구를 다시 채울 수는 없을까 안타까운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인류의 일원으로서 진심으로 그들에게 미안했다. 그 같은 커다란 어리석음과 악행을 과학기술의 발전이라고 부르고 인류사회의 진보라고 부르는 치들을 경멸했다. 공룡이 덩치만 키우다가 멸종했다면 인류는 머리통만 키우다가 자멸하리라는 게 안젤라의 지론이었다.

안젤라가 벽안과 녹안에게 애정을 갖는 이유는 인간 말고는 마지막 하나 남은 뭍짐승인 고양이에 대한 특별한 마음씀씀이 때문이었다. 벽안의 로봇 꼬리 이식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엉덩이 부분에 장식품 꼬리 붙인 바지 입듯 하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는 꼬리뼈를 지지대 삼아 척추에 고정시키는 동시에 신경적으로는 뇌로 가는 고속도로인 척수에 직접 연결되어, 특히 신경 다발과의 전자적 접합 도중에 전신마비로 갈 수 있는 위험한 시술이었다. 그처럼 위험하기까지 한 수술을 해서라도 고양이와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선 영적인 교류를 추구하는 벽안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던 터였다. 거기다가 까망이의 눈 치료를 위해 최근에 방문했던 녹안은 그를 또다시 감동시켰다. 그들이라면 인류 전체의 업보를 조금이나마 풀어나갈 수 있을 듯했다.

"냄새샘은 마음에 드나요? 향기가 별로라면 냄새 물질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겠지요."

"꼬리로 냄새 표시까지 할 수 있으니 훨씬 더 고양이 느낌이 나서 아주 좋아요."

안젤라의 방에 벽안이 먼저 나타난다. 물론 고양이와 함께이다.

"녹안씨도 같이 올 줄 알았는데 혼자 왔네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먼저 가라 해서요. 곧 도착할 겁니다. 그런데 까망이의 눈 치료는 잘 되어가고 있겠지요. 녹안에게 물어도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거든요."

"오늘 경과를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잘 되었을 겁니다. 녹안씨가 오면 함께 물어보기로 하죠."

안젤라도 녹안과 까망의 상태가 몹시 궁금하다. 벽안과 하양의 경우와는 또다른 위험을 감수한 처치를 했던 터다. 녹안을 말려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말려지지가 않았다. 벽안에게도 전혀 알리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리 형제라고 하지만 어떤 식으로도 방해받지 않고 싶었을 것이다. 고집 세기로는 두 형제가 막상막하인 셈이다.

"고양이가 참 예쁘죠."

안젤라는 화제를 돌린다. 벽안이 녹안과 까망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다면 그것도 곤란한 일이기 때문이다. 벽안과 녹안이 그를 의사 이상으로 거의 어머니처럼 따르며 의지하고는 있지만, 쌍둥이 형제 사이에 존재하는 꼼꼼하면서도 뚜렷한, 형제간 경쟁심을 무시하고 그 와중에 뛰어들 수는 없다.

"고양이는 참으로 우아한 동물이잖아요. 우리 사람들처럼 시끄럽지도 않고요."

벽안은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하양이를 꼬리로 한번 톡 건드리며 말한다. 하양이는 앞에서 오락가락하는 벽안의 꼬리를 잡으려고 날쌔게 앞발짓을 한다. 벽안은 하양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꼬리 장난을 계속 한다. 평소에 둘이서 많이 하는 장난인 듯하다.

"꼬리를 달고 나니 정말 고양이들이 더 친근하게 다가와요. 고양이들 사이에서 꼬리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다만 제 후각이 고양이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라서 아주 강한 냄새 물질을 쓸 수밖에 없어, 하양이에게 늘 미안할 따름이지요. 비밀스럽고 은밀해야 할 표식향이 그토록 요란하니 섬세한 고양이들에겐 얼마나 천박하게 보일지 걱정입니다. 향낭 대신 굽다 만 생선 석쇠째 옷고름에 매달고 다니는 꼴이 아닐까요?"

안젤라는 벽안의 섬세함에 반하면서도 그 발랄한 상상과 표현에 후후 하고 웃지 않을 수 없다.

"꼬리와 냄새샘 이외에 또 고양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한 게 있나요?"

안젤라는 문쪽을 흘낏 바라보면서 벽안에게 묻는다. 녹안이 올 때가 되어가고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진 않지만, 고양이들이 그 본능에 따라 지난 수십만 년 동안 해왔을 방식 그대로 사냥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사료만 먹이다 보니 그들의 아름답고 날카로운 눈과 이빨과 발톱이 그저 장식품이 되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좀 그렇더라구요."

안젤라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곧 깨닫는다. 그리고 감동이 밀려온다.

"생쥐를 복원하자는 말이군요!"

"생쥐, 다람쥐, 시궁쥐, 도마뱀, , 뭐든요. 고양이들이 사냥으로 사람에게서 독립하면 그 아름다움이 배가될 것 같거든요."

안젤라는 할 말이 없었다. 가슴이 아렸다. 사라져 버린 뭇 뭍짐승들의 해부학책이 또 떠올랐다.


문이 열리고 녹안이 까망이를 안은 채 들어왔다. 안젤라와 벽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녹안은 뚜벅뚜벅 걸어와 그들 앞에 섰다. 그리고 안고 있던 까망이를 하양이 옆 바닥에 내려놓았다.

"녹안씨, 괜찮아요?"

안젤라가 물었다.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벽안의 로봇 꼬리가 꼿꼿이 위로 서더니 그의 등에 가 닿을 정도가 되었다. 호랑이 무늬 꼬리털이 모두 일어나 꼬리 두께가 두 배로 늘어나 보였다. 꼬리 끝이 휙휙 단속적으로 움직였다. 녹안은 대답 없이 이를 다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까망이 눈 수술은 잘 되었겠지요?"

안젤라가 물었다. 하지만 그들의 발치에서 서로 털을 핥아주고 있는 하양이와 까망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도 불길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은 안젤라도 정확히 어떤 수술을 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의사 로봇을 추천하고 그 의사 로봇에게 기본적인 자료를 넘겨주고 수술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을 문서로 전달했을 뿐이다.

녹안은 다시 상체를 숙여 까망을 안아 들었다. 여전히 말은 없었다. 녹안의 오른팔에 안긴 까망이가 녹안이 쓰고 있는 색안경을 냄새맡았다. 녹안의 색안경도 까망이의 오른쪽 눈도 별다를 게 없었다. 녹안은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띤 채였다.

"어떻게 된 거야? 까망이가 눈 수술을 받았다고? 이제 잘 볼 수 있게 된 거야?"

이번에는 벽안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녹안은 그의 오른쪽 옆얼굴께에서 아직도 색안경에 집중하고 있는 까망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고양이를 마주 보았다. 그 둘의 코가 서로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녹안이 다시 안젤라와 벽안 쪽으로 고개를 돌려 정면을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왼손을 들어 색안경의 왼쪽 다리를 잡더니 색안경을 벗었다. 녹안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녹안이 눈을 뜬 것과 까망이가 정면을 본 것은 거의 동시였다.

안젤라와 벽안은 그 순간 크게 들이쉰 숨을 내쉬지도 못한 채 그들의 눈앞에 나란히 떠 있는 두 쌍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호박색. 녹색. 호박색. 녹색. 네 알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옆으로 나란히 정렬해 있었다. 가지런한 앞니를 다 드러낸 녹안의 입가에 다시 웃음이 떠올랐고, 까망이는 귀여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나즈막하게 웃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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