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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
게시물ID : panic_1010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테라코타맨(가입:2018-03-19 방문:92)
추천 : 1
조회수 : 76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0/01/10 12: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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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아일체 (프란츠 수사)

그는 신 앞에서는 경건한 수도자, 세상의 전면에서는 술 빚는 프로그래머 수사, 세상의 이면에서는 유능한 해커이자 연방수사국 비밀요원이었다. 그의 육신은 육십 평생 평지와 산지가 만나는 사막 한 가운데에 누런 사암 벽돌로 지은 수도원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의 정신은 영계를 떠돌고 해커와 크래커가 건설과 파괴를 되풀이하는 가상세계에서 노닐었다. 수도원을 둘러싸고 있는 포도원에서 수확한 포도로 그 자신이 직접 빚는 독주는 수도원과 영계와 가상세계를 이어주는 영험한 물질이었다.

황량한 사막의 산 기슭에 자리한 수도원, 수백 에이커나 되는 그 경내에서도 산 정상쪽 경계에 지어진 작은 오두막에 홀로 살며, 수도원의 꽉 짜인 공동체 생활에서 살짝 비켜나 있어 독주와 코딩으로 그의 육신과 정신을 영계와 가상세계로 날아오르게 하는 데 좋았다. 수도원장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독주 증류와 프로그래밍은 그가 깊은 사막에 갇혀 드넓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이한, 훌륭한 방법이었다.

프란츠 수사. 성직자와 수도자를 겸한 수도사제였지만 그는 그냥 수사로 불리우고 수사로서 살기를 더 좋아했다. 천 명에 가까운 수도자들이 자급자족하며 수행하는 사막 수도원이라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기가 쉬운 편이었다. 새벽 6시에서 저녁 8시까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나는 일정 가운데 다른 수도자들과 만나는 경우는 미사와 아침저녁 식사 때가 다였다. 수도원에서 중요시하는 노동은 그의 경우 포도주와 독주 만들기와 코딩이라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은 외출이 허용되는 날이라, 11월의 마지막 수요일인 그날, 그는 여느 때처럼 수도원 공식일정보다 두 시간이 이른 새벽 4시에 일어나 글 읽기와 쓰기로 구성된 명상과 기도, 그리고 미사와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수도원 아랫마을, 곧 사하촌에 해당하는 메카라는 작은 도시로 걸어내려가 버스를 타고 떠난 시간은 아침 8시였다.

지난 60년 동안 자신의 내면에 구축한 정신세계, 그리고 속세로 열린 가상 공간에 구축한 가상세계 안에서 거의 완벽하게 자급자족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수도원 밖 세상, 즉 그가 두 발을 딛고 서야 하고 자신의 민낯, 맨눈, 맨손으로 직접 상대해야 하는 속세에 대한 미련은 별로 없었다. 5월과 11, 딱 두 차례 나들이, 코딩 관련 공산품과 군것질 식품, 그게 다였다. 사막에 없는 바닷가와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과 벼룩시장 등을 하루종일 걷다가 저녁이 되어 다시 버스에 오른 그의 배낭에 든 것은 과일 통조림과 초콜릿 6개씩이 다였다.

벼룩시장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온 터라 버스에서 내린 그는 수도원까지 걷고 다시 산길을 또 걸어서 어둑해지고 나서야 오두막에 도착했다. 통조림은 부엌 찬장에 초콜릿은 거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간단히 씻고 침실 한쪽 구석 명상 의자에 반가부좌로 앉았을 때는 그믐이라 오두막 안팎은 칠흑 같았고 사방은 고요했다. 수도원, 포도원, 땅과 풀과 나무가 다 명상에 든 듯했다.

눈은 반개하고 두 손은 단전 앞에 모으고 들숨과 날숨에 마음을 모았다. 반개한 눈에 들어오던 어둠이 사라지고 어떠한 밝음도 사라졌을 때 텅 비웠던 그의 의식 위에 무엇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꿈꾸는 신국, 신의 나라는 아니었다. 그는 호흡을 더 깊게 가라앉히고 구체화되려는 그 무엇에서 마음을 유리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 무엇은 기어코 공감각적 대상이 뚜렷한 오감의 상을 구성하였다. 마음 속 검은 화면 위에 또렷한 검은 글씨로 나타나는 텍스트였다. 동시에 그 검은 바탕 위 검은 글씨는 적막을 배경으로 한 초음파과 저음파가 되어 귀로 읽혀지는 느낌이었다.

'다크 초콜릿 아몬드 (45그램) 2'

'초콜릿 바 (500그램) 2'
'
초콜릿 볼 (145그램) 2'

그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그가 사온 초콜릿들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에 마음의 눈을 멈추는 순간 성분과 열량과 가격 등등 온갖 정보들이 줄줄이 딸려나왔다. 초콜릿을 거실 책상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 이번엔 책상의 크기, 제조사, 제조일자, 구입일자, 가격이 주르륵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힘들게 들어갔던 명상 상태에서 빠져나온 다음 눈을 뜨고 왼손 손목을 내려다 보았다. 스마트 손목시계. 그는 살짝 짜증이 묻어나는 손가락으로 사물인터넷 인터페이스를 꺼버렸다. 반 년만의 마실이 수도원 오두막에 스스로 가둔 수도자마저 흥분시켰던 게 분명했다. 원래 명상 시간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꼭 껐는데, 그것을 아예 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더 심각한 사실은 여전히 그는 두 개의 채널 가운데 하나밖에 끌 수 없는 처지라는 점이었다. 그 대목에서 한 무서운 인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신국의 이상을 공유한다고 하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통제강박 (게이츠 국장)

강철과 콘크리트. 연방수사국 본부 건물을 두고, 연방수사국 자체를 두고 사람들이 부르는 별명이었다. 제국의 헌법에도 명시된 바 없지만 연방수사국의 권한은 막강했다. 지난 백년 동안 연방수사국의 전설적인 국장들은 헌법을 위시한 방대한 제국 법률 체계의 헛점과 유전자에 새겨져 있을 뿐 아니라 구석기 시대부터 점점 더 뚜렷해지만 하는 개인으로서의 한 인간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하고, 일시적인 권한들을 부여하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작은 법안들을 쌓아올려 항구적인 권한으로 다지는 수법으로 결국에는 거대한 개미탑과 같은 권력을 쌓아올렸다.

제국의 권력 지도를 그 이면까지 잘 아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연방수사국을 흑악관이라고 불렀다. 겉으로 드러난 권력의 정점이 백악관이라면 밝은 지상에 우뚝 서는 대신 어두운 지하에서 끝없이 내연하는 꺼지지 않은 권력의 불덩이를 품은 흑체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백악관은 권력과 권위를 워싱턴과 제국 너머 온 세계를 향해 좁은 가시광선 영역에서 밝고 화사하게 발광한다면, 흑악관은 백악관 못지 않은 권력과 권위를 눈에 보이지 않는 나머지 스펙트럼 영역에서 어둡지만 강렬하게 발광하였다. 백악관은 눈으로 보지만, 흑악관은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아니 느낄 수밖에 없었다. 피부에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적외선, 피하조직까지 파고드는 자외선, 뼈를 들여다 보는 엑스선, 유전자까지 변형시키고 파괴하는 감마선처럼, 눈을 감아도 눈꺼풀을 달아오르게 하고 각막에 가 닿고 두개골을 스캔하고 뇌까지 파고든다.

게이츠 국장은 연방수사국 건물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국장 집무실을 좋아했다. 지구중력장이 보기에 가장 낮은 곳일지 모르지만 그의 눈에는 가장 깊은 곳, 가장 은밀한 곳이기 때문이다. 백악관을 비롯한 온 세상의 가시광선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곳, 하지만 연방수사국의 엑스선, 감마선은 얼마든지 뻗어나오는 곳. 또 그의 집무실은 반구형 천정을 가진 경기장 같았다. 천정 내부는 통째로 하나의 거대한 화면이었다. 그 화면을 1000x1000 바둑판처럼 나눈 무수한 작은 화면들 위에 제국과 세계의 모든 정보가 떠올라 반짝거렸다.

원래 사람이 하늘이고 사람이 연방수사국이고 사람이 제국이었다. 권력도 사람에게서 나와서 다시 사람에게 되돌아가 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게 맛이었다. 그의 전임 국장들이 다 그랬다. 하지만 그의 재임 기간에 그 모든 그림이 다 바뀌었다. 권력이 제국의 10억 인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 권력은 더 이상 국민들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연방수사국에서 나왔다. 국민 전체에 대한 개인 단위 감시와 통제를 가능케 한 '과학기술'이라 불리우는 통치수단이 완성된 덕분이었다. 그는 하루에 4시간 밖에 안 잤다. 제국의 권력에 접속하는 맛이 기가 막혔다. 권력은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속에 들어가서 취해 즐기는 것이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는 비록 역사의 발전이나 흐름에 따라 엷어지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민주적인 도구들이었다. 누구나 만들고 누구나 쓰는,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한 사람씩 쓰는 그런 정정당당한 도구는 한 인간과 하나의 대상 (물건이든, 자신 포함한 인간이든) 사이의 상호작용 에너지 비용을 극적으로 떨어뜨려주는 지렛대 혹은 촉매와 같은 에너지 증폭기, 음양으로 돌아가는 우주의 중매쟁이였다. 그렇게 수십만 년 동안 변함없던 인간과 도구 사이에 건재했던 기본적으로 일대일 민주적 관계는 도구가 진화하여 인간 고유의 기능까지 흡수하게 되었을 때 깨지고 말았다. 원래에는 인간 고유의 단독 기능이었든 인간-도구-대상의 삼각 관계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수집과 처리와 분석까지 도구가 잠식하게 된 순간, 인간과 도구 사이의 관계는 역전되어, 도구가 인간을, 그것도 여러 인간을 동시에 도구화함으로써, 민주주의는 전체주의, 전제주의로 발전 또는 퇴화하게 되었다.

이제 연방수사국의 제국, 국장 자기자신만의 연방수사국이었다. 그리고 공식, 비공식, 비밀 요원 십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연방수사국 요원으로 불철주야 근무하는 중이지만, 그들은 다 합쳐봐야 연방수사국 전체 권한의 0.001퍼센트 밖에 행사하지 못했다. 99.999퍼센트는 오로지 국장 한 사람에게 집중된 상태였다. 과학기술이라는 만능의 통치 도구를 장악하여, 인류역사상 가장 순수한 형태의 전제정치를 구현하였다.

"거의. 아직 '백퍼'는 아니고. 후후후."

기분 좋을 때만 나오는 게이츠 국장의 혼잣말이었다. 더 이상 '사람이 권력'은 사실이 아니기에 그는 이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자동차 조립 라인에 줄지어 선 로봇들 위에 군림하기처럼 의미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새 그는 부쩍 혼잣말이 늘었다.

그는 커다란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안경을 집어들어 썼다. 그 순간, 천정을 가득 메우고 떠 있던 화면들이 입체감과 색채감을 더했다. 제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각종 도표와 그림들이 앞다투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정보들은 자동으로 확대되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안보, 연방수사국 보안 지수 같은 정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제국과 온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정보의 양은 방대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인류평균치에서 살짝 밑돌기까지 한 (제국의 일급 기밀이지만) 그의 지능과 기억력으로도 소화가능한 상태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그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하면 충분했다.

천정 화면과 그 이면에서 돌아가는 강력한 연방수사국 수퍼컴퓨터와 접속되어 있는 그 인터페이스 안경은 그의 오감을 통한 입출력을 매끄럽게 해냈다. 제국과 세계에 대한 페타 바이트 규모의 순간 정보 흐름은 그의 오감의 용량과 해상도의 드라마 한 편으로 압축/인코딩/매핑되어 그에게 전달되었고, 그의 거친 해상도의 오감과 그에 기반한 기억, 느낌, 기분, 분석, 판단은 컴퓨터 안에서 다시 제국 통치를 위한 수백만 가지의 구체적 판단과 명령으로 되부풀려져 집행되었다. 인구가 10억쯤 되는 제국은 혼자 충분히 통치할 수 있었다. 물론 수퍼컴퓨터와 인간의 뇌 사이를 압축과 압축해제, 인코딩과 디코딩을 통해 오가는 정보의 해상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만, 한 개인의 오감 해상도가 형편없이 낮은 편인데다가, 그와 같은 인간들의 뇌가 최소한 메가, 기가 단위로 모여서 실행하는 모든 집단적인 과업들, 곧 정치-경제-사회-문화 등등의 해상도는 한 단계 더 낮은 터라, 대세에는 별 영향이 없었다.

그리하여, 게이츠 국장이 프란츠 수사를 자신의 집무실로 부른 일은 연방수사국 안에서는, 그러니까 제국 안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일년도 지나기 전에 벌써 세번째 수도원을 나서게 된 프란츠 수사에게 만큼은 아니었지만, 국장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프란츠 수사님, 어서 오십시오.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지요?"

짧게 깎은 머리가 허옇게 세어 있는 그에 비해 게이츠 국장은 새까만 머리에 젊어보였다. 오십대 초반쯤. 다만 눈빛만은 묘하게 번득인다는 인상을 주었다.

마침 천정 화면 가득 지구가 떠올랐다. 마치 달에서 지구로 접근하는 우주선의 주조종실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국장과의 밀담이 이어지는 동안 천정화는 토성이 되었다가 마지막엔 은하수가 되었다.


시스템

그것은 제국의 정보기관 수장과 궁벽한 수도원의 한 늙은 수사의 만남만은 아니었다. 연방수사국의 국장과 비밀요원의 만남이기도 했다. 그들의 접점은 제국과 신국 건설을 위한 정보와 정보처리였다. 게이츠 국장이 말하는 일말의 악도 남아 있지 않은 경건한 사회가 실은 완벽한 감시와 통제 사회라는 것을 프란츠 수사가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자유분방한 인간의 본성을 갈고 닦아 신 앞에 서도록 했던 중세 수도원의 삶을 동경하는 입장과 잠시 맞아떨어졌다는 편이 더 옳았다. 단번에 파악되지 않는 국가라는 주먹구구의 거대한 실체에서 국장은 제국을 보고 수사는 신국을 보는 상황에서, 프로그래밍이란 수도자라면 기도와 함께 필수인 신성한 노동이자, 제국 정보기관에는 없어서는 안되는 강력한 도구였다. 프란츠 수사의 신국도 게이츠 국장의 제국도 가상현실 공간에 세워진다는 점에서 어쩌면 두 사람은 그 두 나라의 통일 가능성을 엿보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나 프란츠 수사에게 프로그래밍이란 성스러운 읽기 '렉시오 디비나'와 짝을 이루는 성스러운 글쓰기였다. 그에게는 끝도 없는 동어반복과 모호한 논리전개로 점철되어 있는 인간의 언어보다는 간결하고 명확한 컴퓨터의 언어야말로 거룩한 창조주와 그에 버금가게 거룩한 피조세계에 다가가는 지름길이었다. 컴퓨터 언어로 쓰는 글에서는 인간의 언어로서는 불가능한 '일점일획'까지 거룩한 책의 이상적인 속성은 기본 중 기본이니까.

"제국이 범죄의 소굴이 되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국장의 눈빛이 또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오늘 이 중요한 만남의 본론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관장하는 십만 해커들의 영웅적인 투쟁에 힘입어 제국의 사물인터넷은 완성 단계에 와 있습니다. 연방수사국을 대표하여 제1 해커이신 프란츠 수사님의 공로를 치하하는 바입니다."

사물인터넷은 지난 십년 동안 게이츠 국장이 정력적으로 추진해온 사업이었다. 정보기관의 꿈과 이상이었던 사물인테넷은 이제 제국의 구석구석에 깔려 있었다. 국장 집무질 천정 화면에 뜨는 그 모든 정보들이 수집되는 통로였다.

무수한 감지기/작동기 네트웍인 사물인터넷은 정보통신용 신호 자체를 동작전력으로 쓰는 전통적인 감지기에 작동기를 덧붙인 형태였는데, 작동기는 미소전자기계 시스템과 네트웍을 타고 모세혈관처럼 뻗어나간 미소전력 시스템을 결합한 실질적인 마이크로 로봇이었다. 이와 같은 사물인터넷이 제국 전체에 깔렸다는 사실은 제국 안에 있는 모든 사물, 즉 바늘 하나까지 모두 전자적으로 파악하고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조금 과장한다면 먼지 알갱이 하나까지 추적과 추동이 가능했다.

"사물인터넷, 이건 숫제 온 우주에 스며든 정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수많은 감지기와 작동기, 그리고 그들을 하나 하나 유지보수할 수 있는 무인 시스템까지. 이제 제국은 우리 손바닥 위에서 발가벗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국장의 말 가운데 '우리'라는 단어가 목의 가시처럼 걸렸다. 국장 한 사람의 손바닥이라고 해야 할 옳은 표현이리라. 그는 국장의 말이 어느쪽으로 흐를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문제는 제국이 사물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 '사람이 제국이다'란 말도 있지요."

그는 나올 게 나왔다고 생각했다.

"사물인터넷은 사물이 연결된 것. 그렇다면 사람인터넷도 가능하겠지요?"

"사람인터넷이야 사물인터넷 이전부터 존재했고, 지금은 진정한 가상현실로 발전하는 중으로 압니다만."

국장은 빙글거리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람인터넷의 사람이 물론 주체일 수 있겠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사람인터넷은 객체로서의 사람들을 네트웍으로 연결한 것으로서, 사물처럼 사람도 제 손바닥에 올려놓자는 겁니다."

국장은 '우리'의 가면도 벗어던지며 본론으로 곧장 뛰어들었다.

"인구가 10억이라지만 사물의 갯수와 비교하자면 새발의 피, 어려울 건 없겠지요?"

"집이며 자동차며 옷가지들이야 감지기/작동기를 설치해도 얌전한 편인데 사람은 전혀 그럴 것 같진 않으니 그게 걱정입니다."

"반체제 인사들에게 시행했던 사업을 모든 국민들에게 확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시다."

국장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제국에 반체제 인사를 감옥에 가두는 법은 없었다. 대신 전자팔찌를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당사자도 모르게 두개골에 칩을 박아 두고 뇌파와 오감 정보까지 가로채고 있었다. 그런데, 반체제 인사는 많아봐야 수만 명이었다. 아무리 두개골 칩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다고 해도 국장의 말은 십억 명에게 하나같이 두개골에 주사바늘을 꽂으라는 주문이었다.

"물론 하루 아침에 다 해치우자는 뜻은 아닙니다. 비밀로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살다보면 병원에 한번쯤은 들를 텐데 그때마다 적당한 구실을 붙이고 무료로 시술해주겠다고 하면 응하지 않을 리가 없어요. 번잡한 신분증명이며 결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셀폰 같은 큰 덩어리를 늘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설탕에다 공짜라는 사카린을 타는데 넘어오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신생아들에게는 의무적으로 시술하고. 오래전부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유한 인터넷 주소를 부여하자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이참에 선심 쓰듯 해줍시다."

그는 국장의 시원시원한 말에 전율을 느꼈다. 사람을 감시하고 조작하고 사물로 취급하겠다는 말인데, 국장 말마따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편리성, 합리성, 효율성으로, 무엇보다도 혜택이라고 볼 여지가 많았다.

"수사님이 해주셔야 할 일은 사람인터넷의 첨단 노드이자 말초신경이 될 그 칩에 들어갈 소프트웨어와 펌에어입니다. 십만 해커, 병력은 충분하겠지요."

프란츠 수사는 국장의 집무실을 나와 연방수사국 본부 건물을 올려다 보다 뒤돌아서며 자신의 두개골에 오래전에 심겨진 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국장은 반체제 인사들의 칩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감시가 아니라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갑자기 신봉건제의 한 가운데에 선 자신이 보였다. 농토를 매개로 하여 영주와 노예가 주종 관계를 맺고 굴러간 중세 봉건제. 사물인터넷과 사람인터넷을 영지로 소유한 영주에게 농노로 얽매인 자신은 프로그래밍과 해킹으로 그 영지에서 땅을 대신 경작하는 그런 신봉건제. 국장이 또아리를 틀고 틀어박힌 연방수사국 본부 건물, 마천루가 영주의 거대한 성으로 보였다. 중세 이상적인 수도원을 추구한 자신의 업보인가도 싶었다.


낙인 (카드 3)

백악관에 드나드는 사람은 무척 많았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드나들었고 그가 직접 만나야 하는,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도 백여 명이 넘었다. 혈기왕성한 젊음에 성격도 좋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또 사람들을 무척 좋아하는 터라, 백악관에서는 날마다 만찬이 열렸다. 맛있는 술과 음식, 놀이, 젊은 남녀, 야단법석. 바로 황제가 목숨처럼 좋아하는 대상들이었다.

오전 시간은 그가 가장 황제다워지는 시간이었다. 지난밤 아무리 늦은 시간까지 만찬에서 웃고 떠들었더라도 그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백악관 안과 밖을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황제의 집무실에 문무백관까지는 아니지만 비서실장을 비롯한 보좌진들이 다 모이는 시간은 아침 9시 정각이었다. 그가 알아야 할 일, 서명해야 할 서류는 많았다. 그는 하나하나 비서실장에게 물어가며 무려 두 시간 동안이나 열심히 일했다. 제국은 평온했다.

"선황께서 구축하셨고 물려주신 제국의 시스템이 훌륭하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그래서 사적으로는 "삼촌"이라 부르는 게이츠 국장이 늘상 하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제국의 문무백관들이 일사불란하게 그의 통치를 보필해주었다.

할아버지 카드 1세까지만 해도 제국의 권력은 정치와 경제라는 두 세력권을 양대 축으로 하여 돌아갔다. 정치를 담당한 정치인/군인이라는 한 축, 그리고 경제를 담당한 자본가라는 다른 한 축. 실질적인 과두제로 제국을 이끌어 간 강력한 두 권력 집단은 황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정치와 경제에 틈바구니에서 뒤늦게 부상한 제3의 자원, 정보를 장악한 연방수사국의 도움을 받아 정치인/군인과 자본자들을 제압한 선황인 카드 2세 치하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제국이 되었다.

"폐하, 프란츠 수사를 한번 만나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문무백관 회의가 끝나고 집무실에 단 둘만 남았을 때 비서실장이 넌지시 물었다.

"프란츠 수사? 어떤 사람이지? 왜 무슨 일이 있나요?"

칠순을 넘긴 비서실장에게서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는지, 영민한 황제는 대뜸 되물었다. 선황의 비서실장이기도 했던 그는 자본가들과 함께 제국의 양대 세력을 형성했던 대표적인 정치인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는 처음부터 황제의 편에 섰던 특이한 인물이었다. 연방수사국이 정치인, 군인, 자본가들을 제압할 때 거의 유일하게 게이츠 국장을 막후에서 도왔던 군인이기도 했다. 게이츠 국장이 삼촌이라면 비서실장은 아버지라고 할 만큼 두 사람은 황제의 오른팔과 왼팔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인 메카 소재 가톨릭 수도원 수도사제, 수사로서 소위 십만 해커의 수장이고 불리우는 분입니다."

"거룩한 직분에 계신 분이 해커라니 놀랍군요. 내가 꼭 만나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수사들에게 기도 만큼 중요한 덕목이 바로 노동인데, 프로그래밍 또는 해킹은 그가 신에게 바치는, 신에게 다가가는 신성한 행위로서의 노동인 셈입니다. 제국의 보안에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폐하께서 직접 만나 격려하시면 좋겠습니다. 또 그는 저와 같은 거친 노인과는 전혀 딴판인 지혜로운 사람이니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비서실장께서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분이라면 당연히, 내일 당장이라도 만나죠. 저 대신 초대를 부탁해요. 보안 전문가라면 게이츠 국장도 함께 만나는 것은 어떤가요? 어차피 국장과의 만남도 다가오는데."

"그는 번잡을 싫어하는 은둔 수도자이니 역시 따로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황제는 비서실장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

"쉽지 않은 수술이었는데 회복까지도 이리 빠르시니, 축하드립니다."

황제는 비서실장과 함께 집무실을 나서며 말했다. 비서실장이 뇌동맥류 수술을 받을 사실이 떠올리고 한 말이었다. 점심 만찬으로 향하는 황제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비서실장은 웃는 듯 우는 듯 묘한 표정이었다.


반격

황제의 행차는 간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반 년만의 로스앤젤레스 방문 중 공식 일정에 없었던 느닷없는 둘 만의 사막 여행이었다. 헐리우드에서의 만찬이 끝나고 숙소에 들자마자 비서실장의 은밀한 안배에 따라나섰는데 호텔 옥상에서 이륙한 드론형 헬리콥터는 두 사람을 태우고 별 소음도 없이 헐리우드의 밤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정동쪽으로 비행했다. 술과 잠에 취한 젊은 황제는 좌석 네 개의 좁은 공간에서 30분도 안 되는 짧은 비행 내내 졸았다.

"폐하, 프란츠 수사입니다."

헬리콥터가 수도원 산자락에 자리한 오두막 옆에 착륙하고 수사의 영접을 받아 오두막 안으로 들 때까지도 비몽사몽이었던 황제는 탁자에 수사를 마주하고 앉아 비서실장이 소개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짧게 깎은 백발에 진한 갈색 수도복 차림의 프란츠 수사의 얼굴에 간신히 두 눈의 촛점을 모았다.

"비서실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게이츠 국장이 좋아하지는 않겠습니다."

프란츠 수사는 다시 졸고 있는 황제에게 힐끗힐끗 시선을 주면서 비서실장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 따지는 기색이 완연했다.

"수사께서 도와줘야 할 일이 있습니다. 황제를 위해 일해 주시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프란츠 수사가 아니었다. 비서실장은 프란츠 수사로서도 처음 보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카드 2세가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 게이츠 국장과 비서실장이 힘을 합할 때부터 프란츠 수사는 게이츠 국장을 통해 비서실장과 잘 아는 사이였다.

"게이츠 국장은 이제 거칠 것이 없단 말이오. 이대로 가다간.."

"잠깐! 비서실장께선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제국의 대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제국 정부의 하부구조의 일부인 컴퓨터 네트웍의 보안 책임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의하실 큰 일이 있다면 게이츠 국장과 상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가 따로 국장에게 보고할 필요는 없는 사항 같습니다만."

그들은, 아니 비서실장은 보기 좋게 프란츠 수사에게 퇴짜를 맞은 셈이었다. 헐리우드의 호텔방으로 돌아올 때까지 황제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새벽 3시였다. 비서실장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안경을 벗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비서실장님, 이것을 찾으시나요?"

어느새 그의 호텔 방 문앞에 게이츠 국장이 서서 그의 안경을 들어 보였다. 그가 일어나서부터 그때까지 계속 찾고 있었던 바로 그 안경,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안경과 똑같아 보이는 안경이었다. 국장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황제와 함께 프란츠 수사를 비밀리에 방문할 사실을, 그리고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국장이 심어놓은 사물인터넷 칩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수술로 제거했다는 사실도.

"뇌동맥류(?) 수술로 제거한 칩을 여기에 숨겨놓으셨더군요."

국장은 안경을 비서실장에게 선선히 돌려주면서 말했다. 그의 두개골에서 빼낸 사물인터넷 칩 하나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러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가 늘 가지고 다니는 소지품 또는 심지어 그들이 탔던 헬리콥터에도 사물인터넷 칩이 박혀 있을 터였다.

"국장, 당신은 참 무서운 사람이더군. 내게도 칩을 심어 놓다니. 나의 동의도 받지 않고. 당연히 불법은 아니겠지만."

"정치인, 군인, 자본가, 심지어는 과학자들까지 보고 싶은 그림만 보는 세상에서 저라도 전체적인 그림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류역사는 사물인터넷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과거의 사고방식은 통하지 않죠. 통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파국을 초래하기 십상입니다. 저는 제국이란 복잡하고 거대한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시스템 공학자일 뿐입니다."

국장은 프란츠 수사에 대해서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자신은 황제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언급하고는 가버렸다.


대회전

게이츠 국장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사물인터넷의 확장판으로서 사람인터넷을 포장했다. 모든 사람에게 사물인터넷 바이오칩이 심어지지만 사생활을 침해할 여지를 가진 정보는 완전한 무인 시스템을 통해 수집, 처리, 저장, 활용되기 때문에 철저히 보호된다고 했다.

"전면적인 사물인터넷, 곧 사람인터넷은 인간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입니다. 사람인터넷에서 중심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중심입니다. 정치와 경제에는 단 한 비트의 비효율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전쟁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인터넷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였다. 지구를 지구답게 만들고 지구인을 지구인답게 만드는 공기나 물 같은 존재가 바로 인터넷이었다. 인간 세상의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었던 소통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리라는 소식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사람인터넷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미 백조(10^14) 개의 사물이 연결되어 있는 사물인터넷에 백억(10^11) 명의 사람을 덧붙이는 하드웨어 작업은 쉬웠다. 물론 사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라 소프트웨어적으로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작업을 한꺼번에 다할 필요는 없었다. 일반 인류의 사람인터넷이 사물인터넷과 통합되어 있기만 하면, 그 활용방안은 무궁무진할 터였다. 제국이, 인류사회가 필요로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그에 맞는 활용 소프트웨어를 하나씩 만들어가면 될 것이었다.

"무엇보다 완벽한 복지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뚫렸습니다. 기본소득은 마침내 가능해졌습니다. 정보의 불평등과 그에 따른 자원배분의 불평등은 자동소멸되었습니다."

게이츠 국장은 비서실장과 프란츠 수사를 자신의 집무실에 불러놓고 말했다. 제국의 온 국민에게 사물인터넷 바이오 칩을 심는 작업은 절반쯤 완료되었다. 그 첫번째 사업으로 선정된 기본소득제의 전면 실시를 앞두고 두 사람을 만난 자리였다.

"십억 가운데 상당수의 국민들이 바이오 칩을 거부하고 있는데 그대로 둘 생각이라구요."

비서실장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게이츠 국장의 완벽주의와 통제강박증은 이제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사람인터넷 설치 비율이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인데, 국장은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비밀리에 그리고 강제로 심었던 사물인터넷 칩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당사자가 싫다고 한다면 아니죠. 당장 저만 하더라도 제 몸에 칩을 박지 않으려고 합니다. 주사 바늘로 포함해서 그 어떤 이물질도 내 몸을 뚫고 들어온다는 생각만으로도 저는 소름이 끼쳐 견딜 수가 없거든요."

"그러면, 사람인터넷이 완전하지 않아 그 효과도 제한적이지 않을까요?"

"어쩔 수 없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두개골에 심어 뇌와 아주 긴밀하게 접속되는 바이오 칩은 싫지만, 모자나 귀걸이처럼 머리에 가급적 가까이 두는 물건에 설치된 외장 접속장치를 늘 지니고 다닙니다. 그것도 마다하는 사람도 있어서 좀 더 약한 의미의 접속장치를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모든 종류의 접속장치를 다 거부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구요. 그들 역시 어쩔 수 없습니다. 강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사람인터넷과 같은 거대한 변화를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받아들이리라 기대하지 않으니까요."

게이츠 국장의 달라진 모습에 두 사람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를 배제하고 제국의 모든 권한을 한 손에 틀어쥔 절대권력자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사물인터넷과 결합하는 사람인터넷이 대세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더 이상 서두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필요에 따라 편리함에 이끌려 자신이 좋아서 모든 인류가 사람인터넷에 접속하게 될 날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싫다는 사람들 억지로 사람인터넷에 붙여 놓으면 좋을 일 없지요."

비서실장은 말없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국장의 변화가 크게 기꺼웠다. 황제는 아무래도 어렸다. 어쨌든 한 개인이나 집단이 통치할 수 있었던 나라의 크기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작았던 과거에 만들어진 제국과 황제, 시장과 자본주의 같은 제도들을 먼 미래까지 계속 끌고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게이츠 국장 같은 사람이 더 제국의 통치에 적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황제를 닳은 치솔 갈아치우듯 할 수 없다면, 권력의 상징 쯤으로 그대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대중의 여론조사로 정부를 구성하기보다 변하지 않는 상징으로 황제를 두고 역시 변하지 않는 원리에 따라 정부를 구성하는 형태의 군주정이나 제정 심지어는 과두정도 좋을 듯했다.

"달리 생각해보면, 십억이나 백억을 헤아리는 제국의 국민이나 온 인류가 하나같이 사람인터넷으로 연결된다면 그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말하는 '인간성'은 어쩌면 적당히 불통하고 완벽한 효율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개인과 집단들이 수 억년을 두고 형성한 그 무엇일 수 있는데, 갑자기 사람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완전한 소통과 완벽한 효율만이 절대선이라고 한다면 그 또한 자기만의 역사와 한계를 가진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성을 부정하는 꼴이 아니냐는 겁니다."

"만약 앞으로 사람인터넷의 비율이 80퍼센트를 넘는다면 그땐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 비율이 90퍼센트가 넘고 100퍼센트가 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를. 어쩌면 일정한 수, 이를테면 전체 인류의 5퍼센트나 10퍼센트 정도는 사람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인간성 수호를 위한 최후 보루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비서실장은 국장의 말에 거듭 감동했다. 심하게 맞장구 치면서 돌아보니 프란츠 수사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었다. 자기보다는 확실히 수양이 깊은지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는 않아 보였다. 그는 그런 프란츠 수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저도 국장과 저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신국'에 대한 이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나의 신국은 '신의 나라'인 반면, 국장이 꿈꾸는 신국은 '자신의 국가'라고 오해했거든요."

그의 눈길을 알아차렸는지 프란츠 수사가 말했고, 세 사람은 마주 보고 크게 웃었다.


대동세계

황제 카드 3세는 제국의 상징으로서 나날을 행복하게 즐겁게 잘 보내는 중이었다. 그의 젊음과 건강은 제국에게 꼭 필요한 안정성을 적어도 백년 동안 보장할 것이다.

게이츠 국장과 황제의 비서실장은 완성된 사람인터넷의 공동 운영으로 제국에서 그나마 남은 불확실성마저 확실히 관리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사람인터넷 바이오 칩을 자신들의 몸에 장착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특히 천지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은 그 자체로 완전하기 때문이었다.

프란츠 수사 자신은 수도원 원두막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기꺼이 사람인터넷의 최신 바이오칩을 두개골에 이식했다. 사람인터넷이란 우주 최강의 하드웨어에 직접 접속하지 않는다면 그의 해커 본능은 무색해질 터였고, 무엇보다 "백조의 사물과 백억의 인류"라는 존재하는 모든 것, 삼라만상을 품은 무한 가상공간을 제대로 해킹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기꺼이 그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의 첫번째 작품은 삼라만상 인터넷 그 자체를 통으로 경험하고 즐기는 프로그램이었다. 만유정령설을 종교 이론 교과서에서 밖으로 끌어내 사람들의 오감에 직접 접속시켜 주는 인터넷 프로그램이었다.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뿐 아니라 사물까지 개별적으로 느끼고 교감할 수 있었고, 쏟아져 들어오는 엄청나게 많은 사물-사람 정보를 통계확률적으로 분석, 처리, 압축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우주 전체를 하나의 '느낌'으로 소비할 수 있게 주었다. 그 프로그램을 경험해본 종교학자들은 정령신앙과 고대 종교의 부활을 점치기도 했다. 프란츠 수사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구체화해주는 훌륭한 방편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의 두번째 연구 주제는 주자성 세균이었다. 백 나노미터 정도 크기의 자철석 입자를 몸 안에 갖고 있어 그 자신의 몸을 나침반처럼 지자극과 일치시킬 수 있는 박테리아인데, 그 자철석 알갱이를 사물인터넷 나노칩으로 바꿔치기 하는 연구였다. 만약 연구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쌀알만한 사물인터넷 칩의 크기는 박테리아보다 더 작게 될 뿐만 아니라, 박테리아나 세균까지 삼라만상 인터넷을 통해 직접 접속할 수 있을 터였다. 연구 초기의 시제품은 거칠었지만 이미 실지 실험을 거쳐 실용화를 입증한 상태였다.

프란츠 수사는 행복했다. 기도와 노동으로 신과 접속하는 수도자로서 정말로 행복했다. 게이츠 국장의 미치광이 계획인 사물-사람-삼라만상 인터넷은 그의 기도를 풍요롭게 해주었고, 삼라만상 인터넷이란 무한 공간에서 하는 노동은 흥미롭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돌아오는 길에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착륙하면서 그는 강력한 제트엔진의 떨림과 동조하는 겁많은 승객들의 가슴떨림을 느낄 수 있었고, 20만 명이 넘는 여행객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여행의 즐거움과 설레임을 공항 전체를 휩싸고 있는 극광으로 볼 수 있었다. 그를 수도원까지 싣고 간 무인 버스도 살아있었고 그가 버스 안에서 마신 우유 한 병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펄펄 살아있었다. 한 병의 우유를 통해, 켄터키에 위치한 그 목장, 주인의 막내 아들, 시장의 유통구조, 성분과 열량 등등의 수많은 정보들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초대

황제 비서실장과 프란츠 수사에겐 사람인터넷 설치율이 50퍼센트 좀 넘는 수준이라고 했지만, 실은 100퍼센트였다. 물론 자기 자신은 뺀.. 그는 원래 사람들의 동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 영향받는 인간이 아니었다. 십억이든 백억이든 그들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방법은 많았다. 백억 개의 혈관에 한 개씩 바늘 구멍 내기는 물론, 그의 성정상 하나의 혈관에 백억 개의 바늘 구멍 내기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인터넷이 완비되는 순간, 그의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증폭된 그의 공감 능력은 그로 하여금 비서실장과 프란츠 수사를 만나서 기본소득이니 인간성 수호의 최후 보루이니 하는 낯간지러운 말들을 하게 했다. 원래 그는 두 사람을 실컷 비웃어줄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왜 그리 순진한 것이냐고, 황제는 허수아비이고, 너희들은 바보 멍청이라고.

그리고 그를 더욱 더 당혹스럽게 한 사실은 기본소득과 인간성 수호 등등에 대한 그의 발언이 그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는 점이었다. 지금이라도 사물인터넷 바이오칩을 거부했던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역시 원하지 않는다면 바이오칩을 제거해줘야 하나 싶다가도 연방수사국 국장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단결 같은 그 마음씨에 그는 화들짝 놀라곤 했다.

또다른 증상은 악몽이었다. 연방수사국 국장이지만 실제로는 제국 황제로서의 절대 권력을 속속들이 즐기고자 하루에 네 시간밖에 안 자는 그였지만, 잠들자마자 온갖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 때도 바로 사람인터넷이 100퍼센트 완성된 뒤부터였다. 악몽은 한결 같았다. 바로 그가 죽인 사람들이 꿈에 나타났다. 그들이 죽음을 맞는 순간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생 전체가 한꺼번에 생생하게 되살아 나니 그가 느끼는 죄책감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가 죽인 사람은 많았다. 그에게 고통받은 사람들은 셀 수도 없었다. 아직 죽지 않은 그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을 악몽에 시달린 게이츠 국장은 그 모습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뼈와 가죽만 남은 얼굴에 푸석하게 자란 머리카락은 허옇게 세고 말았다. 또다시 악몽에 화들짝 놀라며 깨어난 그의 눈에 밤하늘이 들어왔다. 천정화였다. 그리고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꿈에 나타난 민얼굴의 귀신이 내던 소리가 생각나 모골이 송연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어보면 집무실 안은 조용했다. 움직임도 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풀리는 순간 그 소름돋게 하는 소리는 다시 시작해서 점점 커져 가다가 마지막에는 그 큰 반구형 공간에 메아리쳤다.

그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집무실을 뛰쳐 나왔다. 군데군데 서 있는 경호 요원들을 손짓으로 제지하고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간 다음 로비를 뛰쳐나가 밖으로 나갔다.

한밤중이었다. 중천에 보름달이 떠 있었다. 보름달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비명이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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