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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대학 동기 L에 관한 이야기 하나 더-下편
게시물ID : panic_1010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보이지않는세계
추천 : 7
조회수 : 212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1/12 22: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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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L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L이 꿨던 꿈에 대해서 여기저기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그다지 명확한 답변을 얻지는 못했어.

다만, 나중이 돼서야 그 당시에 이모부께서 확신 없이 해주셨던 해몽이 정답에 가장 근접했음을 알게 됐었지.

 

그렇게 아무런 소득도 없이 어영부영 3일이라는 시간을 보내다가 

난 L이 꿨던 그 꿈의 의미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를 통해 알 수 있었는데...

그 주에 방송에서 다뤘던 에피소드가 L이 나에게 들려줬던 L의 꿈 얘기랑 거의 완전히 동일했어.

그래서 난 L이 벌써 서프라이즈 방송에 제보를 했구나 했는데...

제보자는 분명히 L이 아니었고,

방송 중간에 무당이 나와서 그 제보자가 꿨던 꿈을 풀이해줬는데...

 

만약, 꿈에서 귀신이 자기 집 쌀독이나 쌀가마에 손을 대려고 한다면...

그건 어떻게 해서든지 무조건 막으라는 거야!

 

왜냐하면 쌀은 살아있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어서

만약, 귀신이 쌀에 손을 대면 그 집안 사람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고,

귀신이 쌀독이나 쌀가마에서 쌀을 퍼가면 그 가족 중에 누구라도 죽을 수가 있다는 거야!!

 

난 지금도 그 당시에 방송을 보는 동안에 내 몸에 있는 모든 털이 쭈뼛쭈뼛 서고,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온몸에 닭살이 돋았던 그 느낌이 어제 일처럼 정말 생생하게 기억이 나.

 

난 곧바로 L에게 전화를 걸어 이 얘기를 들려줬어.

L은 무척이나 놀라면서도 안심하는 목소리로 내게 얘기했어.

"그럼, 내가 꿈에서 그 귀신을 막은 게... 잘한 일이었네."

"그렇지! 만약에 니가 그때 그 귀신을 막지 않았다면... 너희 집에 안좋은 일이 생겼을 수도 있었겠지."

"정말 다행이다."

"그러니깐 말야."

"K야, 진짜 고마워. 사실은 나 그 꿈을 꾸고 나서 마음이 계속 안좋았는데... 찝찝하기도 하고...

 근데, 니 덕분에 이제 개운해졌어."

"다행이네."

"K야, 다음 주에 내가 구정문에서 맛있는 밥 살게."

"밥!? 아니야. 됐어. 뭘 이런 걸 가지고."

"야, 그래야 내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질 것 같단 말이야!"

"아! 그래!? 그럼, 먹자."

"응. 그래. 그럼, 주말 잘 보내고."

"응, 너도."

 

내 기억에는 그게 L과 나의 마지막 전화 통화였어.

그런데 갑자기 내 꿈에 L이 나타나서 18년 전의 쌀 푸는 귀신 꿈 얘기를 하다니...

"흐음... 뭘까?"

난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어.

그런데...

 

올해 8월 초, 동아리 동기 모임에서 나는 P를 만났어.

대학 시절 P는 L과 매우 친했었고,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은 지금도 꾸준히 서로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어.

난 얼마 전 꿨던 꿈이 생각나서 P에게 L의 안부를 물었어.

"P야, L은 잘 지내고 있지?"

내 물음에 P는 깜짝 놀라 커진 두 눈으로 나를 봤어.

"뭐야... K... 너, 갑자기 L에 대해서는 왜 물어?"

"응?"

 

우리 동기들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쭉 1년에 한차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어.

P와 나는 10년이 넘도록 모임을 통해 지속적으로 만나왔지만

내가 L에 관한 얘기를 P에게 물어보는 건 이때가 처음이었어.

 

"너, 혹시 뭐 들은 거 있어?"

"뭐? 아니, 그건 아니고. 사실은 얼마 전에 내가 꿈을 꿨는데... 내 꿈에 갑자기 L이 나와서."

"꿈!? 무슨 꿈?"

"아! 진짜 별건 아니고, 아주 잠깐동안 우리가 대학 시절로 돌아간... 뭐... 그냥 그런 평범한 꿈이었어."

내 대답을 고민하는 얼굴로 가만히 듣고 있던 P가 아주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어.

"아... 이 얘기를 해야하나 싶기는 한데... 그래도 니들한테는 해야할 것 같기도 하고..."

"뭐야... 뭔대? P여사, 왜 이렇게 뜸을 들이시나? 어서 빨리 말해봐."

다른 동기들의 재촉에 P는

"있잖아. 그게 말이야..."

목소리를 무겁게 깔면서 얘기를 시작했어.

 

"실은 얼마 전에 L의 오빠 장례식이 있었어."

"뭐?"

놀라서 벙찐 나를 대신해서 다른 동기들이 P에게 물었어.

"L의 오빠면... 서울대 출신의 그 M사 기자분 아니야!?"

"응, 맞아. 그랬었지."

"왜? 사고로? 아니면... 아파서?"

"아니, 자살이래."

"헐... 왜? 왜 그러셨대? 서울대까지 나온 사람이..."

"그게... L의 오빠가 지난 정권 때, M사에서 노조 활동을 하다가 윗사람들한테 찍혀서 강제로 해고를 당했어.

 그래서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소송도 제기하고, 국민신문고에다가도 여러 번 민원을 넣고 그랬었는데...

 이게 해결될 기미는 조금도 안보이고 상황이 너무 장기화가 되니깐

 결국 L의 오빠가 식구들이랑 지인들한테 돈을 좀 빌려서 사업을 하기 시작한 거야.

 근데, 이 오빠가 팔자에 사업운은 없었는지... 하는 사업마다 이상하게 잘 안되더라고."

"아이고."

"부모님이랑 L이랑 친척들, 심지어 결혼하기로 약속했던 여자 친구까지 빚을 내서 도와줬는데도 진짜 끝까지 안되더라."

"에휴..."

"서울대 출신에다가 M사 기자였던 그 자존심 강한 오빠가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고 괴로웠으면 결국 사채까지 끌어쓰다가..." 

"뭐? 사채!? 하... 아무리 그래도 사채는 아니지!"

"그러니깐! 사채업자 그놈들이 좀 독해!? 진짜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 엄청나게 괴롭혔다고 하더라고.

 오빠 뿐만 아니라 L의 식구들 모두를."

"하아... 진짜... 어지간히 좀 하지!"

 

P의 얘기를 다 듣고나서 난 P에게 물었어.

"P야, 그게 언제야?"

"응? 언제냐니? 뭐가?"

"L의 오빠 장례식이 언제였어?"

"아! 한달 전쯤이었나... 7월 초였던 것 같은데...!?"

"7월 초!? 7월 초면...?!"

"왜?"

"아! 아니야. 아무 것도."

P와 다른 동기들에게는 얘기할 수 없었어.

 

"아! 근데, 이게 정말 더 마음 아픈 게 뭐냐면은...

 L의 오빠가 실종된지 거의 열흘만에 산속에서 유서랑 같이 발견이 됐는데...

 오빠 사체가 훼손이 너무 심해서 얼굴은 거의 남아있지도 않았대."

"헐! 뭐야... 혹시, 산짐승들이...!?"

"응."

"하... 불쌍해서 어떡하냐..."

"그러니깐..."

난 P와 다른 동기들에게는 차마 얘기할 수가 없었어.

 

6월 말 새벽 내 꿈속에서,

도대체 왜 그랬냐는 나의 추궁에 자기들도 좀 살아야하지 않겠냐면서 엉엉 울던 L의 안타까운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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