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풍등-초대받은 사람들 5
게시물ID : panic_1012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ㅣ대유감
추천 : 6
조회수 : 61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3/17 11:23:31
옵션
  • 창작글
  • 외부펌금지
speaker. 하진
 
이렇게 오래 헤어져 있는 건 만나고 처음 인 것 같다.
친구들과의 첫 여행이라며 어찌나 들떠 있던지 서운해 하는 내 얼굴은 눈치도 못 채는 것 같았다.
여행 동안 비나 계~~속 내려라.”
괜히 심술이 나서 볼멘소리를 하니 나의 강이가 뒤에서 허리를 꼬옥 안아준다.
나도 오빠를 5일 동안이나 못 본다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캄캄해. 보고 싶어서 어쩌나 걱정되고. 그래도 친구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오빠도 알지? 재밌는 여행 되도록 기도해줘. 돌아오면 오빠에 대한 맘이 더 깊어져서 매일 오빠 껌딱지 할지도 몰라.”
오빠가 나이 값도 못했네. 강이한테 유일한 어릴 적 친구들인데..... 고등학교 다닐 동안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알면서..... 미안해. 내가 나빴다. 어머님은 내가 연락도 매일하고 무슨 일 있나 챙겨 드릴 테니 걱정 말고 다녀와. 결혼하면 나랑도 자주 여행 다니자. 사랑해.”
몸을 돌려 품에 꼭 안으며 말했지만 알 수 없는 불안함에 놓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보낸 강이가, 들떠서 행복을 감추지 못하던 강이가 일정을 남겨두고 귀국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것도 강이에게 직접 들은 게 아닌, 강이와 연락이 안 닿아 답답한 마음에 어머니께 전활 드리니 그제야 강이가 돌아와 있다는 말을 하신 것이다.
바로 달려가려 했지만 절대로 안정을 취하라는 병원의 지시로 면회조차 안 된다며 와도 볼 수 없다고 못을 박으시는 어머님의 말씀에 마음이 졸아 드는 것 같았다.
어디가 아픈 건가요? 다친 건가요? 많이 안 좋나요? 어머님?”
……. 아직은..........모르겠어. 병원에선 위험한 상태는 아니라 하니 걱정은 말고, 기다려 보자고.”
사랑하는 사람이 병원에 있는데,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상황이 미칠 것 같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지 놀라 깨어보니 끌어안은 베개가 축축하다.
오빠, 미안해. 오빠, 정말 미안해......”
꿈속의 강이는 눈물을 흘리며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갔다.
강이를 쫓으며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좁히려 숨도 쉬지 못하고 뛰어갔다.
눈물이, 콧물이, 침이 뒤범벅 된 얼굴은 꿈에서 깬 뒤에도 그대로였다.
화장실로 가 후다닥 얼굴을 씻어내고 새벽녘의 거리로 내달렸다.
강이를 이대로 보낼 것 같은 두려움에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다.
 
 
speaker. 연무
 
강이는 착한 딸이었다.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는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다. 어린 속을 숨기고 어른인 척 하는 게 속상했다.
강이가 다섯 살 때 강이 아빠와 이혼을 했다.
강이 아빠는 착실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만나 서로 의지하다 정들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강이 아빠는 회사세미나로 갔던 강원도에서 동료들과 재미로 들른 카지노에 흠뻑 빠져 일주일에 삼일이 멀다하고 퇴근 후 직행하는 생활을 했다.
처음엔 말려도 보고 울며 매달려도 보았지만 그의 눈은 이미 예전의 빛을 잃고 충혈 되어 아이와 난 안중에도 없었다.
기어코 힘들게 장만했던 전셋집을 날리고 내 앞으로도 빚 오천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된 후에야 그를 떠날 결심을 했다.
강이의 양육권과 친권을 모두 포기하고 홀가분하게 그는 떠나갔고, 단 한 번도 우릴 찾지 않았다.
가난한 친정에 더부살이 하며 강이 만큼은 잘 키워보고자 이 악물고 버둥거렸다.
세상에 던져진 우린 서로가 안쓰러워 항상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습관처럼 서로의 표정, , 몸짓이 보이는 껍데기 이면의 의미를 알아내려 애쓰고 있다.
고등학교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온 강이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예의 괜찮다는 강이에게 더는 묻지 않고 다음 날 학교에 갔다.
선생님을 만나고 별일 없다는 대답을 듣고도 난 한참을 학교 한켠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곳에서 강이 욕을 하고 무시하는 또래들의 대화를 들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강이의 낯빛이 점점 흙빛으로 변해갈 때 강이를 품에 안으며 그만 애써도 괜찮다고 말해줬다.
강이는 내 옷이 흠씬 젖도록 울고 나서야 학교를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강이를 왕따 시키던 아이들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나에게 강이는 괜찮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낯선 사람을 극도로 무서워하던 강이의 낯가림은 그 때 이후로 훨씬 더 심해져 학교 다니기도 힘들어 했는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좋아졌다.
그렇게 강이는 주변을 철저히 배제하고 학교만 간신히 다니며 졸업을 하고 대학엘 갔다.
대학 입학식엔 나더러 오지 말라며 스무 살에 엄마와 학교 가는 사람은 없다고 정색을 했다.
학교생활에 제법 적응하며 만족하던 강이에게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생기고 내 걱정은 조금씩 덜어졌다.
웃는 얼굴이 몹시 선한 하진이는 남자 없는 우리 집에 와서 전등도 갈아주고 화분도 나르며 듬직한 존재가 되어갔다.
강이가 어릴 적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강이가 그 친구에게 속아 큰일이 생길 뻔했던 기억이 떠올라 말리고 싶었지만, 환한 웃음에 그럴 수가 없었다.
후회하고 후회한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생살을 찢어내는 고통이라도 참을 수 있다.
이틀 만에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고 그길로 공항으로 가서 강이를 기다렸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렸지만 열려지는 문 저 안쪽에 점처럼 보이는 강이가 위태로운 걸음을 걷는다.
내 강아지, 내 목숨, 내가 살아있는 이유인 내 아이가 휘청거리고 있었다.
이틀사이 피폐해진 아이의 몸을 부축하며 아이 친구들을 찾았지만 그녀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말없는 강이를 데리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검사를 마치고 병실로 옮겨진 아이가 잠드는 걸 확인하고 담당의사 호출을 받았다.
심한 폭행과 함께 성폭행이 의심된다고 했다. 그리고 무슨 검사를 추가로 더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 소리만 길게 들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강이는 깨어나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한 눈으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하루를 보내다가 강이가 문득 말했다.
엄마, 지금 몇 시지?”
시간은 왜? 7시네. 근데 강아, 하진이한테 연락 오는 것 같은데…….”
그게 누군데? 엄마, 눈은 언제와?”
눈물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시련이 오려거든 내게 오지..... 아이의 세상이 휘어지고 있었다. 바로 잡아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눈은....아직 더 있어야 해. 강아, 엄마랑 바람 쐬러 나갈까?”
아니 엄마, 난 그냥 여기가 좋아. 엄마, 어디 가지 말고 꼭 여기 있어.”
그럼, 엄마가 어딜 가겠어. 우리 강이가 여기 있는데.”
 
하진이에게 전화가 왔지만 오라고 할 수가 없었다. 하진이를 기억도 못하는 강이에게 충격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의 강이 모습을 보여 줄 수가 없다.
하진이가 힘들어 할게 보이지만 더 이상 해줄 말도 없었다. 미안하다…….
 
진정제를 맞고 잠이든 강이 얼굴은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차라리 기억이 없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든 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강이가 사라졌다.
이상한 기운에 눈을 뜨니 침대위 잠들어 있어야 할 강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온 층을 다 돌고 다른 층까지 모두 돌아보았지만 강이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병원의 술렁임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병원로비에 두리번거리는 하진이가 보인다.
난 하진이를 지나쳐 사람들이 몰려가는 밖으로 나왔다.
나를 발견한 하진이도 나를 뒤따랐고, 우린 피를 흘리고 있는, 너무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강이를 보았다.
 
 
speaker. 하진
 
정신없이 달려가 닿은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마주했다.
꿈속에서 멀어져가던 강이를 보며 눈물을 그렇게 흘렸는데,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날 버리고 간 그녀가 원망스러워 화는 불쑥불쑥 올라오는데,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그녀의 친구들을 볼 수 없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쉽게도 떠든다. 소중한 그녀의 얘기는 소문이 건너 건너서 입에 담기도 더럽게 퍼졌지만, 난 그런 말 따윈 믿지 않는다. 내가 아는 강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오늘도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으신다. 벌써 며칠 째 전화를 안 받으시는 걸 보면 일부러 내 연락을 피하고 계신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은 찾아가 봬야겠다. 강이도 없는데 내가 해야지..... 강이도 없는데.......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신고를 하고 경비실에 연락해 문을 열었다.
완벽하게 정리된 집안은 여느 때보다 훨씬 더 정갈한 느낌이었다.
어머님의 성격이 워낙 깔끔하셔서 강이는 결벽증이라며 놀리기도 했었다. 늘 깔끔한 집이었지만 오늘따라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동행한 경찰과 경비원도 모델하우스보다 더 말끔하게 정돈된 집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정도면 무균실보다 더 먼지가 없을 것 같네요. 허 참... 집주인은 없는 것 같은데, 집 상태를 보니 별일은 없어 보입니다. 어디 확인해볼 곳은 없나요? 가족이나…….”
얼마 전에 딸을 여의셨어요. 집 말고는 가실만한 곳이 없으신데……. 며칠 연락이 안 되어 걱정돼서 찾아뵌 겁니다. 혹시 실종신고 할 수 있나요?”
그냥 가출 일수도 있고, 며칠 기다려보시다가 하세요. 뭐 기대하기는 어렵지만요. 성인 가출은 늘 그래서…….”
경찰이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알겠으나 순간 화가 났다. 사람의 행방이 묘연한데 무작정 기다리라니. 더구나 신고를 해도 해줄게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게 아닌가.
강이에게 약속을 했었다. 강이와 마지막 얘길 나누며 그녀 없는 동안 어머님을 잘 살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눈물이 났다. 강이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니,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왜 울고 그러세요. 나쁜 일은 없을 겁니다. 저랑 같이 서로 가셔서 실종신고서 작성하시고 기다려보세요. 저희도 최선을 다해 찾겠습니다.”
어머님이 사라지셨는데, 연락할 곳이 없었다. 이혼 후 연락이 끊어진 강이 아버지나 몇 년 전 한 해 사이로 돌아가신 강이 외조부모님도 안 계신 지금 어머님을 찾을 사람은 나뿐이었다.
약속을 했다. 잘 살펴드리겠다고.....강이와 약속을 했었다.
 
 
speaker. 연무
 
아이를 보내고 49재를 지내고도 계속 절에 머물렀다.
아파하는 아이 맘을 몰라준 죄가 너무 커서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마지막 순간 아이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프고 외로웠을까……. 죽어서도 아이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눈 떠있는 시간을 온통 법당에서 보내는 내게 보살한 분이 말을 건넸다.
그렇게 애쓰면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답니다. 가는 길 편안히 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요.”
정신이 번뜩 났다. 내가 아이 발목을 또 잡고 있었던가.
안수로 가시면 맘 다스리고 수양하기 좋은 곳이 있습니다. 가신 분 잘 보내드리고 보살님께서도 평안을 찾으시기엔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제가 말해 놓을 테니 거처를 옮기세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날로 짐을 쌌다.
떠나기 전 집에 들러 청소를 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집 청소를 하자니 구석구석에 강이와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있다.
이마저도 아이를 붙드는 원인이 될까 두려워 깨끗이 닦아냈다.
해가 저물고 날이 새도록 계속된 청소는 아침 해가 높이 올라서야 끝이 났다.
집을 휘둘러보고 대충 짐을 챙겨 안수로 떠났다. 어쩐지 그곳에 가면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날 기다릴 사람하나 남아있지 않았지만, 막연한 기대감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며 기절하듯 잠이 들었는지, 얼마의 시간이 흐른 지도 알 수 없었다.
이미 멈춰있던 버스엔 마지막 승객이 막 내리고 있었다. 급히 짐을 챙겨 대합실로 나오니 막막했다.
주머니를 뒤적여 적어준 쪽지를 찾으려는데 누군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 자미산에서 오신 보살님 맞으시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궁색한 내짐을 받아 든 사람은 자신을 펜션주인이라 소개하며 자신의 펜션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펜션구석방에 기거하며 빨래, 청소를 도우며 지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펜션이 적막한 절보다 더 마음이 편안했다.
밤낮없이 법당에 머물던 시간보다 방 하나하나를 정리하며 보내는 시간이 더 경건하게 느껴지고 죄를 덜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도 날짜도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이 죽을 만큼 괴롭진 않아 졌다는 걸 깨달을 뿐이었다.
 
 
마음의 짐은 많이 가벼워지셨는가?”
일과를 마치고 그네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자미산에서 만난 보살님이었다.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는 있네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견뎌보시게. 곧 아이가 온다네.”
? 우리 강이가 온다고요?”
선뜻 알아듣지 못해 눈을 굴리니 희미하게 웃으신다.
아이가 초대한 사람이 많은가 보이.”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강이가 온다고 했다. 내 딸이 이곳으로 온다는 것인가?
신어머니께서 다녀가셨네요.”
생각에 잠겨 발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사장님이 옆에 서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 우리 강이가 온다네요.”
전해 들었습니다. 따님과 일행 분들을 위해 준비할게 많겠어요.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 그럼요! 뭣부터 하면 좋을까요? 아휴...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오랜만에 보는 아이를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갈비찜도 하고 잡채도하고 아...그리고 뭐가 있었더라?
바쁜 마음과 달리 자꾸만 멍해지는 정신을 잡으려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앞서 사라지는 사장님의 뒤를 잰걸음으로 쫓으며 따라갔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